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the nanny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55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55화
에단은 그렇게 말하며 사라에게 손을 내밀었다.
“에스코트라면…….”
“당신의 첫 춤을 내게 허락해 달라는 겁니다.”
“아.”
“누군가와 적어도 한 번의 춤은 추어야 하니까요. 내 생각엔 그 한 번을 제외하면 클로드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을 것 같은데. 맞습니까?”
“맞아요…….”
“그러니 내가 가져가야겠습니다.”
에단의 말에 사라는 미묘하게 열이 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그가 내민 손을 잡았다.
그러자 손가락을 하나하나 얽어 오며 에단이 그녀의 손을 단단히 잡았다.
그는 이제야 조금 안심한 눈치였다.
“그런데 제가 춤을 춰 본 지 오래되어서 공작님의 발을 조금 밟을 수도 있어요. 그건 이해해 주셔야 해요.”
“물론입니다.”
“제가 원래 춤은 진짜 잘 추거든요. 그런데 너무 오랜만이라서 실수할 수도 있으니까, 그러니까…….”
“알겠습니다.”
“만약에 제가 발을 밟게 된다면 그건 진짜 실력이 아니고 실수예요!”
걱정이 되는지 자꾸만 말을 보태는 사라를 보며 에단은 작게 웃었다.
“한번 연습해 볼까요.”
“네?”
사라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녀의 손을 에단이 부드럽게 잡아끌었다.
자연스럽게 그녀를 리드하며 조심스러운 손길로 사라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그 능숙한 솜씨에 자신도 모르게 몸에 배어 있던 스텝을 밟으며 사라는 부드럽게 한 바퀴 턴을 돌았다.
에단이 선물한 드레스의 치맛자락이 차르르 흩날렸다.
“발이 아프게 될 리는 없어 보이는군요.”
“……!”
귓가에 속삭여지는 낮은 저음이 듣기 좋게 울렸다. 사라는 귀가 녹아 버릴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하며 숨을 참았다.
다시 한번 에단이 이끄는 대로 스텝을 밟으며 사라는 가까이에서 보이는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잘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라의 시선을 마주 보며 에단은 웃음기 담긴 목소리로 칭찬했다.
단정한 얼굴에 은근한 미소가 맴돌자 그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던 사라는 그만 발이 꼬이고야 말았다.
“……앗!”
순식간에 중심을 잃은 사라를 에단이 단단한 팔로 받으며 품으로 끌어당겨 안았다.
“조심.”
다시 한번 귓가에 속삭여지는 부드러운 목소리에 사라는 파르르 떨며 황급히 에단에게서 떨어졌다.
“아, 그게…….”
에단의 품에서 빠져나온 사라의 얼굴은 터질 것처럼 붉어져 있었다.
좀처럼 보기 힘든 사라의 당황한 얼굴에 에단은 잠시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풀어지려는 입매를 정리했다.
사라는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변명했다.
“방금은 진짜 실수, 실수예요.”
“네, 알겠습니다.”
“진짜로!”
“네네.”
“저 놀리지 말고요!”
에단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지만 사라는 어쩐지 놀림받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마냥 하지 말라고 하기에는 희미하게 올라가 있는 에단의 입꼬리가 보기 좋았기에, 사라는 결국 푸흐 하고 웃어 버렸다.
“저를 놀리는 게 재밌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공작님이 예전보다 잘 웃게 된 것 같아서 보기 좋네요.”
“……?”
에단은 스스로가 미소 짓고 있었다는 것도 몰랐는지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리며 손으로 입가를 더듬었다.
손가락 끝에서 부드럽게 올라가 있는 입꼬리가 매만져졌다.
그는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군요.”
“모르고 계셨어요?”
사라의 물음에 에단은 시선을 들어 그녀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러다가 그는 무언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몰랐습니다.”
“후후. 잘 웃게 됐다는 건 좋은 일이에요. 클로드 님도 요즘 정말 자주 웃거든요.”
사라는 뿌듯하게 웃었다. 처음 왔을 때보다 날이 갈수록 부드럽게 풀어지는 저택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암브로시아의 힘을 그녀가 착실하게 눌러 주고 있자 처음엔 클로드를 두려워하던 사용인들도 점차 안심했는지 다시 예전처럼 다가갔다.
“…….”
암브로시아에 불어온 따뜻한 변화는 그 누구보다 에단이 잘 느끼고 있었다.
아침 식사 때마다 조금씩 더 다양한 얼굴을 자신에게 보여 주는 클로드를 볼 때마다 그것을 더욱 실감했다.
모든 것이 사라로 인해 조금씩 바뀌어 가는데, 에단은 그것이 퍽 마음에 들었다.
“사라.”
“네?”
“덕분에 깨닫게 된 것이 있습니다.”
에단은 그렇게 말하며 사라에게 다시 손을 내밀었다.
그는 제 손을 잡아 오는 사라의 손을 놓아주지 않겠다는 듯 단단하게 쥐었다.
그러곤 천천히 끌어당겨 그 손등에 입을 맞추며 시선을 들어 사라를 바라보았다.
“그것에 책임을 져야 해, 당신은.”
* * *
하루에도 몇 번씩 마물들이 침범하는 마을에서 술집을 운영하기란 녹록지 않았다.
우선 언제나 긴장을 하며 살아가야만 하는 영지민들에게 술은 자살 행위라고 여겨졌다.
상인들조차 마물의 습격을 종종 받기 때문에 생필품이 아닌 것들은 사치라고 여겼다.
그래서 알톤 영지의 유일한 술집은 베이커가 운영하는 여관뿐이었다.
“으하하!”
“마시고 죽자고!”
베이커의 여관은 나름대로 장사가 잘되는 편이었지만, 요즘 들어선 평생에 다시 없을 호황기를 누리고 있었다.
알톤 영지에 1황자가 내려온 덕에 그를 호위하는 기사들이나 시종들이 종종 술집을 이용했다.
뿐만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서는 술집에서 술을 마시는 모든 사람들에게 술을 돌리는 대박 손님이 생긴 덕도 컸다.
“오늘도 내가 형님들에게 맥주 한 잔씩 다 돌리겠습니다!”
“와! 사랑한다 이 자식!”
“최고다, 올리븐!!”
매일같이 술을 쏘는 대박 손님이 있다는 소문에 알톤 영지에서 술이 고픈 자들이 베이커의 여관으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그 대박 손님의 이름은 올리븐, 마물 숲의 소문을 듣고 여행을 왔다는 철없는 도련님이었다.
“이야, 올리븐! 너 정말 귀족 아니냐?”
“그래그래,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매일같이 술을 돌릴 순 없지.”
오늘도 올리븐에게 술을 얻어먹은 손님들은 이미 달큰하게 취한 채로 비틀거리며 다가왔다.
“아이, 무슨 소리세요. 계속 말했잖아요. 상단 물려받기 싫어서 가출했다니까요?”
“대체 얼마를 들고 튄 거야?”
올리븐의 천연덕스러운 연기에 깜빡 속아 넘어간 손님들은 킬킬거리며 그의 어깨를 두들겼다.
“그래도 덕분에 술로 배 채우고 간다!”
“하하, 그럼 우리 형님들……, 제 부탁 하나만 들어주실래요?”
“뭐? 부탁? 뭔데 당장 말해. 뭐든 다 들어줄 테니까!”
제 가슴을 두드리며 호언장담하는 남자의 어깨에 올리븐은 뱀처럼 팔을 두르며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또 상인의 피가 흐르는 몸 아닙니까……, 듣자 하니 우리 형님! 여기 귀하신 분 밑에서 일한다면서요?”
“하……. 그치, 아주 귀한 분 밑에 있지 내가!”
“그럼 형님, 내가 그쪽에 물건 하나만 좀 팝시다.”
“뭐? 뭘 팔아?”
“아니, 내가 훔쳐 온 물건 중에 값이 좀 나가서 안 팔리는 게 있어요. 여기서 그걸 사 줄 사람이 있어야 말이지.”
“흠…….”
“이걸 좀 팔아야 나도 여비도 벌고, 이렇게 형님 술 살 돈도 생기는 거 아니겠습니까.”
능청스러운 올리븐의 말에 남자는 샐쭉하니 뜨던 눈을 끔뻑이며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러자 그의 옆에서 이 대화를 듣고 있던 다른 손님이 버럭 하며 올리븐의 편을 들어주었다.
“그래! 이 사람아! 올리븐에게 받아 처마신 술이 몇 잔인데, 거 물건 하나쯤 팔아 줍시다!”
“아 거참……. 곤란하게 정말.”
남자는 잠시 팔짱을 낀 채 고민했다. 그는 이곳으로 쫓겨난 1황자의 밑에서 일하는 잡부였다.
그래서 1황자의 시종들과 오고 가며 얼굴을 텄다.
자주 패악질을 하며 못살게 구는 1황자였기에 시종들은 그의 기분을 달랠 만한 것들을 종종 구해 달라고 하긴 했다.
“거, 물건이나 한번 보지?”
“아이고, 자자. 이게 바로 어떤 물건이냐면!”
됐다. 올리븐은 은근히 눈을 빛내며 품 안에서 동그란 구체 하나를 꺼내었다.
투명한 구슬 같은 구체는 빛을 받아 신비롭게 반짝반짝이고 있었다.
“저 멀리 외국에서 들여온 물건인데, 글쎄 소원을 이뤄 주는 존재를 소환할 수 있는 구슬이라고 하지 않아요?”
“소원을 이뤄 주는 존재를 소환한다고?”
“아, 그렇다니까요!”
“그게 진짜면 네 소원이나 빌 것이지 이걸 왜 팔려고 들어? 지금 나한테 귀하신 분을 상대로 장난질을 하라는 거야 뭐야?”
너무나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남자는 버럭 성을 내었다.
하지만 올리븐은 그럴 줄 알았다는 양 생글생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이고, 형님! 진짜 소원을 들어주고 말고가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귀족들이야 겉으로 보기에만 화려하고 희소하면 아주 눈이 뒤집혀서 달려든다고요.”
“음…….”
“나야 비싼 값에 이 애물단지를 처리하면 그만이니, 한번 그냥 찔러나 봐 주세요! 판매가의 절반은 내가 소개비로 형님께 쏘겠습니다!”
“아, 그래도 말이지. 겉으로 보기에 좀 그럴싸해야 팔리지 않겠나.”
남자는 혹하는 얼굴이었지만 이내 손사래를 치며 거부했다.
모험을 하기에는 저 구슬을 전달해야 할 귀하신 분이 너무나 두려운 상대였다.
“그럴싸하다마다요. 자, 이것 좀 보세요.”
“……어?”
올리븐이 구슬을 남자의 코앞에 바짝 들이밀었다.
그러자 구슬 안에서 신비로운 빛이 갑자기 번뜩이며 휘몰아치더니 이내 촤라락, 하고 눈보라처럼 흩어져 사라졌다.
“뭐야? 이거 아티팩트야? 그걸 제일 먼저 말했어야지! 어떻게 이런 빛이……!”
그 신기한 광경에 남자의 눈이 부릅떠졌다.
몇 번이고 구슬을 이리저리 들여다보는 남자의 얼굴을 보며 올리븐은 남모르게 비릿한 웃음을 삼켰다.
‘됐다.’
올리븐은 이렇게 손쉽게 1황자에게 접근할 수 있는 연결 고리를 얻는 것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