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the nanny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39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39화
예쁜 여자 앞에서 제 잘난 것을 앞세워 잘난 척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은 어린아이라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아버지인 네이븐 자작이 알았다면 경기를 일으키며 펄쩍펄쩍 뛸 일이었지만 말이다.
“제가 암브로시아에 오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요. 이리 만나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네이븐 자작 영식.”
“……가문은 어디지?”
“밀런 백작가입니다.”
“암브로시아 가신 가문 중에 밀런 백작가가 있었나?”
사라의 대답에 루스 네이븐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잠시 생각에 빠졌다.
밀런 백작가는 자신이 암브로시아에 오기 전에 아버지가 외우라고 했던 가신 가문 명단에는 들어 있지 않은 이름이었다.
밀런 백작가가 가문의 문을 닫고 칩거한 것은 루스 네이븐이 고작 6살, 클로드의 나이 정도 되었을 때였다.
그런 그가 밀런 백작가의 이름까지 알고 있을 리가 만무했다.
“저희 가문은 6년 전 사교계와 정계 활동을 모두 멈추고 칩거하였으니, 모르는 것이 당연합니다.”
“아, 벌룬 후작처럼?”
칩거했다는 말에 루스 네이븐의 입가에 비릿한 비웃음이 담겼다.
그가 배운 칩거의 의미는 바로 벌룬 후작 영식처럼 한껏 잘난 척하다가 줄을 잘못 타서 망해 버린 가문의 뒤로 쪼르르 가서 숨는 걸 뜻했다.
루스 네이븐의 머릿속에서 사라는 이제 별 볼 일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가 굳이 건실한 귀족 청년을 연기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 말이다.
“그럼 하던 놀이나 계속하지.”
루스 네이븐은 다시 클로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 시선을 받은 클로드의 몸이 움찔하고 떨려 왔다.
“…….”
클로드는 제 손에 들린 나이프를 등 뒤로 숨기며 사라의 뒤로 몸을 감추려 했다.
그 모습을 보는 루스 네이븐의 입가에 노골적인 비웃음이 떠올랐다.
“무려 암브로시아 공자님이 이렇게 소심해서 어떡하려고?”
“그러게 말입니다.”
“하하하!”
루스 네이븐이 한마디를 하면 양옆에서 아롤드 파블과 빌리언 유겐이 한마디씩 거들었다.
사라는 조그마한 아이들이 어른 흉내를 내며 사교계의 악습을 그대로 따라 하는 걸 가만히 바라보았다.
본인들 딴에는 스스로가 다 큰 어른처럼 느껴지겠지만, 사라의 눈에는 쥐방울만 한 것들이 으스대는 꼴이 아주 우습게 느껴졌다.
그것도 감히 내 소중한 아기님을 주제도 모르고 놀려 대는 꼴이란.
“…….”
사라는 귀족 자제들의 모임을 방해하지 않으려 멀리 떨어져 있는 메이를 포함한 사용인들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눈치 빠른 메이가 사용인들에게 무어라 말을 하며 그들을 다른 곳으로 이끌려고 했다.
사라가 메이를 곁에 두겠노라 한 뒤로 메이의 말을 사라의 말처럼 여기게 된 사용인들은 군말 없이 메이를 따랐다.
“어서 해 보라니까?”
그러는 와중에 루스 네이븐은 자꾸만 유모의 뒤로 몸을 숨기는 클로드를 보며 재촉했다.
고작 손바닥만 한 나이프를 우스꽝스럽게 휘두르는 꼴을 보고 깔깔 웃어 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시, 싫어. 하기 싫어.”
클로드는 자신의 옆에 꼭 붙어 있는 사라를 믿고 용기를 내어 손에 들린 나이프를 휙 하고 바닥에 던졌다.
처음으로 루스 네이븐의 말을 대놓고 거절한 것이다.
‘감히 내 말을 거역해?’
그러자 루스 네이븐의 얼굴이 순식간에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이게 뭐람.”
클로드를 끝까지 노려보는 루스 네이븐의 시야로 사라가 불쑥 들어왔다.
그는 클로드와 제 앞을 가로막으며 땅에 떨어진 나이프를 주워 드는 사라를 바라보았다.
사라는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나이프를 손에 든 채 그녀보다 키가 작은 루스 네이븐을 내려다보았다.
“이걸로 뭔가 재미난 놀이를 하고 계셨나 보군요.”
사라는 손에 쥔 나이프를 이리저리 돌려 보았다.
잼을 빵에 바르는 용도로 쓰이는 나이프였지만 은으로 만들어진 식기였기에 햇빛을 받아 쨍하고 빛나는 게 날카롭다면 날카로워 보였다.
“멋진 신사분들이 이런 위험한 것을 가지고 노시면 안 되죠.”
사라의 말에 루스 네이븐은 불퉁한 얼굴을 하고선 말했다.
“암브로시아 공자의 유모가 끼어들 일이 아닌데.”
“어머, 유모로서 클로드 님이 이런 위험한 것을 가지고 노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요.”
“저게 위험하긴 뭐가 위험해?”
“위험하고 말고요, 이것도 사람을 해칠 수 있는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답니다.”
“사람을 해쳐? 겨우 잼이나 바르는 나이프가?”
“그럼요, 자칫하면 이렇게……, 어맛!”
사라의 손에서 순간 나이프가 미끄러지며 떨어졌다.
그리고 그 순간.
“……!”
나이프가 엄청난 속도로 루스 네이븐의 가랑이 사이로 날아가 그의 신발 바로 옆에 콱! 하고 박혀 버렸다.
마치 일부러 그곳에 던져 버린 것처럼 말이다.
“어머나, 세상에! 큰일이 날 뻔했네요. 괜찮으신가요? 네이븐 자작 영식.”
사라는 크게 놀란 듯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루스 네이븐은 눈앞에서 떨어지던 나이프가 번뜩이며 자신에게 날아오던 순간을 떠올리며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분명 사라의 손에서 미끄러지듯 힘없이 떨어지던 나이프의 칼날이 정확히 제 쪽을 향하며 날아왔었다.
“너, 너……! 일부러 나이프를 나한테 던진 거지!”
“그리 말씀하시면 서운해요. 제가 일부러 던진 것 같았나요?”
사라는 뒤에서 놀라 굳어 있는 다른 귀족 자제들을 보며 물었다.
아직 어린아이들의 눈에도 사라가 그저 실수로 떨어뜨린 것이 운 나쁘게 그쪽으로 날아간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해사하게 웃으며 미소 짓는 사라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이것 보세요. 정말 실수였답니다. 제 실수로 크게 놀라고 무서우셨을 텐데, 사과드릴게요.”
사라는 우아하게 한쪽 무릎을 굽힌 뒤 고개를 까딱 앞으로 기울이는 것으로 무례를 사과했다.
레이디의 사과는 관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신사의 미덕이라고 누누이 교육받았던 루스 네이븐은 표정 관리를 하지 못한 채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무섭긴 누가!”
끝까지 자존심은 세우면서 말이다. 사라의 아름다운 얼굴에 해사하게 피어난 미소를 보니 일부러 그랬을 거라는 생각은 사라졌다.
우연이겠지, 하고 여기며 루스 네이븐은 놀란 적도 없는 척 땅에 박힌 나이프를 들어 올리려 했다.
“……!”
하지만 아무리 힘을 주어도 나이프는 땅에 단단히 박힌 채 들어 올려지지 않았다.
단순히 실수로 가볍게 떨어뜨린 나이프가 이토록 땅에 강하게 박힐 수 있을까?
루스 네이븐이 그런 생각을 하려던 찰나, 그가 나이프를 주워 들지 못하고 낑낑거리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한 아롤드 파블이 슬쩍 말을 걸었다.
“지금 뭐 하십니까?”
“보면 몰라? 이게 지금 땅에서 안 빠지잖아!”
그는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
“시종은 어딜 간 거야!”
원래대로라면 나이프가 땅에 떨어지자마자 재빠르게 달려와 주워 주어야 할 사용인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루스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다 어디 있어?!”
정원에 마련된 사교 모임용 테이블 주변엔 저 멀리서 이 모임을 지켜봐야 할 사용인들은 물론, 자신들 가문에서 온 시종들 또한 없었다.
오직 그들과 클로드, 그리고 그의 유모인 사라만 있었을 뿐이었다.
“……도와드릴까요?”
그때 사라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루스 네이븐은 어쩐지 사라의 저 친절한 미소가 껄끄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이 이상하고 알 수 없는 고된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미소라는 걸, 루스 네이븐은 끝까지 알지 못했다.
* * *
“이익, 익!”
오늘 클로드 암브로시아의 사교를 위한 모임에 초대된 3명의 귀족 자제들은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하고선 저택 밖으로 나가게 되었다.
특히나 네이븐 자작 영식인 루스의 꼴은 아주 말도 못 할 정도였다.
그의 머리는 헝클어져 잔머리가 어지럽게 삐죽 솟아올라 있었고, 신경 써서 골라 입었던 옷은 잔뜩 더러워진 채 그의 시종의 손에 들려 있었다.
갈아입은 옷은 클로드의 것으로 13살인 루스 네이븐이 입기에는 너무나 작아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되었다.
“……부디 평안한 시간이 되셨길.”
베론은 능숙하게 입 안으로 혀를 씹으며 웃음을 삼키곤 그들을 배웅했다.
“평안은 무슨!”
성난 목소리로 투덜거리는 루스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13살, 그가 살아온 인생 전부를 통틀어서 오늘과도 같은 수치스러운 일이 연속으로 일어난 것은 처음이었다.
그것을 감당하기에는 어렸고, 분에 못 이겨 울어 버리기에는 자존심이 상했다.
그는 마차에 오르기 전 베론을 보며 으름장을 놓았다.
“다신 암브로시아 공작가에 오지 않을 거야! 그렇게 알아 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