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the nanny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76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76화
* * *
사라는 그야말로 암브로시아 사람들의 극진한 돌봄에 빠르게 몸을 회복했다.
언제 그렇게 죽은 듯이 누워만 있었냐는 듯 하루가 다르게 팔팔해져 가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으……. 이제 정말 괜찮아졌는데, 이 약 꼭 먹어야 해?”
“네. 오늘도 몰래 약을 버리시면 공작님께서 약을 제조한 의사의 목을 날리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목을 날리겠다는 게 그냥 해고하고 다른 사람을 고용하겠다는 거겠지?”
“글쎄요.”
메이는 어깨를 으쓱하며 사라에게 약이 담긴 병을 건넸다.
제국에서 조금이라도 명성이 있는 의사들은 전부 모아다가 머리를 맞대고 만든 약들이었다.
굉장히 냄새가 고약하고 쓰고 떫었지만 그 효과만큼은 확실했다.
“맛이 너무 이상해.”
사라는 인상을 찌푸리며 약을 모두 마셨다. 메이는 그런 사라에게 사탕을 건네주며 말했다.
“오늘은 클로드 님과 약속하신 날입니다. 아주 기대가 크세요.”
“알았어, 그러니 오늘은 평소보다 더 몸 상태가 좋아야 한다는 말이지?”
“네.”
사라는 눈을 질끈 감고 약병에 남아 있는 약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탈탈 털어 마셨다.
그러곤 곧바로 사탕을 입에 넣고 오물거렸다.
오늘은 아주 오랜만에 클로드와 에단과 놀이 시간을 가지게 된 날이었다.
그간 사라가 누워만 있었던 탓에 하지 못했던 약속을 이제야 지키려는 것이다.
“……가 볼까.”
“네, 클로드 님은 이미 먼저 가 계세요.”
“그래? 서둘러야겠구나.”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사라는 아직도 밀실에 잠들어 있을 자신의 제자들을 생각했다.
제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그들을 둘러싼 황실, 마탑 간의 마찰이 끊이질 않았다.
그래도 황실 쪽은 에단이 얼추 정리를 해 주었지만, 마탑에서는 요지부동이었다.
사라는 언젠가 마탑에 방문해 성난 마법사들을 설득해 볼 생각이었다.
그전까지, 제자들을 마탑으로 보낼 순 없었다.
‘언제까지고 저렇게 재워만 놓을 순 없는데.’
사라는 이번 놀이 시간이 끝나면 에단에게 넌지시 권해 볼 생각이었다.
제자들을 아주 잠시 동안만, 정말 아주 잠시 동안만 암브로시아에 머무르게 할 순 없겠느냐고.
공작이 허락해 주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방문을 여는데, 눈앞에 햇빛을 받아 더욱 반짝반짝 빛나는 백금발을 가진 남자가 서 있었다.
“공작님.”
“마중 나왔습니다.”
마치 사라가 그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기라도 한다는 것처럼, 에단은 그 앞에 있었다.
사라는 제게 내밀어지는 크고 단단한 손을 바라보다가 살포시 웃으며 그 손을 잡았다.
그러곤 머쓱한 목소리로 말했다.
“매번 이렇게 부축해 주지 않아도 괜찮은데요. 제 지팡이도 있고요.”
사라는 뒤에서 그녀의 지팡이를 들고 따라오는 메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보석과 고급스러운 문양으로 꾸민 지팡이를 들고 다니는 것이 유행이라 들고 다니는 것이지만, 여차하면 몸을 지탱하기에도 좋았다.
“그래서 싫습니까?”
“아뇨!”
“그럼 됐습니다.”
에단은 옅게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사라는 잠시 그 얼굴을 바라보다가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 함께 걸었다.
민망하긴 했지만, 나쁜 기분은 아니었으니까.
에단이 그녀에게 친절하게 대해 줄수록 묘한 성취감이 들었다.
에단 암브로시아는 클로드보다 훨씬 난이도가 높은 상대였다.
애정을 갈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클로드와는 달리, 사라는 에단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으니까.
‘그런 것치고 잘하고 있는 것 같아.’
사라는 스스로를 칭찬하며 뿌듯하게 웃었다.
“……?”
혼자서 배시시 웃는 사라를 보고 에단이 의아하다는 시선을 던졌다.
괜히 민망해진 사라는 흠흠,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제 제자들 말인데요.”
“예.”
“황실에서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던가요?”
“황제가 미련이 조금 있어 보이지만, 괜찮을 겁니다. 올리븐이 1황자와 접촉했다는 사실은 알리고 싶지 않을 테니까요.”
사라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올리븐은 황실에게, 그리고 벤야민과 벨루나는 마탑에게 넘기려고 했던 에단을 다행히 설득하긴 했지만, 황제를 완전히 설득하기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는 아주 긴 세월 동안 크롬벨 제국을 통치해 온 지배자였다.
원하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해 그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 인물인지는 에단도, 사라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공작님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골치 아파졌을 거야.’
에단은 가장 먼저 귀족들을 공략했다.
일단 그 파티장에서 사라가 피를 토하고 쓰러진 것을 많은 귀족들이 목격했고, 마력석이 빛나는 것을 본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귀족들은 사라가 독극물을 먹고 사경을 헤매고 있다고 알고 있었다.
그중 몇몇은 사라가 2황자를 밀친 것을 목격했기 때문에, 그녀가 2황자를 보호하고 대신 맹독에 공격당했다고 주장했다.
황위 다툼이 치열한 때에 황자를 암살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뻔했다.
‘솔직히 뻔하지 않나요? 그 파티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 말이에요.’
‘저런, 본인이 주인공이 되어야 할 파티에 참석하지 못했다고 1황자께서 화가 많이 나신 모양이군.’
‘그러고 보니 밀런 소백작에게 위해를 가했던 것을 계기로 그리 보내졌으니……, 실은 2황자님이 아닌 밀런 소백작을 노렸을지도 모를 일이지.’
에단은 그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황제의 귀까지 들어가게 만들었다.
“……정말 그 아이가 3황자에게 그 마력석을 건넸다는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제일 먼저 1황자에게 접근했던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애초에 그런 짓을 벌이지 않았어야 다행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그건 그렇죠.”
사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감사해요, 황제의 고집이 만만치 않았을 텐데.”
“명분은 이쪽에서 쥐고 있으니 어렵지 않았습니다.”
올리븐이 저지른 짓은 아주 대단해서 그 아이를 깨운다면 대체 어디서부터 혼을 내야 할지 막막할 정도였다.
사라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에단의 허락을 구했다.
“황실 쪽은 해결됐으니, 이제 슬슬 그 아이들을 깨워야 할 것 같아요.”
“괜찮겠습니까.”
에단은 예상하고 있었는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도리어 사라를 걱정해 주었다.
잠시 긴장으로 굳었던 사라의 어깨에 그제야 힘이 풀렸다.
“저야 괜찮죠. 내 제자들인데. 다만 암브로시아에 폐를 끼칠 것만 같아서 죄송할 뿐이에요.”
“상관없습니다. 마탑 쪽을 해결하는 즉시 내보낼 것이라서요.”
그건 양보할 수 없다며 에단은 못마땅함을 숨기지 않았지만 그래도 도와주었다.
벤야민도 에단과 클로드에게 좋지 못한 행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해요. 제 마음 편하라고 배려해 주시는 거잖아요. 제가 나중에 전부 다 보상할게요.”
사라의 말에 에단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그는 무언가를 생각하듯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 바람이 새는 것처럼 옅게 웃고는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상하군요, 사라.”
“네?”
“당신이 나와 클로드에게 해 준 것들을 생각해 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에단은 허리를 살짝 숙여 가만히 눈을 깜빡이는 사라와 눈을 마주했다.
그의 푸른 눈동자가 짙게 깊어지며 그 안에 사라의 얼굴이 한가득 담겼다.
“나는 받은 것은 반드시 돌려줍니다. 그러니 익숙해지세요.”
“……!”
그녀가 암브로시아가 돌려주는 것들을 익숙하게 받을 날이 오긴 할까.
무려 크롬벨 제국 황제의 앞에서 그의 사랑스러운 아들을 손에 쥐고 협박에 가까운 협상을 끌어낸 일조차 사소하게 취급하는 남자인데 말이다.
사라는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에단이 이끄는 대로 걸음을 옮겼다.
“유모!”
저 멀리서 먼저 정원에서 놀고 있던 클로드가 환한 얼굴을 하고 다가왔다.
그 맑은 얼굴을 바라보며 사라 또한 밝게 웃었다.
“그럼 오늘도 재밌게 놀아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