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the nanny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86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86화
* * *
아침 식사가 끝난 후 사라는 주방장을 불러 몇 가지를 지시했다.
“올리븐 몫의 식사는 따로 준비해 줘요. 내가 잠시 후에 가져다줄 거예요.”
그러자 벨루나가 다가와 말했다.
“스승님, 그런 건 제가 하겠습니다.”
“괜찮아. 올리븐에게 할 말이 있어서 그래.”
“아…….”
밀실에서 올리븐에게 서늘한 목소리로 경고하던 스승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벨루나는 순순히 물러났다.
사라는 그런 그녀에게 웃어 보이며 주방장에게 눈짓했다.
“잠시 후에 가져갈게요. 공작님과 잠깐 할 말이 있어서요.”
“유모, 나는?”
“클로드 님은 방에 올라가셔서 오늘 수업 준비 하셔야죠.”
“……우웅. 알았어.”
클로드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며 계단을 올랐다.
사라가 눈짓하자 메이가 그 뒤를 따랐다.
“그럼 공작님, 저에게 잠깐 시간 좀 내어 주실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사라의 요청에 에단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들은 알아서 저택 구경이라도 하고 있을래?”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십시오.”
“벤야민, 혹시 몰라서 말하지만 너는 클로드 님에게 접근 금지야. 그렇게 알고 있으렴.”
“네.”
얌전히 대답하는 벤야민을 가만히 바라보던 사라는 작게 한숨을 쉬며 에단과 함께 계단을 올라갔다.
“돌봐야 할 클로드 님이 네 명이 된 기분이에요.”
“곧 다시 하나가 될 겁니다.”
어쩐지 그렇게 만들고 말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먼저 앞서서 걸어갔고, 사라는 짧게 웃으며 그 뒤를 따랐다.
* * *
에단은 손수 사라의 찻잔에 차를 따라 주었다.
따뜻한 홍차에 우유를 조금 타고 설탕 두 스푼.
완벽한 사라의 취향이었다.
“감사해요.”
굳이 알려 준 적 없는 그녀의 취향을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알고 있는 게 에단다웠다.
방금 전까지는 돌봐야 하는 아이 셋을 상대했던 것 같은데, 에단과 함께 있으면 돌봄받는 건 그녀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너무나 당연하다는 것처럼 그녀부터 챙겨 주는 에단의 배려가 좋았다.
“조금 피곤해 보이는데.”
에단이 손을 뻗어 사라의 눈가를 조심스럽게 쓸었다.
“……괜찮아요.”
그의 이런 작은 행동에도 사라의 기억은 어젯밤으로 날아갔다.
제 눈가가 붉게 달아오른 것도 모른 채 두 눈을 느리게 깜빡이던 에단의 처연한 얼굴이.
지금도 떠올리면 아릿하게 가슴이 조여들었고, 그때 거세게 뛰었던 심장의 박동이 떠올랐다.
그래서 사라는 애써 말을 돌렸다.
“제 제자들이 많이 거슬리실 거예요. 그런데도 이해해 주셔서 감사해요.”
에단은 그녀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동안에도 훌륭하게 황실에게서 제자들을 보호하고 있었다.
황궁에서 난리를 치던 벤야민을 눈에 띄지 않게 암브로시아 저택으로 옮기고, 수도 어딘가에서 숨어 있던 벨루나와 올리븐을 찾아내 데려왔다.
제자들의 반항은 둘째 치고 크롬벨 제국 황실의 눈을 피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황제가 아직도 암브로시아 저택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어요.”
“괜찮습니다.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암브로시아에게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습니다.”
사라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찻잔을 들어 올리는 에단을 보며 작게 웃었다.
그가 이런 수고를 한 것은 오직 그들이 사라의 제자이기 때문이었다.
“제가 제자들에게 많이 무르게 굴죠?”
“……그렇지도 않습니다.”
에단은 그렇게 말했지만 긍정이라도 하는 것처럼 별다른 말을 덧붙이진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친 사고 때문에 사라는 암브로시아의 힘을 정면으로 받아 내며 자칫 목숨을 잃을 뻔하였다.
그녀가 마법사, 그것도 대마법사가 아니었으면 아마 영영 눈을 뜨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제자들을 용서하고 제 탓이라고 말하는 사라의 자애로움은 어디서 오는 걸까.
‘나도 그녀의 자비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으니 거슬린다는 말도 못 하겠군.’
에단은 입가에 떠오른 씁쓸한 미소를 찻잔을 들어 가리며 말했다.
“제자들에게 애정이 큰 모양입니다.”
“맞아요, 하나하나 전부 내가 키운 것 같은 착각을 하고 있거든요.”
사라는 그렇게 말하면서 혹시 에단이 오해할까 봐 두 손을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아, 물론 정말 키웠다는 게 아니에요! 다만……, 그 아이들이 한 사람의 몫을 해낼 때까지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봐 와서 그런 기분이 드네요.”
“제자들과 나이 차이가 그리 많은 것 같지 않던데……. 어떻게 만나게 됐습니까?”
“아.”
에단의 물음에 사라는 그때를 떠올리며 부드럽게 웃었다.
“나이 순으로 이야기해 볼까요? 먼저, 벨루나는 사실 저보다 나이가 한두 살 정도 많아요.”
벨루나와 만나게 된 건 사라가 디엘린과 함께 여행을 떠났던 때였다.
북쪽에 디엘린이 소유하고 있는 별장이 있었는데 경치가 좋고 시원한 곳이었다.
산 정상에 위치해서 그 별장에서는 산 아래 있는 크고 작은 마을들이 한눈에 보였다.
도적들이 들끓기는 했지만 그들은 감히 귀족을 건들 생각을 하지 않으니 안전할 거라고 디엘린은 말했다.
하지만 사라는 그렇다면 저 멀리 보이는 마을들 중 오늘 밤 도적들의 침입을 받게 될 곳은 어디일까를 생각했다.
“작은 마을에 도적이 들었는데, 집이 불타고 많은 사람들이 죽어 있었어요.”
“저런.”
사라가 별장에서 내려다봤을 때, 벨루나의 마을은 예쁘게 반짝이고 있었다. 한밤중에도 말이다.
‘저것 봐 사라, 산 속에 별이 떨어졌나 봐.’
디엘린은 그것을 보고 맑게 웃으며 말했지만 사라는 저 예쁘게 보이는 붉은빛이 너무나 섬뜩하였다.
그녀가 갔을 때 벨루나의 마을은 이미 폐허가 되어 있었다.
“거기서 검을 쓸 줄 아는 사람은 벨루나가 유일했어요. 그녀는 처음에는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려고 했다가, 나중에는 복수하려고 했다가, 결국은 살아남기 위해서 싸웠죠.”
그녀는 도적들이 결국 포기하고 마을을 떠날 때까지 살아남았다.
그토록 강인한 사람이었지만, 처음 만났을 때 검은색이었던 벨루나의 머리는 사라가 데려와 돌보는 동안 새하얗게 세어 있었다.
“벨루나에게는 재능이 있었어요, 아주 눈부신 재능이요. 늦은 나이에도 충분히 뛰어난 마법사가 될 수 있는 자질을 갖고 있다는 걸 알았죠.”
사라는 벨루나에게 손을 내밀었고, 그렇게 그녀는 마탑에서 함께 지내게 되었다.
벨루나는 책임감이 강했고 정의로웠고 배움에 대한 의지가 강했다.
사라에게 마법을 배우고 점차 마력에 대해 깨우칠수록 새하얀 백발이었던 벨루나의 머리카락은 마치 별빛이 흐르는 것 같은 은색으로 변했다.
그녀는 그 모습을 보며 벨루나가 상처를 이겨 내고 있다고 제멋대로 생각했다.
“벤야민과 올리븐에겐 훌륭한 자극제가 되어 주기도 했고, 두 아이를 잘 통제해 주는 맏이 노릇도 했어요. 저한테는 너무나 고마운 제자죠.”
“확실히 사라의 다른 두 제자와는 달리 말이 통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에단은 사라의 말에 맞장구를 쳐 주면서도 은근히 다른 두 제자들은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어필했다.
“그렇죠? 가끔 제 문제에 있어서는 애 같아지는 면이 있지만…….”
마탑 대장로에겐 세 명의 제자들이 있는데 그들에겐 이성이라는 게 없다.
그것이 마탑에서는 당연한 공식인 것처럼 내려오는 말이었다.
그래도 툭하면 이성을 잃고 날뛰는 벤야민과 올리븐의 고삐를 쥐어 잡아 주는 건 벨루나였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벨루나가 이성의 끈을 잡고 있는 한 사라의 제자들은 큰 사고는 치지 않았다.
다만, 그 마지막 남은 이성의 끈인 벨루나가 눈이 돌아가면 그때는 사라조차도 감당할 수 없게 된다는 게 문제일 뿐.
“그래도 좋은 아이예요.”
“당신이 많이 의지하고 있다는 게 느껴지는군요.”
애써 엄하게 굴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숨길 수 없는 애정이라는 것이 있었다.
제자의 이야기를 하는 사라의 푸른 눈이 너른 바다처럼 너울거리며 햇살을 받은 것처럼 반짝였다.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도리어 에단의 깊숙한 곳에서는 음습하고 더러운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빼앗길 거야.’
그의 머릿속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끈거리며 머리가 아파 왔다. 하지만 그럴수록 에단은 더 짙게 웃어 보였다.
그러곤 침착하고 차분하게 조용히 순서를 정리했다.
‘벨루나부터 치워 버리면 나머지 두 녀석은 쉽겠어.’
그의 저택에서 어떻게든 남아 있고자 수작질을 부릴 제자들의 추방 순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