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the nanny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47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47화
* * *
사라는 저택에서 클로드와 일렉사가 놀 수 있도록 정원에 커다란 종이를 깔아 두고 물감을 내어 줬다.
“아하하!”
“여기도 묻었어!”
클로드와 일렉사는 옷과 얼굴에 물감 범벅이 된 채로 서로를 보며 까르르 웃었다.
그 상태로 종이 위를 뒹굴기도 하고 서로의 볼에 물감을 쿡 찌르기도 하고 도망가기도 하였다.
종이 위를 종횡무진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가 암브로시아 저택을 채웠다.
그 모습을 암브로시아의 사용인들은 새삼스러운 기분으로 바라보았다.
클로드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 사라를 향해 론다가 다가오며 말했다.
“……클로드 님이 저렇게도 웃을 수 있는 분이셨군요.”
“한창 저렇게 뛰어놀고 싶은 나이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워낙 어른스러우셔서 몰랐어요.”
론다의 목소리에는 희미한 죄책감이 묻어 나왔다.
그저 워낙 아이답지 않게 어른스러우니까, 애늙은이 같다는 소리가 맞는 것 같다고만 여겼었다.
“후후.”
위축되어 있던 클로드에게 웃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 것 같아서 사라는 뿌듯하게 웃었다.
앞으로 클로드가 저렇게 편안하게 웃을 수 있는 나날들을 더 많이, 더 자주 만들어 주고 싶었다.
“이번에 클로드 님과 함께 오신 분은 어느 가문 자제이신가요?”
“글쎄요. 그냥 길거리에서 만난 아이랍니다.”
“예? 그렇지만 옷차림이…….”
론다는 일렉사를 길거리에서 만났다는 말에 눈썹을 까딱하며 다시 한번 아이를 자세히 보았다.
눈썰미가 좋은 론다는 클로드와 함께 온 일렉사가 입고 있는 옷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바로 꿰뚫어 보았다.
최대한 화려하지 않고 눈에 띄지 않는 것을 골라 입은 듯했지만 반지르르한 광택이 도는 것이 고급 원단으로 만들어진 옷이었다.
작은 단추 하나에도 문양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보면 론다의 머릿속에는 없는 귀족 가문의 자제가 분명했다.
하지만 수행하는 사람 하나 없이 사라와 클로드의 손을 잡고 들어온 걸 보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헷갈렸다.
“어느 가문의 자제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건 클로드 님이 먼저 다가갔다는 거예요.”
“클로드 님께서 먼저 다가갔다니, 그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는데…….”
공작이 붙여 주던 놀이 친구가 비단 루스 네이븐 무리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클로드는 단 한 번도 그들에게 먼저 말을 걸지도 다가가지도 않았다.
그저 말없이 의무에 가까운 놀이 시간이 지나가기를 견디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루스 네이븐처럼 비상하게 머리가 돌아가는 자가 호의와 다정을 꾸며 암브로시아의 눈을 가리고 몰래 클로드를 괴롭혀 올 수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클로드와 무언가 함께할 수 있는 일들을 자꾸만 만들어 왔기 때문이었다.
론다와 베론은 그들이 소심한 클로드를 상대로 그래도 꾸준히 잘 놀아 주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한심하게도 말이다.
“어딘가 끌리는 구석이 있었나 봐요. 저도 클로드 님이 저렇게 손을 내밀 수 있는 아이라는 건 처음 알았답니다.”
“제 잘못이 큽니다…….”
론다는 죄책감이 묻어 나오는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그녀는 메이가 말하는 대로 받아 적으면서 눈물을 뚝뚝 흘렸었다.
클로드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야 했던 그녀와 베론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수치스러웠다.
“밀런 소백작님의 눈이 정확했습니다. 메이는 정말 다 알고 있었더군요. 그래서 메이가 무례를 저질렀어도 용서하고 곁에 두신 것이겠지요.”
“……으음.”
사라는 론다의 말을 딱히 부정하지 않으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메이 첸블런을 곁에 둔 것에는 꽤나 복잡한 이유가 있었지만, 그에 대해 설명하는 것 또한 많이 복잡했기 때문이었다.
‘뭐,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테지.’
사라는 그렇게 생각하며 저 멀리서 놀고 있는 클로드와 일렉사를 바라보았다.
아이들은 둘만 남겨지니 세상에서 가장 절친한 사이처럼 웃으며 놀고 있었다.
같은 또래여서 그런지 클로드는 빠르게 마음을 열고 함께 어울리고 있었다.
저만 할 때 아이들은 빠르게 친해지는 법이니까.
“클로드 님께 좋은 친구가 될 것 같아요. 어딘가 수상쩍은 면도 있지만, 그건 어른들의 사정이니까요.”
“……?”
사라는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론다에게 생긋 웃어 보였다.
그때,
“삐이이—.”
하늘에서 전서구가 맑은 울음소리를 토해 내며 날아들었다.
론다가 손을 들자 전서구는 그녀의 손에 정확하게 안착했다.
“공작님께서 보내신 건가요?”
“예.”
론다는 조금 긴장한 얼굴로 전서구 다리에 묶인 서신을 풀어냈다.
클로드가 괴롭힘을 당할 동안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은 벌을 받아 마땅한 일이었다.
이제 그 벌을 받아야 할 때가 온 모양이었다.
베론은 이미 저쪽 연무장을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론다도 그 옆에서 뛰고 있었어야 했지만 사라와 클로드가 저택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아직 여기에 있던 차였다.
사라 또한 에단이 얼마나 크게 분노했을지 예상이 가지 않아서 론다와 같이 긴장감이 묻어 나오는 목소리로 물었다.
“뭐라고 하세요?”
“공작님이 지금 오고 계신답니다.”
“지금이요? 황궁에 아직 볼일이 남아 있을 텐데요?”
“그건 그렇습니다만, 제이드 경이 말씀하시기를 밀런 소백작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약속? 그게 무슨……. 아.”
사라는 그제야 공작과 나눴던 약속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 한 시간씩 클로드와 함께 보낼 시간을 내어 달라는 것.
자신이 그런 조건을 걸어 놓고도 클로드와 단둘이 보내는 시간에 홀려서 까맣게 잊고 있었다.
1황자를 실각시키는 문제로 에단이 황궁에서 거의 생활하다시피 하기도 했고, 사라가 오 일 동안이나 누워만 있었던 것도 그렇고.
그런 시간을 보낼 타이밍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
“그런데 왜 지금…….”
1황자를 처리한 방식에 대해 열렬하게 기 싸움을 하고 있는 2황자와 3황자의 다툼을 적절하게 조율해야만 하는 시점이었다.
암브로시아 공작의 손에 그 모든 것이 달려 있다고 봐도 무방하니 그는 사전에 2황자와 3황자가 따로 수작을 부릴 수 없도록 황궁에 붙어 있어야 하는 것이 맞았다.
아직 황제의 의중을 알 수가 없으니 말이다.
‘설마 일렉사가 3황자의 사생아라는 걸 공작님이 알고 계시는 건가? 여기 있다는 걸 알고 오는 건가?’
사라는 저택의 모든 일을 보고받고 있을 그를 떠올리며 초조한 듯 입술을 깨물었다.
만약 에단이 급하게 저택으로 오는 이유가 일렉사의 정체를 알고 있어서라면 어떡하지.
‘3황자는 분명 황제도 모르게 일렉사의 존재를 완벽하게 지웠을 텐데, 아무리 암브로시아의 정보력이 좋다고 해도 설마…….’
아무래도 에단에게 혼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으, 론다. 공작님이 화내시면 많이 무서워요?”
“많이 무섭죠.”
“얼마나?”
“아주 많이요.”
“……그럼 우리 손 좀 잡고 있을까요?”
사라는 슬그머니 론다의 손을 잡았다.
론다는 그녀가 왜 그러는지는 몰랐지만, 곧 저택으로 돌아올 공작이 내뿜을 분노를 생각하며 그 손을 마주 잡았다.
무서운 것은 론다가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몰랐던 척을 해 볼까.’
사라는 그렇게 생각하며 공작의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를 고민했다.
클로드와 외출했을 때 일렉사를 만난 것은 정말 우연이었고, 클로드가 일렉사에게 관심을 보인 것은 운명이었고, 두 아이가 서로에게 끌림을 느낀 것은 필연이었다.
그렇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일렉사의 정체를 알고 있다고는 공작님도 생각 못 할 테니까. 그냥 우연히 밖에서 친해진 아이를 초대했다고 하면……, 믿어 주실까?’
사라는 거짓말이 불러올 이점을 고민해 보았다. 일단 에단에게 혼나지 않을 것이고, 일렉사를 클로드의 친구로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다.
‘만약에 내가 일렉사가 3황자의 아들인 걸 알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면?’
그 거짓말이 불러올 파장을 생각해 보았다.
그녀에게 경계심을 푼 클로드와는 달리 에단은 암브로시아 공작답게 그녀를 온전히 신뢰하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만약 거짓말한 것을 들켰을 때는 에단이 영영 그녀를 믿어 주지 않을지도 몰랐다. 제아무리 사라에게 암브로시아의 힘을 억누를 수 있는 힘이 있다고 해도 말이다.
한 번 잃은 신뢰는 회복하기 어려운 법이니까.
‘만약에 내게 다른 의도가 있다고 여기신다면, 다신 그렇게 웃어 주지 않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그 미소를 어떻게 만들어 냈는데. 꺼멓게 죽어 있던 에단의 눈동자에 잠깐이나마 빛이 반짝였던 것을 이 눈으로 보았는데.
“그건 싫어.”
사라는 오기가 가득 담긴 목소리로 스산하게 중얼거렸다.
그녀는 에단 암브로시아의 얼굴에 지금 저 멀리서 웃고 있는 아이의 미소와 같은 웃음을 되찾아 주고 싶었다.
한 번 에단의 진심 어린 미소를 본 뒤부터 줄곧 그 생각뿐이었다.
“시녀장님, 밀런 소백작님. 정문에 공작님의 마차가 도착했습니다.”
사라는 긴장으로 굳는 론다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끌며 에단을 맞이하러 갔다.
‘솔직하게 말하고 우기자.’
언제나 그랬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