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the nanny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48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48화
* * *
“…….”
멀리서 클로드를 바라보는 에단의 얼굴에선 그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옆에서 그의 눈치를 보던 사라가 웃는 낯으로 슬쩍 말을 걸었다.
“날씨가 참 좋아요. 놀이 시간을 갖기에 딱 좋은 시간이죠?”
“…….”
“공작님께서 먼저 약속을 지켜 주실 거라곤 상상도 못 했어요! 요즘 많이 바쁘시잖아요.”
“…….”
“아! 그렇구나! 공작님도 클로드 님과 함께 놀고 싶으셔서 그렇죠? 우리 귀여운 클로드 님과 조금이라도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 제가 잘 이해해요. 저도 그러니까요.”
“사라.”
“네!”
나직하게 그녀를 부르는 에단의 목소리에 사라는 바짝 긴장한 채 대답했다.
“내게 설명할 것이 그것뿐입니까?”
“……죄송해요.”
순순히 사과하는 그녀의 모습에 에단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녀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 것일까 가늠하는 시선은 집요하고도 날카로웠다.
“멋대로 외출한 것도 죄송하고, 멋대로 손님을 초대한 것도 죄송해요.”
그녀는 저 멀리서 이제 물감으로 정원의 나뭇잎을 색칠하고 있는 아이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정원을 저렇게 엉망으로 만든 것도 죄송하고요.”
정원사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절망의 비명을 내지를 것이 빤히 눈에 보였다.
암브로시아의 위용과 아름다움을 나타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화려한 장관을 자랑하는 정원을 저렇게 아이들 놀이터로 만들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저건 제가 다 해결할 수 있어요! 저 마법사잖아요, 대마법사…….”
사라의 목소리는 그녀를 바라보는 에단의 시선이 짙어질수록 점차 작아졌다.
그가 바라는 것이 이런 변명은 아니겠지만, 어쩐지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사라가 암브로시아를 위해, 그리고 클로드를 위해 나선 일에 정치적인 목적이 있다는 오해를 받게 된다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알았을까, 에단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먼저 말을 꺼내 주었다.
“저 아이는 클로드와 함께해서는 안 되는 아입니다.”
“하지만 클로드 님이 저렇게 좋아하시는걸요. 공작님께서도 이번에 아시게 됐지만, 루스 네이븐은 좋은 놀이 상대가 아니었어요. 클로드 님에게는 친구가 필요해요.”
“그렇다고 해도 저 아이는 안 됩니다.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야겠습니다.”
그는 사라가 3황자의 사생아에 대해 모른다고 판단했는지 일렉사를 빨리 치우려고 했다.
에단이 손짓하자 암브로시아 기사단이 빠르게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 뒤로 몇몇 사용인들도 함께 따라붙었는데, 사라가 알기론 암브로시아의 정보 조직 일을 하는 사용인들이었다.
아마 일렉사가 이곳에 머물렀다는 흔적까지 깔끔하게 지워 줄 것이다.
사라는 공작이 온 줄도 모르고 일렉사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클로드의 얼굴을 보았다.
‘저렇게 좋아하시는데…….’
일렉사를 이런 식으로 아이와 떨어뜨려 놓는 것은 안 될 일이었다. 겨우 마음의 문을 열 만한 친구를 찾았는데, 클로드가 크게 실망할 것이 뻔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탐탁지 않아 하는 친구라는 걸 알게 된다면 클로드는 아마 괴롭지만 아버지의 뜻을 따를 것이고, 아이의 마음에는 큰 생채기가 생길 거다.
사라는 그것이 두 사람의 관계에 아주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이유가, 저 아이가 3황자님의 사생아이기 때문인가요?”
“……사라, 설마?”
“죄송해요. 사실 저 아이를 처음 봤을 때부터 알고 있었어요. 인연이 되기에는, 너무나 복잡한 사정을 지니고 있는 아이라는 걸요.”
에단의 수려한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클로드를 향해 다가가는 기사단에게 다시 한번 손짓했다.
그러자 그들은 걸음을 멈추었다.
“잠시 나와 함께 걸을까요, 밀런 소백작.”
“사라라고 불러 달라니까요…….”
“그 부탁은 소백작의 대답을 들은 뒤 들어 드리겠습니다.”
그대로 그녀를 스쳐 지나가 앞서서 걸어가는 에단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사라는 각오를 다졌다.
최대한 ‘어둠의 꽃’을 언급하지 않은 채 에단에게 진실만을 말해 줄 수 있도록.
사라는 서둘러 에단의 뒤에 따라붙으면서 입을 열었다.
“제멋대로 해서 화나셨어요?”
“화나지 않았습니다. 다만, 밀런 소백작의 의중이 궁금할 뿐입니다.”
“다른 뜻은 없었어요. 귀찮아지리란 걸 알았지만, 그래도 저는 클로드 님의 유모고 가정 교사니까. 클로드 님의 마음을 가장 최우선으로 헤아렸을 뿐이에요.”
“하…….”
에단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가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는 것을 본 사라는 에단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마력을 감싼 손으로 에단의 얼굴을 살며시 감쌌다.
“…….”
시원한 사라의 마력이 그에게 스며들었다. 그러자 깨질 것처럼 아파 오던 두통이 스르르 사그라들었다.
에단은 혼란스러운 눈으로 사라를 바라보았다.
“당신의 생각을 모르겠습니다. 누구보다 클로드를 위하는 것 같으면서도…….”
“저는 언제나 클로드 님을 우선으로 생각해요. 항상이요.”
“그렇다면 왜 클로드가 저 아이와 함께하도록 내버려 둔 겁니까. 3황자의 사생아라는 것을 알았다면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당신이라면 충분히 알 수 있었을 텐데요.”
“클로드 님이 저 아이에게 끌려 하는 걸 느꼈어요. 처음으로 친구가 되고 싶은 아이를 스스로 찾은 거예요.”
“……두 아이에겐 해로운 관계가 될 겁니다. 클로드의 놀이 친구가 된다면 주목을 받게 될 것이고 3황자는 무슨 짓을 하더라도 그걸 막을 겁니다.”
“그렇게 두진 않을 거예요. 그리고 3황자도 감히 암브로시아를 건드릴 순 없을 테고요.”
“그건 모를 일이지요. 감히 암브로시아의 보호를 뚫고 내 아드님께 손을 댈 순 없을 테지만.”
에단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제 얼굴을 감싸던 사라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 내렸다.
시원한 마력을 흘려보내던 그 손길이 사라지는 것이 아쉬웠지만 말이다.
지끈거리는 두통이 다시금 그를 덮쳤다.
“클로드에게 그런 위험을 감수하게 할 순 없습니다.”
“…….”
“클로드에게 위험이 될 수 있는 건 이 저주로 충분합니다. 이미 그것만으로도 클로드는 충분히 위험한 상태니까. 자극을 주고 싶지 않아요.”
“그럼 언제까지나 클로드 님을 이렇게 암브로시아 안에 가둬서 키우실 건가요?”
에단은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긍정도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부정도 하지 않았다.
사라는 에단이 클로드를 암브로시아에 가둬 둘 수만 있다면 언제든 그렇게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암브로시아의 저주가 충분히 약해진다면 그때는…….”
“그때가 언제가 될 줄 알고요. 공작님, 아이는 가족만을 필요로 하진 않아요. 가족이, 부모가 채워 줄 수 없는 부분이 분명 있어요.”
“그건 클로드가 감수해야 할 부분입니다. 암브로시아의 힘이 저 아이의 몸에서 잠을 자고 있는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니. 포기할 줄도 알아야지요.”
“그건 클로드 님에게 너무 가혹해요. 살면서 소중한 것을 만들 기회를 전부 다 날려 버릴 수는 없잖아요.”
“소중한 것이 생긴다면 잃을 것이 뻔하니까요.”
“……!”
에단의 말에 사라는 눈을 부릅떴다. 처음으로 에단의 속을 갈라 그의 내면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소중한 것이 생긴다면 반드시 잃어버린다.
에단 암브로시아는 여태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왔던 것일까. 그에게 소중한 것을 하나하나씩 잃어 가며 말이다.
“클로드는 암브로시아입니다. 암브로시아에게 소중한 것은 사치일 뿐이고. 그러니 애초에 그런 것 따위 만들지 않는 게……!”
따악, 하는 소리와 함께 차가운 물이 에단의 머리 위에서 촤악 하고 떨어졌다.
순식간에 찬물을 뒤집어쓴 에단이 눈을 느리게 깜빡이며 사라를 바라보았다.
“…….”
사라가 처음으로 완전히 표정을 지운 채 그의 앞에 서 있었다. 언제나 부드럽게 웃는 미소로 그와 클로드를 대했던 사라가 순식간에 낯설어졌다.
에단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그래서 공작님은 지금까지 소중한 것 따위 하나도 만들지 않고 버텨 오셨나요?”
“…….”
“그 삶이, 진정으로 행복하셨나요?”
사라의 눈에서 툭, 하고 투명한 눈물 한 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무표정했던 얼굴이 서서히 일그러지며 무너지는 것이 아주 느리게, 느리게 보였다.
그 모습이 콱 하고 에단의 가슴에 박혔다. 빠듯하게 심장이 조여 오는 기분에 그는 숨조차 쉬지 못했다.
“그러지 마세요. 그러지 마세요, 공작님.”
“……사라.”
“함께 소중한 것을 지키면 되잖아요. 왜 행복해질 수 있는 기회들을 다 버리려고 하셨던 거예요.”
“…….”
뚝뚝, 에단의 날카로운 턱 끝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아주 크게 들렸다. 그 물방울은 그의 긴 속눈썹에 맺혀 있다가 떨어진 것이었다.
마치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사라는 다시 한번 에단의 얼굴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손등으로 에단의 턱 끝에 흐르는 물방울을 닦아 주었다. 따뜻하면서도 다정한 손길이었다.
에단은 자신도 모르게 사라의 부드러운 손을 감싸 쥐며 한숨처럼 말했다.
“아버지와 같은 말을 하고 있었군요,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