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the nanny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41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41화
가르침이라는 말에 무언가를 배우고 익히는 것을 좋아하는 클로드가 귀를 쫑긋했다.
“첫 번째 가르침?”
“네. 처음 클로드 님의 유모로서 왔을 때 제가 싫다고 하셨었죠?”
“유모, 그거는, 실은……!”
클로드는 당황한 듯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 당시 울며 사라를 거부했던 기억이 떠오르자 아이의 눈동자에는 죄책감이 일렁이고 있었다.
그 일로 인해 사라가 자신을 새삼 싫어하게 될까 봐 겁을 먹은 기색이 역력했다.
사라는 아직도 클로드가 사람과의 관계를 불안해한다는 것에 마음이 아팠다.
그녀는 아이의 부드러운 머리를 한 손으로 쓸어 주며 말했다.
“괜찮아요. 저는 오히려 좋았거든요.”
“좋았어?”
“네. 클로드 님이 유모가 필요 없다고 말해 줬기 때문에, 저는 클로드 님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할 수 있었거든요.”
“내가 밉지 않았어?”
“전혀요. 클로드 님이 유모가 싫다고 말해 주지 않았더라면 제가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지도 몰랐을 거예요.”
클로드는 가슴이 간질간질한 기분에 제 앞섶을 꽈악 움켜쥐었다.
가슴속에서 어지럽게 꼬여 버린 검은 실들이 한 올 한 올 풀려 사라의 목소리를 따라 조금씩 형태를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아이는 그렇게 제 유모의 첫 번째 가르침을 조금씩 마음에 새기기 시작했다.
“난 클로드 님의 적이 아니라 클로드 님의 편이 되어 줄 사람이라는 걸 클로드 님이 알 수 있었으면 했어요.”
알고 있었다. 그가 괴롭힘을 당할 때 나타나 말을 걸어 준 사라를 봤을 때 알 수 있었다.
아, 내 편이다, 내 편인 유모가 와 줬다. 이제 괜찮아, 내 편이 여기 있으니까.
긴장감이 완전히 풀어지며 안락한 느낌마저 받았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났다.
‘왜 내가 유모가 내 편이라고 생각했지?’
클로드는 떠올렸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환하게 웃어 주던 얼굴을.
틈만 나면 좋아한다고 말해 주던 따뜻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를.
무서운 칼날 앞에서도 끝까지 자신을 꼭 끌어안고 든든하게 지켜 주던 품을.
그리고 자신이 하는 말을 놓치지 않으려 제 입술 끝을 바라보던 다정한 시선을 떠올렸다.
‘아…….’
클로드는 입을 벌리고 멍하니 생각했다.
유모도 말을 해 줬구나. 유모도 표현을 해 줬구나.
내가 귀엽다고 사랑스럽다고 말해 줘서, 내가 유모를 싫다고 했어도 유모는 나를 좋아한다고 말해 줘서.
그래서 나는 유모가 내 편인 걸 알았구나.
“클로드 님이 속마음을 말해 줬기 때문에 알 수 있었던 거예요. 그걸 알았기에 더 클로드 님을 생각하고, 좋아한다고 말하고, 더 표현할 수 있었어요.”
“……그럼 정말 내 마음을 말하면 알아줄까?”
“당연하죠!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기분이고, 어떤 걸 좋아하고, 어떤 걸 싫어하는지 말해 주세요. 그럼 알 수 있을 거예요.”
사라의 말에 클로드는 결심이라도 하는 것처럼 크게 심호흡을 했다.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 같은 모습에 사라는 작게 웃었다.
하지만 그녀의 미소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나 유모 좋아. 이제 안 싫고 안 미워.”
클로드의 말에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기 때문이었다.
사라는 한동안 할 말을 잃고 클로드를 바라보았다.
‘나를 좋아한다고 했어. 클로드 님이, 나를, 좋아한다고 했어!’
클로드가 귀여운 얼굴로 토실토실한 볼살을 움직여 가며 약간의 쑥스러움을 담아 진심을 전달하자, 사라는 심장이 흐물흐물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클로드 님 정말 최고야! 너무 좋아!”
사라는 결국 참지 못하고 클로드를 품에 꽉 안으며 볼을 비볐다.
격렬하게 스치는 머리카락이 간지러워서 자지러지게 웃는 아이의 웃음소리가 맑았다.
“기분 좋으니까 우리 잠깐 소풍 나갈까요? 공작님이 돌아오실 때까지요!”
“소풍?”
“네, 어떠세요? 제가 클로드 님의 놀이 시간을 엉망으로 만들었으니까, 그 대신 밖에서 재밌게 놀아요.”
클로드가 뭐라고 대답할 새도 없이 사라는 저택 위에서 아래로 폴짝 뛰어내렸다.
저택 지붕 위로 올라간 두 사람을 목이 빠져라 보고 있던 사용인들이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헉!”
“클로드 님!”
그때 사라의 발밑에 마법진이 그려졌다.
복잡한 수식과 룬어가 푸른색으로 허공에 새겨지며 마법진을 따라 흘렀다.
그 신비롭고 웅장한 광경에 사용인들은 새삼스럽게 사라가 마법사라는 것을 떠올리며 바라만 보았다.
“잠깐 클로드 님이랑 밖에서 놀다가 들어올게요!”
사라의 맑은 목소리와 함께 그녀의 발끝에서 빛나던 마법진이 단숨에 두 사람을 삼켰다.
갑자기 엄청난 빛과 함께 사라진 사라와 클로드를 보며 놀란 시녀장이 이쪽으로 뛰어왔다.
“아니, 이게 갑자기 무슨……!”
두 사람이 사라진 허공을 보며 우왕좌왕하던 사용인들의 머리 위로 팔랑팔랑 종이 한 장이 떨어져 내렸다.
“이건?”
“시녀장님! 이것 좀 보세요!”
그 종이를 주워 든 사용인 하나가 부리나케 달려왔다.
[메이에게.나랑 클로드 님은 잠깐 소풍을 다녀올 거야. 그동안 놀이 시간엔 늘 괴로우셨으니까, 좋은 기억을 만들어 주고 싶어.
그나저나, 저 영식들은 영 못쓰겠구나. 집사와 시녀장도 이번에 잘 느꼈을 거라고 생각해.
너도 마침 여태 보고 들은 것이 있으니 그것들을 전부 다 알려 주렴. 아주 자세하고, 상세하게.]
종이에 정갈한 필체로 쓰여 있는 내용을 읽은 론다가 옆에 있던 메이에게 읽어 보라며 그것을 건네주었다.
‘진짜 다 말해도 되는 건가?’
메이는 제 오라버니와 언니들처럼 질기고 교묘하게 클로드를 괴롭혔던 귀족 자제들의 만행을 머릿속으로 하나하나 떠올렸다.
아마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암브로시아 공작의 귀에까지 들어갈 것이다.
여기 왔었던 그 건방진 것들의 운명이 제 입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니 온몸이 짜릿하기까지 했다.
“집사님도 오시면 말씀드릴게요.”
메이의 말에 론다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녀는 메이가 썩 달갑진 않았다.
하지만 사라가 남기고 간 편지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론다는 조용히 다른 사용인들에게 베론을 불러오라며 손짓했다.
“그나저나 밀런 소백작님께서 우리가 많이 편해지신 모양이군.”
론다는 6년 전까지 레이디의 교본이라 불리며 우아함을 뽐냈다던 사라의 명성을 떠올렸다.
그 명성이 잘못됐던 것일까, 아니면 마법사로서 자아가 따로 있는 걸까.
둘 중에 어떤 것이 정답인지는 몰라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었다.
“클로드 님이 돌아오실 때까지 정원을 정리하자.”
“앗, 나는 방을 먼저 치워야 해. 유모님과 놀다가 오시면 아마 금방 곯아떨어지실 거야.”
암브로시아 사람들은 벌써 그녀에게 적응했다는 점이다.
그들의 작은 주인인 클로드와 그의 유모인 사라가 허공에서 번쩍이는 빛과 함께 사라졌는데도 태연하게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야말로 사라 밀런은 순식간에 암브로시아에 스며들었다.
“베론, 전서구를 준비해야겠어.”
그녀는 제게 다가오는 베론을 바라보며 자신도 해야 할 일을 하기로 했다.
사라와 함께 사라진 클로드가 걱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신기해하며 말이다.
* * *
“알톤 영지는 마물 숲 근처입니다. 그런 위험한 곳에 1황자님을 보낼 순 없습니다! 2황자님은 진정으로 형님을 사지로 밀어 넣을 생각이십니까?”
“알톤 영지가 무슨 죽은 자들이 모여 사는 곳이랍니까? 알톤 영지에 살고 있는 제국민들은 그럼 다 사지에서 살고 있냔 말입니다!”
“그래도 위험한 건 사실이 아닙니까! 1년에 몇 번씩이나 마물들의 습격을 받는 곳입니다!”
“1황자님께서는 안전한 성에서 한 발자국도 안 나오실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2황자님도 다 생각하신 바가 있어서 그곳으로 정하신 겁니다.”
“그것이 유배가 아니면 뭐랍니까! 그곳에서 1황자님께서 뭘 하시겠냐고요!”
“그럼 1황자님이 지금 어디 휴양이라도 가는 줄 아십니까? 엄연히 벌을 받으러 가시는 거라고요! 그 정도는 되어야 폐하의 노기를 달래 드릴 것 아닙니까.”
귀족 회의는 그야말로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황제는 큰 사고를 친 1황자에게 머리도 식힐 겸 외곽의 영지에서 당분간 지내라고 명령했다.
유학도 할 겸 바깥의 백성들이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도 좀 살펴보라는 의미로 내린 결정이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아직 황제는 1황자에 대한 희망을 완전히 놓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조금 더 정신을 차리길 바라는 마음이 엿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1황자의 처우를 2황자에게 완전히 맡겨 버렸다는 점에서 귀족들은 혼란에 휩싸였다.
‘네 형님을 잘 돌봐 주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살아갈 동안 평온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말이다. 나는 앞으로 네 형님의 소식을 알아보지도, 듣지도 않을 것이다. 다만 너는 네 형님을 애틋하게 여겨 주길 바란다.’
황제의 이런 명은 앞으로 2황자에게 황위를 맡기겠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하였다.
그렇기에 2황자와 황위를 놓고 다투는 3황자 쪽 귀족들은 애가 타는 마음으로 어떻게 해서든 꼬투리를 잡으려 안달이었다.
감정은 점점 격해지고 서로를 가리키는 손가락 끝에는 날카로운 비난이 오고 갔다.
황제와 황족이 참여하지 않는 회의니만큼 그 발언의 수위도 아슬아슬한 선을 넘나들었다.
하지만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
고성이 오고 가는 와중에 그들의 시선이 틈틈이 가장 상석에서 홀로 생각에 잠겨 있는 암브로시아 공작을 향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2황자님의 처사는…….”
“그건…….”
에단 암브로시아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귀족들의 목소리는 점차 줄어들었다.
“…….”
“…….”
결국 하나둘씩 입을 다물기 시작하자 회의장은 이내 적막한 고요 속에 잠기었다.
그제야 에단 암브로시아의 입가에 느긋한 미소가 걸렸다.
“이제야 회의를 시작할 수 있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