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a Cat, Adopted by a Wolf Family? RAW novel - Chapter (74)
고양이인데, 늑대 가문에 입양당했다? 고양이인데, 늑대 가문에 입양당했다-74화(74/153)
<74화>
테오와 데온이 기름진 다랑어의 풍미를 즐기는 동안 이든은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그는 먼저 땀에 젖은 몸을 씻어 냈다. 엉망인 상태로 키티의 편지를 읽는 일이 내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든은 하의만 대충 입은 다음 머리를 털어 말리며 편지 봉투를 열었다.
[이든 위비스 선생님께.]첫 줄을 읽기도 전에 키티의 앙증맞은 말랑손 도장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언뜻 봐도 자칼의 집무실에 걸려 있는 임시 입양 서류에 찍힌 것보다 두 배는 컸다. 새삼 키티와 함께한 시간이 느껴져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왜인지 오른발이 아니라 왼발 도장이었지만 그마저도 사랑스러웠다. 이든은 제 손가락을 키티의 발 도장 위에 가만히 얹어 보았다. 종이가 말랑거리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안녕하세요, 이든 님. 편지로는 처음 인사드려요.]푸른 눈동자가 편지의 첫 줄로 향했다. 키티가 꾹꾹 눌러 쓴 글자들은 모두 저와 함께 차근차근 다듬어 온 것이었다.
문법과 작문 실력 또한 흠잡을 곳 없었다. 이든은 문득 키티에게 문법을 가르치던 순간을 떠올렸다.
“키티, 남자 개를 뭐라고 하지?”
“‘수개’라구 하나요?”
“틀렸어. ‘수캐’야. 남자 닭은?”
“수닭……?”
“‘수탉’이 맞는 말이라고 했잖아. 규칙을 잘 찾아봐. 남자 고양이는 뭐라고 할 것 같아?”
키티는 이제야 깨달았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말했었다.
“수…… 코양이!”
“아니. 고양이는 그냥 고양이야. 수고양이.”
“힝…….”
튀어나온 귀와 꼬리를 축 늘어트리며 문법과 스승을 향한 원망을 드러내던 모습이 아직도 선했다.
받아쓰기를 하며 끙끙대던 어린애가 이젠 어디 한 군데 틀린 곳 없는 편지를 써 보내다니. 이든은 기분이 묘해지는 것을 느끼며 편지를 읽어 나갔다.
그런데, 사랑스러운 말랑손 도장 옆에 조그만 글씨로 충격적인 사실이 쓰여 있었다.
[추신. 오늘부터 클리드가 제 옆방에 머물게 되었어요. 붙어 있는 편이 여러모로 좋을 것 같아서요. 그럼 이만.]그게 편지의 끝이었다. 이든은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편지의 말미를 몇 번이나 더 반복해 읽었다. 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이런 중요한 사실을 던져 놓고 ‘그럼 이만’이라니.
이든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헝클이며 편지를 노려보았다.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 이유는 한 줄도 나와 있지 않았다. 이든의 미간이 눈에 띄게 구겨졌다.
‘여우 새끼가 왜 네 옆방에 있는 건데.’
클리드의 두툼한 여우 꼬리에 눈을 반짝일 키티를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했다.
날이 풀리면 각자의 발코니에 나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겠지.
좀체 이성을 잃는 법이 없던 이든이었지만 클리드의 품에 쏙 안겨 있는 키티를 생각하자 속에서 무언가가 끊어지는 기분이었다.
쭉 저를 좋아했다며 귀를 쫑긋거릴 땐 언제고 다른 남자라니.
이든은 셔츠를 꿰어 입은 다음 코트를 들고 1층으로 내려갔다. 테오와 데온이 식당에서 태평하게 디저트를 즐기고 있었다.
“이든, 어디 가?”
“그리드울프 저택에.”
“……뭐?”
둘은 못 들을 소리라도 들은 것처럼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이든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이곳에서 서열이 가장 높은 이든이라고 해도 무단으로 연무장을 이탈하면 벌을 피할 수 없었다.
반쯤 돌아간 그의 눈빛을 보니 이후 외출을 위한 사전 허락을 받으러 가는 것 같지는 않았다. 말 그대로 지금 당장 연무장을 빠져나가겠다는 뜻이리라.
“미쳤어? 그렇게 하면 하루에 네 시간씩 자면서 본 시험이 다 0점 처리되잖아!”
“대체 뭐 때문에 그래?”
이든은 키티의 편지 속 추신에 대해 짧게 언급했다.
하지만 그와 달리 테오와 데온은 서신으로 접해 키티가 마나 코어 형성을 돕기 위해 그런 결정을 내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둘은 우선 알고 있던 사실들을 이든에게 차분히 설명해 주었다. 그럼에도 이든의 이글거리는 눈빛은 가라앉지 않았다.
‘……이든이 생각보다 진심인가 본데.’
‘이게 다 말랑손이 쭉 과로해 온 탓이지.’
둘은 질투에 활활 불타는 이든을 진정시키면서도 약간의 고소함을 느꼈다. 말랑손 덕분에 늘 고고하고 냉랭하던 이든이 바싹 말라 가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내심 키티가 고양이 특유의 도도함을 발휘해 클리드와 이든을 농락하길 바라는 마음도 들었다.
‘그런 다음 처가살이를 시켜야지.’
‘한…… 10년 정도?’
그 외에도 키티의 미래 신랑감을 위한 선발 절차가 다수 준비되어 있었다. 둘의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갔다.
‘이든이 아직 우리에게 멍청한 늑대라고 했던 걸 기억하려나 모르겠네.’
‘모처럼의 기회인데 저택에 보내 줄 수는 없지.’
테오와 데온은 뒤끝이 아주 긴 늑대였다.
* * *
오라버니들은 답신을 빨리 보내 주었다. 모두 편지는 잘 받아 보았고 잘 지내고 있으니 너도 건강하라는 내용이었다.
의외로 이든도 답장을 빠르게 보내 주었다.
[키티에게.]시원시원한 필체로 쓰여서일까. 이든의 편지는 그의 말투 못지않게 까칠한 느낌이었다. 내용 또한 요약이 가능할 정도로 간단했다.
[목도리를 뜰 거라면 내 것도 잊지 마.] [푹신한 꼬리에 넘어가지 말고.] [여우랑 어울리지 말고 책 읽어. 공부는 쉬면 안 돼.]이든은 자신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는 조금도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 적응은 잘 했는지, 일과는 어떤지 궁금했는데.
이든은 내 편지를 그저 편한 마음으로 읽은 모양이었다.
‘인기가 많은 늑대라 피곤해서 답장 쓸 기력이 없었을지도 모르고.’
게다가 내게 새로 알려 준 정보라곤 머무는 곳의 주소뿐이었다. 오라버니들이 사는 기숙사 주소와 달리 호수가 없었다.
‘성질 더러운 늑대한테 답장을 받은 걸로 만족해야지.’
편지 내용은 잔소리뿐이었지만 수업 때 수차례 봐 왔기 때문인지 이든의 필체를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졌다.
나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그의 편지에 답장을 썼다,
[싫어요. 이든 님이 안 계실 때 해 보고 싶었던 것들을 다 해 볼 거예요!]반은 장난이었다. 이든이라면 적당히 웃어넘기겠지.
오라버니들에게도 간단한 답장을 써 말랑손을 찍은 다음 편지를 각각 봉했다. 슬슬 나도 방을 나서야 하니 가는 길에 우체통에 넣어야지.
나는 자칼 님 향기가 솔솔 나는 늑대 털 망토를 두른 다음 부츠 끈을 조이고 방을 나섰다. 미리 준비해 둔 뇌물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로비에는 흰 토끼들의 수장에게 다녀오려는 자칼 님과 늑대 기사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우체통에 편지를 넣은 다음 슬쩍 기사들 사이에 끼어들자 자칼 님이 금방 나를 발견했다.
“키티. 배웅을 나와 준 건가?”
“으음, 아뇨. 제게도 중요한 일이니 같이 다녀오고 싶어서요.”
“안 돼. 밖은 추워.”
역시나 자칼 님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위험한 것도 아니고 추워서 안 된다니.
나는 사뿐사뿐 자칼님에게 다가가 눈망울을 빛냈다. 망토 안에 감춰 두었던 뇌물을 사용할 순간이었다.
“이거…… 자칼 님께 드리려고 뜬 꾹꾹 목도리예요.”
“그래도 안 돼.”
단호한 목소리와 달리 자칼 님은 목도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나는 뇌물을 슬쩍 뒤로 뺐다.
“데려가 주실 거죠?”
“…….”
“자칼 니임― 네?”
내가 꼬리를 살랑거리며 재촉하자 옆에 있던 엘리엇 경이 가벼운 웃음을 흘렸다.
“자칼 님, 이젠 고양이 아가씨께 협박을 당하시네요.”
“…….”
자칼 님은 내가 뇌물로 준비한 목도리를 무척 마음에 들어 하시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까치발을 들어 자칼 님의 목에 두툼한 목도리를 둘러드렸다. 예상대로 자칼 님은 조금도 피하지 않았다.
“피하지 않고 제 뇌물을 받아 주셨으니까 절 데려가 주셔야 해요.”
빙긋 웃으며 뻔뻔하게 말하자 자칼 님은 내 볼을 콕 찌르며 답했다.
“……어쩔 수 없군.”
호통을 칠 것처럼 무서운 얼굴과 달리 싱거운 결말이었다. 엘리엇 경이 나를 보며 눈썹을 으쓱했다.
“이거, 아가씨께 가주 자리를 물려드려야겠는걸요?”
“시끄럽다, 엘리엇.”
자칼 님은 목도리 끝자락을 코트 안으로 여미곤 날 마차로 안내했다. 흰 털 토끼들의 수장이 있는 곳까지는 한 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했다.
마차가 출발한 직후, 나는 무언가를 깜빡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앗, 클리드를 데려올까요? 여우 모습으로 있으라고 한 다음 가방에 넣어서 데리고 다니면 방해가 되지 않을 거예요.”
“네 옆방까지 차지했으니 마력은 충분히 찼을 거다. 나와 엘리엇이 있으니 괜찮아.”
자칼 님은 내가 목도리를 둘러 줄 때와 차원이 다른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든도 클리드 이야기를 할 때면 이런 말투가 되곤 했지.
“하긴, 어제 발코니에서 이야기할 때 몸이 많이 좋아진 것 같았어요.”
“발코니에서 대화를 나눴다고.”
자칼 님은 그대로 고개를 돌려 엘리엇 경에게 말했다.
“엘리엇, 돌아가는 대로 그놈 방에 있는 발코니 난간을 떼어 버리도록. 들어가지 못하도록 문도 잠가.”
“알겠습니다.”
……이런. 괜히 말을 잘못해 클리드가 새 구경을 하지 못하게 되어 버렸잖아.
나는 화제를 돌리기 위해 이든과 편지를 교환한 이야기를 꺼냈다. 하지만 이번에도 자칼 님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키티. 만일 이든이 네게 보내는 편지에 부적절한 표현을 사용할 경우 언제든 내게 말하도록.”
나는 고개를 살짝 갸웃하며 되물었다.
“부적절한 표현이라면…….”
자칼 님과 엘리엇 경 모두 내 질문을 들었을 텐데 아무런 답을 해 주지 않았다.
‘내가 너무 조잘거렸나?’
조용히 입을 다물고 바깥 구경이나 할까 생각할 즈음, 자칼 님이 내게 넌지시 물었다.
“키티. 만약에, 만약에 결혼을 한다면 말이다.”
자칼 님이 같은 단어를 두 번 말해 강조하는 건 정말이지 흔한 일이 아니었다. 나는 고양이 귀를 꺼내 경청하기 시작했다.
“네가 원하는 결혼식에는 누가 있지?”
“제 결혼식에는…….”
나는 눈을 굴리며 상상해 보았다. 내 손을 꼭 잡아 줄 누군가의 얼굴을 그려 보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이든은 까칠해서 손 같은 거 안 잡아 주겠지? 클리드라면 잡아 줄 텐데.’
지금 둘의 얼굴이 왜 생각나는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대답할 수 있는 부분도 있었다.
“신랑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자칼 님이랑 그리드울프 가족들에게도 꼭 청첩장을 보낼게요.”
자칼 님은 예상치 못한 충격적인 사실을 들은 것처럼 굳었다.
“……청첩장?”
“네. 잊지 않고 보낼 테니 걱정 마세요. 전 약속을 잘 지키는 고양이잖아요?”
“……그래, 청첩장이 필요하겠군.”
“꼭 하객으로 온 늑대들 입맛에도 맞는 맛있는 식사를 준비해서 초대할게요.”
늘 장난꾸러기처럼 키득거리던 엘리엇 경도 이번에는 자못 심각한 얼굴이었다. 두 늑대는 나직한 목소리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엘리엇, 내가 손을 잡고 입장할 방법은 정말 없나?”
“그야…… 그때가 되면 아가씨의 아버지가 아니시니까요. 신랑에게 홀라당 빼앗기시겠죠.”
“…….”
먼 산을 눈에 담는 자칼 님의 옆얼굴이 조금 슬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