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a Cat, Adopted by a Wolf Family? RAW novel - Chapter (82)
고양이인데, 늑대 가문에 입양당했다? 고양이인데, 늑대 가문에 입양당했다-82화(82/153)
<82화>
키티는 방 안에 놓여 있는 다구를 이용해 따뜻한 차를 한 잔 우리면서도 심란해졌다.
‘자칼 님은 무단 외출을 하면 큰 벌을 받는다고 하셨는데…….’
토끼 걸음으로 중앙 연무장의 커다란 운동장을 예순 바퀴 뛰어야 한다고 들은 것 같았다.
예순 바퀴. 진짜 토끼들에게도 토끼 걸음으로 그 정도나 걷는 건 힘든 일일 텐데.
키티는 차를 이든에게 건네주며 조심스레 말했다.
“저어, 선생님. 지금이라도 얼른 돌아가시는 게…….”
이든은 차를 받아 테이블에 내려 두곤 키티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도리어 귀엽게만 느껴졌다.
“키티. 내가 벌을 받을까 봐 걱정되는 거야?”
“그야 선생님은 제 선생님이잖아요.”
모범을 보이셔야죠!
키티는 차마 뒷말을 하지 못했다. 이든의 푸른 눈동자가 만족스럽게 휘어졌기 때문이었다.
처음 수업을 시작하던 어린 시절, 키티는 이든이 웃는 것을 조금 무서워했다. 그는 꼭 이런 웃음을 지은 다음 숙제를 내 주었기 때문이었다.
“이거 열 번 반복해서 써 와.”
“하지만 이든 님은 강하구 똑똑하구 멋진 늑대니까 한 번으루 줄여 주실 거라구 생각해요.”
“……그럼 쓰는 건 됐고 내일까지 다 외워 와. 시험 볼 거야.”
“힝…….”
딸랑딸랑 아부로 무마해 보려 해도 시선을 피하고 얼굴을 가릴 뿐 분량을 줄여 주지 않아 얄미웠는데.
지금은 왜인지 웃음을 머금은 그의 눈가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평소엔 가슴 깊숙한 곳에 얌전히 있던 심장도, 지금은 자신의 존재를 알아 달라는 듯 쿵쿵 울렸다.
“벌은 내가 알아서 해.”
이든은 딱 잘라 말했지만 키티에겐 무단 외출을 인정하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키티는 고양이들 사이에 전해 내려오는 격언을 떠올렸다.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을 먼저 넘는다더니.’
셋 중 누군가가 지루한 훈련을 견디지 못하고 무단 외출을 한다면 분명 데온 오라버니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제일 얌전하던 이든이 주인공일 줄이야.
늘 신처럼 고고하고 완벽하던 이든이 조금은 친숙하게 느껴져서 키티는 빙긋 웃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뵈니 좋아요.”
이든은 키티가 주는 햇살 같은 따스함을 잠시 음미하곤 물었다.
“나 보고 싶었어?”
“그럼요.”
“내가 보고 싶었다면서…….”
이든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키티보다 훨씬 크고 탄탄한 몸이었다. 그는 손을 뻗어 키티의 망토에 붙어 있던 장미꽃잎을 털어 냈다.
“그 여우 놈이랑 단둘이 있었다고.”
그의 목소리에는 은근한 분노가 서려 있었다. 키티는 슬쩍 그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만나자마자 또 작은 고양이를 압박하다니…….’
확 소리쳐서 이든이 여기 있다고 알려 버릴까.
하지만 그런 짓을 했다간 이든이 곧바로 끌려갈 것이다. 키티는 오랜만에 만난 이든과 일찍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클리드는 제 호위예요.”
“장미꽃 다발을 건네는 호위라.”
“고양이 제자를 협박하는 늑대 선생님보다는 낫다고 생각해요.”
키티가 툭 내뱉은 말에 이든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뭐든 마음대로 할 거라는 답장을 받고 눈이 돌아가 개망신을 감수하고 무단 외출을 감행한 늑대가 듣기엔 너무 매정한 말이었다.
“그 여우 놈이 나보다 낫다고.”
이든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작은 고양이 키티는 ‘힉!’ 하고 놀라 황급히 서랍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선생님, 제가 선생님을 위해 준비한 선물이 있다고 말씀드렸나요?”
원래는 카리스를 위해 뜨기 시작한 목도리였지만 키티는 융통성이 있는 고양이었다.
그녀가 꺼낸 뜨개질 바구니 안에는 거의 완성된 두툼한 목도리 하나가 들어 있었다.
“아직 미완성인 것 같은데.”
“금방 완성할 수 있어요.”
“그럼 얼른 해서 줘. 돌아갈 때 가져가게.”
역시 이든도 꾹꾹 목도리를 가지고 싶은가 봐. 키티는 금세 뿌듯해졌지만 생색을 잊지 않았다.
“하지만 뜨개질이 무척 힘든 일이라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망토를 벗은 키티는 흔들의자에 앉아 바구니를 무릎에 내려 두었다. 이든은 뜨개질을 하는 키티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의자를 돌렸다.
키티는 뜨개질 바늘을 쥔 다음 짙은 회색 털실을 조금씩 잡아당겨 가며 집중했다. 머지않아 그녀의 고양이 귀와 꼬리가 튀어나왔다.
“…….”
이든은 말아 쥔 주먹을 입가에 댄 채 웃음을 참았다. 키티가 왜 뜨개질이 힘든 일이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오른쪽 바늘을 움직일 땐 오른쪽 귀가, 왼쪽 바늘을 움직일 땐 왼쪽 귀가 자그맣게 접혔다 펴졌다.
털실을 잡아당겨 바늘에 감을 땐 꼬리가 털실이 움직이는 방향대로 살랑였다.
키티는 처음 글자를 배울 때와 마찬가지로 뜨개질을 온몸으로 하고 있었다. 속도가 붙으니 쫑긋쫑긋 난리도 아니었다.
보통 고양이들은 사춘기를 지날 무렵부터 생김새나 성격이 도도해진다던데 왜 키티는 아직도 사랑스럽기만 한지.
이든은 당장 달려가 키티를 안아 들고 쫑긋거리는 귀를 깨물고 싶었다. 동그란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지겠지.
하지만 곧 중앙 연무장으로 떠날 처지에 고백 같은 걸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고양이로 만들어 주머니에 넣어 갈 수도 없고. 이든은 속이 탔다. 그는 답답함을 느끼며 쏘아붙였다.
“언제 다 클래.”
“이 정도면 거의 다 큰 거죠. 제가 아주 작은 아기 늑대였다는 걸 기억해 주세요.”
“…….”
양손을 모으면 몸 전체가 올라오던 앙증맞은 아기 키티를 떠올리자 이든의 표정이 한결 풀어졌다.
요망한 고양이 같으니라고.
조금 더 이곳에 머물렀다간 정말로 키티를 안아 들고 아무도 없는 곳으로 도망갈지도 몰랐다. 그곳에서 눈치 없이 말랑말랑하기만 한 야옹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얌전히 기다렸다가…….
“다 됐어요!”
“…….”
엄한 생각을 하고 있던 이든은 키티의 외침에 답지 않게 놀랐다.
키티는 작은 가위로 남는 털실을 잘라 낸 다음 목도리를 이든에게 내밀어 보였다.
아직 여러 털실을 이용해 무늬를 넣을 줄 모르는지라 짙은 회색 목도리는 끝부분에 자잘한 술 장식을 단 게 전부였다.
‘카리스 님께는 나중에 하나 더 떠 드리면 되니까.’
키티는 목도리 하나를 다 완성했다는 뿌듯함에 방긋 웃었다.
“나중에 목도리를 떠서 팔 거예요. 이름은 꾹꾹 목도리고요. 사업 아이템이니 소중히 간직해 주세요.”
“클리드, 그놈에게도 이걸 줬어?”
클리드에게 준 것은 여우 꼬리 장식이었지 목도리가 아니었다. 키티는 고개를 살랑살랑 저었다.
“아뇨.”
“그럼 됐어.”
이든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슬슬 돌아가 봐야 할 때였다. 그는 목도리를 순순히 받아 들까 하다가, 살짝 허리를 숙여 키티에게 얼굴을 가까이했다.
순간 끼쳐 오는 깔끔한 머스크 향과 그의 숨이 키티의 몸을 뻣뻣하게 만들었다. 커다란 동물 앞에서 자동으로 긴장하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그녀의 뺨이 또다시 발그레해졌다.
“이, 이든 님?”
“네가 해 줘, 키티.”
키티는 동요를 드러내지 않으려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기름칠이 덜 된 기계처럼 삐그덕거렸다.
이든은 키티가 목도리를 걸쳐 주기 쉽도록 코트를 어깨까지 내렸다. 급하게 빠져나오느라 그는 넥타이도 조끼도 없이 얇은 흰 셔츠만을 걸치고 있었다.
두어 개쯤 풀린 단추 사이로 도드라진 목울대와 탄탄한 목선이 언뜻 보였다.
키티는 왜인지 입에 고이는 단 침을 삼켜 내며 그의 목에 목도리를 둘러 주었다. 이든은 픽 웃으며 목도리를 조금 더 여몄다.
그의 커다란 손이 키티의 말랑말랑한 손 위로 자연스레 겹쳐졌다. 키티의 꼬리 털이 삐쭉 섰다.
“사업 아이템이라기엔……. 엉성해서 바람이 들어오는데.”
이든의 짓궂은 말에도 키티는 답할 수 없었다. 맞잡은 손으로 이든이 제 영혼을 쪽 빨아들인 기분이었다.
“이제 가셔야 해요.”
“어, 그러게.”
쭈뼛거리는 게 미치게 귀여웠다.
이든은 감정을 다 티 내고 있는 키티를 뒤로하고 발코니로 향했다. 고양이 향이 폴폴 풍기는 목도리를 하고 문을 통해 당당히 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무심결에 이든을 따라 발코니에 나온 키티는 쌀쌀한 바람에 몸을 움츠렸다.
이든은 열려 있던 코트 자락으로 키티의 몸을 감싸 주었다. 키티는 순식간에 이든의 품에 깊이 안긴 꼴이 되었다.
‘으……!’
가슴이 찌릿거렸다. 고양이 귀 끝에 돋은 솜털이 바짝 서는 기분이었다. 정작 눈앞의 이든은 짓궂게 웃기만 하는데도.
키티는 이 까칠한 늑대의 품이 이리도 포근하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그의 몸은 단단했고 그의 손이 겹쳐진 등은 따뜻했다. 좋은 향기도 났다. 다 자란 이든은 상자 같은 품을 가진 남자였다.
이별의 순간에 이런 아늑함이라니. 울보 고양이의 눈가가 그렁그렁해졌다. 이든은 키티의 머리카락을 살짝 매만지며 속삭였다.
“키티.”
“네에.”
“다음 휴가 나올 때까지 공부 열심히 해.”
“…….”
전혀 감동적이지 않은 말에 뾰족한 고양이 손톱이 튀어나왔다. 키티는 실수인 척 이든의 발을 지그시 밟았다. 그가 어린아이처럼 가벼운 웃음을 터트렸다.
“이게 또 협박을 하네.”
“……공부 말고 다른 할 말 없으시면 이제 가세요.”
매정한 고양이 같으니라고.
이든은 고개를 살짝 숙여 키티의 귓가에 나직이 말했다.
“나 없을 때 클리드, 그놈이랑 너무 붙어 있지 말고.”
“…….”
“그놈이 고백해도 받아 주면 안 돼. 대화도 많이 하지 마.”
호위이자 친한 친구인 클리드가 제게 고백이라니. 순 억지였다.
‘아까 얼굴을 마주했을 땐 분위기가 좀 묘하긴 했지만.’
키티는 개의치 않고 늘 하던 대로 쏘아붙였다.
“이든 님, 혹시 이게 늑대 집착인가요?”
이든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가슴팍만 바라보고 있던 키티는 이상함을 느끼고 얼굴을 들었다. 그러자 추위 때문인지 눈가가 살짝 발긋하게 달아오른 이든의 얼굴이 보였다.
눈이 마주하는 순간 그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응. 조금 떨어져 있었다고 집착하게 되네.”
키티는 몸이 찌르르 울려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머릿속은 온통 빨간 불빛으로 번쩍번쩍했다.
이든은 동굴 속에 있는 듯 낮게 울리는 목소리로 그녀의 심장을 더 꽉 쥐었다.
“나 질투도 많이 하는데, 모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