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a Cat, Adopted by a Wolf Family? RAW novel - Chapter (16)
고양이인데, 늑대 가문에 입양당했다? 고양이인데, 늑대 가문에 입양당했다-16화(16/153)
<16화>
깨끗한 유리에 색을 입힌 다음 보석이라고 속여 파는 건 제리안의 주요 사업 중 하나였다.
제리안은 별별 쓰레기들을 모아 돈으로 바꾸는 재주가 있었는데, 식량을 독점한다며 그를 끔찍이 싫어하는 동네 고양이들도 제리안의 돈 버는 능력만큼은 인정하곤 했다.
‘그렇게 돈을 모아서 어디다 쓰려고 했던 걸까?’
가장 기가 막힌 건 액세서리 교환 사업이었다. 그는 예쁘게 세공한 가짜 보석을 넣은 액세서리를 세공이 낡긴 했어도 진짜 보석이 들어 있는 액세서리와 교환해 주는 식으로 재산을 불렸다.
‘나쁜 고양이!’
하지만 표범들에게 쫓겨 강제로 이주하게 된 후, 한 푼이 급한 고양이라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제리안을 도와야만 했다.
제리안은 어린애도 가리지 않고 고용했는데, 몸집이 작아 난로나 굴뚝에 넣고 꼼꼼히 청소시킬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뭔가를 팔 때도 어린 고양이를 좋아했다. 동정심을 유발하기 쉽다면서.
난 물건을 팔러 다니는 쪽은 아니었고, 주로 제리안의 곁에 머물며 시키는 잡다한 일들을 하곤 했다.
가끔은 나만 한 애들이 가져온 바구니를 엎으면 그 속의 보석을 감별하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
‘왜 나한테만 그런 일을 시킨 걸까?’
무슨 일인지 나는 가짜 보석이랑 진짜 보석을 잘 구분할 수 있었다. 내가 낡았지만 진짜인 보석들을 골라낼 때마다 제리안은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며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진짜 보석을 구분해 내는 걸 보면 통찰력은 있는 것 같은데…….”
그렇게 날 부려 먹었으면서 꼬물이들을 품은 엄마가 음식을 훔쳐 먹었다는 이유로……
‘세상에서 가장 나쁜 고양이. 언젠간 세상에서 가장 나쁜 말을 배워서 제리안을 그렇게 부를 거야.’
물론 그렇게 부르려면 제리안의 코앞까지 갈 수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늑대 저택에서 튼튼해져야 했다.
나는 고개를 휘휘 저어 제리안을 떨쳐 냈다.
날 속인 직원은 그리드울프의 기사들에게 끌려가고 있었다. 딱히 불쌍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흥, 날 호구로 보다니.’
뾰로통하게 있자 레나가 다가와 내게 물었다.
“어머, 아가씨. 화 나는 일이 있으셨나요?”
“아니에요. 얼른 옷을 입어 볼까요?”
나는 장막 뒤에서 첫 번째 인형 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엘리엇 경이 자칼 님께 내 말을 전하면서 우연히 오빠들도 듣게 된 모양이었다. 마침 숙제를 제출하러 갔다가 마주쳐 그대로 따라왔다고 했다.
‘테오랑 데온은 자칼 님한테 매일 숙제를 내야 하는구나.’
나도 얼른 선생님이 구해져서 공부를 시작했으면 좋겠는데. 카리스 님께서 알아봐 주신다구 했으니 기다려야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하라는 대로 움직였더니 어느새 첫 번째 인형 옷 세트를 모두 입은 채였다.
“자, 다 되었답니다. 나가 보세요.”
나는 사뿐사뿐 걸어 장막 밖으로 나갔다. 안에는 거울이 없어 장막 밖에 놓인 전신 거울로만 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정말 예뻐요! 움직이기두 편하구……”
내가 거울 앞에 서서 이리저리 몸을 돌려 가며 옷을 확인하자 소파 쪽에서 술렁거림이 느껴졌다.
“아내가 이 모습을 못 보는 게 아쉽군.”
“크흠, 기사들이 아가씨의 귀여움을 며칠째 찬양하는 데엔 다 이유가 있었군요.”
“저렇게 사랑스러워서 어떡하지…….”
“말랑손, 여기 좀 봐 줘!”
마지막으로 말한 데온의 목소리를 듣고 시선을 돌리니 네 늑대들이 모두 얼빠진 얼굴을 했다.
웨일라 부인이 옆으로 다가와 옷에 대해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자칼 님을 의식한 행동 같았다.
“이 프릴이 가득한 원피스는 커다란 호박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랍니다.”
“다음.”
자칼 님이 까칠하게 말했는데도 웨일라 부인은 왜인지 기분 좋아했다. 다른 도제들은 자칼 님을 보며 입을 작게 벌리기도 했다.
‘자칼 님이 말을 잘랐는데도 좋아하시다니.’
늑대들의 우두머리라 눈치를 보는 걸까.
나는 다음 인형 옷 세트로 갈아입게 되었다. 이번엔 여름에 입으면 좋을 법한 하늘하늘한 흰 원피스였다.
장막 밖으로 나가니 아까보다 더한 술렁거림이 들려왔다. 테오가 행복한 얼굴로 말했다.
“키티. 그 옷 편해?”
“네! 게다가 쪼금 귀엽지 않은가요? 이러케 돌면 치마가 붕 부풀어요!”
나는 제자리에서 한 바퀴 빙글 돌았다. 겹겹이 쌓인 프릴 때문에 치마 안이 보이지 않으면서도 치맛단이 풍성하게 부풀었다.
“누가 입었는데 당연하지.”
“과로라고, 과로.”
테오와 데온이 흡족하게 웃었고, 웨일라 부부는 그보다 열 배는 기뻐 보이는 얼굴이었다.
나는 몇 벌의 옷을 더 입어 봤고 그럴 때마다 네 늑대의 반응은 비슷했다.
마지막으로 입은 건 분홍색 원피스와 앙증맞은 에나멜 구두였다. 작은 손가방도 함께였다.
복숭아색 좋아!
이번엔 더 당당한 걸음으로 장막 밖으로 나갔다.
“어머나…….”
소파 옆에 꼭 붙어 날 구경하던 레나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자칼 님과 오빠들은 날 힐끗 보더니 무언가를 진지하게 토론하기 시작했다.
손뼉을 짝짝 치며 반응해 주던 방금까지와 조금 다른 분위기라 나는 소심해졌다.
“저어…… 이번 옷은 어울리지 않나요?”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머리에 양쪽으로 장식한 커다란 리본이 함께 늘어졌다.
자칼 님은 웨일라 부인에게 손가락 다섯 개를 들어 보였고, 웨일라 부인은 기쁜 얼굴로 침을 꼴깍 삼켰다.
무슨 얘기를 하시는 걸까.
“옷은 어떤가.”
자칼 님이 물었다. 딱딱한 목소리였지만 난 거울을 꼼꼼히 보며 대답했다.
“무척 편하고 예뻐요. 가방도 구두도 모두 마음에 들구요. 이 옷으로 했으면 좋게써요.”
듣고 있던 데온이 응? 하고 되물었다.
“이 옷으로 했으면 좋겠다니?”
“이제 옷들을 많이 입어 봤으니 슬슬 살 옷을 골라야 하자나요? 저는 이 옷이 제일 마음에 든답니다.”
내가 반짝거리는 구두코를 자랑하듯 내밀자 테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 역시 저 옷과 같은 디자인인 옷을 색깔별로 다섯 세트 주문한 건 탁월한 선택이었어요.”
“네?”
“키티, 저기에 걸린 옷들을 그대로 네 옷장에 옮기기로 했어. 지금 다 입어 보기엔 힘들 테니까.”
저걸 다 산다고? 나는 깜짝 놀라 자칼 님을 바라봤다.
“자칼 님. 하지만 키티는 이 옷들을 모두 입어 보기 전에 커 버릴 텐데…….”
“그럼 다시 맞추면 되잖나.”
그건 좀 낭비 같은데요. 내가 우물쭈물하자 자칼 님이 다시 물었다.
“지금 입은 게 제일 마음에 든다고 했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자칼 님은 또 웨일라 부부를 불렀다. 나는 말랑발로 살금살금 다가가 자칼 님이 하는 말을 엿들었다.
“할 수 있나.”
자칼 님이 진지하게 묻자 웨일라 부부가 눈동자를 굴리며 답했다.
“저, 그러니까…… 새로운 가족 초상화를 그리실 때 그리드울프 분들께서 다 같이 입으실 단체복을 말씀하시는 거죠?”
“그래. 내 아내가 원하는 일이다.”
“아가씨가 가장 마음에 들어 하신 디자인을 바탕으로 다섯 벌을 제작하면 될까요?”
“그렇게 부탁하지.”
“어디 보자, 그럼 가격이 대충 이 정도인데…….”
난 까치발을 들고 웨일라 씨가 대금 청구서에 적은 숫자를 바라봤다.
‘세상에나.’
숨이 막힐 정도로 0이 많았다. 자칼 님도 곤란한 듯 시선을 옮기며 말을 더했다.
“책정한 예산과 차이가 꽤 나는군.”
웨일라 씨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었다.
“역시 그렇지요?”
“그나저나, 저기에 있는 액세서리들은 모두 진품인가.”
“네, 그렇습니다. 아까 기사님들이 데려간 아이는 외부에서 들여온 물건을 함께 파는 아이였거든요. 지금 전시되어 있는 건 모두 제가 감정을 마친 진품입니다.”
내가 보기에도 웨일라 부부의 트렁크에서 나온 액세서리들은 모두 진품이었다.
저걸 다 사려면 제리안도 오십 년은 일해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자칼 님이 아무렇지 않게 툭 내뱉었다.
“예산이 한참 남으니 저것들까지 전부 사지.”
……모자란 게 아니라 남는 거였어?
테오와 데온, 엘리엇 경은 이 엄청난 말을 듣고도 아무렇지 않은 듯했다. 오히려 예상했다는 저 얼굴들.
나는 무언가를 깨달았다.
‘그렇구나. 고양이가 부자인 거랑 늑대가 부자인 건 차원이 다른 이야기였어.’
그렇다면 그리드울프는 대충 얼마나 부자인 걸까? 웨일라 씨의 대금 청구서에 적힌 금액보다 더한 돈을 아무렇지 않게 쓸 정도라니.
자칼 님이 조금이라도 떨거나 멈칫했으면 후다닥 달려가 막을 생각이었지만 고용인들과 그리드울프 모두 태연했다.
‘나 때문에 그리드울프가 갑자기 폭삭 나앉으면 어쩌지…….’
나는 걱정을 애써 감추며 소파에 앉았다.
오래 서 있었더니 조금 피곤한걸. 옷을 여러 번 갈아입는 것도 은근히 힘든 일이었다. 짬을 내 패션쇼를 구경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테지.
“와 주셔서 감사해요, 모두들.”
내가 말하자 자칼 님은 피식 웃으며 내 머리를 쓸어 주었다. 머리의 리본 장식의 나비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게 무척 주의하시는 게 느껴졌다.
“옷은 갈아입지 않을 건가.”
“이 옷이 예뻐서 이걸 입고 있고 싶어요. 자칼 님이 허락해 주신다면 말이에요.”
“네 옷이니 네 마음대로 해.”
나는 그렇게 하겠다는 뜻으로 빙긋 웃어 보였다. 금방이라도 엘리엇 경과 집무실로 돌아갈 것 같던 자칼 님은 날 물끄러미 바라봤다.
“식사는.”
“딸기랑 쿠키를 잔뜩 먹었답니다. 자칼 님은요?”
“대충. 난 이제 집무실로 돌아가 봐야 할 것 같은데.”
분명 대화가 끝난 것 같은데 자칼 님이 여전히 날 빤히 바라봤다.
슬슬 다시 공부를 하러 돌아가려던 테오와 데온이 힌트를 주었다.
“키티. 아버지는 오늘 온종일 집무실에 계실 거야.”
“아까 슬쩍 보고 왔는데, 집무실에 말랑손이 좋아할 만한 걸 가져다 놓으셨어.”
“앗!”
난 대답을 기다리는 듯 날 보고 서 있던 자칼 님에게 물었다.
“자칼 님, 제가 집무실에 놀러 가도 될까요?”
“물론.”
자칼 님은 나를 낚아채듯 들어 올려 한 팔로 가뿐히 안았다. 나만 한 아이들을 많이 안아 봤다고 확신할 수 있을 만큼 안정적인 자세였다.
“엘리엇. 아까 언급한 블루문 가품 건에 대해서는 나중에 추가 보고를 듣지.”
“알겠습니다. 아가씨와 좋은 시간 보내십시오.”
나는 그렇게 두 번째로 자칼 님 집무실에 방문하게 되었다. 이번에야말로 레나에게 답을 듣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물어볼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