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a Cat, Adopted by a Wolf Family? RAW novel - Chapter (88)
고양이인데, 늑대 가문에 입양당했다? 고양이인데, 늑대 가문에 입양당했다-88화(88/153)
<88화>
“클리드, 괜찮아?”
나는 놀라 물었다.
클리드는 내 호위였지만 신년제 이틀 차부터는 엘리엇 경이 내 호위를 맡아 가까이에서 얼굴을 보는 게 오랜만이었다.
표범들의 대범한 급습으로 그리드울프의 손님들이 저택 안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으니 클리드는 나 하나가 아닌 저택 전체의 경호를 맡는다고 들었다.
경호 범위가 넓어져 아무래도 무리하게 되었겠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듯 눈빛도 퀭했다.
‘하지만 클리드는 요령을 부릴 줄 아는 수인인데.’
평소였다면 충성스러운 수하들을 동원해 적당한 휴식을 취했을 클리드가 이렇게 낯빛이 좋지 않으니 더욱 걱정되었다.
우려의 눈길로 얼굴을 살피자, 클리드는 내 마음을 읽은 것처럼 어깨를 으쓱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 마나 레코드를 많이 사용해서 피곤해 보이는 거야.”
“정말?”
왜인지 클리드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아 얼굴을 살짝 가까이했다. 내가 가까이 간 만큼 물러나 줄 줄 알았는데, 클리드는 오히려 얼굴을 들이밀었다.
“응, 정말로. 토끼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증언을 해서 잠도 좀 설쳤고.”
그렇게 말하는 클리드의 얼굴이 무척 어두워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신년제 때 블루문의 광기에서 벗어난 토끼들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보고할 정도로 몸이 회복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지금쯤 제리안에게 대체 어떤 일을 당한 건지 진술해 줄 것이라 생각했는데, 클리드의 반응을 보니 그 내용을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여우 수인들과 관련되어 있나 보구나.’
제리안과 관련된 정보라면 나도 들어 둘 필요가 있으니 그쪽으로 향했다.
중앙 연무장에는 죄가 없지만 만일을 위해 격리해야 하는 수인들을 위해 아늑하고 튼튼한 숙소가 마련되어 있었다.
‘신년제 때 내 앞에 쓰러졌던 늑대 부인도 여기 머물고 있다고 했지.’
아무래도 델타가 그녀에게 건 마법에 대해 조사해야 할 테니까.
나는 재빨리 토비를 비롯한 토끼들이 머물고 있는 방을 찾아갔다. 여우 수인 몇몇이 참담한 얼굴을 하고 토끼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가씨께서 오셨으니 잠시 물러나도록.”
클리드가 말했다. 위엄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여우 수인들은 고개를 숙이고 벽 쪽에 가지런히 줄을 맞춰 섰다.
나는 착잡한 얼굴을 하고 있는 토비에게 안부를 물은 다음, 늑대 기사들에게 진술한 내용을 들려 달라고 했다.
“아가씨의 마력 덕에 제리안의 지하 실험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떠올랐습니다.”
“지하 실험실이라고요?”
제리안이 거주하는 커다란 건물은 식량 창고라고 불렸다. 지하실이 있을 거라곤 예상했지만 토비가 그곳으로 납치되었을 줄이야.
“예. 저희는 차례로 잡혀가 좁은 철장에 담겼지요. 그리고…… 저희가 밤마다 제리안에게 충성하도록 마법을 건 것은 여우 수인들이었습니다.”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일 테지만 클리드의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다.
“이전에도 제리안이 여우 수인들을 부리는 걸 봤어요. 그들과 다르던가요?”
“아가씨, 지하실에 갇힌 여우 수인들은 단순히 블루문에 당해 그곳에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네?”
“모두 제정신이었습니다. 건너편 철장에 제리안이 그들의 아이를 가둬 두었더군요. 아이들이 부모 품에 안기고 싶어 낑낑대는 게 얼마나 가엾던지…….”
토비가 묘사하는 지하실의 모습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아기 여우들은 불안감 때문에 미쳐 버린 것인지 좁은 철장 안을 빙빙 도는 이상 행동을 보이고, 그 부모 여우들은 제리안에게 애원한다.
그럼 제리안은 아기 여우들이 밖에서 몇 분 뛰놀게 해 주는 조건으로 여우 수인들에게 무리한 것들을 요구한다.
“하…… 제리안, 그 미친 고양이.”
가족이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을 이용해 자기 배를 불리는 건 어떻게 생각해도 역겨웠다.
더 짜증 나는 건 제리안이 그 수법을 계속 이용해 오고 있다는 점이었다.
“여우 소대원들에게 물어물어 토비가 본 세 쌍의 여우 부부가 누구인지 알아냈어.”
클리드가 우울한 목소리로 말을 더했다.
“모두 여우 수인들 중에서도 귀족에 속하는 여우들이야. 마력량이 상당하지.”
제리안은 그런 강한 여우들의 약점을 잡아 휘두르고 있었다. 정말이지 최악이었다.
그가 토비를 비롯한 토끼들에게 밤에만 발동되는 특이한 저주를 걸 수 있었던 것도 붙잡아 두고 있는 여우 수인들이 뛰어나기 때문이겠지.
“토비 씨, 제리안이 여우들에게 한 명령 같은 걸 들으셨나요?”
“네. 자세한 것은 아까 그리드울프의 기사님들에게 보고했습니다. 제리안은 저희 토끼들을 자신의 사병으로 만들려는 것 같았습니다.”
“…….”
제리안이 왜 많은 수인들 중 토끼 수인들을 골라 실험을 진행했는지 알 것 같았다.
토끼들은 약한 동물이라 마력에 정신을 지배당하기 쉽고, 아이를 많이 낳아 머릿수가 빠르게 늘어난다.
대부분 부모들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자식에게도 똑같이 가르치니, 몇 명의 토끼들만 세뇌한다면 세뇌된 토끼들의 수는 금방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토끼들은 약해서 강한 동물들과 싸울 때 승산이 없어.’
제리안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그렇다면 역시…… 토끼들을 한 번 쓰고 버리는 용도로 곁에 두겠다는 거겠지.
압도적으로 강한 늑대나 표범이라고 해도 토끼를 해치는 데는 시간이 걸리니까, 그 시간을 이용해 도망을 가든 물건을 빼돌리든 하려는 것이다.
퇴로를 미리 생각해 두는 게 치밀하기 짝이 없었다.
우리 아빠와 오빠의 죽음에 가담했으면서 나와 엄마에겐 모른 척하던 그의 얼굴이 생생히 되살아났다.
어느새 그리드울프의 활을 꽉 쥐고 있던 손이 바르르 떨렸다.
‘대체 이렇게까지 해서 뭘 얻고 싶은 거지?’
제리안은 이미 충분히 부유했다. 이카루스들에게 빼앗은 능력을 이용한다면 표범들에게 신임을 얻을 수 있었다.
델타의 오른팔 자리 정도는 차지하고도 남을 능력을 가지고도 만족하지 못해 표범들과 척을 졌다.
이미 부유했고, 이미 고양이들의 지배자 소리를 듣는데.
도대체 어떤 욕망을 이루기 위해 수많은 이들의 피와 눈물을 짜내는지 알 수 없었다.
‘……사악한 새끼.’
얼른 그에게 복수하고 싶다는 생각이 치밀어 올랐다. 그 거만한 얼굴을 마구 할퀴었으면.
“고마워요, 토비 씨. 푹 쉬어요.”
나는 늑대 기사들에게 부탁해 보고서를 읽어 보기로 하고 연무장으로 향했다.
* * *
“아가씨, 오늘은 이쯤에서 그만하시죠.”
엘리엇이 활을 더 휘두르려는 키티의 어깨를 잡았다.
“조금만 더요. 아직 활을 쏘지 못하니 마력을 실어 활의 몸체로 공격하는 법이라도 제대로 익히고 싶어요.”
키티가 말했지만 엘리엇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안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벌써 며칠째 무리한 훈련을 이어 가고 계시잖습니까.”
엘리엇도 그 이유는 클리드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키티가 토비에게 제리안이 저지른 또 하나의 죄에 대해 들었다고 했다. 복수심이 끓는 게 당연했다.
눈앞의 아가씨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제리안을 쳐 죽이겠다는 그 집념 하나로 어려운 무술 수업을 견뎌 냈으니.
“몸을 생각하지 않고 분노에 따라 움직이는 건 몸만 상하게 할 뿐입니다.”
“…….”
“아가씨, 제가 그리드울프의 활을 들 수 있었다면 진작 빼앗았을 거예요.”
엘리엇은 한 번 더 단호하게 말했다. 어렸을 땐 이런 목소리를 내면 ‘히잉…….’ 하고 시무룩해져 금세 말을 듣곤 했는데.
늑대 가문에서 자라서 그런가, 아가씨는 점점 늑대처럼 행동하고 반항했다. 그런 모습도 사랑스러웠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였다.
“제리안을 찌르는 것만이 복수가 아니라는 건 잘 알고 계시잖습니까.”
“……맞아요. 멋진 사부님께 배웠으니까요.”
키티는 하는 수 없이 활을 챙겨 들었다. 오랜만에 듣는 딸랑딸랑에 엘리엇이 픽 웃었다.
“그렇죠. 호그우드 님이 표범들과 잘 싸울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제리안에게 하는 복수입니다.”
“알겠어요, 사부님.”
키티는 활을 챙겨 들고 그리드울프 저택으로 향했다. 오늘 그녀가 해야 할 일은 늑대 기사들에게 줄 손수건에 마력을 불어넣는 일이었다.
클리드가 온종일 마나 레코드를 써 조사한 결과, 키티가 가진 여신의 마력을 지니고 있으면 블루문에 면역이 생기는 것으로 드러났다.
키티는 늑대 기사들에게 완벽한 면역을 줄 수 없었지만, 그들이 블루문의 광기 앞에서 약간 더 강해지도록 해 줄 수는 있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키티는 결의를 다지고 작은 의자에 앉았다. 그녀 앞에 펼쳐진 커다란 테이블에는 고급스러운 손수건이 몇 박스나 놓여 있었다.
그 뒤로, 출정 준비를 마친 늑대 기사들이 견고한 갑옷을 입고 도열한 상태였다.
“그럼 시작할까요?”
“네, 아가씨.”
펑―!
키티가 고양이 모습으로 돌아가자 바니엘이 오른쪽 말랑손에 특수 잉크를 묻혀 주었다.
톡톡톡.
키티는 분홍 젤리가 빨강 젤리로 잘 물든 것을 확인한 후, 다른 시녀가 펼쳐 주는 손수건의 한 귀퉁이에 손을 꾹 눌렀다.
말랑―
탐스러운 말랑손이 닿았다 떨어지자 손수건에는 키티가 불어넣은 마력과 귀여운 손도장이 찍혔다.
키티의 응원이 담긴 손수건을 가장 먼저 받기 위해 나와 있던 호그우드가 시원스레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이거 정말 귀엽구나. 마력도 들어 있어서 표범들을 상대할 때 많은 도움이 되겠어.”
“앗, 그렇다면 더 힘낼게요.”
자신이 도움이 된다는 말에 기뻐진 키티는 곧 출정할 호그우드와 기사들을 위해 말랑손 손수건을 생산해 내기 시작했다.
손수건은 유사시에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으니 여러모로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가득 담았다.
물론 기사들은 손수건을 사용할 생각이 없었다.
“감사합니다, 아가씨. 잘 지니고 있다가 무사히 돌아와 액자에 장식해야겠네요.”
“앗…….”
“손도장이 정말 귀엽네요. 입양 서류에 찍혀 있던 것보다 훨씬 커졌는걸요?”
기사들은 손수건을 받아 갈 때마다 키티의 말랑손을 붙잡고 악수했다. 키티는 기사들이 알은체를 해 주는 게 고마우면서도 조금 난감해졌다.
‘이 속도라면 오늘대로 출정하긴 그른 것 같은데.’
결국 그녀는 생산 속도를 두 배로 늘리기 위해 양 말랑손에 모두 특수 잉크를 묻혔다.
말랑말랑―
양 말랑손을 동시에 꾹 누르자 한 번에 두 개의 말랑손 손수건을 만들 수 있었다. 기사들의 눈이 반짝였다.
“아가씨…….”
“감사합니다, 꼭 승리하겠습니다.”
“앗, 기사님들 손이…….”
기사들은 손바닥에 잉크가 묻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키티와 악수를 나누었다.
호그우드는 기사들의 손을 보며 호탕하게 웃었다.
“이런, 우리 기사단 선봉에 말랑손 깃발이라도 하나 걸어야겠는걸?”
그는 기사단 이름을 말랑 기사단으로 바꿔야겠다며 유쾌한 농담을 던졌다.
키티의 손도장이 찍힌 손수건에 관심을 보이는 건 출정을 앞둔 호그우드와 기사들뿐만이 아니었다.
“이게 그 소문의 말랑손 도장인가요?”
“귀여워서 무척 잘 팔릴 것 같네요.”
“키티아 님이 손도장을 찍은 손수건을 공급한다면 우리 잿빛 썰매 상단에서 모두 구입할 테니 눈독 들이지 말게.”
하슈카가 키티의 환심을 사기 위해 데려온 한 무리의 상인들 또한 흥미 가득한 눈으로 말랑손 손수건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