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a Cat, Adopted by a Wolf Family? RAW novel - Chapter (32)
고양이인데, 늑대 가문에 입양당했다? 고양이인데, 늑대 가문에 입양당했다-32화(32/153)
<32화>
“그나저나.”
이든은 도끼눈을 하고 클리드를 바라보았다. 클리드가 먼저 살갑게 말을 붙였다.
“자칼 님의 명을 받고 아가씨의 임시 호위가 된 클리드입니다.”
“……자칼 님이?”
“온갖 사악한 것들로부터 아가씨를 지키라고 하시던걸요.”
“…….”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저택 안에서는 호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연무장이니 제 호위에 따라 주시죠.”
클리드는 손끝을 툭툭 움직여 이든에게 떨어지라고 신호했다. 이든은 도리어 내게 가까이 오려다 문득 미간을 찌푸렸다.
나를 쓰다듬고 있던 그의 손에는 흰 고양이 털이 덥수룩하게 붙어 있었다. 검은 조끼도 엉망이었다.
‘힝, 왜 하필 털갈이가 지금…….’
나는 속이 상해 눈물을 찔끔 흘렸다.
* * *
“레나! 큰일이에요. 털갈이가 시작되어써요.”
이든에게 양해를 구한 뒤 방에 들른 나는 발을 동동 굴렀다. 내게서 떨어진 고양이 털들이 바닥에 소복소복 쌓이기 시작했다.
레나는 인자하게 웃으며 나를 안심시켰다.
“걱정 마세요, 아가씨. 늑대들은 털이 뭉쳐 있으니 매일 저녁마다 늑대 모습으로 돌아와 빗질을 해 주면 된답니다.”
“레나, 지금 제 발밑을 한번 쓸어 보세요.”
눈이 어두운 레나는 고개를 갸웃하다 내 발밑을 손으로 슥 쓸었다. 흰 고양이 털이 한가득 집혀 나왔다.
“어머, 아가씨는 인간 모습으로도 털을 뿜어내시는군요? 보통은 인간 모습을 하면 털이 덜 빠지는데…….”
“힝…… 아기 늑대라 털이 보들보들해서 그런가 봐요. 제가 털이 쪼금 풍성하기두 하구요.”
레나는 후후 웃으며 옷장을 뒤적거렸다.
“우리 아가씨 털이 풍성하고 보드라운 거야 제가 제일 잘 알죠. 흰옷을 준비해 드릴게요.”
“머리두 조금 짱짱하게 묶어야 할 것 가타요.”
레나는 내 원피스를 흰색으로 갈아입혀 준 뒤 머리를 다시 묶어 주었다. 빗질을 한 번 할 때마다 레나의 감탄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가씨는 늑대치고 대단한 털갈이를 하시네요.”
“제, 제가 살던 곳에선 다들 이랬답니다.”
“저택의 모든 동물들이 털갈이를 할 때이니 다들 특별히 신경 쓰지 않을 거예요.”
레나는 늘 양 갈래로 묶던 내 머리를 하나로 모아 동그랗게 틀어 올려 주었다.
덕분에 묶고 나니 숱이 많아 머리에 커다란 컵케이크를 얹어 놓은 모양이 되었다.
“어머, 귀여워라. 아가씨는 이 머리도 잘 어울리네요.”
“고마워요, 레나. 머리에 뭘 썼으면 좋겠는데 적당한 게 이쓸까요?”
“어디 보자…… 예쁜 베일이 있네요.”
레나는 베일을 내 머리에 씌워 주며 이렇게 입히니 결혼식을 올리는 신부 같다며 푸스스 웃었다.
“레다, 다녀올게요!”
나는 베일의 아랫단을 모아 턱 아래에서 묶었다. 신부가 순식간에 좀도둑이 되어 버렸지만 이러는 편이 털이 덜 날릴…….
“에취!”
“이 털은 어디서 온 거야?”
저택을 지키고 있는 늠름한 개 수인들이 털을 뿜어내는 나를 보곤 입을 꾹 다물었다.
“죄송합니다아!”
나는 베일을 꼭 잡고 우다다 달려 서재에 도착했다. 뒤를 돌아보자 붉은 카펫 위에 희끄무레한 털 자국이 남아 버렸다.
이를 어쩐다. 청소하는 고용인들이 고생할 텐데. 나는 금세 우울해져 문을 열었다.
“키티, 왔어?”
“오늘은 말랑손 수업 구경할 수 있지롱.”
“…….”
안에는 이든까지 늑대가 총 셋이었다. 이든의 옷 색은 아까보다 훨씬 밝은 것으로 바뀌었고, 오라버니들은 회색 옷이었다.
‘이런, 내 털이 다 붙어 버릴 텐데.’
나는 한참을 머뭇거리다 겨우 서재에 들어섰다. 내 옷차림을 본 테오와 데온, 이든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키티…… 요정 같다.”
“신랑은 셋 중 누구로 할 거야?”
테오와 데온이 환하게 웃으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움찔 물러서며 고개를 저었다.
폴폴―
“보셔쬬? 제가 지금 털갈이를 해서 털이 많이 날린답니다.”
“에이, 털갈이가 다 그렇…… 어라.”
데온의 앞으로 가늘고 부드러운 털이 동동 날아가고 있었다.
안 돼, 돌아와!
나는 속으로 애타게 외쳤지만 팔을 뻗는 바람에 애석하게도 더 많은 털이 날리기 시작했다.
내 털은 늑대 털이랑 달라 둥실둥실 잘 날렸다.
“에…… 에취!”
고양이 털갈이는 처음 보는지 오라버니들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앞으로 일주일 동안은 털이 계속 날릴 텐데.
이 커다란 저택에 털이 폴폴 날리는 건 나뿐이라고 생각하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든 님, 오늘 수업은 쉬어두 될까요?”
“어디 가게.”
“우울해져서 잠시 산책을 다녀와야 할 것 가타요.”
“말랑손, 같이…….”
“혼자 다녀올래요, 오라버니.”
나는 시무룩한 목소리로 말하곤 베일을 여몄다. 뒤돌아 걸음을 내디디자 눈물이 똑똑 떨어졌다.
시야가 흐릿해 어디로 향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풀 냄새가 나는 탁 트인 곳으로 내달렸다.
털갈이가 이렇게 신경 쓰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늘 엄마가 곁에서 같이 폴폴 털을 날렸으니까.
적당한 동산에 주저앉은 나는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소리 없이 울었다.
‘엄마아…… 보고 싶어요.’
새삼 그리드울프 저택에 나와 같은 작은 동물이 없다는 게 실감 났다.
나는 아직 제리안에게 복수할 만큼 크지 못했다. 늑대 저택은 안락한 데다 먹을 것도 많이 주지만…… 엄마가 없었다.
아니, 엄마는 이제 어디에도 없지.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눈물이 점점 차가워져 찬바람에 뺨이 얼어붙을 것 같았다.
펑―!
나는 고양이로 변해 바람을 그대로 맞았다. 이대로 빠진 털을 모두 날려 버린 다음 저택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파스스 털이 날렸다. 나는 하늘을 보며 작게 웅얼거렸다.
“엄마, 잘 지내구 계신 거죠? 아빠랑 오빠랑 꼬물이들이랑 다 가치?”
당연히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보구 시퍼요. 아주 마니.”
이번에도.
“……털갈이만 끝나면 다시 씩씩해질게요.”
결국 마지막에는 떨리는 목소리가 나와 버렸다. 몸을 동그랗게 웅크린 나는 늑대들이 울음소리에 놀라는 일이 없도록 조용히 훌쩍거렸다.
* * *
테오와 데온, 이든은 두툼한 담요를 챙겨 곧바로 키티를 찾아 나섰다. 상심한 아기 고양이가 어디로 향했는지 알아내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키티가 움직인 경로 그대로 흰 털이 잔상처럼 남아 있었다.
복도 옆 창문에 달린 벨벳 커튼에는 키티의 키 높이만큼 털이 붙어 있었다.
“고양이 털갈이는 늑대 털갈이랑 다르네.”
테오가 말했다. 데온도 예상치 못했다는 듯 안쓰러운 얼굴을 했다.
“혼자 다르다고 느끼면 많이 속상할 거야. 말랑손은 그동안 쭉 씩씩했잖아.”
이든은 아무런 말도 보태지 않고 앞장섰다.
세 늑대는 머지않아 키티가 주저앉은 동산을 발견할 수 있었다.
‘키티는 왜 하필 민들레 동산에…….’
바람이 불자 민들레 씨앗이 일제히 노을을 향해 날아갔다. 그 가운데 자리 잡은 가장 큰 민들레는 흰 털을 마구 뿜어 댔다.
이든은 훌쩍거리는 키티를 가만히 눈에 담았다. 하늘나라에 있는 누군가를 바라보듯 고개를 높이 든 모습만으로도 키티가 누굴 필요로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내가 낄 자리는 아닌 것 같네. 너희 둘이 잘 달래 줘.”
“이든, 너도 같이 가지 그래?”
“여기로 오는 내내 앞장섰잖아.”
“됐어. 수업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되면 연락하라고 해.”
나는 가족이 아니니 별 도움이 되지 않겠지. 이든은 들고 있던 담요를 테오와 데온에게 넘겨주곤 자리를 떴다.
테오와 데온은 고개를 갸웃하다 살금살금 걸음을 옮겼다. 훌쩍이느라 인기척을 느끼지 못한 키티가 하늘을 향해 종알거렸다.
“엄마아, 엄마가 없으니까 너무 춥구 너무 쓸쓸해요.”
훌쩍. 키티의 몸이 들썩였다. 테오와 데온은 키티를 담요로 감싸며 다정한 목소리로 답해 주었다.
“우리가 있잖아, 키티.”
“……!”
“말랑손, 이리 들어와.”
갑자기 담요에 쏙 감싸진 키티는 당황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테오와 데온은 털이 수북한 잔디에 털썩 주저앉았다.
“앗, 제 털이 묻을 거예요.”
“그럼 이렇게 하지 뭐.”
둘은 늑대의 모습으로 돌아가 초승달처럼 몸을 구부려 키티를 살포시 품었다. 몸집이 작은 키티는 늑대 도넛 가운데에 그대로 갇혔다.
늑대들의 체온과 두툼한 털에 몸이 금방 훈훈해졌다. 키티는 눈물을 훔치며 울먹였다.
“와 주셔서 감사해요.”
“키티, 엄마가 많이 보고 싶어?”
“쪼금요…….”
“말랑손, 당연한 거야. 말랑손네 가족들도 널 너무 보고 싶어 할 거고.”
“그럴까요?”
“응. 털갈이 때면 널 더 생각하겠지. 이렇게 부드러운 털을 어떻게 잊겠어?”
데온이 꼬리로 키티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니까 들어가자. 오라버니들이 열심히 빗질해 줄게.”
“다들 키티를 걱정하고 있어.”
키티는 배시시 웃으며 두 늑대의 몸에 차례로 얼굴을 비볐다.
“두 분은 임시 가족인 제게두 정말 포근하구 다정하세요.”
“그야 네가 우리 여동생이니까.”
“임시라고는 해도 가족이잖아. 가족은 원래 서로를 챙기는 거야.”
키티는 따뜻한 늑대들에게 둘러싸인 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느덧 노을이 막을 내리고 짙은 남색 하늘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별을 쪼금 보다 가두 될까요? 저는 낭만을 아는 아기 늑대니까요.”
“그래, 좋아.”
“아는 별자리가 있으면 우리한테도 가르쳐 줘.”
“조아요. 저 별이랑 이 별을 세모나게 이으면 생선 자리구, 이 별이랑 저 세 개를 이으면 연어 자리구…….”
“…….”
비록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두 늑대는 키티의 별자리 설명을 경청해 주었다.
셋은 얼마 후 저택으로 돌아왔다. 테오와 데온의 지시대로 저택의 모든 고용인들이 밝은색 옷으로 갈아입은 후였다.
카펫도, 커튼도 흰색으로 바뀌어 있어 키티의 털이 날려도 크게 눈에 띄지 않았다.
“아가씨, 오셨군요!”
“날이 추워 걱정하고 있었어요.”
“헤헤, 죄송해요.”
셋은 키티의 방에 모였다. 테오가 의자에 앉아 무릎에 쿠션을 얹고 팡팡 두드렸다.
“빗질해 줄게 이리 와서 앉아, 키티.”
데온은 레나에게 미리 준비하라고 이른 작은 동물용 빗을 집어 들었다.
키티는 쪼르르 테오에게 다가가 쿠션 위에 마주 앉았다. 테오는 픽 웃으며 키티의 잘못을 지적해 주었다.
“키티. 내가 머리를 빗겨 주려면 날 보고 앉는 게 아니라 반대로 앉아야지.”
“그런 게 아니에요.”
키티는 새침하게 웃으며 테오의 뺨에 뽀뽀했다. 테오가 굳어 버린 사이 폴짝 일어나 데온의 뺨에도 짧게 입을 맞춰 주었다.
“데리러 와 주셔서 고마워요, 오라버니들.”
펑―!
키티는 고양이의 모습으로 돌아가 테오의 방석 위에 자리 잡았다.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말랑손 사이에 얼굴을 푹 파묻는 것도 잊지 않았다.
두 늑대는 기묘한 감동에 사로잡혀 있느라 늑대 귀와 꼬리를 꺼낸 채로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지만.
한참 후.
털갈이 소동을 뒤늦게 전해 듣고 키티의 방으로 달려온 자칼과 카리스는 발소리를 죽이며 방에 들어섰다.
키티와 테오, 데온이 동물의 모습으로 러그 위에 나란히 잠들어 있었는데, 둘 사이에 파묻힌 키티는 무척 포근해 보였다.
카리스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빙긋 웃었다.
셋의 머리 위에는 빗질로 얻어 낸 털 세 덩이가 동그랗게 뭉쳐져 있었다. 서로 빗질을 해 주다 잠든 모양이었다.
카리스는 그 사랑스러운 광경을 지그시 바라보다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자칼. 우리 딸이 살아 있었더라면 늘 이런 모습이었을까?”
“…….”
세 아이에게 담요를 덮어 준 자칼은 말없이 카리스의 어깨를 끌어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