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the nanny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9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9화
그는 제이드의 뒤로 에단 암브로시아의 얼굴이 보이자 사시나무 떨듯이 벌벌 떨기 시작했다.
“흐윽, 흡! 흐으읍!”
식은땀에 젖은 남자는 이내 발버둥 치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얌전히 잘 있었군.”
에단은 귀족다운 수려한 미소를 지으며 마차에 올라탔다.
결박당한 남자는 어떻게 해서든 공작에게서 떨어지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끊어진 발목의 인대가 욱신거리며 쑤셔 왔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에단은 안쓰러운 듯 혀를 찼다. 그의 얼굴엔 미약한 동정심이 스쳐 지나갔다.
제이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마차에 올라탔다.
저 동정이 진심이라는 것이 더 무서웠다.
“살살하세요, 주군. 황실 회의 때까지는 살아 있어야 합니다.”
“모진 고문을 견디고도 이리 살아남았는데. 이리 죽여 버리기엔 너무 불쌍한 인생이지 않나. 그 정도의 자비는 있어.”
제이드는 다정한 어투로 자비를 입에 올리는 주군을 바라보다가 이내 질린 듯 마차 문을 닫았다.
‘아무래도 저거 황실에 도착할 때쯤 반 죽어 있겠군.’
이렇게 생각하며 말이다.
마차 문이 닫힘과 동시에 결박당한 남자는 두 눈에 한가득 두려움을 담아 암브로시아 공작을 바라보았다.
무해한 웃음과 함께 옷깃을 단정하게 정리하던 그는 겉보기엔 남자에게 큰 관심이 없어 보였다.
이대로, 죽은 듯이 있으면 살 수 있지 않을까.
남자의 머릿속에 작은 희망이 스쳐 지나갈 때, 에단 암브로시아의 입이 열렸다.
“짐 우드. 나의 믿음을 꽤나 아프게 갚는군.”
“으읍!”
짐 우드라 불린 남자는 고개를 격렬하게 저으며 울부짖었다.
하지만 입에 물린 재갈로는 인간의 언어를 할 수 없었으니.
그 울부짖음은 짐승과 다름없었다.
“그대가 암브로시아를 배신하고 1황자의 충직한 개가 되었으니, 1황자께서는 자비를 베푸실지도 모르지.”
“흐으…….”
“하나, 다른 두 분의 황자께서는 그대가 형제를 갈라서게 했으니 처참히 죽여 본보기로 삼으시려 해.”
“읍! 으윽! 흑!”
짐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무릎을 꿇은 채로 에단 암브로시아 앞으로 기어갔다.
그의 발등에 어설프게 입을 맞추려는 행동에 에단은 미간을 좁히며 구두를 좀 더 안쪽으로 끌었다.
더러운 것이 닿는 게 불쾌하다는 노골적인 표현이었다.
그러나, 그런 행동과는 달리 에단 암브로시아의 목소리는 부드러우면서 다정하기까지 했다.
“내 저택에서 오랜 세월 함께해 왔던 자네라면 그럴 리가 없다며 최대한 감싸 보았지만, 어쩔 수 없게 되었어.”
“흡!”
안타까움이 뚝뚝 묻어나는 목소리에 짐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최대한 감쌌다니. 어쩔 수 없었다니.
1황자의 첩자로서 암브로시아 저택에 잠입한 지 10년.
암브로시아가의 저주에 대한 실체를 알아낸 짐이 제 주군에게 서한을 날리려고 했을 때였다.
눈을 떠 보니 그는 차가운 돌바닥에 피를 흘린 채 결박되어 있었다.
그의 두 팔과 두 다리의 인대를 친히 그 손으로 끊어 내었던 공작이었다.
잔혹한 고문에 성대가 찢어지도록 내지르는 비명을 감미롭다는 듯이 듣고 있었던 공작이었다.
그가 알아선 안 될 것을 알아 버린 죄로.
“내게 먼저 알리지 그랬어, 짐. 1황자께 저속한 말을 속삭이려 하기 전에.”
“흐읍.”
“2황자와 3황자께선 자네가 1황자께 전한 서한 속에 본인들의 약점이 적혀 있다 여기시니. 이 오해를 풀어 드려야 할 텐데…….”
에단 암브로시아는 부러 말꼬리를 늘이며 크게 고민하는 양 한숨을 내쉬었다.
그 한숨에 짐은 칼에 찔린 것처럼 몸을 떨었다.
에단 암브로시아는 짐이 보낸 것처럼 서한을 꾸며 1황자에게 보냈다.
그런 공작의 입에서 떨어질 말은 뻔했다.
“그 오해를 풀면 오랜 시간 동안 감춰 왔던 가문의 진실이 드러날 테니. 가주인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만 해.”
“흐, 흐윽, 흑!”
짐의 눈에선 끊임없이 핏물이 섞인 눈물이 터졌다.
입에 물린 재갈을 타고 침이 줄줄 흘러내렸다.
에단 암브로시아는 그런 짐을 가엽게 보며 혀를 찼다.
안타까움이 뚝뚝 묻어 나오는 그의 눈은 얼핏 보면 꽤나 자상해 보이기까지 하였다.
그 모습이 더욱 두려워서 짐은 스스로의 죽음을 직감하게 되었다.
“이해해 주겠지?”
“으읍! 읍! 으으으읍!!”
에단은 감미로운 미소를 지으며 짐을 향해 손을 뻗었다.
짐의 뺨을 어루만지는 그의 손길은 다정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그 끝에서 검은 기운이 조금씩 흘러나오자 발버둥 치던 짐의 몸이 점차 힘을 잃어 가기 시작했다.
“흐…….”
부릅뜬 눈이 순간 탁하고 풀리더니 몸이 스르르 뒤로 넘어갔다.
짐의 평범한 갈색 눈동자에 잠깐 검은 기운이 일렁이더니 이내 다시 제 색깔을 찾았다.
“…….”
그는 이제 더 이상 발버둥 치지도, 울음을 터트리며 신음하지도 않았다.
그저 생기가 없어진 인형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숨만 내쉴 뿐이었다.
그리고 파직, 하는 소리와 함께 에단 암브로시아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에 금이 갔다.
“오래 버텨 주었군.”
사라가 찾아옴과 동시에 망가져 버린 아티팩트라니.
그는 씁쓸하게 반지를 매만지며 창문 밖으로 멀어지는 공작가 저택을 바라보았다.
지금쯤 클로드와 함께 있을 사라의 마법이 이 힘을 눌러 줄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 * *
암브로시아 공작이 방을 나선 후, 사라는 품 안의 클로드를 천천히 침대 위에 내려 주었다.
끝까지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고 있던 클로드는 그제야 제가 그녀에게 계속 안겨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누군가에게 이렇게 오랫동안 안겨 있었던 적이 있었나.
클로드는 그렇게 멍하니 생각하다가 조금 울적한 얼굴이 되어 이불을 끌어다 덮었다.
크게 들썩이는 이불 위로 사라가 손을 올려 토닥, 토닥 쓰다듬으며 다정히 말을 건넸다.
“아버지와 함께 보낼 시간을 1시간이나 더 줄여서 아쉬우세요?”
“아니.”
“그럼 뭐가 속상하신데요?”
“…….”
클로드는 모르는 척 묻는 유모가 얄미워 이불을 걷어 내곤 볼에 바람을 가득 넣은 채 그녀를 노려보았다.
역시나 사라의 얼굴에는 처음 봤을 때와 같은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그가 아무리 노려보고 불평을 해도 사라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클로드는 결국 다 포기해 버리곤 이불을 꽉 쥔 채 퉁명스럽게 답했다.
“유모가 아버지를 곤란하게 만들었잖아.”
“그야 그렇긴 했죠.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답니다.”
“그러다가, 그러다가…….”
클로드는 잠시 말을 고르다가 이내 입을 꾹 다물었다.
앙다문 아이의 입술에 고집스러운 힘이 들어갔다.
클로드는 말하기 싫다는 제 뜻을 표현한 것이겠지만, 사라의 눈에는 영락없는 병아리였다.
약간, 화가 나서 털이 잔뜩 부풀어 오른 아기 병아리.
사라는 이내 사르르 웃으며 클로드가 삼킨 말을 대신 해 주었다.
“혹시 공작님께서 곤란하셨을까 봐 염려되세요?”
정곡을 찔린 클로드가 몸을 휙 돌려 그녀에게 등을 보이며 대답했다.
“……응.”
“저런.”
사라는 안타까운 듯 혀를 찼다.
저 어린 것이 얼마나 눈치를 보고 자랐으면.
6살이면 한창 부모에게 응석을 부릴 나이였다.
다른 또래들과 비교해 보면 차이가 더욱 두드러졌다.
아직 아이 티를 벗지 못한 다른 귀족 자제들과는 다르게 클로드는 확연히 어른스러웠다.
사라가 미리 조사해 본 바로는 벌써 제국어를 읽고 쓰기 시작했고 귀족 예법을 스스로 깨우치려 노력한다고 했다.
전부 다 아버지인 에단 암브로시아 공작에게 잘 보이기 위함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공작은 여전히 무심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있는 힘껏 아버지에게 사랑받기 위해 노력했다는 증거였다.
이렇게 성실하고 사랑스러운 아이에게 공작이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할 리 없었다.
클로드에게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정신없이 방으로 뛰어 올라왔던 공작을 떠올려 보면 알 수 있었다.
공작이 제아무리 아이를 피한다고 하더라도 사라는 그렇게 생각했다.
“공자는 좀 더 공작님께 응석 부려도 된다고 생각해요.”
“나는 그렇게 못 해.”
클로드의 목소리가 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울음을 참는 것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아버지는 나를……, 미워하잖아.”
이불 위로 아이의 등을 쓸어 주던 사라의 손길이 일순간 멈췄다.
그녀의 미간이 괴롭게 일그러졌다.
사라는 안타까운 마음을 애써 누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클로드를 달랬다.
“그렇지 않아요.”
하지만 그럼에도 미약하게 떨려 오는 목소리는 숨기질 못하였다.
목구멍 깊은 곳에서 절절 끓는 마음이 묻어 나오는 듯했다.
토닥, 토닥. 사라의 자상한 손길이 이불 위로 느껴졌다.
그게 너무나 따뜻해서, 6살 짧은 인생 동안 느껴 보지 못했던 손길이라서.
모두가 그를 어려워하거나, 두려워하거나, 미워했지만.
이상하게도 사라만은 그러지 않아서.
클로드는 어쩐지 눈물이 날 것만 같아 입술을 악물고 부러 큰소리를 내었다.
“착각하지 마! 난 아직도 유모가 싫어!”
“그래도 제가 공작님과의 시간을 받아 내서 기쁘시지요?”
“아니야! 아버지가 얼마나 바쁘신 분인데. 유모가 귀찮게 군 걸 내가 왜 기뻐해?”
“어머나, 그렇다면 제가 큰 실수를 했네요. 당장 공작님께 가서 무례에 대한 용서를 빌고, 이 이야기는 없었던 걸로 해야겠어요.”
사라의 말이 끝나자마자 깜짝 놀란 클로드가 이불을 확 걷으며 일어났다.
커다래질 대로 커다래진 아이의 눈망울이 아주 울상이었다.
“푸핫.”
그 모습이 너무나 귀여워서 웃음을 터트린 사라를 보며 클로드는 저가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장난에 속다니!
자존심이 상한 클로드가 얼굴을 확 붉히며 다시 이불을 덮어쓰고 돌아누워 버렸다.
“난 역시 유모가 너무 싫어…….”
“저는 클로드 님이 너무 좋아요. 사랑스럽거든요.”
태연한 사라의 대답에 클로드의 눈동자가 잘게 흔들렸다.
그녀의 입에서 제 이름이 나왔을 때, 클로드는 자신도 모르게 그 이름이 주는 울림이 기분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을 눈치채지 못한 사라는 여전히 웃음기가 가시지 않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간단히 인사를 하는 게 목적이었으니, 이만 돌아가 볼게요. 저도 공작가에 들어올 준비를 해야 하니까요. 본격적으로 저랑 붙어 있기까지 시간이 있을 테니 마음의 준비도 해 두세요.”
“으.”
“하하. 클로드 님이 싫어해도 소용없지요.”
클로드가 싫은 듯 앓는 소리를 내어도 사라는 까르르 웃었다.
상관없다는 듯 웃으며 그녀는 장갑을 다시 끼고 침대에 걸쳐 놓았던 지팡이를 집어 들었다.
여전히 이불을 뒤집어쓴 채 나오지 않는 클로드를 두어 번 토닥여 준 사라가 이내 몸을 돌려 걸어 나갔다.
또각또각하는 구두 굽 소리가 점차 멀어지자 클로드는 이불 밖으로 빼꼼 머리를 내밀었다.
빨갛게 달아오른 두 뺨이 실룩거리며 움찔거렸다.
“정말 이상한 유모야.”
그렇게 중얼거리는 클로드의 심장이 기분 좋은 고동 소리를 내며 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