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a Cat, Adopted by a Wolf Family? RAW novel - Chapter (139)
고양이인데, 늑대 가문에 입양당했다? 고양이인데, 늑대 가문에 입양당했다-139화(139/153)
<139화>
그리드울프로 돌아가기 위한 짐을 꾸리는 데에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가져갈 것들을 모두 챙긴 후, 회색 늑대들은 짐마차를 끌기 시작했다. 막사 곳곳에 흩어져 있던 마차들이 하나둘 모여 도열했다.
당분간 호그우드가 표범 영토를 맡아 통솔하기로 했기 때문에 표범 성의 자료들도 위비스가 관리하기로 한 것이다.
‘얼른 돌아가 시그마와 제리안을 처리하는 게 그리드울프의 일이라고 했지.’
짐을 모두 챙긴 키티도 막사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커다란 늑대 수인의 뒷모습이 보였다.
“이든? 언제부터 기다리고 있었어?”
“방금 왔어.”
키티는 걱정스러운 눈길로 이든의 팔을 바라보았다. 어깨부터 팔뚝까지 붕대를 감아야 했기에 그는 지금 셔츠 단추를 반쯤 풀고 있었다.
저가 붕대를 한차례 뜯어먹은 탓인지 여우 수인들이 특수 제작한 마력 붕대로 교체되어 있었다.
그 때문인지 그의 마력이 평소와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어젯밤 간호할 때만 해도 없던 반응이었다.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살피던 키티는 무언가를 발견하곤 깜짝 놀랐다.
그의 가슴팍에 고양이 손톱자국이 나 있었다. 누가 봐도 제 것이었다.
‘이런.’
이 모습을 테오나 데온이 보았다간 설전을 벌이느라 오늘 안에 출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키티는 이든의 단추를 하나 더 여며 주었다.
“이든, 환자는 따뜻해야 해.”
“그럼 가지 마. 네가 안아 주면 되잖아.”
“…….”
이놈의 늑대가!
키티는 기습을 당하는 바람에 콩닥거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켰다. 마음 같아서는 온종일 이든이 해 주는 빗질을 받고 싶었지만, 지금은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안 돼. 제리안을 해치워야 하거든. 그다음엔 그리드울프의 입양 딸이 되기로 했어.”
“뭐?”
아침부터 상처를 치료하느라 중요한 사실을 듣지 못한 이든이었다. 키티는 그에게 간밤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기쁜 얼굴을 보이지는 않더라도 축하는 해 줄 줄 알았는데, 이든의 얼굴은 어딘가 망연자실했다.
‘정식 입양이라고.’
키티에게는 아주 잘된 일이었지만 이든 자신에게는 낭패나 다름없었다.
임시 입양 때부터 키티와 관련된 일이라면 극성을 떨어 대던 그리드울프 가족들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그래서 키티가 성인이 되자마자 위비스의 저택으로 데려오려고 했는데.
‘……그리드울프의 재산과 명예를 보고 허튼수작을 부리는 놈들도 있을 테지.’
물론 그런 불순한 놈들은 테오와 데온 선에서 대부분 차단될 테지만, 어딘가 둔한 감이 있는 쌍둥이 형제를 통과하는 놈들도 있을 것이다.
그럼 이 상냥한 고양이는 흑심도 모르고 반갑게 맞아 줄 텐데.
“키티. 다른 놈이 덜컥 찾아와서 반갑다고 인사하면 뭐라고 답할 거야?”
키티는 맥락 없는 질문에 어리둥절하면서도 성실히 답했다.
“안녕하세요, 전 그리드울프의 키티아예요. 말랑손이라고 불러 주시면 기쁠…….”
“안 돼. 어떻게 하면 네가 기뻐하는지 알려 주지 마.”
이든은 단호하게 답했다.
“네가 좋아하는 늑대가 위비스에 있으니 그쪽으로 가 보라고 해.”
“이든, 이거…….”
“응. 집착이야.”
이든은 눈을 지그시 마주했다. 푸른 눈동자가 욕망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나 좋아한다며. 그럼 나만 좋아해야지.”
“…….”
“그래 줄 거지, 야옹아?”
분명 부탁을 하는 투인데 꼭 협박을 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키티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러자 이든이 푸른 눈동자가 반이나 잠기도록 사르르 눈웃음을 지었다.
순간 그녀는 가슴이 화살에 꿰뚫린 듯 움직일 수 없었다. 온 신경이 저릿저릿했다.
“약속한 거야.”
이든은 펑 튀어나온 고양이 귀를 부드럽게 어루만지다가 놓아주었다. 키티는 기름칠이 되지 않은 기계처럼 삐거덕거리며 제 자리로 향했다.
이든은 픽 웃으며 홍조가 가득 오른 키티의 얼굴을 곱씹었다. 잘 익은 복숭아 같은 뺨을 마음껏 베어 물 수 있는 날이 어서 오면 좋을 텐데.
“어이쿠, 늑대 귀 튀어나올라.”
그가 한참 즐거운 상상을 할 즈음, 클리드가 시큰둥한 얼굴을 하고 다가왔다.
키티가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그의 마나 코어는 예상보다 회복이 빨랐다. 마력과 체력이 완전히 차올라 팔팔한 모습.
이든은 푹 자고 일어나 윤이 나는 클리드의 얼굴을 쏘아보았다.
“탈진해 여우 모습으로 돌아갔던 것치곤 멀쩡하군.”
“그러는 위비스 가주님도 팔을 뜯긴 것치곤 멀쩡하네. 좀 봐도 돼?”
클리드가 이든에게 팔을 뻗었다. 그러자 이든은 인상을 찌푸리며 몸을 뒤로 뺐다.
단순히 클리드의 장난에 어울려 주지 않는다기엔 그 반응이 과민했다.
클리드는 눈가를 가느스름하게 휘며 붕대가 감긴 팔을 바라보았다.
“역시 문제가 생긴 건가.”
“…….”
“여우 수인들에게 마력이 깃든 붕대로 갈아 달라고 한 것도 문제를 숨기기 위해서, 맞지?”
이든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저 멀리 보이는 키티를 눈에 담았다. 마차에 짐을 실은 키티는 폴짝 위로 올라 테오와 데온의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드울프의 설욕을 도울 수 있어 기뻐하는 키티에게 굳이 작은 건강상의 문제를 알려 걱정을 끼치고 싶지는 않았다.
“키티가 떠난 후에 얘기해. 델타의 마력이 스며 생긴 문제이니 네가 해결해 줄 수 있겠지.”
“오, 무슨 자신감이래. 내가 도와줄 줄 알고? 네가 죽으면 아가씨는 내 차지인데.”
클리드가 한쪽 눈썹을 슥 올리며 능글스레 말했다. 하지만 이든은 그의 말에 조금도 휘둘리지 않았다.
델타에게 물린 후 몸 안에서 느껴지는 마력의 균열이 아직 미약하기 때문은 아니었다.
이든은 믿는 것이 있었다.
“내가 죽으면 야옹이가 슬퍼할 거, 알잖아. 그러니 너는 날 돕겠지.”
“허.”
정곡을 찔린 클리드는 이마에 솟아 오르는 힘줄을 꾹 눌렀다. 이든의 얼굴에는 말랑손을 독차지할 수 있는 건 자신뿐이라는 자신감이 깔려 있었다.
“와, 진짜 재수 없고 까칠하네.”
“도와준다면 추후 위비스 저택 출입이 어렵지 않을 거라고 약속해 주지. 키티의 친구로서 출입할 때의 이야기지만.”
“아가씨가 거기 들어가서 살 거라고 확신하는 것도 좀 짜증 난다.”
그렇게 평하면서도 클리드는 이든을 돕지 않겠다고 말할 수 없었다.
어떻게 그러겠는가.
키티가 그녀를 꼭 닮은 아이들을 품에 안고 ‘얘들아, 엄마의 제일 친한 친구가 왔어!’ 하는 모습을 보게 해 준다는데.
‘……나는 왜 아가씨랑 이놈이 애 낳는 거까지 상상하고 있지?’
클리드는 자신의 상상력에 무척 불쾌해졌다.
* * *
위비스의 기사들과 여우 마법사들로 구성된 조사대가 델타의 성을 탈탈 털고 있을 무렵 키티 일행은 그리드울프에 도착했다.
카리스의 손에는 디엘의 장례에 사용했던 촛농과 꽃이 든 상자가 소중히 들려 있었다.
바니엘은 키티가 원하는 대로 일이 잘 풀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셨습니까. 아가씨께서 무사해 다행이네요.”
저택을 지키고 있던 엘리엇이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카리스가 픽 웃으며 엘리엇에게 말을 흘렸다.
“키티의 안부부터 살뜰히 살피는 걸 보니 엘리엇은 정식 입양 일을 예상했나 봐.”
“……!”
엘리엇은 물론, 가주의 귀환을 환영하러 나와 있던 모든 이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중에는 갯과임을 숨기지 못하고 꼬리를 살랑거리는 고용인들도 많았다.
키티를 향하는 수백 개의 눈동자에는 모두 비슷한 질문이 담겨 있었다.
‘아가씨, 드디어 정식 입양 절차를 밟게 되신 건가요?’
‘그리드울프 저택에서 내내 함께해 주시는 건가요?’
‘뭐라고 말 좀 해 주세요, 아가씨!’
키티는 머리를 살짝 긁적이며 웃었다.
“좋게 생각해 주셔서 저도 기뻐요. 하지만 당장은 그렇게 하지 않을 생각이에요.”
“……?!”
“제리안을 해치운 다음에 정식 입양 절차를 밟으려고 해요.”
“휴.”
테오와 데온은 고용인들을 농락하는 키티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고양이란 참으로 무서운 존재였다.
엘리엇 또한 키티가 입양을 거절하는 줄 알고 철렁했다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럼 아가씨께서 제리안에게 얼른 복수할 수 있도록 도와야겠군요.”
“네. 그래서 말인데요.”
키티는 마차로 이동하는 동안 그리드울프의 일원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엘리엇에게도 해 주었다.
어떻게 해야 시그마에게 유용한 자백을 받아 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 끝에 키티가 내린 결론이었다.
“시그마는 어차피 늑대들이 자길 처형할 걸 알고 있잖아요?”
“맞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타입도 아니라 자백도 하지 않고 있고요.”
“그래서 시그마가 제일 두려워할 만한 일을 벌여 보려고요.”
“알겠습니다. 내일 중으로 자리를 마련…….”
“아니에요. 지금 당장 가는 게 좋겠어요. 쉬는 건 나중에 해도 되니까요.”
엘리엇은 집요한 눈동자를 보며 흡족한 웃음을 머금었다.
“정말이지 아가씨는.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키티는 무언가가 잔뜩 들어 있는 가방을 멘 채로 엘리엇을 따라 이동했다.
시그마가 갇힌 철장은 총 세 겹으로, 클리드가 제공한 마력 차단막까지 더해져 있어 절대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어머, 말랑손. 오랜만이네?”
시그마도 그 사실을 아는 듯 빠져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애당초 목숨을 아까워하는 그녀가 아니었으니 고문도, 밥을 굶기는 것도 버텨 냈다.
“말도 마십시오. 더 괴롭혀 달라며 웃는 모습이 어찌나 소름 끼치던지.”
엘리엇이 닭살이 돋은 팔을 문지르며 작게 말해 주었다.
키티는 철장을 사이에 두고 시그마의 앞에 섰다. 표범인 시그마의 덩치가 더 컸지만 움츠러들지도 않았다.
“안녕, 시그마. 델타의 부고는 들었는지 모르겠어.”
차분한 음성에 시그마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역시…… 그렇게 된 건가. 나의 왕께서 승하하시다니.”
하지만 시그마는 의외라고 생각하고 있을 뿐, 델타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거나 분개하지는 않았다.
격한 반응을 보이지 않으니 늑대 기사들이 진술을 받아 내지 못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원하는 게 없는 사람을 구슬리는 일은 어려울 테니까.’
그러나 키티는 시그마가 ‘이것’ 앞에서도 의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시그마.”
키티는 가방에서 두툼한 서류를 꺼냈다. 그 표지를 보자마자 시그마의 얼굴이 편안해졌다.
“어머, 내 논문이잖아? 말랑손이 내 저작물에 관심을 가져 주다니. 사본도 없으니 소중히 다뤄 줘. 세상에서 나만 발견한 진실이라고.”
이것은 델타의 성에서 발견한 기록물 중 일부로, 모두 시그마의 필체로 기록되어 있었다.
블루문이나 여신의 성유물, 선택받은 동물에 대한 연구 기록. 모두 시그마가 일평생을 바쳐 연구해 온 것들이었다.
“맞아. 네가 쓴 논문이야.”
시그마라는 한 인간이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것.
그건 바로 연구였다.
불법임을 알면서도 자행한 실험이었고, 그 결괏값을 통해 도출해 낸 진실이었다.
시그마는 세상을 지배하는 거대한 힘을 알고 싶어 한다. 호기심이 그녀가 사는 이유였고, 욕망이었다.
그래서 키티는 주머니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이건 성냥이지. 종이 보관을 잘해서 아주 잘 탈 거야.”
“……!”
순간 시그마의 얼굴이 크게 구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