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a Cat, Adopted by a Wolf Family? RAW novel - Chapter (52)
고양이인데, 늑대 가문에 입양당했다? 고양이인데, 늑대 가문에 입양당했다-52화(52/153)
<52화>
머리로는 조금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지난번에 이든의 품에서 눈물 콧물을 다 쏟아 가며 울었을 땐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지금 느낌은 좋아하는 음식을 먹을 때처럼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도, 열심히 뛰어논 후처럼 심장이 세게 폴짝거리는 것도 아니었다.
누가 심장에 대고 바이올린 활을 문지르기라도 한 것처럼 단순하고 짧은 진동이 혈관을 타고 퍼져 나갔다.
가슴이 저릿하던 감각은 머지않아 사라졌다.
“키티.”
“아……. 네.”
“다 했으면 이리 줘.”
이든은 짧은 시간 동안 내 안에서 어떤 진동이 일어났는지 관심도 없다는 듯 종이만 달랑 가져갔다.
방금까지 자는 모습이 온화하다고 생각하던 터라 지금 이든의 행동이 더 무심하게 느껴졌다.
똑똑똑―
때맞춰 레나와 앤이 간식을 들고 서재에 찾아왔다. 이든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피곤해서 이건 방에 가서 읽어 볼게. 수고했어.”
그 말에 나는 언제나처럼 얼굴을 살짝 들이밀었지만 이든은 왜인지 날 쓰다듬어 주지 않았다.
평소보다 빠른 발걸음이 꼭 나를 피하는 것 같았다. 2인분의 간식을 가져온 레나와 앤을 지나치는 발걸음이 무심했다.
“아가씨, 이든 도련님이…….”
레나가 물었다. 나는 자세를 고쳐 안으며 부루퉁한 얼굴을 했다.
“선생님은 피곤하시대요. 간식은 우리끼리 먹어요.”
“오랜만에 아가씨와 다과 시간을 갖는군요. 앤, 가서 문을 지키렴.”
매정하게 말한 레나는 내 찻잔에 따뜻한 우유를 듬뿍 부어 주며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쩐지 도련님의 얼굴이 귓가까지 새빨갛던걸요? 요즘 위비스와 그리드울프를 계속 오가며 무리하시더니 몸살이 나신 모양이에요.”
“아…….”
이든이 평소와 달리 잠깐 사이 잠에 빠진 건 역시 피곤하기 때문일까.
내 수업을 마무리하기 위해 짬을 내주는 게 새삼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레나, 폴에게 부탁해 이든 님께 약을 전달해 주세요. 지금은 간식부터 같이 먹고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왜인지 코앞에 있던 이든의 얼굴이 계속해서 머릿속에 맴돌았다.
나는 얼른 고개를 저어 상상을 떨쳐 낸 다음 달콤한 쿠키를 베어 물었다.
* * *
앤과 마리에게 각각 다른 정보를 흘리는 동안에도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어느덧 내 생일을 며칠 앞둔 시점이 되었다.
오전 시중을 맡은 마리가 레나의 감시하에 내 머리를 꼼꼼히 손질했다. 정말 한 가닥 한 가닥 공을 들이는 게 무척 힘들어 보였다.
‘팔 아프겠다.’
하지만 레나의 팔이 아픈 것보단 제리안이 보낸 첩자의 팔이 아픈 게 백번 낫지.
레나는 퐁실퐁실해진 내 머리카락을 흡족하게 바라보며 오늘 일정을 설명해 주었다.
“아가씨의 옷을 맞출 웨일라 부부가 막 저택에 도착했다고 해요. 도련님들이 아가씨의 패션쇼를 보지 못해 무척 아쉬워하겠어요.”
“오라버니들은 언제쯤 저택에 도착하시나요?”
“며칠 후에 도착하실 거예요. 휴가가 긴 만큼 연무장에서의 일을 확실히 처리하셔야 할 테니까요.”
하긴, 작년까지만 해도 내 생일에 일주일 정도만 머무를 수 있었는데.
수련 과정이 얼마 남지 않아서인지 둘은 내 생일에 맞춰 3주 휴가를 썼다. 추도식을 중앙 연무장에서 진행하니 그에 맞춰 돌아갈 생각인 것 같았다.
‘다 같이 눈야옹이를 만들 수 있겠어.’
화기애애할 미래를 생각하니 힘이 번쩍 났다. 머리 손질을 마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웨일라 부부가 대기하고 있는 드레스 룸으로 향했다.
늘 이맘때면 새 옷을 맞추곤 했던지라 웨일라 부부를 맞는 일도 제법 익숙해졌다.
‘올해는 또 얼마나 예쁜 옷을 보여 주실까?’
기대를 가득 담아 사뿐사뿐 걸으니 어느덧 드레스룸이었다. 엘리엇 경과 클리드가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외부인이 그리드울프에 많은 짐을 가지고 방문한 상황이니만큼 상당한 호위가 동원된 것이다.
“마리, 그럼 클리드와 함께 밖을 부탁할게.”
“……네, 아가씨.”
안쪽엔 이미 플로라가 앤을 데려왔을 테니 마리의 감시를 겸해 밖을 맡겼다. 클리드는 어딘가 아쉬워하는 기색을 내비치며 문을 열어 주었다.
엘리엇 경이 날 웨일라 부부에게 날 안내하며 픽 웃었다.
“클리드 녀석이 드레스룸 내부 호위를 맡게 해 달라고 슬쩍 부탁하던 걸 제가 내쫓았습니다.”
“조금 미안하긴 하네요. 겨울이라 복도는 아무래도 좀 춥겠죠?”
“음…… 아닙니다. 제 말은 잊어 주세요.”
엘리엇 경은 클리드도 복슬복슬한 털을 가진 여우이니 추위에 강할 것이라고 덧붙이며 더 안쪽으로 들어섰다.
화려한 원단과 보석들을 펼쳐 두던 웨일라 부부는 날 발견하고 한달음에 다가왔다.
“어머, 아가씨! 못 본 사이에 엄청나게 자라셨네요!”
“앗, 정말로요?”
늘 밝고 상냥한 웨일라 부인은 언제나 내 기분을 좋게 해 주었다.
“네. 저번에 뵈었을 때보다 훌쩍 자라셨는걸요? 이젠 어엿한 숙녀가 되셨어요. 마네킹처럼 허리도 가느다래서 어떤 옷을 권해 드려도 태가 나겠네요.”
웨일라 부인의 눈동자에 빛이 스멀스멀 차올랐다.
“저는 얼른 아가씨가 성인이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답니다. 꼭 제 의상실에 들러 주셔야 해요.”
“그럼요. 옷은 언제나 부인께 맞추잖아요?”
“성인이 되면 제가 더 다양한 옷을 보여 드릴 수 있을 거예요. 옷은 따뜻하기 위해서만 입는 게 아니니까…….”
웨일라 부인이 어쩐지 음흉한 미소를 머금었다. 엘리엇 경이 크흠, 하고 헛기침을 해 부인을 슬쩍 뒤로 물렸다.
“저기 카리스 님과 자칼 님이 오시니 슬슬 시작하죠. 웨일라 부인, 저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옷을 갈아입은 아가씨를 보고 큰 탄성을 흘리는 건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인님과 주인마님의 감상에 방해가 되니까요.”
“잘 될진 모르겠지만 노력할게요.”
그렇게 연례행사로 굳어진 내 의상 맞추기가 시작되었다.
* * *
“부츠 목이 너무 길지 않고 밑창이 말랑말랑해서 편하네요.”
“어머, 아가…….”
카리스는 전투 드레스와 부츠를 착용한 키티를 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생글거리는 키티의 모습을 보니 이런 데 쓰라고 돈이 있구나 싶었다.
키티는 올해에도 웨일라 부부가 선보인 의상들에 매우 만족하고 있었다. 치맛자락을 만져 보며 행복해하는 키티를 보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웨일라 부인, 저 부츠와 드레스는 색깔별로 구매할 수 있는 거겠지?”
“그럼요, 마님. 원하신다면 털 장식도 달 수 있답니다.”
“어머…… 들었지, 자칼? 늑대 털 장식이 추가된다면 정말 귀여울 거야.”
“…….”
카리스는 자칼의 굳은 어깨를 토닥여 주며 손을 살짝 휘저었다. 다음 옷을 입어 보라는 뜻이었다.
올해에는 테오와 데온이 없는 터라 카리스와 자칼이 더욱 꼼꼼하게 키티의 의상을 봐 주었다.
자칼은 다시 커튼 안으로 쏙 들어가는 키티를 보며 쓰게 웃었다.
“아기였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저만큼이나 자랐군.”
“그러게. 키티가 입은 옷도 많이 바뀌었지?”
아기 고양이였을 땐 펑 튀어나오는 꼬리를 감추기 위해 프릴이 잔뜩 달린 원피스나 모자를 눈여겨보던 키티였다.
하지만 지금은 열일곱 생일을 앞둔 아가씨답게 우아하고 세련된 디자인의 드레스를 주로 사게 되었다.
꼬리와 고양이 귀는 아직도 완전히 제어하지 못하니 결국 키티의 취향과 안목이 바뀌었다는 소리였다.
“자칼, 아이들은 참 빨리 크는 것 같아.”
“테오와 데온은 격한 사춘기를 겪어서 차라리 얼른 자라 버렸으면 했는데.”
부부는 열다섯이 되어 반항기의 절정을 찍었던 테오와 데온을 떠올리곤 인상을 팍 구겼다.
“아버지. 전 대륙 최고의 흑마법사가 될 거라고요! 크핫핫핫!”
“……알겠으니 멀쩡한 눈에 안대는 그만 쓰고 다니도록.”
“어머니, 음악만이 제 인생이에요. 전 선율로 사랑을 전하는 평화의 비둘기가 될 거예요.”
“데온, 늑대는 비둘기가 될 수 없단다. 그 요란한 금목걸이 좀 빼렴.”
다시 생각해도 둘의 사춘기는 참 아찔했다. 키티가 24시간 손발이 오그라드는 말만 하는 테오와 데온을 보며 사춘기를 자체 생략해 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짠, 이것 좀 보세요!”
“분홍색이 무척 잘 어울리는군.”
“아가…… 정말 예쁘구나.”
키티가 연분홍색 코트를 입고 나와 햇살처럼 웃어 주었기에 부부는 머릿속에서 사춘기의 테오와 데온을 지워 낼 수 있었다.
아무튼, 큰 감정적 동요 없이 얌전히 자라 준 키티이기에 시간이 이만큼이나 흘렀다는 사실이 더 낯설게 느껴졌다.
“……이제 정말 성년까지 얼마 안 남았네.”
카리스는 애써 웃으며 중얼거렸다. 곧 키티가 열일곱 생일을 맞게 된다. 성년이 되는 건 열아홉 생일이 아니라, 열아홉이 되는 해의 첫날을 말하는 거였다.
남은 임시 입양 기간을 셈해 본 자칼은 잠시 생각해 보다가 내뱉었다.
“열아홉 생일을 맞는 날을 기준으로 한다고 법을 바꾸지.”
“역시 그러는 게 좋겠지?”
그리드울프 영토 내의 법이라면 자칼과 카리스가 마음대로 바꿀 수 있었다.
저택의 사무관들을 불러들여 약간의 귀찮은 절차를 거쳐야 했지만 키티를 조금 더 붙잡아 둘 수 있다면 그런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키티가 탄성을 흘리며 새로운 옷을 착용하는 동안, 카리스는 자칼의 어깨에 살며시 머리를 기댔다.
“우리 키티는 너무 사랑스러워.”
어느 날 찾아와 준 아이는 품어 주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만큼 사랑스러웠다.
입양 초기에는 키티를 볼 때마다 디엘을 생각하던 카리스였지만,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키티는 키티로만 보게 되었다.
분홍색 코와 젤리 발바닥, 폴폴 날리는 털까지. 무엇 하나 사랑스럽지 않은 곳이 없는 아이였다.
“……디엘이 살아 있었더라면 키티와 좋은 친구가 되어 주었을 텐데.”
가슴이 욱신거려 목소리가 잔잔하게 떨렸다.
제 딸, 디엘이 살아 있었더라면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함께 예쁜 옷을 맞춰 주었을 것이다.
맛있는 음식들을 함께 먹고 볕이 좋은 날마다 들판으로 개울로 피크닉을 나갔겠지.
키티 덕에 가슴 한가운데 자리 잡은 깊은 구덩이에서는 많이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이 모든 것들을 누리지 못하고 가느다란 숨을 놓아 버린 딸을 생각하면 여전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 아이를 꽁꽁 언 땅에 깊이 파묻은 게 다름 아닌 자신이었기에.
“……카리스.”
자칼은 아내의 어깨를 느리게 쓰다듬어 주었다.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아직 너무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돼.”
다정한 목소리에 카리스가 미소를 머금었다.
“시간이 느리게 흘렀으면 좋겠는데. 모든 모습을 볼 수 있도록 말이야. 저 아이가 기뻐하고, 슬퍼하고, 사랑에 빠지는…….”
가만히 듣던 자칼이 단호하게 끼어들었다.
“사랑은 빼지.”
“그래, 빼자.”
그리드울프 부부가 다시 은은한 감성에 젖어 들려던 그때, 문이 열리고 외출복을 차려입은 누군가가 들어왔다. 이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