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the nanny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7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7화
“밀런 소백작? 지금 어떤 의미로 나를…….”
그는 평소답지 않게 말끝을 흐리며 미간을 좁혔다.
아마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라고 여기는 눈치였다.
하지만 사라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진지했다.
“정확히는 에단 암브로시아 공작님의 시간이 필요해요. 일주일에 한 번, 3시간 정도면 좋겠네요.”
“미안한 말이지만, 폐하께서 양위하겠다고 선언하신 이후로 귀족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이 시점에서 내가 시간을 따로 뺄 수는 없습니다.”
“맹세하셨잖아요? 필요한 것이 있다면 준비해 주겠다고.”
“필요한 것이 진정 내 시간이란 말입니까?”
“네.”
사라의 입가에는 여전히 미소가 맺혀 있었다.
“…….”
에단은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으며 생각했다.
현 황제 카일로스 드 크롬벨은 올해 80세가 되었다.
역대 황제들 중 손에 꼽을 정도로 장수를 한 셈이었고, 그만큼 강력한 황권을 휘둘렀다.
그런 그가 이제 황위에서 물러나 텃밭을 가꾸며 살고 싶다고 양위를 선언했다.
사실 이건 에단 암브로시아가 바빠질 문제는 아니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황제가 세 명의 황자 중 그 누구도 후계자로 지목하지 않았고, 그가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벌써부터 귀족들은 세 파벌로 나뉘어 치열한 후계 다툼을 이어 가고 있었다.
그 태풍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서 오직 암브로시아 공작만이 누구에게도 치우치지 않은 채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제국의 중축인 그가 중립을 지키니 귀족들 또한 눈치를 보며 과한 선을 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곧 한계에 다다를 것이다.
‘골치 아프게 됐군.’
에단 암브로시아는 사라의 품에 얌전히 안겨 있는 클로드를 바라보았다.
저 아이에게 사라 밀런은 반드시 필요했다.
암브로시아에 내려오는 저주가 아이의 몸에서 점차 뿌리를 키워 가고 있었으니까.
그 힘을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은 마력을 사용할 수 있는 마법사뿐이었다.
암브로시아의 힘은 얼핏 마력과도 닮아 있었으니 가능했다.
‘언젠가 제 힘이 필요할 날이 오게 될 겁니다. 그것을 증명하기 위한 아티팩트를 동봉하여 디엘린 편에 보냅니다. 그때까지 부디 디엘린과 아이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에단은 6년 전 사라에게 받았던 편지를 떠올리며 검지에 끼워진 반지를 매만졌다.
그 편지와 함께 받았던 아티팩트였다.
이 아티팩트만이 유일하게 그의 안에서 들끓으며 요동치던 힘을 제어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살아온 모든 인생을 통틀어서 처음으로 가문의 힘에서 해방되는 기분을 맛보았다.
“곤란하실까요?”
“…….”
그렇기에 그는 사라의 제안을 거부할 수 없었다.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가보로도 제어할 수 없는 끔찍한 힘이었다.
에단 암브로시아의 아버지인 선대 공작 또한 이 힘에 잠식당해 폭주하며 명을 달리했으니 말이다.
‘클로드를 위해서라도 그녀는 필요해.’
얼마 전, 암브로시아의 힘이 아이의 몸에서 발현되었다.
게다가 아티팩트로 제어하던 에단의 힘이 그 힘에 공명이라도 하듯 다시 들끓기 시작했다.
사라 밀런이 보내 준 반지는 점차 힘을 잃어 가는데, 클로드의 저주까지 발현되었으니 에단으로서는 절로 인내심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디엘린이 클로드를 낳은 후 죽음을 꾸며 도주한 뒤로 사라 밀런 또한 자취를 감췄다.
밀런 백작가 또한 가문의 문을 걸어 잠그고 모든 교류를 중단하겠노라 선언하기까지 했다.
에단은 그의 동생인 휘겔을 따라 도주하여 자취를 감춘 공작 부인을 6년 만에 다시 찾아야 하나 고민했을 정도였다.
디엘린을 찾아내면 칩거한 사라 밀런 또한 수면 위로 끌어낼 수 있을 테니까.
때마침 사라 밀런에게서 서신이 오지 않았다면 그리했을 것이다.
그녀는 클로드의 유모로서 공작가를 방문하겠다고 하며 암브로시아의 저주에 관해 언급했다.
‘어쩌면 암브로시아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그 저주를 내가 끊어 줄 수 있을 것 같군요.’
오랫동안 전해져 내려오던 절망의 굴레를 해결할 수 있는 힘.
에단 암브로시아에겐 그것이 반드시 필요했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붙들어 둬야 할 만큼.
계산을 마친 에단이 온화한 미소를 띤 채 사라를 바라보았다.
그의 마음이 긍정적으로 기울었다는 것을 눈치챈 사라 또한 그와 마주 웃어 보였다.
“3시간이 부담되신다면 2시간으로 줄여 보도록 하죠. 어떠세요?”
일주일에 한 번, 2시간.
에단의 머릿속에서 수많은 스케줄들이 다시 재정비됐다.
손익 계산을 할 필요도 없었다.
사라 밀런은 그가 원하는 것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위해 비위를 맞춰 주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었으니.
“단 2시간으로 줄이는 대신 다른 조건이 있어요.”
“들어 보겠습니다.”
“앞으로 아침 식사는 클로드 님과 함께하는 거예요.”
예상 밖의 조건에 에단의 눈매가 움찔 떨려 왔다.
사라의 품에 얌전히 안겨 있던 클로드 또한 마찬가지였다.
“……!”
아이는 놀라 동그래진 눈으로 사라를 바라보았다.
다른 귀족들을 초대한 자리가 아니라면 클로드는 아버지와 함께 식사를 해 본 적이 없었다.
단둘이라면 더더욱.
바쁜 아버지를 방해해선 안 된다고 모두가 그랬으니 당연히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클로드는 사라와 에단의 얼굴을 번갈아 살피며 눈치를 봤다.
사라는 아이의 떨리는 눈동자 속에 은근하게 스치는 기대감을 엿보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실없는 웃음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듣자 하니 식사는 늘 방에서 간소하게 해결하신다고요?”
“……잘 알고 계시는군요.”
에단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6년간 칩거했다고 알려진 여자가 공작의 사생활을 훤히 알고 있다니.
하긴 오랜 세월 동안 황실만이 알고 있는 암브로시아의 힘을 먼저 알고 접근해 온 여자였다.
그러니 이런 사소한 것 하나쯤 더 알고 있다 해서 달라질 건 없었다.
‘마법사라…….’
그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사라 밀런을 바라보았다.
사라 밀런이 마법사라는 것을 알기 전까지 에단에게 있어서 그녀는 존재감이 크게 없었다.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명문가인 밀런 백작가의 금지옥엽.
사교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정숙하며 현명한 레이디.
다른 남자들과 흔한 교제 한번 하지 않은 채 스스로 ‘밀런 소백작’의 지위를 거머쥔 유일한 여성.
혈기 왕성한 귀족 남성들에겐 퍽 흥미로운 대상이었겠지만 그에겐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사라 밀런의 성격이 원래 이랬던가를 떠올려 보면 기억이 지워진 것처럼 생각나지 않았다.
지금 에단 암브로시아의 눈앞에 서 있는 사라 밀런이라는 여자는 그 흐릿한 인상과는 전혀 다른 존재감을 내뿜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당최 알 수가 없었고, 생긋 웃는 얼굴은 퍽 아름답기까지 하였다.
“그래서 제 제안을 받아들이실 건가요?”
부드럽지만 강단 있는 목소리. 그가 제안을 거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듯한 눈빛.
숨 쉬듯이 자연스럽게 뿜어 나오는 위압감까지.
‘아직은 내 손에 선택지가 없으니, 어쩔 수 없군.’
사라의 장단을 맞춰 주어야만 했다. 그녀도 그것을 알고 그에게 제안을 건넬 수 있었다.
에단은 은근하고도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사라에게 속삭이듯이 물었다.
“허락한다면 내 시간을 어떻게 쓸 생각입니까?”
에단 암브로시아가 긍정의 뜻을 밝히자 그녀의 주변을 감싸고 있었던 분위기가 순간 부드럽게 풀어졌다.
사라는 기쁨이 묻어 나오는 맑은 웃음소리와 함께 답했다.
“재밌는 놀이 시간을 가질 예정이에요.”
“……?”
사라의 대답에 암브로시아 공작과 그녀의 품에 안긴 클로드까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용인들 또한 마찬가지인지 제 주인과 사라를 번갈아 보았다.
그제야 사라는 방금 제 설명이 약간 부족했다는 것을 깨닫고 다급히 덧붙였다.
“정확히는 공작님과 클로드 님이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될 거란 말이었어요. 아주 재밌고, 즐거운 놀이 시간이 될 거예요.”
사라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클로드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본능적으로 아이는 사라의 목적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요컨대 자신이 아버지와 보낼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겠다는 것이 아닌가.
아이의 두 뺨에 숨길 수 없는 기대가 예쁜 홍조와 함께 올라왔다.
“클로드 님은 어떠세요?”
사라의 물음에 아이는 화들짝 놀라 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클로드는 암브로시아 공작의 얼굴에서 온화한 미소가 사라지지 않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 나는 좋아…….”
아이의 대답을 들은 사라는 기쁘다는 듯 아주 환하게 웃었다.
그 아름다운 미소에 클로드는 물론, 에단 암브로시아까지 일순간 사라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화악, 하고 아이의 두 뺨이 달아올랐다.
“두 분 다 동의하셨으니 제가 정식으로 이 공작가에 들어오는 날부터 시작하시죠.”
“……그리하죠.”
에단 암브로시아 공작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뻥 뚫린 클로드의 방문으로 누군가 거친 숨을 힘겹게 몰아쉬며 뛰어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