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the nanny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70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70화
“……!”
에단의 말에 벤야민은 그제야 제 입으로 그 마력석이 마탑에서 나온 것이라고 시인했다는 걸 깨달았다.
“주군.”
그때 제이드가 황급히 다가와 에단에게 서류를 건네주었다.
팔랑, 팔랑 하고 그가 서류를 넘기는 소리가 유난히 더 크게 들렸다.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겠군. 네 친구들도 전부 찾았으니까.”
툭, 하고 서류 한 장이 에단의 발치에 떨어졌다.
그러자 벤야민의 시야에 선명한 글씨로 쓰여 있는 이름들이 콱 박히듯 들어왔다.
[올리븐, 녹색 머리에 녹색 눈동자. 긴 머리칼에 호리호리한 체형. 나이는 모르나 비교적 어려 보임.말투에 북대륙 쪽 억양이 섞여 있음.
스테니아 홀에 침입해 마력석을 떨어뜨리고 간 자가 이 자인 걸로 추정됨.
벨루나, 은색 머리카락에 호박색 눈동자.
긴 머리를 올려 묶음. 행동거지가 기사처럼 깔끔하고 군더더기가 없음.
뒷목의 흉터는 등 쪽까지 이어져 있는 걸로 보임.
녹색 머리를 등에 업고 이동 중.
벤야민, 검붉은 머리카락에 붉은 눈동자, 귓바퀴를 덮는 단정치 못한 머리카락.
신전 쪽 신관 하나에게서 마력 반응이 나왔는데 이자만 일행과 떨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황궁에 신관으로 잠입해 있을 가능성 농후.]
“제아무리 마법사라고 해도 이 땅, 이 제국에서 암브로시아의 손아귀를 벗어날 순 없어.”
에단은 그렇게 말하며 벤야민의 앞에 천천히 앉아 그와 시선을 마주했다.
치욕으로 물드는 그 얼굴을 바라보며 그는 퍽 다정한 말투를 꾸며 내어 말했다.
“네 친구들은 나중에 천천히 인사시켜 줄 테니 대답해.”
“…….”
“사라를 치료할 수 있겠나?”
에단의 물음에 벤야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기 싫은 것이 아니라 장담할 수 없었다.
스승이 연구하는 힘은 근본적으로 생명력을 잡아먹는 힘이었기에, 한 번 소모된 생명력을 다시 불어 넣어 주는 것은 신의 영역이었다.
마법으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소모된 체력을 채워 넣어 주고 통증을 줄여 주는 것뿐이었다.
“…….”
그 무겁고도 침통한 침묵에서 답을 얻었는지 에단은 망설임 없이 일어났다.
“끌고 가.”
한 치의 자비도 없는 명령이 떨어졌다. 암브로시아 기사단은 우악스러운 손길로 벤야민을 일으켰다.
벤야민은 순순히 그 손길에 몸을 일으키면서 입을 열었다.
“스승님을 마탑으로 모시고 가겠다.”
“내가 그걸 허락할 것 같은가? 마탑이라고 사라를 낫게 할 뾰족한 수가 없는 게 빤히 보이는데?”
“그래도 스승님을 저렇게 만든 힘의 주인 옆에 둘 순 없다.”
“그건 내 쪽에서 하고 싶은 말이군. 내가 네놈들을 어떻게 믿지? 스승을 해치려고 든 제자들을 말이야.”
“……감히 우리를 모욕해?”
“모욕이라. 나는 그저 사실을 말했을 뿐이야. 네놈들이 아무 짓만 하지 않았어도 사라가 저렇게 됐겠나?”
에단의 물음에 벤야민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곤 온 힘을 제 손목에 채워진 마력 제어구에 쏟아 넣었다.
그러자 마력 제어구에 스멀스멀 검붉은 마력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말로 되지 않으면 힘으로라도 모셔 가겠어.”
“……주군!”
그 모습을 목격한 제이드가 다급하게 에단을 불렀을 때는 이미 늦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벤야민과 에단이 동시에 튕겨져 나갔다.
“아버지!”
마력이 폭발하면서 난 굉음에 클로드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에단을 불렀다.
하지만 방금 전 충격으로 바닥이 파인 것과 동시에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올라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클로드는 사라의 손을 꽉 쥔 채 정처 없는 시선으로 에단을 찾았다.
“……헉, 클로드 님!”
그때 피어오른 연기 사이로 벤야민의 번뜩이는 검붉은 안광을 본 메이가 헛숨을 삼키며 클로드를 찾았다.
그와 동시에 침대 쪽 너머 어딘가에서 에단의 고함 소리가 들렸다.
“사라와 클로드를 보호해!”
에단의 명령에 따라 암브로시아 기사단이 일제히 움직이며 한곳을 향해 달려들었다.
챙, 하는 날붙이가 부딪치는 소리와 크고 작은 폭발음 소리가 어지럽게 들렸다.
“크, 클로드 님 이리 오세요. 어서!”
그 틈을 타 메이는 클로드를 제 쪽으로 잡아당기고 사라를 이불로 꽁꽁 감쌌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침대 건너편 에단의 목소리가 들렸던 곳으로 사라를 옮기기 시작했다.
클로드와 사라를 동시에 챙기려니 속도가 나지 않았지만 메이는 애써 서두르지 않았다.
“메, 메이 저기!”
그때 클로드가 무언가를 발견하고 메이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
사라의 상태를 잠시 살피던 사이 어느새 벤야민이 그녀의 코앞까지 다가와 서 있었다.
“……데려가겠다.”
붉은 눈동자를 섬뜩하게 빛내며 그가 커다란 손을 뻗었다.
굵고 긴 손가락 사이로 저 멀리 쓰러져 있는 암브로시아 기사단의 모습이 보였다.
메이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때,
“아, 안 돼. 유모는 안 돼.”
클로드가 메이와 사라의 앞에 나서며 두 팔을 벌려 벤야민을 막아섰다.
벤야민은 그런 클로드를 가소롭다는 듯이 내려다보았다.
“내 스승님이다. 비켜.”
“내 유모야. 너나 비켜!”
“뭐?”
“유모는 나랑 약속했어. 내 곁에 있기로 약속했어!”
클로드는 사라와 맹약을 나누면서 그녀의 마력으로 서로 이어졌던 새끼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러니까 못 데려가. 마법사의 맹약이라고 그랬으니까!”
마법사의 맹약이라는 말에 벤야민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스승님께서 너 같은 애새끼와 맹약을……?”
벤야민이 잠시 그렇게 주춤했을 때, 클로드의 등 뒤에서 에단의 목소리가 들렸다.
“클로드, 물러서!”
그 다급한 목소리에 클로드는 재빠르게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런 클로드의 머리 위로 에단이 던진 칼이 휙 하고 날아와 벤야민의 어깨에 꽂혔다.
“윽!”
화끈하게 번져 오는 통증에 벤야민은 잠시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면서도 그는 사라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의 손에는 여전히 검붉은 마력이 일렁이고 있었다.
저 멀리서 칼을 던져 시간을 확보한 에단이 이쪽으로 다가오며 메이에게 명령했다.
“클로드를 데리고 최대한 멀리 가도록.”
“하, 하지만 공작님 사라 님은!”
“내가 어떻게든 할 테니 클로드부터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 이제부터 힘을 쓸 거다.”
에단은 손가락에 끼워진 사라의 반지를 매만졌다.
사라의 제자라고 해서 최대한 편의를 봐주려고 했지만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그도 진심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소용없어, 스승님은 내가 모셔 간다.”
그때 비릿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은 벤야민의 손에서 마법진의 형상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순간 에단이 다급하게 거리를 좁히며 다가와 벤야민의 어깨에 꽂힌 칼을 뽑아 길게 휘둘렀다.
“……윽!”
벤야민이 그 칼날을 피하면서도 마법진에 마력을 계속해서 불어 넣었다.
클로드는 저것과 비슷한 마법진의 형상을 본 적이 있었다.
사라가 그를 끌어안고 저택 위에서 뛰어내려 순식간에 시장으로 갔을 때. 그때 사라의 발밑에 펼쳐지던 마법진이 저렇게 생겼었다.
‘유모를 데려가려고 해.’
클로드는 눈을 느릿하게 깜빡이며 사라에게 달려가 그녀를 끌어안았다.
왜 빼앗아 가는 거야, 왜, 대체 왜, 왜 나는 이렇게 빼앗겨야 하는 거야.
억울함에 클로드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클로드는 이대로 저 사람에게 사라를 빼앗기게 된다면 영원히 볼 수 없을 것만 같은 공포에 휩싸였다.
“도와줘, 유모. 도와줘…….”
클로드의 머릿속으로 맑은 사라의 목소리가 수도 없이 스쳐 지나갔다.
클로드 님, 하고 다정하게 그의 이름을 불러 주던 목소리.
대마법사는 거짓말 따위 하지 않는다는 당당한 목소리, 그리고…….
‘클로드 님이 행복해질 때까지 곁에 있을게요.’
사라만 눈을 뜬다면, 사라가 지금 클로드가 이렇게 서럽게 울고 있는 것을 볼 수만 있다면.
아마 저 못된 제자를 물리치고 다시 그를 끌어안아 줄 수 있을 것이다.
“제발 일어나, 사라!”
눈을 질끈 감으며 클로드가 간절하게 외치던 그 순간.
무언가가 그의 안에서 울컥하고 차오르는 느낌과 함께 목을 긁는 것만 같은 갈증이 순식간에 클로드를 덮쳤다.
“헉!”
외마디 비명과 함께 클로드는 사라의 위로 쓰러졌다.
그 모습을 목격한 메이가 비명을 지르며 클로드에게 다가가려 했다.
“아악!”
하지만 엄청난 힘의 파동과 함께 메이는 뒤로 넘어가 뒹굴었다.
쓰러진 클로드의 새끼손가락에 사라와 나눈 맹약의 증거가 선명하게 다시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그 순간,
“클로드!”
클로드에게서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