It is the nanny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37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37화
“베론은?”
“영식들을 상대하고 있을 겁니다. 클로드 님의 친우로 각별히 선택된 가문의 영식들이니 기다리는 시간을 소홀히 할 순 없어서요.”
“론다는?”
“시녀장님은 클로드 님의 준비를 돕고 계십니다.”
“별일이구나. 네가 아니고 론다가 클로드의 준비를 돕고 있다니.”
“시녀장님께서 사라 님의 밑에서 주인을 대하는 태도를 다시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래.”
메이는 사라가 던지는 질문에 대답하면서도 은근히 그녀의 눈치를 보았다.
본래 클로드의 자잘한 준비를 돕는 것은 메이의 몫이었으나, 한번 그 자리에서 쫓겨난 뒤로 시녀장은 클로드의 곁에 메이가 다가가는 것을 꺼려 했다.
클로드가 사라를 거부하게 만든 것이 메이라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비록 사라의 자비로 하녀들이나 하던 잔심부름과 빨래를 하는 일은 면했지만, 사라의 곁에서 기죽은 채 살라는 것이 시녀장의 뜻이었다.
의심의 눈초리로 연신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는 상관은 여간 상대하기 힘든 것이 아니었다.
‘클로드 님께 용서를 구하려면 클로드 님의 곁에 있어야 해.’
메이는 어떻게 해서든 다시 클로드를 모시고 싶었다.
예전처럼 클로드의 총애를 받아 기세등등하게 다니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고작 어린아이에게 화풀이하듯 질투에 휩싸여 휘두르려고 한 자신의 잘못을 조금이라도 만회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메이는 사라의 곁에서 최선을 다해 클로드를 위한 노력을 해 볼 셈이었다.
“저어, 사라 님.”
사라를 부르는 메이의 목소리는 매우 조심스러웠다. 앞을 보며 걸어가던 사라는 메이를 돌아보지 않은 채 답했다.
“왜 그러니?”
“지금 클로드 님과 모임을 가지는 영식들에 대해선 전부 파악하셨나요?”
“당연하지. 네이븐 자작 영식과 유겐 남작 영식, 그리고 파블 백작 영식이 아니니.”
네이븐 자작과 유겐 남작, 그리고 파블 백작은 모두 정계에서 내로라하는 귀족파들의 자식들이었다.
본래 1황자에 줄을 선 벌룬 후작 영식도 이 모임에 포함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최근 1황자가 부적절한 행실로 인해 황위 계승권을 박탈당하자 벌룬 후작은 가문의 문을 닫고 칩거했다.
당연한 수순으로 그의 아들인 벌룬 후작 영식 또한 오늘 모임에 참여하지 못했다.
“그걸 묻는 이유는?”
사라의 물음에 메이는 잠시 할 말을 머릿속에서 적당히 고르기 시작했다.
잠시 고심하던 메이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분들이 클로드 님보다 나이가 더 많은 영식들이니 혹시 클로드 님께서 모임에 그리 흥미를 느끼지 못할까 봐 걱정이…….”
“내가 오기 전에도 이미 계속해서 만남을 가졌던 모임이라고 들었는데. 네가 이제 와서 걱정을 하기에는 조금 늦은 감이 있구나.”
사라는 걷던 것을 멈추고 뒤를 돌아 메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시선을 마주했다.
그 곧은 시선과 뭐든지 다 알고 있을 것만 같은 투명한 눈동자에 메이는 순간 숨이 턱 막혀 왔다.
“할 말이 있다면 그렇게 돌리지 말고 직접 말하렴. 나는 그걸 더 좋아하거든.”
“네.”
메이는 어떻게든 말을 잘 골라 보려던 제 속을 들킨 것만 같아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떨궜다.
아직도 얕은수를 쓰던 버릇을 감추지 못한 것 같았다.
“그분들은 클로드 님께서 사귀기에 적당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뭐지?”
“일단 클로드 님은 올해 여섯 살인데, 그 영식들은 모두 열 살이 넘었는걸요.”
“그게 그리 큰 문제가 되니?”
“네. 클로드 님을 아주 가지고 놀아요. 머리만 커서는 교묘하게 클로드 님이 어찌하지 못할 선을 가지고 말이에요.”
말을 고르지 않는 메이의 고자질은 아주 직설적이었다.
그간 클로드의 곁에 누구보다 가까이 있었던 메이였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집사와 시녀장은 그걸 알고 있고?”
사라는 메이의 고자질에 진위 여부 따윈 묻지 않았다.
그것이 자신에게 주는 신뢰인 것만 같아 메이는 조금 들뜬 기분으로 답했다.
“모르십니다.”
메이의 대답에 사라의 미간에 미약한 실금이 갔다.
“어떻게 모를 수 있지?”
“그만큼 영악하니 감히 암브로시아 공자를 가지고 놀 생각을 하지 않을까요.”
“너는 어떻게 눈치챘니?”
“……저도 어릴 적 종종 당하던 거라서요. 전 가족에게 당했지만.”
사라는 씁쓸하게 흐려지는 메이의 목소리를 들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오늘 어쩐지 온종일 풀이 죽어 있는 클로드의 모습을 보며 짐작은 했지만, 아무래도 그녀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심각한 상황인 것 같았다.
메이가 상황 판단이 빨라 이렇게 노골적으로 일러 준 것이 다행이었다.
“잘했어.”
사라는 메이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준 뒤 다시 걸음을 옮겼다.
“……!”
메이는 한결 환해진 얼굴로 사라의 뒤를 따랐다.
* * *
“으…….”
클로드는 시녀장 론다의 손에 거의 끌려가듯이 정원으로 향했다.
저 멀리 준비된 테이블에서 체스를 놓고 있는 귀족 영식들의 모습이 보이자 클로드의 얼굴은 더욱 일그러졌다.
저보다 몇 살이나 많은 귀족 영식들은 암브로시아와 인연을 맺기 위해 여기저기서 찾아든 클로드의 친구 후보였다.
어릴 적부터 인연을 쌓아서 아카데미에 입학할 때나 정계에 나아갈 때 서로의 든든한 우호 세력이 되어 주길 바라서였다.
“클로드 님, 이번에는 실수하시면 안 됩니다. 공작님께서 클로드 님에게 거는 기대가 예전과는 다르다는 건 아시죠?”
론다는 노골적으로 싫은 티를 내는 클로드의 귓가에 당부의 말을 속삭였다.
사라가 이 저택에 온 뒤로 미묘하게 공작과 클로드의 사이가 부드러워졌다는 건 암브로시아 사람들이라면 전부 다 알고 있었다.
론다는 이번 기회에 클로드가 공작에게 많은 인정을 받고 나아가서 암브로시아의 진정한 후계로 거듭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유모는?”
클로드는 론다의 손에 이끌려 가면서도 두리번거리며 사라를 찾았다.
1황자의 칼부림 사건 이후로 오랜 시간 누워 있었던 사라를 위해 암브로시아 공작은 무조건적인 휴식을 먼저 권했다.
그래서 최근 클로드의 일정에 사라는 부분적으로 참여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만큼 유모가 간절했던 적이 없었던 클로드는 불안하게 눈을 굴리며 사라의 옅은 갈색 머리칼을 찾고 또 찾았다.
“곧 내려오실 겁니다. 그러니 클로드 님은 안심하시고 먼저 영식들을 맞이하시지요.”
론다가 그렇게 속삭이자 클로드는 조금 안심한 듯이 긴장을 풀려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먹잇감을 발견한 귀족 영식들의 얼굴에 비릿한 미소가 감돌자 클로드의 얼굴은 다시 굳을 수밖에 없었다.
“오래 기다렸습니다, 클로드 암브로시아 공자님.”
그들의 리더 격이라고 할 수 있는 네이븐 자작 영식, 루스 네이븐이 앞으로 나와 클로드에게 악수라도 하려는 것처럼 손을 내밀었다.
클로드에게 다가온 귀족 자제들은 모두 3명이었다.
올해 13살인 루스 네이븐 자작 영식을 필두로, 올해 11살이 된 아롤드 파블 백작 영식과 빌리언 유겐 남작 영식이었다.
“…….”
클로드는 론다의 치맛자락을 꽉 쥐며 슬쩍 뒤로 물러섰다.
아이의 작은 주먹이 새하얗게 질린 채 파르르 떨렸다.
그 모습을 본 네이븐 자작 영식, 루스의 입가에 비웃음을 삼킨 미소가 떠올랐다.
“매번 볼 때마다 제 인사를 무시하시는군요.”
루스 네이븐이 웃는 얼굴로 그리 말하자 베론의 얼굴이 굳어졌다.
루스 네이븐은 올해 열세 살로 클로드의 사교 모임에 초대된 영식들 중 나이가 가장 많았다.
어릴 적부터 매우 총명하고 유식하다고 해서 네이븐 자작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자랑하던 영식이니만큼 이미 사교계에선 촉망받는 청년이 될 거라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 루스 네이븐에게 암브로시아 공자인 클로드가 무례하다는 인상을 남겨 주면 아직 정식 사교계 진출조차 하지 못한 클로드의 소문이 좋지 않게 날 수도 있었다.
“작은 주인님께서는 낯을 조금 가리시는 성격이십니다. 결코 무례를 범하려던 것이 아니니 네이븐 자작 영식께서 너른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지요.”
베론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클로드의 입장을 대변했다.
암브로시아의 명성에 조금이라도 해가 될까 걱정하는 모양새였다.
“내가 설마 그걸 모르겠나?”
루스 네이븐은 제 말에 끼어든 집사가 못마땅한지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어디서 어른들이 못마땅함을 표현할 때 기침을 하는 것을 주워 보고는 따라 하는 모양새가 얼추 머리가 다 큰 걸 흉내라도 내는 것 같았다.
슬슬 사교계에 진출해도 될 만큼 제법 어른 흉내를 낼 줄 알았다.
그 말인즉 곧 청년이라 불려도 될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영민하신 네이븐 자작 영식께서는 알고 계시겠지요. 마음이 상하셨을까 염려가 되어 한 말이니 이해해 주시길.”
“물론이야.”
베론은 능숙하게 루스 네이븐의 철없는 행동에 맞춰 주었다.
그가 사교계에서 활동하게 된다면 앞으로 클로드가 성장하기 전까지 암브로시아 공자에 관한 소문은 루스 네이븐의 입술 끝에서 좌우될 수도 있었다.
그러니 적당히 맞춰 주어 앞으로 사교계에서 괜한 말은 나오지 않도록 단속하는 것이 좋았다.
“집사의 그 마음 내가 우리 아버지에게 잘 전하도록 하지! 하하!”
루스 네이븐은 제 비위를 맞춰 주는 암브로시아의 집사를 보며 뿌듯하게 웃었다.
마치 자신이 암브로시아 공작가에서 굉장한 대우를 받는 것처럼 느껴졌다.
평소 암브로시아 공작이라면 벌벌 떠는 아버지에게 말한다면 아주 좋아할 것이다.
네이븐 자작은 그의 아들이 암브로시아 공작 저택에서 어떤 대우를 받는지, 또 어떤 일을 했는지를 아주 상세하게 들으려 했다.
그리고 그건 곧 그의 자랑거리가 되어 사교계 여기저기에 퍼졌다.
“아버지께서도 암브로시아 공자에게 다소 부족한 면이 있더라도 자비로 감싸 주라고 그러셨어.”
루스 네이븐의 입에서 나온 말에 웃고 있던 베론의 입꼬리가 살짝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