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the nanny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85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85화
* * *
“다른 손님도 오셨군.”
에단은 사라의 옆에서 함께 걸어오는 벨루나와 무슨 일인지 멀찍이 서서 따라오는 벤야민을 보며 말했다.
클로드와 사라와 함께하는 아침 식사 시간을 방해받은 것이 내키지 않았지만, 그는 티 내지 않았다.
“아버지, 좋은 아침이에요!”
“안녕, 클로드. 잘 잔 모양이구나.”
“네!”
클로드는 우렁차게 인사하며 사라의 품에서 내려와 척척 제 자리를 찾아 앉았다.
이제 제법 아침 식사 시간이 익숙해진 모습이었다.
아버지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 이젠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사라는 그 모습을 뿌듯하게 바라보며 인사를 건넸다.
“좋은 아침이에요, 공작님.”
“덕분입니다.”
“……!”
에단의 대답에 사라의 뺨이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어젯밤 그녀의 어깨에 기대던 그의 체온만큼이나 뜨거웠다.
“……오늘 메뉴가 뭐예요, 론다?”
사라는 괜히 말을 돌리며 어색하게 자리에 앉았다.
그런 그녀의 뒤로 벨루나가 자리를 잡으며 서 있었다.
물론 스무 걸음쯤 뒤에는 마찬가지로 벤야민이 서 있었다.
“저분들도 식사를 해야 하지 않나. 론다, 자리를.”
“아닙니다, 신경 쓰지 마시고 식사하십시오.”
에단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권유하자 벨루나가 크게 당황하며 거절하였다.
황궁에서 사고가 터진 뒤, 벤야민이 먼저 암브로시아에 잡혀 들어갔다. 그러곤 몸을 숨기고 있던 벨루나와 올리븐까지 찾아내 압도적인 힘으로 그들을 제압했던 악마 같은 사내가 아니었던가.
에단 암브로시아의 손에서 흘러나오던 힘이 주는 압박감이 아직도 눈앞에 선연했다.
그런데 얼굴을 마주하며 식사 따위를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내가 불편해서 그럽니다. 사라에겐 소중한 제자들이 아닙니까.”
“공작님…….”
“오랫동안 잠들어 있었으니 허기가 질 법도 합니다. 주방장에게 맑은 수프로 내어 오라고 하겠습니다.”
그런 벨루나의 속사정을 모르는 사라는 마치 감동이라도 받은 것처럼 두 손을 모았다.
실은 제자들을 저렇게 세워 두고 식사를 하려니 미안함에 목구멍으로 밥이 넘어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에단에게 사라의 제자들은 걸림돌이나 다름없었는데도 그는 사라의 체면을 생각해 배려해 주었다.
“공작님께서도 권유하시니까 여기 앉아.”
사라는 제 옆에 론다가 놓아 주는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벨루나는 잠시 에단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스승의 뜻에 따랐다.
“저쪽은 너무 멀리 있는데.”
에단은 저 멀리 서 있는 벤야민을 가리켰다.
론다가 맞은편에도 의자 하나를 더 놓아 주었다. 그의 자리는 클로드의 옆이었다.
“괜찮겠지, 클로드?”
“조금 무섭지만 괜찮아요!”
에단이 클로드에게 허락을 구하자 아이는 씩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 아드님이 아주 용감하구나.”
아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며 에단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훈훈한 장면에 사라의 입술에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
그녀는 벤야민에게 가까이 다가오라고 손짓했다.
“공작님께서 함께 식사를 하자고 권하셨으니 너도 와서 먹으렴.”
“저는 괜찮습니다.”
“그래도 배가 고플 텐데…….”
“괜찮습니다.”
벨루나와 달리 벤야민은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시선을 들어 에단과 마주하는 눈에 붉은 불꽃이 튀었다.
그 노골적인 시선에 에단은 작게 혀를 차며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내 배려가 부족했군. 칼침을 놓은 상대와 식사를 하는 게 불편했을 텐데.”
“칼침이라뇨?”
에단의 말에 사라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그녀는 모르는 일이었다.
“아, 사라는 모르는 게 당연합니다. 그날 황궁에서 쓰러졌을 때 저자가 신관으로 위장해 들어왔었는데, 내가 오해해 칼을 휘둘렀습니다.”
“……세상에, 그런!”
사라는 서둘러 뒤를 돌아보며 벤야민의 상태를 살폈다.
그 초조한 시선에 벨루나가 그녀의 어깨를 부드럽게 잡으며 말했다.
“스승님, 벤야민의 치료는 제가 했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그래?”
벨루나의 말에 사라는 크게 안심했다.
가슴을 쓸어내리는 사라를 보며 에단이 씁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날 피를 너무 많이 토해서 기도가 막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었습니다. 저자도 그것이 걱정됐는지 일단 당신을 데려가려고 하기에 클로드와 제가 막아섰습니다.”
“벤야민이 저를요? 어디로요?”
“그날 듣기로는 마탑으로 데려간다고 하더군요.”
“……벤야민, 사실이니?”
사라의 물음에 입을 꾹 다물고 있던 벤야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사라는 조용히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마탑에서는 암브로시아의 힘에 대해 모르는데, 그 호기심 많은 마법사들에게 전부 알릴 셈이었어?”
사라는 엄한 스승이 되어 그를 꾸짖었다. 그녀가 암브로시아의 힘을 전부 다 소화하여 태울 때까지 어떤 짓을 하든 회복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제멋대로 군 제자들의 성급함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죄송합니다, 그때는 이성을 잃어서…….”
벤야민이 사과를 하려는 순간 에단이 테이블 위로 주먹을 쥐고 있는 사라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 쥐며 말했다.
“스승이 눈앞에서 죽어 가는데 어떤 제자가 제정신일 수가 있겠습니까.”
“죄송해요, 공작님. 우리 아이들이 폐를…….”
“사과해야 하는 건 오히려 내 쪽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그날 가장 큰 피해를 입었던 건 사라입니다.”
“그거야 그렇지만 결국은 내가 저 아이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에요.”
“설마 겨우 그런 것 때문에 그런 엄청난 일을 벌였으려고. 그런 식으로 자책하는 것은 사라답지 않습니다.”
에단의 어조는 은근하면서도 부드러웠다.
사라의 마음이 평안해질 수 있도록, 괜한 죄책감을 느끼지 않도록 섬세하게 그녀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듯했다.
“…….”
벤야민은 사라의 손을 잡고 있는 에단을 노려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여우 같은 남자였다.
저 부드러운 시선과 매너 좋은 화술은 얼핏 보면 사라를 배려해 그녀의 제자들을 신경 써 주는 듯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조용히 그들의 만행을 비난하고 있기도 했다.
“짧은 시간이겠지만, 사라가 제자들과 함께 보낼 시간이 생겼다는 게 도움이 되겠지요.”
많은 시간을 주지 않을 테니 그전에 작별 인사까지 하라는 뜻이었다. 이렇게 서로 만나게 해 주었으니 다시는 이딴 짓은 하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했다.
“그 덕에 클로드가 조금 놀란 듯하지만, 점차 괜찮아지겠지요. 사라의 제자가 아닙니까.”
클로드의 마음이 풀리지 않으면 그녀의 제자라고 불릴 자격조차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니 나와 클로드는 생각하지 마세요. 소중한 시간 아닙니까.”
신경 제대로 쓰라는 소리였다.
“…….”
“…….”
벨루나와 벤야민은 동시에 시선을 교환했다.
어떻게든 스승의 곁에 남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해 보려고 했던 시도는 시작조차 못 해 보고 끝이 나게 생겼다.
암브로시아 공작의 저 부드러운 경고를 듣고 나니 더더욱 깨닫게 됐다.
저 남자는 그들을 이 저택에 남겨 둘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어떻게 그래요. 저는 클로드 님의 유모고 암브로시아의 사람이에요. 가장 우선되어야 할 게 무엇인지 잊지 않았어요.”
“고맙습니다, 사라.”
드디어 원하는 답을 얻은 에단이 사라를 보며 눈부시게 웃었다. 승리자의 미소였다.
그런 그를 클로드가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래서 저 아저씨는 식사 안 해요?”
“아, 그렇지. 계속 세워 뒀구나.”
클로드의 말에 에단은 굉장히 미안하다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아이가 허락해 주었으니, 편하게 앉아서 식사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
벤야민은 결국 그가 권하는 대로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를 보며 벨루나가 딱한 시선을 던졌다.
스승의 앞이라고 잘도 참고 있었지만 벤야민이 한계에 다다른 것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그들이 제 앞에 놓인 맑은 수프를 그저 바라볼 때였다.
“……!”
“……!”
그때 식기의 문양까지 비칠 정도로 투명한 수프 위로 푸르른 마력으로 쓰인 글씨가 떠올랐다.
―우리 공작님, 무서운 분이시지? 그러니 적당히 있다가 돌아가렴. 뼈도 못 추리지 말고.
사라의 메시지였다.
놀라 그녀를 바라보는 벤야민과 벨루나에게 사라는 찡긋 눈짓을 한번 해 보이곤 다시 식사에 열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