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a Cat, Adopted by a Wolf Family? RAW novel - Chapter (15)
고양이인데, 늑대 가문에 입양당했다? 고양이인데, 늑대 가문에 입양당했다-15화(15/153)
<15화>
벽에 바짝 붙어 있던 늑대 기사들이 세밀한 살기를 내뿜으며 다가올 즈음, 누군가가 꺄― 하고 탄성을 내질렀다.
가장 앞에 있던 웨일라 부인, 그러니까 여자 디자이너가 날 황홀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 사랑스러운 아가씨네요. 성심껏 옷을 맞춰 드리겠습니다.”
그녀가 행복해하자 옆에 있던 그녀의 남편, 웨일라 씨도 덩달아 흡족해했다.
“내 부인이 그렇게 말한다면 나도 최선을 다해서. 영광입니다, 그리드울프 영애.”
흠, 늑대들이란.
정말 아내밖에 모르잖아. 자칼 님도 늘 무심한 얼굴로 카리스 님께 꼭 붙어 있었지.
디자이너의 뒤에 있던 의상실 직원들은 대부분 날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단순히 대장인 웨일라 부부의 의견에 따르는 것일 수도 있으니 마음을 놓을 생각은 없었다.
아직 조그마한 나는 늑대들에게 장난감처럼 보일 테니까. 물론 그리드울프 가족은 날 아껴 주지만, 다른 늑대들도 그럴 거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자, 그럼…… 레이디 키티아라고 부르면 될까요?”
“네, 조아요!”
내가 대답하자 웨일라 부인은 남편의 어깨를 팡팡 두드리며 ‘인형이 말을 해! 아니, 말씀을 하셔!’ 하고 발을 동동 굴렀다.
송곳니가 쌀알만 한 크기로 자란 고양이에게 인형이라니. 아직 고양이의 무서움을 모르시는군.
웨일리 부인은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줄자를 이리저리로 움직여 치수를 쟀다. 나는 그녀가 시키는 대로 팔을 벌렸다 내리며 그녀를 도왔다.
“치수는 다 쟀습니다. 아가씨의, 음, 아담한? 체형에 어울릴 만한 옷의 샘플을 보여 드릴게요.”
아담한 체형이라니. 분명 쪼그맣다는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을 거야.
나는 지금 인간 모습이었지만, 아무래도 또래의 늑대들보다는 체구가 작을 게 분명했다. 밥을 많이 못 먹기도 했고…….
“고마워요, 웨일라 부인.”
웨일라 부인은 또다시 남편의 어깨를 팡팡 두드리다가, 그레이 부인과 기사들의 눈치를 보곤 방정맞아 죄송하다며 사과했다.
잠시 후, 내가 마실 오렌지주스와 함께 웬 커다란 트렁크가 세 개나 도착했다.
웨일라 부부는 일사불란한 손길로 트렁크 안의 옷들을 꺼내 전시하기 시작했다. 나는 오렌지주스를 홀짝이며 그 광경을 구경했다.
“우와…… 레나, 저것들 좀 봐요. 엄청 귀여워요!”
“저건 웨일라 부부가 취미로 만든 인형 옷 세트들이라네요. 실제 보석과 비싼 옷감을 이용해 만든 다음 부유한 사람들에게 팔려다가 잘 안 됐나 봐요.”
“하지만 저 옷이 맞는 인형은 제가 들고 다닐 수 없을 거예요. 인형이 제 몸만 할 걸요?”
레나는 내가 다 마신 오렌지주스 컵을 받아 들며 인자한 웃음을 지었다.
“웨일라 부부는 저 옷을 아가씨가 입어 주셨으면 하고 있어요. 그저 그런 제안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쁜 옷을 보니 생각이 달라지네요.”
올망졸망한 장식들이나 화려한 자수만 봐도 웨일라 부부가 저 옷들을 얼마나 정성스럽게 만들었는지 알 수 있었다.
인형 크기에 맞춰 만든 옷을 입는다는 건 조금 자존심 상하지만, 이번만큼은 내가 쪼그만 게 기뻤다.
웨일라 씨가 군더더기 없는 손길로 옷 전시를 마무리할 무렵 웨일라 부인이 내 앞에 와 자세를 낮추었다.
“아가씨. 저 옷들을 다 입어 보시는 건 어떠세요?”
“저 많은 걸 다요?”
“정말 사랑스러우실 텐데…….”
웨일라 부인은 테오와 데온이 나를 보며 줄곧 짓던 황홀한 웃음을 지으며 내게 시선을 떼지 못했다.
“아가씨. 선호하시는 디자인이 있으신가요? 바지는 어떠세요? 요즘 레이디들 사이에선 승마복을 맞추는 게 유행이랍니다.”
나는 바지를 입은 내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평소엔 편하고 좋을 것 같은데 실수로 꼬리가 튀어나왔을 때를 상상하니 큰일이었다.
‘치마를 입으면 꼬리를 안에 감출 수 있지만 바지는 안 되잖아!’
바지를 입은 상태로 꼬리가 튀어나왔다간 내 엉덩이가 오리 궁둥이처럼 보일 거야.
나는 도리질을 했다.
“치마가 좋겠어요. 프릴이 많이 달려서 풍성한 거면 더 좋구요.”
그러면 꼬리를 감추기 수월할 테니까.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귀를 가리기 위한 모자도 하나 사는 게 좋겠다.
다행히 웨일라 부인은 날 어른 취급해 줬다. 원단을 여러 개 만져 보며 원하는 재질을 고르게 해 줬고, 평소에 어떤 활동을 하는지도 꼼꼼히 물어보았다.
“아가씨, 좋아하는 색깔이 있으세요?”
“저는 잘 익은 복숭아 색깔을 좋아해요.”
“아아, 어쩜…… 색도 잘 익은 복숭아 색깔을 좋아하실까.”
“……?”
“큼, 죄송합니다. 그럼 이런 느낌의 벨벳은 어떠신지…… 꺄!”
벨벳을 요리조리 보던 내가 실수로 웨일라 부인의 손을 건드리자 그녀의 집에선 황홀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가씨, 손이 정말 말랑말랑하시군요! 흰 레이스 장갑이나 빨간 털실로 짠 장갑을 끼시면 정말 귀여울 거예요.”
“칭찬 감사해요, 부인.”
“아가씨는 정말이지― 어머나.”
기도할 때처럼 양손을 꼭 맞잡던 웨일라 부인은 무언가를 발견하고 황급히 일어났다.
저 멀리서 자칼 님과 서류를 잔뜩 든 엘리엇 경이 걸어오고 있었다.
자칼 님의 우람한 양팔에는 오늘 치 공부를 해야 해서 방에서 나올 수 없다던 테오와 데온이 질질 끌려오고 있었다.
정확히는 테오와 데온이 자칼 님의 팔을 붙잡고 놔주지 않는 쪽이었다.
“아버지, 치사해요!”
“저희한테는 공부를 시켜 놓고 혼자만 키티 패션쇼를 구경하려 하시다니!”
“내 딸이잖나. 분하면 너희도 결혼해서 딸 가져.”
디자이너들의 인사를 받은 자칼 님은 누구보다 당당하게 소파에 앉았다. 테오와 데온도 한 자리씩을 차지했다.
셋이 나란히 소파에 앉아 있으니 남성용 정장을 입고 있던 마네킹들이 갑자기 초라해 보였다.
“오라버니! 그리고 자칼 님두!”
나는 손을 살랑살랑 흔들어 인사했다. 순간 나를 지켜보던 웨일라 씨가 무언가가 생각난 듯 눈을 반짝였다.
“역시 장갑을 착용해 보셔야만…….”
웨일라 부부가 의상실의 도제들에게 무언가를 지시하는 사이, 나는 액세서리 샘플들을 보게 되었다.
모두 어른용이었고 커다란 브로치나 장식이 달려 아주 비싸 보였다.
액세서리를 지키고 있는 직원은 웨일라 부부와 그리 친하지 않은지, 그들의 비상 회의에 끼는 대신 날 물끄러미 바라봤다.
3초 정도 눈을 맞추었을 때, 그녀의 눈에 예쁘지만 온기는 없는 웃음이 깃들었다.
‘이 눈빛은…….’
나는 힘은 없지만 야망은 있는 사람들이 짓는 웃음을 단번에 구분할 수 있었다. 제리안의 사악한 웃음을 어릴 때부터 여러 차례 봐 온 덕이었다.
제리안과 비슷한 눈을 하고 있는 직원은 사근사근한 목소리를 냈지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쉽게 알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아가씨? 액세서리에 관심이 있으신가요?”
“이 모자, 정말 예뻐요. 어른용이라 저는 쓸 수 없겠지만요.”
“그러지 말고 한번 써 보세요. 액세서리는 브로치 장식이 핵심이니 아가씨에게 꼭 맞는 크기로 모자를 다시 제작한 다음, 브로치를 달면 돼요.”
직원은 나를 위해 모자를 손수 구경시켜 주었다. 이리저리 돌리면서 만지는 걸 보니 독이 묻어 있거나 하지는 않은 것 같다.
예전에 제리안이 내린 신발을 신은 고양이가 발바닥에 옻이 올랐다며 괴로워했던 적이 있었지.
그 후로 발바닥의 젤리가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는 말을 듣고 안타까워했었다.
‘첫째도 젤리 건강. 둘째도 젤리 건강. 조심해야 해.’
직원은 내 머리에 모자를 씌우곤 앞이 보이도록 모자를 들어 주었다. 분홍색 챙모자는 나와 무척 잘 어울렸다.
“정말 예쁘네요!”
“어머, 감사해요. 아가씨께선 보는 눈이 있으시네요. 브로치에 달린 보석은 최상급 핑크 페리도트랍니다. 실물이죠. 덕분에 가격은 조금 나가지만……”
내게 0이 많이 붙은 가격표를 보여 준 다음, 직원은 슬쩍 레나를 바라보았다. 레나는 웨일라 부부의 작품을 테오와 데온, 자칼 님에게 소개해 주느라 바빠 보였다.
“모자가 마음에 드시면 그레이 부인께 말씀드리고 오시는 건 어떠세요? 그리드울프라면 딸을 위해 예산을 아끼시진 않을 거예요.”
“음…….”
“이만큼 커다란 핑크 페리도트가 장식된 브로치는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을 거예요.”
나는 눈을 똘망똘망 뜨고 눈으로 직원과 핑크색 보석 장식을 번갈아 보았다.
직원은 계속해서 ‘그리드울프’라는 다섯 글자를 언급하며 나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내가 쪼그매서 그런가.’
게다가 제리안이 시킨 서류 정리 때문에 숫자 계산이라면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점원은 자세를 낮추어 내게 속삭였다.
“그리드울프의 품격에 딱 맞지요.”
“으음…….”
“여기에 회색 깃털까지 달면 생쥐도 그리드울프처럼 느껴질 거예요.”
나는 거울에 비친 점원의 눈빛을 보았다. 이 사람은 내가 늑대가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을지도 몰랐다.
‘내가 고양이인 걸 알았다고 해도…… 협박해서 물건을 팔려 하다니.’
나는 나를 사랑한다면 이 정도는 기꺼이 사 줄 거라는 말에 넘어갈 정도로 어린애가 아니었다.
‘이제 인간 나이로 여섯 살이나 먹었는걸.’
완전 어른이라고 할 수 있지.
점원이 내게 물건을 더 권하기 전에 자리를 뜨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내가 발길을 돌리려고 하자 직원은 가격표의 0 하나를 손끝으로 가렸다.
“아가씨가 귀여워서 조금 싸게 해 드리는 거예요. 아까의 가격은 아무래도 사 달라고 조르기엔 부담스러우실 테니까.”
나는 빙긋 웃으며 페리도트를 이리저리 흔드는 직원과 눈을 마주했다.
나는 제리안의 곁에서 일할 때 보았던 것들을 차근차근 떠올리며 말했다.
“칭찬 감사해요. 하지만 0을 세 개는 더 빼야겠어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저는 브로치에 박힌 게 실물 페리도트가 아니라 색을 입힌 유리라는 걸 아라요.”
“……!”
일순간 직원의 미소에 균열이 일었다.
“그러니 제가 귀여워서 할인한다는 말은 틀려써요. 그리구 0 하나만 빼기엔 제 귀여움이 과로하고 있는걸요?”
좋아. 과로라는 어려운 단어를 썼으니 무서워 보였을 거야.
오라버니가 했던 말을 성공적으로 따라 한 나는 흥, 하고 고개를 돌린 다음 레나의 곁으로 총총 걸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