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a Cat, Adopted by a Wolf Family? RAW novel - Chapter (29)
고양이인데, 늑대 가문에 입양당했다? 고양이인데, 늑대 가문에 입양당했다-29화(29/153)
<29화>
이든이 그리드울프에 머물게 된 지 어언 한 달. 드디어 오늘이 글쓰기 특별 훈련 마지막 시간이었다.
“다 썼으면 이리 줘.”
“네에…….”
기진맥진한 나는 이든에게 노트를 넘기곤 책상 위로 풀썩 엎어져 머리를 기댔다.
“뭘 했다고 힘들어.”
“하지만 꼬리에 쥐가 날 것 가타요.”
“연필이 움직이는 대로 꼬리도 따라 움직이니까 그렇지.”
“오라버니들은 귀엽다구 해써요.”
“……시끄러워.”
이든이 내가 쓴 글을 훑어보는 동안 나는 꼬리를 빙글빙글 돌리며 풀어 주었다. 긴 글을 쓸 때면 손보다 꼬리에 더 힘이 들어가는 건 도무지 고칠 수가 없었다.
쉬엄쉬엄하자고 찡긋 눈빛을 보내도 이든은 한 달 내내 매몰찼다. 무서운 늑대 선생님 같으니라고.
하지만 매정한 늑대님과 한 달 내내 진전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먼저, 내 수업 때마다 늘 자리를 지키던 테오와 데온이 이제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든이 내게 제안했기 때문이었다.
“키티아. 너희 오라버니들이 종알거리는 게 짜증…… 아니지.”
“네?”
“고양이 티 내지 않는 법을 가르치려면 오라버니들이 없는 게 편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내가 고양이라는 걸 모르는 테오와 데온이 있다면 고양이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없긴 했다.
해서 나는 테오와 데온에게 슬쩍 말했다.
“저어, 오라버니들두 바쁘시니까 이제 제 수업을 안 보러 오셔도 돼요!”
“어?”
테오와 데온이 황금색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바라보던 게 아직 생생히 기억났다.
“키티, 그 늑대랑 단둘이 수업을 하겠다는 거야?”
“말랑손, 아홉 살이라고 해도 남자는 다 늑대라고.”
“하지만 저두 늑대인걸요?”
“아, 그렇긴 해. 그렇긴 한데…….”
“망할 이든 자식!”
하지만 오라버니들은 의견을 꺾을 수밖에 없었다. 무술 수업과 이론 수업의 강도가 높아졌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가끔 내 수업이 끝날 시간에 맞춰 놀러 오는 게 전부였다.
‘그때 이든은 왜 웃은 걸까?’
이제 오라버니들이 서재에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을 때, 이든의 날카롭던 푸른 눈이 사르르 휘어졌다.
“당연히 그래야지. 네 정체를 아는 건 나뿐이잖아?”
고개를 끄덕이자 이든의 입꼬리가 묘하게 올라갔다. 늘 냉랭하던 사람이 웃는 게 신기해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또, 나는 이든을 선생님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선생님, 어떤가요?”
“아직 읽고 있어.”
테오와 데온은 이든과 세상에 하나뿐인 관계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했지만…….
‘엘리엇 경도 사부님이라고 부르니 둘이나 있는 관계잖아?’
내가 불편하지 않은 걸 보면 이든도 딱히 내게 집착하는 것 같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쪼금씩 친해지면 언젠간 나한테도 살갑게 대해 주겠지?
‘친해지면 내가 고양이라는 비밀도 의리로 영원히 지켜 줄 거고.’
그사이 내가 쓴 글을 점검한 이든은 한쪽 눈썹을 슥 올렸다.
“나쁘지 않아.”
“꺄―!”
“이제 언어 영역은 어린애처럼 말하는 것만 고치면 되는 건가.”
“하지만 발음이 새는 건 이가 나야 고쳐질 거라구요.”
나는 아― 하고 입을 벌렸다. 그리드울프에 오고 얼마 후, 깨진 이를 완전히 뽑아 버린 덕에 새 이가 조금씩 올라오고 있었다.
“생각보다 빨리 나네.”
“이만 다 나면 저두 어른이랍니다. 그땐 말두 또박또박 할 수 이써요.”
“어른이라.”
이든은 턱을 괴고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여전히 책상에 엎드린 채 배시시 웃었다.
“너는 어른이 되면 뭘 하고 싶어?”
“그때쯤이면 그리드울프 저택을 떠났을 거예요.”
“…….”
이든의 눈매가 조금 날카로워졌다.
“성인이 되자마자?”
“네. 늑대들은 열아홉이 성인이라구 들어써요. 그동안 열심히 배워서 어머니의 원수에게 복수하려구요.”
“흐음.”
이든이 손을 뻗어 내 머리를 정리해 주었다. 친하지 않은 사이에서는 하기 어려운 행동이라 나는 이든 쪽으로 머리를 슬그머니 내밀었다.
쓰다듬어 주는 거 좋아!
“선생님은요?”
“나?”
“네. 어른이 되면 무얼 하실 건가요?”
내가 쓸데없는 질문을 하면 늘 가볍게 무시하던 이든이 모처럼 진지한 목소리로 답해 주었다.
“강해질 거야.”
“하지만 지금도 강하시자나요?”
“아부가 늘었어.”
“잘 가르쳐 주신 덕분에요.”
내가 빙긋 웃자 이든은 내 머리카락을 마구 헝클였다. 그런 다음 다시 조금씩 정리해 주었다. 간질간질한 기분이 들며 나른하게 잠이 쏟아졌다.
“하암…… 이든 님은 엄청 똑똑하시자나요? 강해지기까지 하면 정말 멋질 거예요.”
“그렇게 생각해?”
“그으럼요!”
이든은 픽 웃으며 내 머리카락에서 손을 거두었다. 씁쓸한 목소리가 뒤따라 들렸다.
“하지만 적당히 강하고 똑똑한 걸로는 안 돼. 그랬다간 두려움에 사로잡혀 목숨을 버리게 될 테니까.”
“…….”
이든의 푸른 눈동자 안에는 깊은 슬픔과 이글거리는 분노가 동시에 담겨 있었다. 위비스 부인의 똑똑한 머리를 물려받은 이든이 왜 힘을 기르겠다고 말하는지 알 것 같았다.
‘위비스 부인은 이든을 지키기 위해 돌아가셨다고 하셨지.’
내가 제리안에게 복수하기 위해 강해지려고 하는 거랑 비슷한 감정일까.
우리 둘 다 입을 열지 않았기에 서재는 한동안 조용했다. 정적을 깬 건 우당탕탕 소리를 내며 달려온 테오와 데온이었다.
“키티, 수업 끝났지?”
“우리 말랑손 지친 것 좀 봐. 꼬리가 축 늘어졌네.”
데온이 나를 번쩍 끌어안았다. 이든은 회중시계를 확인하곤 두 늑대에게 짜증을 냈다.
“아직 삼십 분이나 남았어.”
“하지만 키티가 이렇게나 늘어졌는걸.”
“이든, 나가서 바람이라도 쐬자, 응?”
오라버니들은 내가 이든이랑 서재에 단둘이 있는 게 정말 싫은가 봐.
원래대로라면 이든은 정색을 하며 둘을 내쫓았겠지만, 오늘은 내가 글쓰기를 잘 마쳤기 때문인지 특별히 응해 주었다.
* * *
세 늑대와 고양이는 그리드울프 저택 내의 동산으로 바람을 쐬러 이동했다.
연이은 수업으로 축 늘어진 키티를 위해 테오가 늑대로 변했다. 키티는 안락하고 포근한 테오의 등에 엎드려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데온과 함께 테오의 옆에서 걷던 이든이 말했다.
“키티아. 이건 수업의 연장선이니 잘 듣도록 해.”
“넵.”
“최근에 아버지께 편지를 받았어. 어리고 영악한 표범이 레오피드가의 가주 자리를 차지했다지.”
“레오피드라면 표범들의 우두머리 가문이지요?”
그동안 성실히 수업을 들은 키티가 말했다. 이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열여섯의 나이로 가주 자리에 올랐다던데.”
“와…… 엄청 강한가 봐요.”
“머리를 굴려 사람을 쓸 줄 아는 놈이라 아버지께서 걱정하셨지. 표범 세력 내의 서열 정리가 끝나는 대로 외부 활동을 시작할걸.”
키티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든과 테오, 데온이 모두 저를 걱정스런 시선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이었다.
“……혹시 저를 노릴까요?”
“아마도. 늑대 가문에서 가장 약한 아이를 인질로 잡아갈 테니.”
나잖아!
키티는 망연자실해 축 늘어졌다. 늑대 가문에 이제 좀 적응을 하니 표범들이 날뛰다니.
“표범들은 왜 자꾸 싸우려는 걸까요? 모두가 행복하게 살면 좋을 텐데…….”
“표범들은 수인들을 지배하려는 욕망이 커. 12년 전쯤에 커다란 희생을 대가로 얻은 블루문의 힘을 마음껏 사용하려는 거겠지.”
그간 이든의 수업을 열심히 들은 키티는 말의 뜻을 단번에 알아들을 수 있었다.
12년 전, 표범들의 영토에 갑자기 정체불명의 보석이 나타났다.
보석의 이름은 블루문. 여신이 지상에 남긴 물건 중 하나였다. 보석의 푸른빛을 보자 표범들은 이성을 잃고 짐승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늑대랑 곰이랑 여우들을 마구 학살했다고 했지.’
그 결과로 곰 수인들은 외부와의 교류를 끊고 고립을 택했으며, 여우 수인들은 거의 전멸했다.
‘표범들에게 당하지 않은 여우 수인들은 늑대 저택에서 신세를 지게 되었고.’
그리드울프에서는 여우 수인들에게 의식주를 제공하고, 여우 수인들은 마력에 예민한 몸을 이용해 도움을 주는 식이었다.
자칼 님과 카리스 님은 때가 되면 표범들과 다시 싸울 생각이신 것 같았다.
12년 전, 늑대 가문은 몇 년 동안 끝까지 싸워 겨우 표범들을 몰아냈지만 피해가 막심했다. 위비스 부인이 목숨을 잃은 것도 4년 전 표범과의 전투에서였고.
표범들은 모두의 원수였다.
“……제 꼬리도 4년 전에 표범에게 물린 거예요. 다행히 끄트머리만 잘려 나갔지만.”
“아…… 그랬구나.”
데온은 끝이 살짝 잘려나간 키티의 꼬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어 주었다. 이든이 내 꼬리를 잠시 바라보다 말을 이었다.
“4년 전 표범들이 보인 광기는 12년 전과 양상이 달라.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필요한 만큼만 미치는 것 같았다고 해.”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키티는 고개를 갸웃했다.
‘광기를 조절할 수 있다니.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지?’
늑대들은 표범들이 무슨 수를 써 광기를 조절하고 이용하는지를 알아내려 애쓰고 있다고 했다.
키티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던 이든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아버지는 다른 종족에 조력자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어. 자세한 건 더 조사해 봐야 알겠지.”
무거운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언덕의 가장 높은 곳이었다. 세 늑대들은 자연스레 저 멀리 있는 반대편 언덕으로 시선을 옮겼다.
표범들에게 희생당한 늑대들의 이름이 적혀 있는 위령비가 조그맣게 보였다.
“조만간 표범들이 저택을 덮칠 거야. 막아 내지 못하면 위령비를 또 세워야겠지.”
“…….”
늘 장난기가 넘치던 테오와 데온도 지금만큼은 진지한 얼굴을 했다.
두 차례의 큰 전투로 그리드울프에서는 표범들을 원수로 간주했다.
미리 적들의 정보를 캐내고 전투를 준비하는 만큼, 다시 맞붙는다면 반드시 승리해야 했다.
“아마 지금 당장 쳐들어온다고 해도 저택 내부까지 들어오진 못할 거야.”
“맞아. 어머니와 아버지가 특단의 조치를 취해 두셨거든.”
“특단의 조치?”
이든이 되물었다. 테오와 데온은 자부심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표범들이 쳐들어오지 못하도록 저택 주변 언덕에 캣닢을 잔뜩 심어 두셨어.”
“독이 있는 건 아니지만 고양잇과들은 냄새만 맡아도 해롱해롱…… 잠깐.”
세 늑대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왜인지 옆에 꼭 붙어 있어야 할 솜뭉치가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