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a Cat, Adopted by a Wolf Family? RAW novel - Chapter (42)
고양이인데, 늑대 가문에 입양당했다? 고양이인데, 늑대 가문에 입양당했다-42화(42/153)
<42화>
마차에서 내린 키티는 기지개를 켜곤 구입한 물건들을 소중히 챙겼다.
엘리엇과 기사들은 상가에서 잡아 온 수인들을 내려 망토를 벗겼다. 블루문의 기운은 빠졌지만 그 여파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전부 여우 수인들입니다. 아가씨의 마력 덕에 모두 이성을 되찾은 것 같고요.”
키티는 여우 수인들을 빤히 응시했다. 어째서인지 일전에 잡아들인 여우 수인들과 조금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느낌이었다.
‘기분 탓인가?’
뭐, 자세한 것은 그들이 깨어난 다음 물어 알아내면 될 것이다.
“엘리엇 경. 일단 저들을 여우 소대로 옮긴 다음 건강을 회복하도록 해 주세요. 정보를 얻어 내는 건 그다음에 해요.”
“아가씨의 명대로 하도록.”
그리드울프의 기사들이 정신을 잃고 축 늘어진 여우 수인들을 옮겼다.
블루문의 마력에 노출된 여우 수인들이 키티아를 노리고 늑대 영토에 침입한 것은 한두 번 있던 일이 아니었다.
키티는 언제나처럼 그들을 지배하고 있던 블루문의 마력을 거둬 줬을 뿐이었다.
하지만 축 늘어진 여우 수인들을 보는 것은 여전히 고통스러웠다. 볼 때마다 제 품에서 식어 가던 엄마의 몸이 생각나 가슴이 욱신거렸다.
‘얼른 이 불행의 고리가 끊어져야 할 텐데.’
키티는 한숨을 삼키며 물었다.
“엘리엇 경. 이번에도 여우 수인들을 보낸 건 표범들일까요?”
“정확한 것은 조사해 봐야 알겠지만 아마도 그럴 겁니다. 이번에도 아가씨를 납치해 오라거나, 아가씨의 머리카락을 가져오라거나 하는 명을 받았겠지요.”
지난 몇 년간 그리드울프는 키티를 노리고 접근하던 이들에게 훌륭히 대응했지만, 그중 몇몇은 운 좋게 키티의 머리카락을 훔쳐 자리를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
머리카락에는 주인의 마력 정보가 담겨 있을 테니 연구 재료로 썼을 것이 뻔했다.
표범들이 저를 연구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건 진작 알고 있었지만 상기할 때마다 찜찜한 건 어쩔 수 없었다.
‘표범 세력의 2인자라던 그 여자, 이름이 시그마라고 했지.’
두어 번쯤 직접 그리드울프의 영토에 침입한 그녀를 본 적이 있었다.
조용히 목숨을 걸고 임무를 수행해야 할 여우 수인들이 블루문의 마력에서 벗어나 그리드울프 저택에서 나오지 않으니 직접 표범들을 끌고 왔던 것이다.
“이거 어쩌지? 이번 연구 대상은 볼수록 더 탐이 나는데…….”
안경알 너머로 보이던 광기에 찬 눈동자가 아직도 선했다.
‘내 능력이 그만큼 표범들에게 중요하다는 뜻이겠지.’
늑대들은 지난 몇 년간, 고양이들의 수장 노릇을 하는 제리안과 표범 사이에 긴밀한 연관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키티의 협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가뭄에 콩 나듯 외출하는 제리안에게 모조 블루문이 박힌 화살을 쏴 그가 블루문에 면역이 있다는 사실까지 알아냈다.
‘제리안이 어떻게 블루문에 면역을 가지고 있는진 모르겠지만…… 표범들을 치면 제리안에게도 분명 타격이 있어.’
제리안. 반드시 죽여야 할 어머니의 원수.
이번에 잡혀 온 여우 수인들이 어떤 정보를 알려 줄지 벌써부터 기대되었다.
“일단은 여우 수인들이 얼른 기운을 차리길 바라야겠네요.”
“너무 팔팔해져도 문제지요.”
“……?”
엘리엇은 복잡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아가씨의 따뜻한 마음씨와 특별한 힘에 구원받은 여우 수인들이 나날이 늘어 벌써 7개 소대가 된 건 알고 계시나요?”
“앗…….”
벌써 그렇게 많이 구했던가. 키티는 엘리엇이 여우들의 생활비를 제게 청구하지 못하도록 눈을 반짝였다.
초롱초롱―
그동안 경험적으로 파악한바, 왜인지 늑대들은 이 눈빛에 무척 약했다. 엘리엇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가씨, 그런 반짝반짝한 눈으로 보면 제가 마음 편히 꿍얼거릴 수 없는데요.”
“하지만 제 피그 삼 형제 저금통은 독립 자금이라구요. 성인까지 얼마 안 남았으니 소중히 간직해야 해요.”
“돈을 청구할 생각은 없지만, 다음에 만나면 클리드 그 자식에게 한마디 해 주셨으면 합니다.”
“클리드랑 싸우셨나요?”
“그런 게 아니라…….”
키티가 고개를 갸웃하자 엘리엇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여우 수장의 마력은 같은 여우들과 함께하면 공명해 더욱 강하고 섬세해지는 특성이 있었다.
그간은 그리드울프 저택에 여우들이 많이 없어 괜찮았지만, 지금은 이야기가 달랐다.
“여우들이 바글바글해지니 클리드의 마력이 장난 아니게 커졌다고요. 안 그래도 키가 훌쩍 자라 위화감이 큰데 말입니다.”
클리드가 가끔 저를 볼 때면 엘리엇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여우 일족을 거느리는 폭스타인 가문 특유의 루비처럼 붉은 눈동자에 어느덧 권능이 자리 잡았다. 클리드는 이미 왕이 될 준비를 마친 것처럼 보였다.
‘머지않아 그리드울프 저택을 나설 테고, 그럼 성년이 넘은 클리드는 자연스레 지배자가 될 테지.’
엘리엇은 그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했다.
“하지만 클리드는 친절하잖아요?”
“그건 아가씨 같은 숙녀에게나 그러는 겁니다. 어렸을 때부터 온갖 잡일을 시킨 제게 친절할 리가요.”
“알겠어요. 다음에 클리드를 만나면 엘리엇 경에게 친절하게 굴어 달라고 말할게요.”
엘리엇은 키티의 따사로운 미소를 보며 안도했다. 놀라울 정도로 강해진 키티였지만 이렇게 웃을 때만큼은 민들레처럼 털을 폴폴 날리던 어린 시절을 연상시켰다.
“아가씨가 제 편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키티는 산뜻하게 웃으며 저택에 들어섰다. 아직 중앙 연무장에서 대회의가 끝나지 않아 자칼과 카리스는 도착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사부님, 그럼 선물을 방에 내려 두고 곧바로 연무장으로 갈게요.”
“그럼 같이 가겠습니다. 저택엔 위험 요소가 많으니까요.”
엘리엇은 키티가 사 온 털실 상자들을 켜켜이 쌓아 들곤 그녀의 방까지 옮겨 주었다.
마침 키티의 침대를 정리하던 레나가 둘을 맞았다.
“아가씨, 상가엔 잘 다녀오셨나요?”
“레나!”
키티는 레나를 꼭 껴안았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 잔주름이 더 많아진 레나는 한층 온화한 인상을 풍겼다.
“얼른 저를 대신해 아가씨를 챙겨 드릴 시녀들이 뽑혀야 할 텐데 말이에요.”
세월의 흐름에 따라 레나의 체력이 떨어져 어쩔 수 없이 내린 결정이었다. 키티는 아쉬운 기색을 감추며 레나의 품으로 깊이 파고들었다.
“하지만 머리는 늘 레나가 빗겨 주는 게 좋아요.”
“우리 아가씨는 참 다정도 하시지.”
레나는 키티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키티는 한동안 뺨을 비비적거리다 떨어졌다.
“시녀 면접은 카리스 님이 돌아오시는 대로 볼 예정이에요.”
“플로라에게 들었답니다. 제가 잘 가르칠 테니 마음에 드는 시녀를 뽑아 주세요.”
“네!”
키티는 훈련 때 걸칠 빨간 망토를 꺼내 방을 나섰다. 멋진 늑대 털 장식이 달린 이 망토는 카리스와 자칼이 매년 선물해 주는 것이었다.
그녀의 뒤를 따르던 엘리엇은 잠시 후 멈칫했다. 복도에 위험 요소가 느른히 기대 서 있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키티.”
“앗, 이든 님!”
키티는 오랜만에 마주한 이든에게 쪼르르 다가갔다. 그가 가주 계승을 위해 위비스의 저택에서 며칠을 머물다 온 터라 더욱 반가웠다.
이든은 빨간 망토를 두르고 웃는 키티의 머리를 자연스레 쓰다듬었다. 반짝거리는 키티의 눈동자는 속마음을 투명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쓰다듬어 주는 거 좋아!’
엘리엇은 단숨에 난감해졌다.
‘이럴 땐 아직 어린애 같으시니…….’
문제는 키티를 바라보는 이든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는 것이었다. 엘리엇은 팔짱을 끼고 깐깐하게 이든을 살펴보았다.
젊은 놈 어깨가 뭐 저리 넓은지, 털 장식이 달린 검은 코트가 그림처럼 근사하게 어울렸다.
아직은 저보다 조금 작았지만 내년 즈음이면 키도 훤칠해질 것이다. 연무장에서 슬쩍 보아 알고 있었다. 이든의 몸은 열일곱 때부터 이미 백 년 산 거북이의 등껍질처럼 탄탄했다.
‘게다가 저 잘난 얼굴은……. 날 보고 자라 유독 눈이 높을 아가씨께도 충분히 먹히겠어.’
짙은 흑발 아래 자리 잡은 높고 곧은 콧날과 시원하게 트인 눈이 그린 듯 아름다웠다.
푸른 눈동자에는 연이은 업무로 인한 피로감이 서려 있었지만, 그것이 되려 이든의 퇴폐미를 돋보이게 했다.
‘이런 미모를 갖추고 중앙 연무장으로 갔다간 늑대 심장 방화 전과 786범쯤 되겠군.’
그는 장래가 기대되는 미남이면서 위비스의 차기 가주 내정자였다. 게다가 목소리는 어쩌다 이렇게 잘 빠졌는지.
“키티, 상가에 다녀온 거야?”
조금 나직한 목소리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싸늘하고 냉철했지만 키티의 앞에서는 한없이 달콤해졌다.
엘리엇은 긴장을 놓지 않으려 애썼다.
키티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했던 그리드울프의 기사 몇몇이 소리 소문 없이 위비스의 기사단으로 옮겨진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도 늑대지만 이놈은 정말.’
그런 줄도 모르고 순진한 야옹이 아가씨는 빙긋빙긋 웃기만 했다.
이든은 키티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다 눈매를 가느스름하게 좁혔다.
“그런데 너한테 여우 냄새가 나네.”
엘리엇은 그 목소리에 서린 살기를 알아채고 움찔 굳었다. 저보다 서열이 높은 늑대가 분노를 드러내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키티는 아랑곳하지 않고 또박또박 설명했다.
“상가에서 광기에 사로잡혀 있던 여우 수인들을 구해 왔어요. 이따 훈련이 끝나고 보러 가려고요.”
이든의 여유롭던 표정이 미세하게 일그러졌다.
“훈련하러 가?”
“네. 며칠 쉬었으니까요.”
“이 시간이면 그놈도 연무장에 있겠네.”
“클리드를 말하는 거라면 아마도?”
“나 너한테 그놈 냄새 나는 거 싫은데.”
이든이 허리를 살짝 숙여 키티와 눈을 마주했다.
“끝나고 내 수업 들을 거잖아. 나 그거 때문에 여기 들른 거거든.”
“저 때문에 바쁜데도 와 주신 건가요?”
이든은 당연하지 않냐는 듯 반응했다. 키티는 눈동자를 굴리며 생각하다가 해맑게 대답했다.
“수업이 끝난 다음 동물 모습으로 변해서 엘리엇 경에게 팡팡 털어 달라고 할게요! 그럼 여우 냄새가 안 날 거예요.”
“…….”
원하던 대답이 나오지 않자 이든의 얼굴이 조금 굳었다. 엘리엇은 순간적으로 웃음을 참지 못했다.
“푸흡…… 아, 죄송합니다.”
이든의 온기 없는 시선이 엘리엇에게 날아들었다.
“……엘리엇 경. 날이 쌀쌀하던데 야외 수업은 무리 아닙니까?”
“하지만 저는 튼튼한걸요? 연무장 수련은 빼먹을 수 없어요.”
키티가 단호하게 엘리엇의 앞을 막아섰다. 제 본심은 짐작도 못 하는 키티의 순진한 낯에 이든은 하는 수 없다는 듯 손을 거두었다.
예전에는 고양이인 것을 들킬까 봐, 과외 시간에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을까 봐 전전긍긍하며 제 눈치를 봤었는데.
10년이 지난 지금은 그때 키티가 했던 것처럼 자신이 그녀를 의식하게 되어 버렸다.
정작 당사자는 이런 속을 전혀 몰라주며 다른 놈들 앞에서 생글거렸다. 이든은 그럴 때마다 속이 꽉 막히는 기분이었다. 세상에 의식할 건 저뿐이라는 듯 힐끔거리던 에메랄드빛 눈동자가 그리웠다.
“그럼 이따 끝날 때쯤 데리러 갈게.”
“번거롭게 그러지 말고 푹 쉬고 계세요.”
딱 잘라 답한 키티는 이든에게 말랑손을 살랑살랑 흔들어 주곤 곧바로 걸음을 옮겼다. 엘리엇은 왜인지 묘한 희열을 느꼈다.
‘이거, 두 차기 가주께서 애간장 좀 태우시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