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the nanny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42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42화
“주군.”
의자에 등을 기댄 암브로시아 공작의 뒤로 보좌관인 제이드가 다가와 그에게 귓속말을 했다.
귀족들은 새로운 소식일까 싶어 귀를 쫑긋하고 세웠다.
“음.”
귀족들은 이야기를 듣고 있는 에단 암브로시아의 얼굴에 집중했다. 그의 표정이 어떠냐에 따라 이 회의의 결과가 좌우될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전서구를 좀 보지.”
에단의 말과 동시에 황궁 회의실 창으로 전서구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전서구 다리에 묶인 서신을 펼쳐 읽어 내리는 에단의 모습이 귀족들에겐 아주 느릿하게 보였다.
“하!”
서신을 다 읽어 본 에단 암브로시아의 입술 사이로 웃음소리가 튀어나왔다.
귀족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그가 뒤를 돌았을 때 귀족들은 침을 꿀꺽 삼킬 수밖에 없었다.
“……아주 즐거운 회의가 될 것 같아.”
콰직, 하고 종이를 손아귀에서 무참히 구겨 버린 에단 암브로시아가 사람이라고 볼 수 없을 만치 아름다운 미소를 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 *
“와아!”
눈을 감았다가 떴을 때 클로드는 자신이 하늘을 날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푸른 하늘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고, 손을 뻗으면 구름이 손에 닿을 것처럼 가까이에 있었다.
그리고 발아래에는 수많은 건축물과 그 사이사이로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이 아주 작게 보였다.
“무섭진 않으세요?”
“응! 유모가 잡아 주고 있잖아!”
클로드는 눈을 크게 뜨고는 여기저기를 둘러보기 바빴다.
그 부산스러운 시선에 사라는 작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 시장에 한번 가 볼래요?”
“시장?”
“네, 사람들이 엄청 많이 모여 있는 곳이에요! 거기서 물건을 사고팔기도 하고 재밌는 놀이도 하고 이야기꾼도 부지런히 오고 간답니다?”
“책에서 봤어! 가 보고 싶어!”
시장이라는 말에 클로드는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너무 좋아하는 모습에 사라는 웃으며 다시 한번 손을 따악! 튕겼다.
“우와!”
그와 동시에 사라와 클로드는 시장 구석의 어느 골목으로 순간 이동을 했다. 다시 한번 눈앞이 순식간에 바뀌자 클로드는 탄성을 내지르며 사라를 보았다.
“어때요? 제 실력 꽤 좋죠?”
“응, 응! 유모는 정말 마법사구나!”
“후후, 그럼요.”
마탑에 있는 마법사들 중 이토록 쉽게 공간 이동 마법을 쓸 수 있는 자는 없었다. 이 대단한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낸 사라는 겨우 6살 난 클로드의 칭찬에 세상을 가진 것처럼 뿌듯하게 웃었다.
“그럼 우리 옷부터 갈아입을까요?”
“옷은 왜?”
“클로드 님의 옷은 너무 고급이라서 다른 사람들이 보면 바로 귀족이라고 알아챌 거예요.”
“그러면 안 돼?”
“음, 세상에는 착한 사람도 있지만 나쁜 사람도 있거든요. 클로드 님처럼 어리고 깜찍한 귀족을 상대로 나쁜 짓을 하려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어요.”
“그렇구나, 알았어!”
순수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클로드의 모습이 너무나 귀여워서 사라는 잠시 심장을 움켜쥐었다.
‘나를 좋아하는 클로드 님은 정말 최고야.’
신뢰가 가득 담긴 눈빛을 받는다는 게 이토록 짜릿한 느낌인지 오늘 처음 알게 되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컁컁거리며 경계 어린 시선을 보내던 클로드였기에 감격이 두 배가 되었다.
그러다가 문득 클로드와 똑 닮은 얼굴로 전혀 다른 눈빛을 하고 있는 에단 암브로시아의 얼굴이 떠올랐다.
‘공작님도 이제 슬슬 나를 신뢰하시는 것 같던데…….’
사라는 얼마 전 그녀를 향해 진심으로 웃어 보였던 에단을 떠올리며 슬쩍 미소 지었다.
클로드가 상처 입은 아기 고양이라면 에단 암브로시아는 이미 긴 흉터를 가진 사자와 같았다. 세월이 입힌 상처가 이미 덧나고 또 덧나서 흉터가 생겨 버린 포식자.
심지어 그는 암브로시아가의 공작이었다. 권력의 중심에 서 있는 그의 곁에는 온갖 달콤한 말을 쏟아 내는, 가식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즐비해 있을 것이다.
그런 남자의 신뢰를 얻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 마력 없이 마탑 오르기나 다를 바가 없었다.
‘한 번만 더 웃어 주셨으면 좋겠다.’
에단이 그녀에게 진심으로 미소 지어 주었을 때,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클로드가 그녀를 좋아한다고 말했을 때처럼 기뻤다.
그는 가끔 귀족다운 미소를 짓곤 했으나 그 미소 속에 진심이라곤 개미 똥만큼도 담겨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유모, 유모, 그래서 우리 옷은 어떻게 갈아입으면 돼?”
그때 들려오는 클로드의 목소리에 사라는 퍼뜩 상념에서 벗어났다.
클로드는 골목 사이로 분주하게 지나다니는 사람을 힐금힐금 보더니 발을 동동 구르며 재촉했다.
“아, 맞아. 금방 변신시켜 드릴게요!”
따악, 경쾌한 소리와 함께 클로드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푸르른 마력이 감쌌다.
그리고 다시 한번 사라가 손가락을 튕겼을 때 아이는 평범한 평민 남자아이가 입을 법한 무채색 옷을 입은 채였다.
“음, 우리 클로드 님은 너무 귀엽고 깜찍해서 이런 옷을 입어도 튀네요.”
사라는 잠시 턱에 손을 가져다 대며 고심했다.
제아무리 평범한 옷을 입혀 놔도 찬란하게 빛나는 백금발과 뽀얗고 탱글한 피부, 그리고 녹음을 머금은 보석같이 빛나는 눈은 가릴 수가 없었다.
“이를 어쩌면 좋담.”
“유모오, 나 빨리 가서 구경하고 싶어…….”
콩깍지가 단단히 씐 눈으로 사라가 길게 고민하자 클로드는 그녀의 치맛자락을 당기며 칭얼거렸다.
빨리 시장을 구경하면서 뛰놀고 싶어 하는 마음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 모습에 사라는 못 이겠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알았어요, 알았어. 그럼 큰 모자를 쓰고 나가요.”
사라는 손가락을 튕겨 베이지색의 빵모자 하나를 만들어 클로드의 머리에 푹 눌러 씌워 주었다.
“너무 커!”
“이 정도는 참아 주세요. 이게 다 클로드 님이 너무 귀여운 탓이니까.”
“아이…….”
눈 바로 위까지 가리는 모자 때문에 시야가 불편해지자 클로드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러면서도 착실하게 모자를 편한 위치로 고쳐 썼다.
그야말로 말 잘 듣는 착한 아기 고양이였다.
“그럼 갈까요?”
“응!”
클로드는 사라의 손을 야무지게 잡고 앞장서서 골목길을 나섰다.
“와!”
그리고 그와 동시에 짧은 감탄사를 터트리며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늘 저택에서 사용인들만 보던 클로드는 이토록 다양한 연령대와 다양한 차림새를 한 사람들이 바삐 움직이는 것을 처음 보았다.
“먹기만 하면 살이 빠지는 물약 단돈 10실링!”
“오룬 할배 특별 레시피 수프 한 그릇에 2실링!”
“닭 날개 구이 1실링! 먹고 가세요!”
장사치들이 상점 앞으로 나와 목소리를 높여 호객 행위를 했다.
클로드는 저택에서 저렇게 크게 고함을 지르는 소리는 자주 듣지 못했기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귀를 막았다.
“유모, 사람들이 엄청 많아!”
“그쵸? 시장이라 그래요. 길 잃어버리면 안 되니까 제 손을 꼭 잡아야 해요?”
“응!”
클로드는 얌전히 사라의 손을 잡고 정신없이 여기저기 구경을 했다.
“꺄!”
“같이 가!”
“아하하!”
시장에선 클로드 또래의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다녔고, 그 아이들의 손에는 큰 막대 사탕이 쥐여져 있었다.
두 뺨을 물들이며 웃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사이로 유랑 극단이 재주를 넘으며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때 아이의 손을 꽉 잡고 있던 한 어미가 극단 사람에게 돈을 던져 주라며 동전을 쥐여 주었다.
아이는 동전을 극단 사람이 펼쳐 놓은 돗자리에 던져 넣으며 소리 내어 웃었다.
그 모습을 어미는 따스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
클로드는 그 광경을 오래오래 눈에 담았다.
그러다가 자신의 손을 꽉 잡아 주는 사라를 올려다보았다.
마주치는 눈길에 담긴 따뜻한 애정이 클로드에게 쏟아졌다.
“……똑같아.”
“뭐가요?”
“그냥, 그냥 똑같아.”
클로드는 해죽 웃으며 사라의 손을 잡고 앞장서서 걸어갔다.
“어머나?”
유독 기분이 좋아 보이는 클로드를 보며 사라는 아이의 손에 순순히 이끌려 다녀 주기로 했다.
구경하고 싶은 것이 얼마나 많을까.
사라는 클로드의 시선이 닿는 곳이 어딘지 부지런히 살폈다.
맛있는 간식을 파는 노점상, 신기하고 예쁜 것을 조각해 놓은 장식품, 몸을 자유자재로 쓰는 유랑 극단, 뛰노는 아이들, 친구들, 연인들, 가족들.
‘아이들은 갖고 싶은 것에 시선이 오래 머무는 법인데 클로드 님은…….’
클로드의 시선은 눈을 사로잡는 신기한 상품들보단 즐거워 보이고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에게 오래오래 머물러 있었다.
아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저런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클로드 님.”
“응?”
“짠!”
사라는 아이들이 들고 다니는 커다란 막대 사탕을 클로드의 손에도 쥐여 줬다.
저 멀리서 사탕 가게를 운영하는 상인이 허공에서 떨어진 동전을 맞고 어리둥절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탕을 받아 든 클로드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사라를 바라보았다.
“먹어도 돼?”
“그럼요, 제가 사 드리는 거예요.”
“……히히.”
클로드는 기쁘게 웃으며 사탕을 슬쩍 핥아 먹었다.
혀가 아릴 정도로 달콤한 맛이 입 안을 한가득 맴돌았다.
“맛있어!”
“그쵸?”
겨우 사탕 하나에도 클로드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이처럼 웃었다.
여태 늘 상처받아 눈물짓는 얼굴로 잠들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행복한 표정이었다.
안타까움에 사라가 혀를 차던 그 순간이었다.
“유모, 저기 봐.”
“응? 어디요?”
“저기! 저기 어떤 애가 울고 있어.”
“어디 보자…….”
클로드가 사라의 손을 당기며 어느 골목 구석을 가리켰다. 커다란 후드를 뒤집어쓰고 쭈그려 앉아 있는 아이는 딱 보아도 클로드의 또래 같아 보였다.
“보호자는 없나? 혼자 있기엔 좀 어린 것 같은데…….”
사라는 주변을 둘러보며 아이의 보호자를 찾다가 문득 다시 한번 후드를 쓴 아이를 자세히 보았다.
“어, 저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