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the nanny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90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90화
“그딴 것쯤은 알고 있었어.”
올리븐은 무표정하게 가라앉은 얼굴로 에단을 노려보았다.
억지로 웃는 낯을 지우자 철없는 아이 같은 올리븐의 얼굴에도 스산한 빛이 감돌았다.
“당신이 사과를 받아 주고 말고는 중요하지 않아. 스승님의 말을 내가 따랐다는 게 중요할 뿐이지.”
“그래? 그럼 훌륭하게 목적을 달성했으니 이만 나가 봐도 되겠군.”
날이 선 올리븐의 말에 에단은 희게 웃으며 그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나가는 문은 저쪽.”
나가라 했음에도 불구하고 가만히 서 있는 올리븐을 향해 에단은 친절하게 손으로 문을 가리켜 주기까지 했다.
올리븐은 부글거리는 속을 애써 가라앉히며 빈정거렸다.
“스승님께서 더러운 힘을 가진 네놈들을 가엽게 여긴다는 것에 감사하도록 해. 내 스승의 희생을 먹고 기생하는 벌레 같은 삶이잖아?”
“그래? 그것참 감사한 일이군.”
태연한 에단의 대답에 올리븐의 얼굴이 무섭게 굳었다.
그 표정을 본 에단이 소리 내어 웃으며 말했다.
“왜? 원하는 반응이 아닌가?”
“…….”
올리븐은 주먹을 꽉 쥔 채 그를 노려보았다.
그가 하는 그 어떠한 말도 저 남자를 흔들 수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마치 머리 꼭대기에서 그를 내려다보며 비웃는 것만 같았다.
“날 화나게 하려거든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게 좋을 거야.”
“비참하지는 않아? 네 불행을 앞세워서 스승님의 관심을 받는 게.”
올리븐의 말에 에단은 잠시 고개를 기울였다.
그 사실에 비참해야 하는 걸까.
그는 그의 불행을 퍽 달콤하게 여기기로 하였다.
자신 대신 눈물을 뚝뚝 흘리며 그에게 두 팔을 벌려 주던 사라의 품에서 눈을 감고 깊게 잠든 뒤로 말이다.
“전혀. 오히려 내 불행을 사라가 가엽게 여겨 줄수록 좋아. 그래야 사라를 붙잡을 수 있을 테니까.”
에단의 목소리에서는 노골적인 소유욕이 묻어 나왔다.
에단은 다시 한번 사라를 이곳으로 오게 만들기 위해선 몇 번이고 불행을 겪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 불행으로 말미암아 사라를 곁에 묶어 둘 수만 있다면 기꺼이 그럴 자신이 있었다.
“……!”
올리븐은 그제야 저 남자가 제 스승에게 가지고 있는 음습하고도 질척한 감정을 눈치챌 수 있었다.
“감히 네까짓 게 스승님을 가지려고 들어?”
“왜? 그쪽은 그걸 못해서 스승을 내게 빼앗겼나 보지?”
“빼앗기긴 누가―!”
올리븐은 손에 마력을 일으키려다가 남아 있는 모든 자제력을 끌어모아 그만두었다.
여기서 에단 암브로시아를 상대로 마법이라도 썼다간 스승이 바로 알아차리고 달려올 것이다.
그럼 올리븐은 정말 스승에게 미움을 받게 될지도 몰랐다.
그는 애써 스스로를 자제하려고 하며 크게 심호흡을 했다.
“잘 들어, 에단 암브로시아. 세상에 대가 없는 구원은 없어. 네놈의 힘이 끔찍하면 끔찍할수록 그건 더 많은 대가를 요구할 거야.”
저 남자는 암브로시아의 힘을 위해 스승이 지불하는 대가가 무엇인지 몰랐다.
올리븐은 그걸 말해 줄 생각이 없었다. 암브로시아의 힘이 내 스승을 먹어 치우기 전에 없애 버리면 그만이니까.
“그 대가를 누가 치르는지 알게 된다면 깨닫게 될 거다. 넌 자격이 없다는 걸.”
올리븐은 싸늘한 경고를 마지막으로 집무실의 문을 부술 듯이 닫고 나갔다.
에단은 가만히 앉아 올리븐이 닫고 나간 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의미심장한 올리븐의 마지막 말에 그는 미간을 좁히며 중얼거렸다.
“대가라…….”
살아가면서 예감이라는 것이 날카롭게 설 때가 있었다.
예를 들면 뻔히 예견되는 불행이 입을 쩍 벌리고 기다리고 있을 때가 그러했다.
그것이 크고 깊을수록 예감이라는 것의 형태는 더욱 선명해졌다.
그때 올리븐이 나간 문으로 제이드가 들어왔다.
“이야, 주군. 방금 나간 밀런 소백작님 제자 말입니다. 얼굴이 아주 엄청나던데요?”
“하퍼 경.”
“예.”
“신관들이 사라의 건강 상태에 대해 뭐라고 하던가.”
“놀랍도록 평소와 같다고 하시던데요?”
“평소와 같다고…….”
“예! 신관들은 기적이라면서 돌아갔지만, 저희는 알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 밀런 소백작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아주 간단하게 손가락 튕기는 것만으로 딱! 회복하셨죠.”
제이드는 놀랍다는 듯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에단은 얼굴이 미묘하게 굳어지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상해.”
“예? 무슨 말씀이십니까?”
“분명 그날 황궁에서 본 마력석은 암브로시아의 힘을 담고 있었어. 내 안에서 힘이 요동을 칠 정도로 많이.”
뒤늦게 깨어난 사라는 그 마력석이 자신이 마탑에서 연구를 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그걸 그녀의 제자들이 훔쳐서 사고를 친 것이었고.
그렇다는 것은 그날 사라는 터져 나오려는 암브로시아의 힘을 수습하다가 그렇게 됐다는 말이었다.
“그 암브로시아의 힘이 얼마나 강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수습하기 위해 사라는 피를 토할 만큼의 타격을 입었어.”
“네……. 정말 그날 잘못되는 줄 알았습니다.”
제이드 또한 에단의 품에 안겨서 마치 시체처럼 늘어져 있던 사라를 기억해 내며 두 팔을 문질렀다.
“근데 그게 처음이었을까?”
“예?”
에단은 섬뜩하게 뒷목을 타고 흐르는 예감에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암브로시아의 힘을 누르기 위해 피를 토할 만큼의 힘을 썼던 사라였다.
여태 그에게 힘을 억제해 주는 반지를 만들어 주고 그녀의 힘을 클로드에게 불어 넣어 줄 때마다 식은땀을 흘리곤 했지만 그저 마력을 많이 쓴 영향이라고 여겼었다.
사라도 그렇게 설명을 했고 말이다.
하지만, 정말 진정 그것이 다였을까?
“저 녀석이 방금 암브로시아의 힘이 대가를 요구한다고 했어. 사라와 함께 이 힘에 대해 연구했던 제자였으니 분명 무언갈 알고 있을 거다.”
“다시 불러와 조사할까요?”
“순순히 이쪽이 원하는 답은 해 주지 않을 거다. 다른 제자들은 지금 뭘 하고 있지?”
“각자 저택에서 필요한 것들을 적극적으로 찾으며 협조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남기 위한 수작이군. 귀여울 지경이야. 그쪽을 좀 더 이용해 봐.”
“네.”
제이드는 고개를 숙여 보이곤 서둘러 집무실 밖으로 나갔다.
홀로 남은 에단은 미친 듯이 지끈거리며 아파 오는 두통을 참으며 눈을 감았다.
‘네 곁에 소중한 것을 두지 말거라. 어차피 다 그 더러운 힘이 빼앗아 갈 테니.’
잊으려 했던 어머니의 음성이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뒤로 조금 전 올리븐이 했던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누가 대가를 치르는지 알게 된다면……, 이라.”
마치 사라가 암브로시아의 힘이 요구하는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소리처럼 들렸다.
암브로시아의 힘을 받아 내고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피를 토해 내던 사라, 그리고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누군가.
에단의 머릿속에서 조금씩 무언가가 맞춰져 돌아가고 있었다.
‘이 힘은 살아 있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갈망하고 먹어 치우는 힘이야. 그것이 만족할 만한 대가라는 건…….’
책상 위에 올려 두었던 그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아니어야 해.”
에단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직접 그의 눈으로 확인해 봐야 할 것이 있었다.
집무실 밖으로 나가 길고 긴 저택의 복도를 성큼성큼 걷는 동안 그의 머릿속에 사라의 얼굴과 그녀의 맑은 웃음소리가 떠올랐다가, 그를 안아 주던 따스한 체온이 떠올랐다.
“사라.”
입 안에서 굴려지는 그녀의 이름이 아릿하게 달다고 생각했는데, 이번만큼은 너무나 썼다.
만약에, 만약에 암브로시아의 힘이 조금씩 사라를 죽여 가고 있다고 하면 그는 그녀를 놓아줄 수 있을까.
“…….”
에단은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잠시 사라를 놓아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 것만으로도 숨이 막혀 왔다.
전해 본 적도 없이 자각만 한 마음이라는 것이, 피어나 보지도 못한 마음이라는 것이 그를 지독히 아프게 했다.
“어머나, 클로드 님! 저기 공작님이 오셨어요!”
저 멀리서 그를 발견한 사라가 클로드를 품에 안은 채 환히 웃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그 태양과도 같은 눈부신 여인을 보며 에단은 깨달았다.
역시 나는 어머니의 말씀처럼 저주받은 괴물 새끼에 불과하다고.
‘나는 분명 욕심을 낼 테니까. 채울 수 없는 갈증으로 목말라 할 테니까.’
나의 저주는 내 목마름을 먹고 자란다.
그래서 결국 나는 이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할 테지. 영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