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a Cat, Adopted by a Wolf Family? RAW novel - Chapter (73)
고양이인데, 늑대 가문에 입양당했다? 고양이인데, 늑대 가문에 입양당했다-73화(73/153)
<73화>
그러고 보니 이든은 늘 클리드를 의식했었지. 은근히 클리드의 소식을 궁금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워낙 까칠한 늑대이니 관심이 없을 확률이 더 높지만.’
나는 바니엘의 조언대로 클리드가 옆방에 머물게 되었다는 사실을 작은 글씨로 덧붙였다.
잉크가 마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편지를 봉하니 기분이 묘했다. 이든이 내 편지를 보고 답장해 줄까?
나는 한동안 편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말했다.
“이걸 연무장으로 보내 줘.”
“네, 아가씨.”
잉크와 편지지를 꺼낸 김에 신년제에 방문해 즐거운 시간을 보내길 바란다는 편지도 몇 통 썼다.
곰들의 수장을 비롯한 각 종족의 수장에게 보낼 것들이었다. 내 편지를 받아 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정중한 초대장을 보내두는 편이 좋을 테니까.
물론 표범과 고양이의 수장에게 보낼 것은 없었다.
‘제리안에게는 이미 보낸 올 테면 와 보라는 내용도 과분하지. 표범들은 아예 안 왔으면 좋겠고.’
이제는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 고양이 영토의 친구들에게 초대장을 보낼 수 없다는 사실이 조금 울적했다.
주소야 어떻게든 알아낼 수 있었지만, 제리안은 내 초대장을 받은 고양이를 감시하고 압박할 게 분명했다.
작은 단도를 쥐여 주며 나를 찌르고 오라 명령할 수도 있겠지.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그런 식으로 인사를 나누는 건 사양이었다.
‘제리안에게 복수하기 전까진 고양이 영토로 돌아갈 수 없는 건가.’
새삼 드는 생각에 착잡해졌다. 제리안 때문에 잃은 게 너무 많았다. 더 늦기 전에 되찾고 싶다는 마음이 속에서 끓었다.
나는 초대장을 봉해 레나에게 부쳐 달라고 부탁하곤 발코니로 향했다. 잠시 찬바람을 쐬며 마음을 다잡을 생각이었다.
“오, 드디어 나왔네.”
하지만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사를 마친 듯한 클리드였다. 불그스름한 귀와 코를 보니 발코니에 오래 있었던 모양이다.
내 방은 다 자란 늑대의 크기에 맞춰져 있어서 생각보다 아주 넓었다. 옆 방이라고는 해도 클리드와 내 발코니 사이엔 다섯 걸음 정도의 간격이 있다는 뜻이었다.
다리에 마력을 싣는다면 모를까, 그냥 폴짝 뛰어서 넘어갈 수 있을 만한 거리는 절대 아니었다.
“클리드, 환자는 따뜻한 곳에서 쉬어야지.”
“그러길 바라면 아가씨가 일찍 나와 줬어야지.”
나는 그러다 몸 상태가 더 나빠질 거라는 잔소리를 하며 눈을 가느스름하게 떴다. 발코니 사이의 거리가 상당한 터라 그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난간에 한쪽 팔을 괸 클리드는 큰 키 때문인지 가문의 수장이 아니라 인기 많은 배우처럼 보였다. 얇디얇은 셔츠의 단추도 몇 개나 풀려 있어 절대 환자의 모습은 아니었다.
“클리드, 얼른 들어가. 몸도 안 좋은데 감기까지 걸리면 어떡해?”
“괜찮아. 발코니까지 보온 마법을 걸어 뒀거든.”
클리드는 능글맞게 웃었다. 붉은 눈동자가 나른하게 휘었다. 잔소리를 해도 들을 것 같지 않아 나는 다른 것을 물어보기로 했다.
“방은 어때?”
“포근하고 아늑해. 발코니에선 내가 저택에서 가장 좋아하는 게 가끔 보이고.”
무척 만족스럽다는 클리드의 답에 나는 활짝 웃었다.
“클리드도 새를 좋아하는구나!”
내 방의 발코니에는 가끔 새가 앉아 있곤 했다. 아기자기한 몸으로 포르르 날아가는 작은 새를 볼 때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새 좋아!
“늑대들은 저렇게 귀여운 새들을 보고도 그다지 감흥이 없는 것 같아, 그렇지?”
나는 발코니에 자주 찾아와 주는 새들에 대해 잠시 설명해 주었다. 어렸을 땐 식사 시간에 옥수수 몇 알을 몰래 챙겨 와 발코니에 놓아 두었다고 말하지 그가 픽 웃었다.
“역시 귀엽다니까.”
“맞아. 부리로 옥수수를 쪼아 먹는 건 사랑스럽지.”
내가 웃자 클리드는 말없이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춥지 않다면서 그의 귓가는 왜인지 더욱 불그스름해졌다.
“클리드, 어서 들어가. 뺨까지 새빨개졌어.”
“…….”
클리드는 얼굴을 감추면서도 고집스레 그 자리에 있었다. 잠시 후, 그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카리스 님께서 늑대 영토 내의 모든 토끼들을 조사하셨다던데. 흰 털 토끼 몇몇이 토비처럼 밤에 이상 증세를 보였다나 봐.”
“흰 털 토끼만?”
“응. 자칼 님께서 흰 털 토끼들의 수장에게 가 그들의 신원을 확인하실 거라고 들었어.”
일전에 바니엘에게 들은 정보가 떠올랐다. 흰 털 토끼들은 끝까지 영토를 지키려다 모종의 이유로 포기했다고 했지.
‘대체 토끼 영토에서 무슨 짓을 당한 걸까.’
그들이 고양이처럼 작고 약한 동물이기에 더욱 마음이 무거웠다.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좋을 텐데.
블루문과 관련된 일이라면 특히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자칼 님께 따라가도 되냐고 여쭤봐야겠어.”
“어차피 흰 털 토끼들의 수장도 늑대 영토 내에 있으니 위험하진 않겠지만…….”
클리드는 날도 추운데 저택에서 기다리는 게 낫지 않겠냐는 투로 말했다. 나는 클리드처럼 난간에 몸을 기대고 먼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내가 잃은 것들을 하루빨리 되찾고 싶어.”
내 시선이 향하는 방향에는 고양이의 영토가 있었다. 언덕과 흐린 날씨 때문에 보이진 않았지만 내가 엄마를 묻은 장소를 잊을 리 없었다.
우울한 기분이 먹구름처럼 밀려올 것 같아 나는 머리를 쓸어넘기며 웃었다.
“너도 그렇지?”
“…….”
“그러니까 나도 최선을 다할게. 제리안을 압박하는 건 표범들을 압박하는 일이기도 하니까.”
잠시간 말없이 나를 바라보던 클리드는 이내 묘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편안해하는 것 같기도, 긴장한 것 같기도 한 표정이었다.
“우리의 목표가 비슷해서 다행이야, 그렇지?”
“……그러게. 이대로 아가씨와 같이 가면 되겠는걸.”
클리드가 눈썹을 으쓱했다. 그의 얼굴엔 어느샌가 만족스러움이 가득했다.
* * *
한편, 늑대들의 중앙 연무장은 신년 맞이 체력 단련이 한창이었다.
“역시 새해엔 새로운 마음으로 하는 운동이 제맛이지. 모두들 분발하도록.”
늑대들은 포워드 사령관의 잔인무도함에 이를 갈며 연무장을 돌고 또 돌았다.
그런 다음엔 맨몸 격투기 훈련이 길게 이어졌다. 늑대들은 기진맥진한 몸을 이끌고 수련장으로 이동해 땀까지 뻘뻘 흘려야 했다.
“테오 형, 나 별이 보여.”
“우리 연어 자리가 보일 때까지만 버티자, 데온.”
“그래. 이 시간만 지나면 하루 동안은 자유 휴식이라고 했으니까…….”
테오와 데온은 어지러운 머리를 붙잡고 벽에 기댔다. 이미 탈진한 늑대들은 동물의 모습으로 돌아가 카펫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조금의 흐트러짐 없이 수련장 중앙을 지키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이든 위비스였다.
“데온, 우리가 정상이고 쟤가 정상이 아닌 거겠지?”
“지금 스물다섯 명째 상대하는 이든이 비정상이지.”
“하긴.”
“게다가 이든은 연무장을 1년 만에 마치겠다면서 하루에 수업을 열네 시간이나 듣잖아.”
“어떻게 늑대가 저렇게 독할까.”
둘은 주변의 여러 늑대들이 그러하듯 벽과 한 몸이 되어 이든을 바라보았다.
이든의 짙은 흑발과 수련복은 온통 땀으로 흥건했다. 얼굴에 가닥가닥 달라붙은 머리카락과 반들거리는 피부가 묘하게 색정적이었다.
“수고했어.”
이든이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고꾸라진 대련 상대에게 손을 내밀 때면 사방의 늑대들이 환호의 하울링을 보냈다.
이든은 몇 시간 동안 물만 조금 마셨을 뿐 수련에 몰두했다. 세상을 홀로 살아가는 듯한 고고함을 풍기며.
그가 손을 교차해 땀에 젖은 상의를 벗을 때면 늑대들의 하울링이 절정에 달했다.
테오와 데온은 의문의 패배감을 느꼈다.
“가주가 되고 나서 더 멋있어진 것 같단 말이지…….”
“됐어, 형. 쟨 키티 없잖아. 우리가 이긴 거야.”
“하긴, 그렇지.”
둘은 겨울이면 유독 긴 털을 뿜어 대던 말랑손을 생각하며 흐뭇해졌다. 멋있다는 칭찬 좀 못 들으면 어떤가. 사랑스러운 여동생이 있는데.
“그럼 오늘 훈련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누군가가 말하자 늑대들이 줄을 맞춰 빠져나갔다.
이든은 상의를 벗은 채 그 위로 코트만 대충 걸쳤다. 그의 부관인 케일이 땀에 젖은 셔츠를 공손히 받아 들고 있었다.
포워드 사령관보다 더 서열이 높은 위비스 가주는 중앙 연무장에서 이런 일도 가능했다.
게다가 이든은 딱딱한 침대와 비슷비슷한 식단 대신 연무장 내의 호화로운 저택에 머무르며 원하는 것을 먹었다.
‘가주가 좋긴 좋다니까.’
‘이든 자식, 좋겠다.’
연무장 내의 서열 1위는 이든이었고 2위가 포워드 사령관이었다. 두 도련님은 그저 포워드 사령관의 명을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둘은 식당이 아닌 연무장 내의 작은 우체국으로 향했다.
“키티가 보낸 편지가 슬슬 도착했을 거야.”
“이번에도 말랑손 도장을 찍어 줬겠지?”
키티의 귀여운 편지가 있다면 딱딱한 기숙사 침대도 포근하고 말랑말랑하게 느껴질 것이다. 둘은 콧노래를 부르며 가벼운 발걸음을 옮겼다.
예상대로 키티가 보낸 편지가 도착해 있었다. 둘은 그리드울프의 문장과 앙증맞은 말랑손이 찍힌 겉봉투를 조심히 개봉했다.
그런데, 이번엔 세 통의 편지가 들어 있었다.
[이든 선생님께.]“…….”
“…….”
테오와 데온은 잠시간 시선을 교환했다. 키티가 이든에게 편지를 쓰리라는 것은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었다.
그런데 왜 지금 먹음직스러운 음식과 포근한 모닥불 앞 안락의자가 떠오르는 것일까.
둘은 우체국에서 빠져나와 저 멀리 있는 이든을 바라보았다.
온종일 수업과 시험, 수련으로 보내느라 아무와도 교류가 없던 이든이었다. 게다가 원래 성격이 좀 까칠하기도 하고.
그간은 최후의 자존심을 지키느라 ‘이든, 너희 집에 가서 쉴래!’ 하고 말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아, 말랑손이 편지를 세 통이나 보내 줬네?”
“나머지 하나는 누구에게 보내는 건지 정말 모르겠는걸?”
형제는 미리 맞추기라도 한 듯 크게 말했다. 쌍둥이는 이럴 때 죽이 착착 맞아 편했다.
“누구 건지 모르니 태울까?”
“그러자. 벽난로가 없어 추우니까 말야.”
둘은 뻔뻔하게 대화를 이어 나갔다. 머지않아 예상대로 이든의 시선이 힐끔 날아와 꽂혔다. 그는 긴 다리로 성큼성큼 다가와 테오와 데온에게 조용히 제안했다.
“……휴일이니 내 저택으로 가서 쉴래?”
늑대란 마음이 있는 상대의 일에 이토록 약해지는 존재였다.
테오와 데온은 예상보다 훨씬 쉽게 넘어오는 이든을 보며 뻔뻔하게 연기를 이어 나갔다.
“아냐. 우린 딱딱한 침대에서 쉬는 게 더 익숙해.”
“최근에 모닥불 앞에 놓을 부드러운 러그를 들였어.”
“아냐, 우린 연어 샐러드나 먹어야지.”
“저녁엔 커다란 다랑어를 구워 줄게.”
그리드울프 형제는 씩 웃으며 이든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래. 친구 좋다는 게 뭐겠어?”
“고맙다, 이든. 넌 멋진 놈이야.”
이든은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 데온이 약 올리듯 한 가지를 더 물었다.
“아, 이든. 뜨거운 물 나오지?”
“……거품이 나오는 욕조도 있어.”
테오와 데온이 사악한 웃음을 머금으며 이든의 손 위에 편지 봉투를 얹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