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the nanny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67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67화
* * *
에단은 모든 것이 느려졌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손을 빠져나가며 스쳤던 감촉도, 제 눈앞에서 나부끼던 부드러운 머리카락도, 2황자를 밀치고 섬뜩하게 번지는 빛 속에 뛰어들던 여린 몸도.
전부 그의 눈앞에서 느리게 펼쳐지는 것 같았다.
“사라! 정신 차려요, 사라!”
에단은 핏발이 선 눈으로 정신을 잃은 가느다란 몸을 품에 안고 흔들었다.
눈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환하게 빛나던 빛이 사그라들자 그곳에 사라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리고 그가 서둘러 다가갔을 때 피를 토하며 그대로 뒤로 쓰러졌다.
“……하아, 하으욱!”
사라는 정신을 잃은 와중에도 울컥울컥하고 피를 토해 냈다. 그녀의 눈에도 피가 눈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사라가 붉게 물들어 갈수록 에단의 머릿속도 같은 색으로 물들어 갔다.
“귀족들은 전부 내보냈네, 암브로시아 공작. 황궁의가 곧 이리로 올 걸세.”
“……황궁의로는 부족합니다.”
에단은 사라의 몸을 번쩍 안아 올렸다. 그러자 그의 품에서 사라의 팔이 힘없이 툭, 하고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제길.”
그것이 마치 제 심장이 내려앉는 것처럼 느껴졌다.
저급한 욕지거리를 씹어뱉듯이 내뱉으며 그는 가볍기 그지없는 사라의 몸을 고쳐 안았다.
그러곤 황제를 향해 통보라도 하듯이 말했다.
“암브로시아의 휴게실을 개방하겠습니다. 황궁의는 물론이고 황실에 머무는 신관들은 전부 다 그리로 보내 주시길 청합니다.”
“그래, 그렇게 하게. 서두르지.”
황제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을 하고 있는 에단을 보며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 황실 연회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에 분노할 겨를도 없었다.
대마법사인 사라가 손도 쓰지 못하고 저렇게 피를 토하고 쓰러져 버렸으니 말이다.
황제는 사라를 안고 서둘러 휴게실로 향하는 암브로시아 공작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명령했다.
“스테니아 홀은 폐쇄한다. 오늘 여길 드나든 모든 사람들을 파악해 암브로시아 공작에게 넘겨.”
“예, 폐하.”
“그리고 밀런 백작가에 사람을 보내야겠다.”
“바로 보내겠습니다.”
빠르게 명령을 내리는 황제의 뒤로 2황자 일리오르는 멍하니 사라가 남기고 간 핏자국을 바라보았다.
‘위험해요!’
사라가 그의 어깨를 밀치며 그 빛에 감기던 순간이 그의 온 정신을 사로잡았다.
“저도 암브로시아 공작과 함께 가 봐야겠습니다, 폐하.”
일리오르는 황급히 에단의 뒤를 따르려 했다. 그런 그를 황제의 눈짓을 받은 황실 기사단이 막아섰다.
“멈추거라.”
“……폐하.”
“지금 암브로시아 공작을 상대해서 좋을 것이 없다.”
“하지만 밀런 소백작이 저를 구했습니다. 그녀가 아니었더라면 피를 토하며 쓰러진 것은 제가 됐을 겁니다.”
“모자란 것. 그런 자잘한 은원을 고려할 때가 아니다.”
“그게 무슨…….”
황제는 천천히 그에게 다가와 어깨를 꽉 움켜쥐었다.
냉철하게 가라앉은 눈에는 방금 전 암브로시아 공작에게 안겨서 나간 사라에 대한 걱정 따위는 전혀 비치지 않았다.
그저 한 제국을 지배하는 지배자의 눈이었다.
“암브로시아와 밀런 백작가에서 책임을 묻는다면 어떻게 할 예정이냐, 아들아.”
“……!”
“크롬벨 황실의 명예는 땅으로 곤두박질칠 것이다. 네가 진정 크롬벨의 황자라면 현명하게 처신하거라.”
일리오르는 황제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했다.
그가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두 주먹을 꽉 쥐며 입술을 깨물었다.
“예, 폐하.”
얌전히 수긍하는 일리오르의 모습을 보며 황제는 보기 드물게 흡족하다는 듯 그를 칭찬했다.
하지만 일리오르는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
황제가 일리오르와 함께 빛에 휩싸일 뻔한 일레온에게는 단 한 번도 시선을 주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일레온은 익숙하다는 듯 눈을 맞춰 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일리오르가 암브로시아 공작을 따라가겠다고 나서지만 않았어도, 황제는 마찬가지로 그에게 작은 관심조차 주지 않았을 것이다.
“하.”
그것을 깨달은 일리오르의 입술 사이로 한탄 어린 한숨이 새어 나왔다.
* * *
“사라, 제발 눈을 좀 떠 봐요……!”
사라는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아 내고, 또 닦아 냈지만 계속해서 흘러내리는 것이 아직도 그녀의 내부가 진탕이 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암브로시아 공작님, 제가, 제가 한번 보겠습니다.”
암브로시아의 휴게실에 도착한 황궁의가 황급히 달려왔다.
그제야 에단은 사라를 품에서 놓아주었다.
“아, 아버……, 아버지…….”
클로드는 멀찍이서 그 상황들을 보고 있다가 눈물 젖은 얼굴로 에단의 옷자락을 잡았다.
에단의 옷은 이미 사라가 토해 낸 피로 흠뻑 젖어 있었다.
“흑, 흐윽…….”
클로드는 황궁의에게 진찰을 받고 있는 사라를 보며 다시 한번 울음을 터트렸다.
아까 전까지 웃으며 그를 안심시키고 갔던 사라가 곧 죽어 버릴 것만 같은 상태로 돌아온 걸 믿을 수가 없었다.
“유모가 죽으면 어떡해요? 아버지, 유모가…….”
“괜찮다, 괜찮아……. 절대 내가 그리 두지 않으마.”
클로드는 사라가 피범벅이 된 채 에단에게 안겨 들어올 때부터 숨이 넘어갈 것처럼 울고 있었다.
아이에게 보여 주기엔 너무나 괴로운 상황이라 그는 제이드에게 클로드를 맡기려고 했지만, 클로드가 너무나 완강하게 거부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곁에 두고 달래는 수밖에 없었다.
에단은 클로드를 안아 주고 싶었지만 피에 젖은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주먹만 꽉 쥐었다.
“미, 밀런 소백작님께서는 숨은 붙어 계십니다.”
황궁의의 말에 에단은 와락 얼굴을 찌푸리며 그의 멱살을 잡았다.
팔 하나의 힘만으로도 에단은 손쉽게 황궁의의 두 발을 허공에 뜨게 만들 수 있었다.
“지금 그걸 누가 몰라서 자네에게 맡긴 줄 아나? 증상과 해결 방법을 말해.”
“그, 그것이 지금은 언제 돌아가셔도 이상하지 않을……!”
에단은 그대로 황궁의를 내던져 버렸다. 그러곤 황궁의를 데려온 황실 기사단의 검을 빼앗아 뽑아 들었다.
스릉, 하고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뽑힌 칼날은 그대로 황궁의의 목덜미에 가 닿았다.
“죽어 가는 자도 살린다는 황궁의의 입에서 듣고 싶은 대답이 아닌데.”
“사, 살려…….”
“쓸데없는 생명을 취하는 취미는 없어. 그러니 자네는 자네의 본분을 다하면 돼.”
황궁의는 덜덜 떨면서도 고개를 내저었다.
그녀는 외상을 입은 것도, 내상을 입은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끊임없이 피를 토하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었다.
황궁의는 스스로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에 절망했다.
“보통은 절대 나올 수 없는 증상입니다. 제, 제가 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선 무언가가 있습니다!”
황궁의의 입에서 나온 말에 에단의 얼굴이 무섭게 굳었다.
“나가 봐.”
“……! 가, 감사합니다!”
에단의 입에서 축객령이 떨어지자 황궁의는 혹시 누가 잡을세라 줄행랑을 쳤다.
귀족 사회에서 단정하고 젠틀하기로 유명한 암브로시아 공작이 분노로 눈이 돌아간 모습은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며 빠르게 자리를 벗어났다.
“하퍼 경, 신관은?”
“거의 다 왔다고 합니다. 곧 올 겁니다.”
“늦어.”
“죄송합니다.”
에단은 입술을 깨물며 아직도 눈을 뜨지 않는 사라의 손을 잡았다.
손바닥을 타고 전해지는 차가운 기운에 뒷목에 섬뜩한 한기가 스치는 듯했다.
“사라…….”
금방이라도 일어나서는 ‘세상에, 놀랐어요?’라고 말하며 해사하게 웃어 줄 것만 같았다.
그녀는 강한 사람이었다. 이런 식으로 누워 있다는 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대마법사라고 했잖아.”
에단은 자신도 모르게 나직한 목소리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당신은 강하다고, 그 입으로 말했잖아.”
이렇게까지 스스로가 크게 동요할 줄은 몰랐다. 이토록 간절할 줄이야.
사라가 영영 눈을 뜨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에 스산한 바람이 부는 것 같았다.
“그러니 일어나.”
대체 이런 질척한 감정을 무어라 정의 내려야 할지 에단은 아직 알지 못했다.
“일어나, 유모…….”
어느새 사라의 손을 잡고 있는 에단의 손에 클로드가 손을 얹었다.
“흐으, 흐어엉.”
소리 내어 엉엉 우는 아이의 목소리는 거의 쉬어 있었다.
저 아이에게도 사라는 어느새 없으면 안 되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대체 사라가 암브로시아에 와서 그와 클로드에게 어떤 마법을 부렸는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에단도 클로드도 사라를 잃으면 돌이킬 수 없는 늪에 빠질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 누구보다도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