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a Cat, Adopted by a Wolf Family? RAW novel - Chapter (75)
고양이인데, 늑대 가문에 입양당했다? 고양이인데, 늑대 가문에 입양당했다-75화(75/153)
<75화>
‘그나저나 결혼이라.’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 없는 주제였다. 내게 최우선의 목표는 늘 엄마와 꼬물이들, 아빠와 오빠의 복수를 하는 것이었다.
제리안을 처리한 다음에도 뜨개질 사업을 시작한다든가, 안락한 영토에 정착한다든가 하는 생각뿐이었다.
‘엄만 늘 아빠랑 결혼해서 행복하다고 하셨지. 아빠도 엄마를 힘껏 사랑해 주셨어.’
아빠가 엄마에게 보낸 편지엔 늘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보고 싶어요!’ 하는 왼쪽 발바닥 도장이 찍혀 있었다.
자칼 님과 카리스 님도 서로와 결혼해 무척 행복한 것 같았다. 화목한 가정을 둘이나 거쳤으니 자연스레 나도 결혼을 해 가족들과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독립하면 꼭 오순도순한 가정을 꾸려야지.
슬픈 날에는 조용히 껴안아 주고 기쁜 날에는 폴짝거리며 맛있는 연어 요리를 나눠 먹을 가족이 내게는 필요했다.
‘가구는 뭘 놓게 될까?’
처음으로 내가 꾸린 가족들과 함께할 일상을 세세하게 그려 보기 시작했다. 아직 제리안을 처리하지 못했지만 즐거운 상상이었다.
“화목한 가정만큼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건 없을 거예요.”
내가 말하자 자칼 님이 부드럽게 머리를 쓸어 주었다.
“네게 행복을 줄 수 있어 다행…….”
“아이는 셋쯤 낳으면 좋을 것 같아요! 넷도 괜찮고요.”
“뭐?”
자칼 님과 엘리엇 경이 무슨 뜻인지 설명하라는 눈빛을 보냈다. 미래 설계를 해 보고 있었다 말하니 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가씨, 당연히 그리드울프 저택이 화목하다는 이야기를 하시는 줄 알았는데요.”
“물론 그리드울프 저택은 화목하고 안락해요.”
자칼 님은 ‘아이를 셋이나?’ 하고 중얼거리다가 내게 충고했다.
“키티, 넌 너무 먼 미래까지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현재의 일과 행복에 우선 집중하는 게 좋을 것 같군.”
그렇게 말하는 자칼 님의 목소리는 어딘가 풀이 죽은 것 같았다.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며 짧게 부탁했다.
“첫째 아가가 태어나면 자칼 님께서 이름을 지어 주셨으면 좋겠어요.”
“……!”
자칼 님의 눈동자에 이채가 서렸다. 옆에 있던 엘리엇 경도 눈을 반짝이며 재빨리 말을 더했다.
“아가씨, 그럼 둘째 아이의 이름은 사부인 제가…….”
“엘리엇.”
자칼 님이 근엄한 목소리로 엘리엇 경의 말허리를 잘랐다.
“아이들의 이름은 원래 첫째 아이의 이름에 맞춰 정하는 법이지.”
“…….”
아무래도 자칼 님은 내가 낳을 아이들의 이름을 모두 짓고 싶으신가 보다.
나는 조금 아쉬워하는 엘리엇 경에게 위로를 건넸다.
“저희 아가들한테도 꼭 사부님을 사부님이라고 부르도록 가르칠게요.”
“그것참…… 귀엽겠네요.”
엘리엇 경은 언제 우울했냐는 듯 빙긋 웃었다.
* * *
흰 털 토끼들이 머무는 장소까지는 금방이었다. 우리는 ‘그랜파’라고 불리는 흰 털 토끼들의 수장에게 가 대화를 나눌 예정이었다.
비록 토끼풀은 매서운 겨울바람에 갈색으로 말라붙었고, 사방엔 채 치우지 못한 눈이 쌓여 있었지만 그랜파가 머무는 전원주택은 아늑해 보였다.
김이 뽀얗게 서린 창문에 옹기종기 모여 대화를 나누는 토끼 수인들의 모습이 비쳐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랜파와 여러 토끼들이 함께 사는 저택이라고 했지.’
엘리엇 경이 출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느긋하게 저택의 외관을 감상했다.
일족의 수장이 머무는 저택이라고 해서 경비가 삼엄하고 체계적일 줄 알았는데, 실제로 보니 대가족의 가정집 같은 모습이었다.
“들어가시죠.”
엘리엇 경이 자칼 님과 나를 안쪽으로 안내했다. 정말 많은 가족들이 함께 살고 있는 것인지 사방에 동물의 모습으로 자고 있는 토끼들이 널려 있었다.
‘꺄―!’
나는 보드랗고 동그란 아기 토끼들을 말랑손으로 톡톡 건드려 보고 싶은 충동을 겨우 억누르며 걸음을 옮겼다.
모닥불 앞, 가장 커다란 안락의자에 앉은 할아버지 토끼가 보였다. 짙고 동그란 눈썹과 풍성한 머리카락이 모두 허옇게 세어 푸근한 신선 같은 모습이었다.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는 무례한 태도에 엘리엇 경이 한마디 하려던 순간, 자칼 님이 손을 들어 막았다.
“손주들인가?”
“예. 죄송합니다, 자칼 님.”
안락의자에 앉은 그랜파의 무릎 위에는 대여섯 마리의 아기 토끼들이 몸을 동그랗게 말고 낮잠을 자고 있었다.
어른 토끼 수인들이 깜짝 놀라 자고 있던 아기 토끼들을 그랜파에게서 떼어 냈다.
“죄송합니다, 자칼 님.”
“괜찮다고 했잖나.”
……이렇게 지엄한 목소리와 표정으로 괜찮다고 말해도 듣는 입장에서는 움찔할 텐데.
내 털 망토를 만들어 주신 게 불과 한 달 전의 일인지라 아직도 자칼 님의 머리카락은 깡패처럼 짧았다.
‘한 달 후에야 예전 길이로 자라겠지.’
게다가 갑자기 잠에서 깨어난 아기 토끼들이 칭얼대기 시작해 좀처럼 이야기를 나눌 수 없는 분위기였다.
“죄송합니다, 자칼 님!”
“…….”
자칼 님은 등장 십 분 만에 죄송하다는 말을 세 번이나 들어 몹시 머쓱해진 것 같았다. 겉으론 드러나지 않았지만 내가 느끼기엔 그랬다.
‘우선 아기 토끼들을 진정시켜야 할 텐데…….’
토끼들에게 조용히 해 달라고 엄숙하게 말했다간 분위기가 굳어질 우려가 있었다. 잠깐의 고민 끝에 나는 자칼 님께 소곤거렸다.
“네, 네? 토끼들도 좋아할 거예요. 저도 어렸을 때 엄―청 좋아했으니까요.”
“…….”
펑―!
자칼 님은 별다른 대답 대신 커다란 늑대의 모습으로 변했다. 울던 토끼들이 ‘헙!’하고 숨을 삼키며 굳어 버렸다.
나는 말랑손을 살랑살랑 흔들며 말했다.
“늑대 미끄럼 탈 사람?”
“……!”
아기 토끼들이 구름처럼 몰려와 자칼 님의 보드라운 늑대 털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어른 토끼 수인들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얘들아, 그러면 안 돼…….”
“괜찮아요. 자칼 님은 아이들을 좋아하세요.”
내 말을 증명하듯, 자칼 님은 꼬리를 이용해 겁 없이 제 몸쪽으로 달려드는 아기 토끼들을 몸 중턱까지 끌어올려 주었다.
“꺄―!”
“우히히!”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아기 토끼들이 점점 더 몰려들었다.
역시 늑대 미끄럼은 최고야.
나도 아이들을 도와주는 척 몇 번 주르륵 미끄러졌다. 자칼 님은 내가 아무리 자라도 미끄러질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늑대였으니까.
꼬리의 움직임을 보니 자칼 님도 아기 토끼들의 웃음에 상당히 만족하고 계신 모양이었다.
역시 겉보기와 달리 상냥하셔.
그랜파는 토끼 귀가 튀어나온 줄도 모르고 환호성을 내지르는 아이들을 보며 허허 웃었다.
“죄송합니다, 자칼 님.”
“괜찮으니 본론으로 들어가지.”
자칼 님이 커다란 눈동자를 굴리자 엘리엇 경이 들고 있던 서류철을 그랜파에게 내밀었다.
안에는 흰 털을 가진 토끼 수인 몇몇의 신상 정보가 담겨 있었다.
클리드가 몸을 회복하는 동안, 여우 소대원들은 그리드울프의 기사들과 함께 토끼들을 전부 조사했다.
파일 안에 담긴 흰 털 토끼들은 토비처럼 제 몸에 제리안의 마력이 깃든 줄도 모르고 밤이 되면 돌변하는 이들이었다.
“열 명 모두 흰 토끼입니다. 그랜파, 당신은 흰 털 토끼들 모두와 교류했을 테니 이들에 대한 정보를 알려 주십시오.”
엘리엇 경이 말했다. 그랜파는 애처로이 초상화를 하나하나 살피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 아이들이 모두 살아 있는 겁니까? 분명 흔적도 없이 납치되었는데 대체 어디에…….”
“다른 이들의 눈을 피해 늑대 영토 내에 흩어져 있더군.”
“어떻게 이런 일이…….”
음성은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위태로웠다. 진심에서 우러나온 걱정은 많은 사실을 알게 해 주었다.
그랜파는 서류철 안의 흰 토끼 수인들을 모두 알고 있으며, 그들을 몹시 그리워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중앙 연무장에서 ‘디엘 그리드울프’라는 이름이 적힌 작은 비석을 보며 오열하던 카리스 님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미끄럼을 즐기던 아기 토끼들이 제 풀에 지쳐 하나둘 잠에 빠져들 무렵.
그랜파는 주름이 자글자글해 꼭 식물의 뿌리처럼 느껴지는 손으로 초상화를 쓰다듬으며 운을 띄웠다.
“갈색 털을 지닌 토끼 수인들이 토끼 영토를 떠났을 때도 저희는 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었지요. 이 아이들이 사라지기 전까진…….”
“서류철에 기록된 토끼들은 모두 사라졌었던 건가요?”
“그렇습니다. 아무리 수풀을 뒤져도 이 아이들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다른 영토로 끌려간 것처럼 말이지요.”
엘리엇 경은 밤이 되면 제리안을 위해 움직이는 토비의 상태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랜파는 탄식하며 토끼들의 사정을 말해 주었다.
이야기를 가만히 들으니 어떻게 된 일인지 머릿속에 정리되었다.
영토를 지키던 흰 털 토끼들 중 몇 명이 실종되었고, 토끼들은 그들을 찾지 못한 채 두려움에 떨다 결국 이주를 택한 거겠지.
‘제리안이 토끼들을 납치했을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토비를 비롯한 흰 털 토끼들이 제리안에게 충성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도 살아 있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그랜파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안락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자칼 님과 나, 엘리엇 경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아무리 토끼와 늑대의 힘 차이가 크다고 해도 한 종족을 거느리는 수장으로서 자존심이 있을 텐데.
“면목이 없지만…… 부디 이 토끼들을 구해 주십시오.”
그랜파는 사랑하는 가족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자존심을 내려놓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 토끼였다.
토끼는 고양이에게도 당할 정도로 힘이 없는 동물이니 이게 최선의 방법인지도 몰랐다.
강한 자에게 부탁하는 순간, 약한 자의 내면은 부서진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자신의 힘으로 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절망감이라면 나도 잘 알고 있었다.
엄마를 땅에 묻고 무력한 스스로를 원망하던 순간이 떠올라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나는 공손히 모인 그랜파의 손 위로 내 손을 얹었다.
말랑―
“그랜파, 제리안은 꼭 벌을 받을 거예요.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가족들을 찢어 놓았으니까요.”
“아가씨…….”
어느새 사람 모습으로 돌아온 자칼 님이 내 머리를 쓸어 주며 말을 이었다.
“그리드울프 저택에 구금 중인 토끼들은 조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돌려보내 주지. 토끼들의 영토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조사도 당장 오늘부터 시작할 거다.”
우두머리인 자칼 님의 대답에 그랜파가 안도했다. 늘어진 눈꺼풀 아래로 보이는 작은 눈동자에 눈물이 고였다.
“감사합니다, 자칼 님. 아가씨…….”
그랜파는 한참이나 우리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아기 토끼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줄도 모르고 평화로이 낮잠을 즐겼다.
* * *
그리고 며칠 후. 현장 조사를 마친 엘리엇 경이 여우 소대를 이끌고 토끼 영토에서 돌아왔다.
“아가씨께서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정말요?”
나는 제리안의 약점을 잡았다는 생각에 눈을 반짝였다.
“네. 토끼들을 납치한 것은 전적으로 제리안의 소행이었습니다. 여우 소대원들의 말에 따르면 납치한 토끼들에게 블루문을 사용해 정신을 지배하는 실험을 한 것 같더군요.”
증거는 또 있었다. 표범들에게 붙잡혀 있던 여우 수인들은 토끼의 일을 들어 본 적도 없다고 답했단다. 반면 앤과 마리는 토끼 이야기가 나오자 제리안의 토끼 납치에 대해 술술 자백했다고 한다.
나를 납치하기 위해 너무 많은 인력을 사용한 표범들과 제리안의 실책이었다.
“그렇다면…….”
제리안은 이미 내가 교란을 위해 흘린 가짜 정보들 때문에 곤란한 상황일 것이다. 안 그래도 블루문 때문에 표범들과 사이가 틀어진 지금이 제리안과 표범들을 완전히 갈라놓을 기회였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요.”
나는 곧장 자칼 님과 카리스 님께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