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the nanny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4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4화
디엘린의 지옥은 휘겔 암브로시아를 사랑하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그녀는 차기 암브로시아 공작의 부인이 될 운명이었다. 어릴 적 그녀의 조부가 암브로시아와 정략결혼을 약조한 탓이었다.
‘동생의 여자를 탐낼 만큼 파렴치하지 않습니다.’
공작이 된 에단 암브로시아는 이렇게 말하며 그녀와 결혼한 후에도 각방을 쓸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사랑하는 남자의 형과 결혼하게 된 디엘린은 스스로를 갉아먹으며 서서히 미쳐 갔다.
공작이 그녀를 건드리지 않았음에도 디엘린의 배가 불러 왔기 때문이었다.
“휘겔이, 휘겔이 공작이 되기만 했어도 내가 이렇게까지 하진 않았을 거야. 에단 암브로시아 그 저주받은 남자가 나의 휘겔을…….”
“디엘린, 제발.”
사라는 손톱을 물어뜯으며 불안하게 중얼거리는 디엘린을 감싸 안으며 탄식했다.
이것이 바로 사라가 무심코 저지른 모든 비극의 첫 시작이었다.
박혜연이 봤던 ‘미래’에선 존재하지 않았고, 박혜연이 쓴 ‘어둠의 꽃’에만 서술되었던 디엘린의 비극적인 사랑과 불행.
‘나는 운명 같은 사랑을 하고 싶어, 사라! 가문도 의무도 아이도, 그 어떠한 것도 속박할 수 없는 지독한 사랑! 사랑의 도피를 떠나도 좋을 것 같아. 불행 속에서도 피어나는 사랑. 아아, 비극적인 사랑만큼 낭만적인 게 또 어디 있겠어?’
‘그래? 내가 요즘 쓰고 있는 소설을 보면 생각이 달라질걸? 아주 비극적인 사랑을 하는 인물이 있거든.’
‘정말? 그 행운아의 이름은 뭐야?’
‘아직 정하진 못했어.’
‘그럼 내 이름으로 해 줘. 네 소설에서나마 그런 사랑을 한번 진하게 해 보고 싶으니까. 나중에 다 쓰면 보여 줘야 해?’
‘음……. 그래, 알았어.’
작명 센스가 없던 사라는 디엘린의 소원대로 남자 주인공의 어머니 캐릭터에 그녀의 이름을 붙여 주었다.
미래에서 본 인물들의 이름 또한 사용했다.
이런 비극을 낳을 줄 알았더라면 결코 하지 않았을 텐데.
사라는 그날의 일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됐어. 이걸로 끝이야. 이대로 내가 죽었다고 알려지면 아버지도 어쩌지 못하시겠지. 하지만 사라, 내 아이……. 내 아이만큼은 네가 돌봐 주면 안 될까?”
이름만 같을 뿐 살아온 인생도, 가문도, 나이도 모든 것이 다른 ‘어둠의 꽃’ 속 디엘린처럼.
사라의 소중한 친구 디엘린은 암브로시아 공작이 아닌 그의 동생 휘겔과 사랑에 빠졌고 가져선 안 될 아이를 가졌다.
“디엘린…….”
사라는 산처럼 불러 온 디엘린의 배를 바라보았다.
‘어둠의 꽃’대로라면 디엘린의 아이는 소설 속 남자 주인공 클로드 암브로시아가 될 것이다.
“사라……, 제발. 너라면 내 아이에게 이어질 저주를 막아 줄 수 있을 거야. 그러니 제발……, 부탁이야. 네가 아니면 나는 안심하고 떠날 수 없어.”
사라는 자신을 간절하게 바라보는 디엘린을 보며 생각했다.
어떻게 해도 바꿀 수 없고 되돌아갈 수 없다면.
차라리 이 세상을 부수는 한이 있더라도 되돌려 놔야지.
“당장은 안 돼. 하지만 네가 원한다면……, 그래. 네 아이의 곁을 내가 지킬게.”
“고마워, 정말 고마워.”
사라는 제 손을 잡고 서럽게 흐느끼는 디엘린의 어깨를 감싸 안아 주며 생각했다.
박혜연이 쓴 ‘어둠의 꽃’대로 움직이는 이 세상의 운명을 바꾸겠다고.
클로드는, 가장 강력한 아군을 얻게 될 것이다.
암브로시아 공작가에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저주 앞에서 유일하게 자유로울 수 있는 유모를.
이제부터 ‘어둠의 꽃’은 디엘린의 아이의 앞날에 가시밭길을 깔아 놓을 것이다.
‘그 길을 아주 철저하게 부숴 줄 거야.’
사라는 굳게 다짐하며 클로드 암브로시아의 유모가 되기로 결심했다.
* * *
사라는 그렇게 클로드와의 첫 만남을 고대하고 또 고대했다.
클로드의 앞날을 위한 준비를 모두 끝마치는 데에만 6년이라는 시간을 쓰며 말이다.
그 시간 동안 보고 싶은 것을 꾹 참고 견뎠던 만큼, 아이를 마주한 이 순간이 무척이나 기뻤다.
“하아……, 생각보다 더 귀여우시네요.”
사라는 다른 한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한숨과도 같은 탄성을 내뱉었다.
그녀의 희고 고운 뺨에는 어느새 빨간 홍조가 올라와 있었다.
“…….”
그 모습을 본 클로드의 몸이 움찔 떨려 왔다.
그는 제 앞에 내밀어진 고운 손과 사라의 얼굴을 번갈아 가면서 바라보았다.
6살.
그 짧은 인생을 통틀어 아이는 무엇이든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전혀 제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아이는 이 부자연스러운 상황이 그저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조막만 한 손을 뻗어 사라가 내민 손을 잡고 말았다.
“좋아요, 클로드 님.”
사라의 입가엔 만족스러움이 가득 묻어 나왔다.
모든 계획이 처음부터 틀어진 느낌이었지만, 소중한 아이를 마주한 이 순간이 그저 감격스러울 따름이었다.
“나쁘지 않은 첫 만남이네요, 우리.”
나쁘진 않긴!
사라의 말에 클로드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는 화들짝 놀라며 잡은 손을 뿌리쳤다.
그러곤 혼란이 가득 찬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저를 도와줄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메이, 메이!!”
“네, 네! 클로드 님!”
“저 사람 가라고 해……! 응? 가라고 해!”
클로드는 메이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칭얼거렸다.
날아간 방문을 보며 한껏 움츠러든 메이는 식은땀을 흘리며 사라의 눈치를 보았다.
‘밀런 백작이 억지를 부려서 얻어 낸 소백작 자리가 아니었어……. 황제도 알고 있었던 거야, 사라 밀런이 마법사라는 걸!’
메이는 이제야 제 주인인 에단 암브로시아 공작이 당부했던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사라 밀런을 온 마음을 다해 예우하며 그녀의 신경을 거스르지 않을 것.]에단 암브로시아는 위의 경고를 지키지 않아 발생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엄중히 책임을 물을 것이라 했다.
메이는 이제야 자신의 치기 어린 태도가 어떤 이의 심기를 거슬리게 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새삼스럽지만 그녀는 철저하게 강약약강인 사람이었다.
이제 그녀에게 있어서 강자는 사라 밀런이었고 약자는 자신이었다.
이럴 때는 납죽 엎드려서 비위를 맞추는 게 최선인 법.
‘아아……, 너무 무서워.’
메이는 슬쩍 바라본 사라의 얼굴을 떠올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저 아름다운 얼굴에 떠오른 그림 같은 미소가 어찌나 무서운지.
메이는 좀 더 만만한 클로드를 설득해 보기로 했다.
“크, 클로드 님? 그러지 마시고 이리 오세요. 제가 안아 드릴게요.”
메이는 덜덜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지 못한 채 클로드를 향해 두 팔을 내밀었다.
하지만 클로드는 고개를 격렬하게 내저으며 울었다.
“싫어, 싫어!”
이미 고집이 가득한 아이에게 말은 통하지 않았다.
붉게 달아오른 눈가에 한가득 고인 눈물이 뚝뚝 흘렀다.
“아이참, 우리 클로드 님이 왜 이러실까! 제 얼굴을 보아 한 번만 넘어가 주세요. 네? 안 그랬다간 공작님께서 크게 화를 내실지도 몰라요!”
“왜? 왜 저 사람 때문에 아버지가 내게 화를 내신단 말야?”
하지만 메이의 말에 공자는 도리어 더 서러워진 모양이었다.
탱글탱글한 볼살이 파르르 떨리며 이내 아이의 목 안 깊숙한 곳에서 그르렁거리는 울음소리가 다시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사라는 들고 있던 지팡이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끼며 눈을 잠시 질끈 감았다가 떴다.
앙증맞은 주먹을 꾹 쥐고 입술을 깨물며 서럽게 눈물방울을 떨구는 아이의 모습은 참…….
‘귀여워.’
너무 귀여웠다.
메이와 사용인들에게는 클로드의 저 고집이 작은 악마처럼 느껴지겠지만.
이미 클로드를 처음 만난 순간 사랑에 빠져 버린 사라에겐 그 모습마저 사랑스러웠다.
“후후.”
아이를 보며 화사하게 웃는 사라의 얼굴에서 행복감이 묻어 나왔다.
“…….”
“…….”
그리고 그 모습을 다른 사람들은 멍한 얼굴로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