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a Cat, Adopted by a Wolf Family? RAW novel - Chapter (77)
고양이인데, 늑대 가문에 입양당했다? 고양이인데, 늑대 가문에 입양당했다-77화(77/153)
<77화>
“카트리나 님. 수인들의 시선이 따가우니 곧장 그리드울프 저택으로 향하시지요.”
행렬의 선두에 선 곰 수인이 정중히 고했다. 곰 수인을 대표하는 자격으로 온 여인, 카트리나는 가만히 답했다.
“그래. 볕이 더 강해지기 전에 어서 말을 몰자꾸나.”
눈보라가 몰아치는 날씨에 익숙한 곰 수인들에게는 늑대 영토의 겨울이 따스한 봄날처럼 느껴졌다.
카트리나는 걸치고 있던 로브를 벗었다. 연이은 폐쇄 정책 끝에 모습을 드러낸 곰 수인을 구경하러 나온 수인들은 자못 놀란 얼굴을 했다.
모습을 드러낸 곰 수인의 대표는 예상했던 것과 달리 어리고 여려 보였다. 그제야 늑대들은 이십 대 초반이라는 그녀의 나이를 상기했다.
“저분이 곰 수인들의 대표라고?”
“곰들을 지배하는 가문의 외동딸이시라던데.”
“성함이 ‘카트리나 폴리’였지, 아마?”
푸른빛이 돌아 하늘색처럼 보이는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길게 땋아 내린 모습에서 우아함이 드러났다.
그녀가 탄 마차에는 빙산과 오로라, 눈꽃과 여신의 거울을 조합해 만든 폴리 가문의 문장이 수놓여 있었다.
카트리나는 지그시 눈을 감고 들려오는 말소리에 집중했다. 수인들은 저마다 극지방의 곰 영애가 그리드울프 영토에 온 이유를 추측하고 있었다.
“잿빛 썰매 상단의 개 수인들이 말하기론 영애께서 부모님을 설득하셨다고 하던데.”
“자리를 물려받으시면 폐쇄 정책을 그만두실 작정이신가?”
“키티아 아가씨께서 활을 움직이셨다는 사실을 듣고 확인차 오신 거라던데.”
“뭐, 어쨌든 표범이 아니라 우리 늑대들에게 와 주신 게 감사할 따름이야.”
모두 틀린 말은 아니었다.
카트리나는 그간 쭉 폐쇄 정책을 유지해 온 아버지와 어머니를 설득해 곰 영토를 빠져나왔다.
극지방에 덩그러니 있는 북극곰의 영지가 지루하다고 생각하던 차에 여신의 성유물이 움직였다는 소식이 들려와 외출의 핑계가 생겼다.
하지만 그녀가 그리드울프로 향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다른 것이었다.
‘드디어 이카루스들이 말한 고양이를 보게 되는 건가.’
카트리나가 그리드울프 영토로 향한 건 순전히 이카루스의 딸인 키티아를 보기 위함이었다.
먼 옛날, 곰의 영토에서 숨을 거둔 두 고양이가 남긴 유언을 그녀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비록 이카루스들이 죽는 순간 곁에 있던 건 아니었지만, 극지방에는 마력이 얼어붙어 생긴 특수한 얼음 바위가 있어 특정 장소에서 들려온 소리를 멋대로 기록하곤 했다.
소리로만 남은 기록인지라 자세한 상황은 파악할 수 없었으나 살해당한 고양이들의 유언에는 키티아라는 이름이 몇 번이고 등장했다.
카트리나는 어릴 적 우연히 들은 유언을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고양이에게 여신의 힘이 깃들었다니, 우스운 농담이라고 생각했다.
그리드울프의 입양 딸이 블루문에 면역을 가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심드렁했다. 제리안이라는 고양이도 후천적으로 면역을 얻지 않았던가.
이카루스들의 유언은 거의 잊고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서신을 받기 전에는 분명 그렇게 생각했는데.’
늑대들의 또 다른 수장, 이제는 은퇴한 호그우드 위비스가 보낸 서신이 시작이었다.
여신의 마력을 지닌 그리드울프의 막내딸이 성유물 중 하나인 활을 움직였다는 내용을 보았을 때, 카트리나는 가만히 숨죽였다.
완강한 폐쇄 정책만을 고수해 온 부모님조차 종족의 미래를 셈해 보며 크게 동요하고 있었다.
‘아마 가문의 수장에게만 알려진 비밀이 키티아 때문에 들킬 수도 있으니 곤란하다고 생각하셨겠지.’
카트리나는 부모님의 동요를 파고들었다. 가문의 미래가 걸린 일이니 자신이 직접 키티아를 보고 오겠다고 청한 것이다.
물론 그 아래에는 오래전, 이카루스들이 남긴 유언의 주인공을 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깔려 있었다.
‘약해 빠진 고양이라면 딱히 알려 줄 이유도 없지.’
호기심에 사로잡힌 상태이긴 했지만 카트리나도 결국은 폴리 가문의 일원이었다.
그녀가 원하는 건 표범들이 일으킬 피바람을 두려워하며 폐쇄 정책을 유지하는 곰들의 현실을 뒤엎어 줄 만큼 초월적인 힘이었다.
만약 이카루스들이 말한 위대한 힘을 키티아가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면 곰 가문은 이전처럼 폐쇄 정책을 유지할 생각이었다.
“카트리나 님, 도착했습니다.”
그녀의 시종이 고했다. 정신을 차려 보니 그리드울프 저택의 계단 앞이었다.
카트리나는 에스코트를 받으며 마차에서 내렸다. 신년제 기간 그리드울프 저택에 방문하게 된 손님 중 가장 고귀한 이의 도착이었다.
그리드울프 부부와 키티아는 물론, 먼저 도착한 호그우드와 여우들의 수장인 클리드가 마중을 나왔다.
카트리나는 시종들을 시켜 극지방에서 가져온 선물을 나르게 하곤 부드럽게 웃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폴리가의 외동딸인 카트리나입니다.”
“응해 줘서 고마워요. 카리스 그리드울프입니다.”
카트리나는 차례로 인사를 나누었다. 기대하던 고양이와의 인사는 맨 마지막이었다.
폭신한 솜이 깔린 선물 상자에 잠시 시선을 빼앗겼던 키티는 에메랄드빛 눈동자를 반짝이며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카트리나 님! 저는 그리드울프에 임시 입양된 늑대…… 가 아니라, 고양이 키티아라고 해요.”
장정 열댓 명이 매달려도 꿈쩍하지 않던 그리드울프의 활을 움직인 것치곤 작은 체구였다. 고양이라 그런지 전체적인 선도 호리호리했다.
카트리나는 약간 실망했지만 기색을 감추며 키티가 내민 손을 잡았다.
순간, 놀라운 감촉에 머리의 털이 쭈뼛 섰다.
말랑―
“……?!”
카트리나는 놀란 얼굴을 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 키티의 손바닥을 꾹꾹 눌렀다.
말랑―
말랑말랑―
놀라울 정도로 중독성이 있는 감촉이었다. 문득 초대장에 찍혀 있던 귀여운 고양이 발자국이 떠올랐다.
“영애, 혹시 초대장에 손도장을 직접 찍으셨나요?”
“앗!”
키티는 어린 시절과 마찬가지로 뿌듯함을 드러내며 빙긋 웃었다.
“알아봐 주셔서 기뻐요! 제 별명은 말랑손이랍니다. 분홍색 젤리 발바닥을 가졌어요.”
“…….”
카트리나는 어쩐지 이 고양이 아가씨가 싫지 않았다.
* * *
‘에고…….’
키티는 신음을 삼키며 방을 나섰다. 해가 질 때까지 손님들을 맞고 티타임을 갖느라 정신이 없었다.
방에서 쉬는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고, 이젠 저녁 식사를 하러 내려가야 했다.
‘식사를 마치면 활 시연이 있다고 생각하니 더 긴장돼.’
방 앞에서 기다리던 클리드가 그녀의 손을 잡아 주었다.
“다리에 힘이 풀렸는데, 아가씨.”
“네발로 걷고 싶다.”
“아니면 내가 업어 주는 방법도 있고. 다리 아프면 말해.”
클리드는 생글생글 웃었다. 그런 부탁을 할 수는 없었기에 키티는 한숨을 폭 내쉬곤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내 발바닥은 말랑말랑해서 다리는 아직 괜찮아.”
“오늘 밤에 그리드울프의 활을 사용해야 하니 힘을 아껴 둬야지.”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긴장해서 더 힘든 것 같아.”
키티가 입을 비죽 내밀었다. 클리드는 다정한 미소를 머금으며 슬쩍 흘렸다.
“식사 전에 잠깐 캣닢 밭에 들를까?”
“…….”
클리드는 타르트 위에 달콤한 시럽을 덧바르듯 달콤한 제안을 툭툭 던졌다. 온종일 그랬다.
클리드는 여우의 수장으로서, 그리드울프의 호위로서 자리에 참석하면서도 여유로웠다.
“잠깐 향기만 맡고 오는 거야. 정 긴장이 안 풀리면 내가 잎을 조금 따서 품에 넣고 있을게.”
“그랬다간 내가 클리드 품에 찰싹 달라붙어 있을걸?”
“긴장해서 일을 망치는 것보다야 그게 낫지.”
클리드는 어깨를 으쓱했다. 키티는 그 여유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캣닢 냄새를 맡으러 갈 생각 말고 나도 본받아야지.’
키티는 다시 힘을 내 걸음을 옮겼다. 마침 로비를 지나 연회가 이뤄지는 홀로 향하던 호그우드가 키티를 발견하곤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말랑손!”
“앗, 호그우드 님!”
키티는 쪼르르 다가가 호그우드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늘 쾌활하고 호탕한 호그우드였지만 외교를 담당자는 중인지라 며칠 자지 못해 눈 밑이 퀭했다.
“얼른 식사하시고 들어가서 쉬시는 게 좋겠어요.”
“하하, 이 정도 가지고 뭘. 네가 우리 이든의 모습을 봤어야 하는데.”
“선생님께 무슨 일이 있나요?”
키티가 눈을 반짝이자 호그우드는 자연스레 며칠 전의 일을 떠올렸다.
포워드 사령관과의 협의를 위해 중앙 연무장에 잠깐 들른 호그우드는 제 아들을 보고 질겁했다.
분명 중앙 연무장에서 가장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을 하고 있을 텐데, 아들의 안색은 창백했다.
“죽은 내 아내를 닮아 이든이 욕심이 많더구나. 연무장 과정을 어떻게 반년 안에 끝내겠다는 건지.”
“반, 반년?”
키티는 물론, 옆에서 탐탁잖은 얼굴로 듣고 있던 클리드도 기함했다.
“쪽잠만 자며 하루에 시험을 여덟 개씩 보고 있지 뭐냐. 그러라고 키운 체력이 아닐 텐데…….”
키티는 수업 시간이 되면 고양이인 자신을 쥐 잡듯 잡던 이든을 떠올렸다.
암기 양이 많을 때면 헤헤 웃으면서도 속으로 ‘선생님이 해 보세요! 이걸 다 외울 수 있나!’ 하고 소심하게 반항했는데.
‘이든은 진짜 하네…….’
이러다 그의 건강이 상하지 않을까 염려되면서도, 그를 빠른 시일 내로 다시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은근한 기대가 들었다.
다시 만나면 그는 어떤 얼굴을 할까. 편지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여전히 까칠하겠지.
그래도 혹시 모른다. 조금은 그리웠다며 웃어 줄지.
“…….”
이든이 눈가를 휘며 부드럽게 웃는 모습을 상상하자 키티의 뺨이 발갛게 익었다.
별생각 없이 키티를 바라보고 있던 호그우드는 그제야 무언가를 눈치채고 시원스레 웃었다. 고양이는 늑대나 여우와 달리 마음을 겉으로 모두 드러내는 모양이었다.
“뭐, 늑대라면 때론 무모한 짓도 불사하는 법이지. 걱정 말고 식사나 하러 가자꾸나, 키티.”
호그우드가 키티를 더욱 살뜰히 챙기기 시작했기에 연회 장소로 향하는 클리드의 얼굴에 약간의 초조함이 더해졌다.
그는 조용히 키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더는 미루면 안 되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