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the nanny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78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78화
* * *
에단의 손님은 2황자 일리오르 드 크롬벨과 3황자 일레온 드 크롬벨이었다.
“두 분 다 앉으시지요.”
그는 집무실 의자에 기대앉아 두 사람을 맞이했다.
황족이 귀족의 저택에 방문하는 것은 엄청난 영광이었다. 요란하게 저택을 꾸미고 최대한의 예를 갖추어 맞이하는 것이 예법이었으나 암브로시아는 그러지 않았다.
비공식적인 방문이었기 때문이었다.
“밀런 소백작은, 괜찮은가.”
일리오르는 에단이 권한 자리에 앉기도 전에 사라의 안부부터 물었다.
그것이 퍽 다급해 보여서 에단의 눈이 가늘어졌다.
“암브로시아에서 잘 보호하고 있으니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그렇지만 얼굴을 한번 보아야…….”
“괜찮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전하.”
에단은 여전히 미련이 남은 일리오르의 말을 단호하게 끊어 냈다.
그러자 그는 입술을 깨물며 에단이 권한 의자에 앉았다.
사라에 대한 안부를 물을 때마다 암브로시아가는 묵묵부답이었다.
밀런 백작가에 소식을 넣어도 마찬가지였다.
‘젠장, 이성을 차릴 수가 없군.’
일리오르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삼키며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여전히 그날의 그 순간을 떠올리고 기억하고 있었다.
사라가 그의 몸을 밀쳐 내고 마력석에서 나오던 빛을 온몸으로 받아 내던 그 순간.
입과 눈에서 붉은 피를 뿌리며 쓰러지던 그녀의 모습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때 3황자 일레온이 답답한 일리오르의 심정을 알았는지 먼저 운을 떼 주었다.
“형님께서는 밀런 소백작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잘됐군요. 감사 인사로 대신하기엔 이쪽에서도 염치가 없던 차였습니다.”
일레온은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황자의 목숨을 구했으니, 황실에서는 빚을 졌습니다. 폐하께 밀런 소백작의 공로를 인정해 새 작위를 내리자고 권하면 바로 들어주실 겁니다.”
“……쯧.”
에단은 크게 혀를 차며 미간을 좁혔다.
평소 황위 다툼으로 인해 사이가 서먹하던 형제가 왜 손을 잡고 암브로시아를 찾아왔나 했더니.
공통된 목표가 있는 모양이었다.
“굳이 직접 얼굴을 마주하려는 이유가 뭡니까.”
에단의 물음에 일리오르가 바로 입을 열었다.
“직접 보아야 안심이 될 것 같아서 그러네.”
“제가 괜찮다고 했는데도 말입니까. 암브로시아가 황실을 상대로 거짓을 입에 올린다고 여기시는 게 아니라면 이만 물러나시지요.”
“나는 목숨을 빚졌지 않나, 공작.”
“…….”
감이라는 게 날카롭게 설 때가 있었다.
무언가가 나를 해치려 할 때,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려고 할 때 등 다양한 이유로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에단에게는 바로 지금이 그 순간이었다. 누군가 내 것을 탐내고 있었다.
“그럼 무사한 것만 확인하면 물러서시겠습니까.”
“내가 약속하지.”
에단은 흔쾌히 허락했다. 일리오르는 반색을 하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에단 또한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며 이번엔 3황자 일레온을 바라보았다.
“3황자 전하께서도 함께 보시렵니까?”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일레온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일렉사를 발견해 저택으로 초대했다던 사라에 대해 좀 더 알아보아야만 했다.
‘클로드의 유모는 상냥하고 착해요. 무섭지 않단 말이에요. 저 거기서 또 놀고 싶어요, 그렇게 해 주세요. 네?’
그의 사랑스러운 아들 일렉사는 아비를 볼 때마다 울먹울먹한 눈을 하고선 조르기 바빴다.
아들 바보인 그가 무시하고 넘기기엔 너무나 귀엽고 깜찍하였기에 이번 기회에 어떤 사람인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암브로시아는 3황자의 사생아 따위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정도로 이미 모든 권력을 손에 쥐고 있었지만, 다른 가문들은 달랐다.
밀런 소백작이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인지 파악하지 못했으니, 일레온은 그녀를 직접 보고 확인하고 싶었다.
일렉사를 맡길 만한지, 그 존재를 약점 잡아 휘두를 사람은 아닌지.
좀 더 꼼꼼하게 알아보려면 직접 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밀런 소백작의 안부가 궁금하다고 하시니, 어쩔 수 없군요. 이리로 오십시오.”
에단은 자리에서 일어나 집무실에 크게 난 창 앞으로 걸어갔다.
일리오르와 일레온은 집무실 밖으로 나가지 않는 에단에게 의아한 시선을 던졌다.
하지만 그는 그러거나 말거나 까딱, 고갯짓을 하며 다시 그리로 올 것을 권했을 뿐이었다.
“…….”
먼저 걸음을 뗀 것은 일리오르였다.
에단의 옆에 서서 그가 가리키는 창밖을 바라보자 그곳에 사라 밀런이 있었다.
“밀런 소백작…….”
일리오르가 멍하니 중얼거리는 말에 일레온 또한 창가로 다가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집무실 창 아래에서는 암브로시아의 웅장하고 넓은 정원이 훤히 보였다.
그리고 그 아래에서 밀런 소백작과 클로드가 꼼지락거리며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수업 중입니다.”
에단은 그의 뒤에 서 있던 베론을 보며 물었다.
“오늘은 어떤 걸 배운다고 하던가?”
“식물학에 대해 공부 중이십니다.”
베론의 대답을 듣고 정원을 다시 보니 클로드의 손에 노트가 들려 있는 것이 보였다.
아이는 사라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것을 보고 열심히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그리고 사라는 클로드가 필기하는 데 집중한 사이 꽃을 한 아름 따다가 몰래몰래 아이의 머리칼에 꽂고 있었다.
“아주 즐거운 수업 시간을 보내고 있군, 둘 다.”
에단은 그렇게 말하며 옅게 미소 지었다.
연신 클로드의 눈치를 보며 꽃으로 아이의 머리칼을 장식하는 사라의 몸짓이 아주 조심스러웠다.
보고 있는 사람의 손에 절로 땀이 밸 정도였다.
사라가 들고 있던 마지막 꽃을 클로드의 머리에 꽂으려는 순간, 아이가 휙 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사라는 꽃을 꽂으려던 그 자세 그대로 굳어 버렸다.
“저런, 들켰네.”
웃음기가 묻어 나오는 에단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창을 열었다. 그러자 밖에서 사라와 클로드가 까르르 웃는 소리가 집무실 안까지 들려왔다.
“유모 미워어어!”
“아하하! 죄송해요, 클로드 님!”
창밖에서는 제 머리에 손을 가져다 댄 클로드가 자신의 머리가 꽃병이 됐다는 걸 깨닫고 사라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
그 목소리에 사라와 클로드를 지켜보던 일리오르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본인이 넋을 놓고 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던 것이다.
“아하하하!”
사라는 크게 웃으며 뒤에 있던 메이에게 달려가 그 뒤에 숨었다.
메이는 사라를 숨겨 주는 듯하다가 잽싸게 옆으로 물러나 길을 터 주었다.
순간 사라의 얼굴이 배신감으로 물들며 이번엔 론다의 뒤로 가 숨었다.
“이리 와, 유모! 론다 뒤에 숨다니 비겁해!”
클로드는 제 머리에서 뽑은 꽃을 손에 쥔 채 방방 뛰었다.
잽싸게 론다와 메이 사이를 번갈아 가면서 숨는 사라가 얄미웠던 것이다.
론다는 곤란한 얼굴로 클로드와 사라를 바라보다가 이내 큰 결심을 한 얼굴로 아이를 번쩍 들어 올렸다.
“……앗, 론다!”
그리고 사라의 품에 클로드를 안겨 주었다.
드디어 사라를 잡게 된 클로드는 제 머리에 꽂힌 꽃을 사라의 머리에 다시 심기 시작했다.
“꺄―, 간지러워요. 클로드 님!”
“아하하!”
둘 다 얼굴이 새빨개져선 자지러지게 웃었다.
그걸 지켜보는 론다와 메이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었다.
“…….”
“…….”
참으로 평화로운, 동화 같은 장면이었다.
누군가가 간절히 꿈꿔 왔던 행복한 일상의 한 부분을 훔쳐본 기분이었다.
에단이 집무실의 창을 닫아 버려 더는 저 웃음소리를 들을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머릿속을 웅웅 울리는 듯했다.
그는 멍한 얼굴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일리오르와 일레온을 보며 말했다.
“이제 만족할 만큼 보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