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a Cat, Adopted by a Wolf Family? RAW novel - Chapter (94)
고양이인데, 늑대 가문에 입양당했다? 고양이인데, 늑대 가문에 입양당했다-94화(94/153)
<94화>
“키티, 물러나.”
이든이 허리에 찬 두 자루의 검으로 손을 가져가며 말했다.
클리드 또한 언제든 나무 위의 고양이들을 공격할 것처럼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밤고양이들의 도움을 받으러 온 건데, 둘은 버릇대로 남들을 경계하고 나를 보호하는 데에만 집중했다.
……아직도 나를 어린애로 생각하나 봐.
“흐음.”
나무의 중앙에 앉아 있던 나이 많은 암고양이 하나가 우리의 모습을 보고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냈다.
늑대 가주와 여우 가주의 위협을 동시에 받으면서도 여유로운 모습.
동트기 전 새벽처럼 어두운 털로 온몸이 뒤덮여 있어 휘어지는 녹황색 눈동자가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그녀는 나를 신중하게 살피고 있었다. 나 또한 응답하듯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다가 이름 모를 그녀의 목에 걸린 푸른 목걸이에 시선을 빼앗겼다.
‘저건…….’
떡갈나무에서 블루문의 마력과 비슷한 따스한 힘이 느껴지는 건 아무래도 저것 때문인 것 같았다.
손가락 두 마디 정도 길이의 긴 보석은 푸르스름한 빛을 띠고 있었다.
사방에 안개가 자욱한 와중에 홀로 빛을 받는 것처럼 은은하게 빛나 단번에 특별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선생님, 클리드.”
나는 둘을 물러나게 한 뒤 나무에 주렁주렁 열린 고양이들을 바라보고 말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자기소개를 할 때였다. 다소 권태로움을 느끼고 있던 검은 털 고양이들도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저는 그리드울프가에 임시 입양된 키티아라고 해요.”
클리드와 이든이 양옆에 있어 주니 겁이 나지는 않았다. 무슨 일이 생긴다고 해도 둘은 든든하게 나를 지켜 줄 테니까.
어느덧 주변을 수색하던 엘리엇 경과 다른 일행들도 내 뒤쪽에 도열했다.
그 광경을 본 푸른 목걸이를 찬 고양이가 픽 웃었다.
“반갑구나. 나는 밤고양이들의 수장 네로란다. 네로라고 부르든, 할머니라고 부르든 마음대로 하렴.”
밤고양이의 수장이 엄숙하지만 정중한 목소리로 내게 자신을 소개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나는 이들이 지금도 떡갈나무 근처에 머무르고 있는지,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겼는지조차 확신하지 못했기에 목소리가 들리자 반갑기까지 했다.
일이 잘 풀려 가는 것 같아 약간의 안도감이 들었다.
네로가 정중한 말투를 해서인지 나무에서 일제히 쏟아져 내게 달려들 것만 같던 고양이들도 조금씩 경계를 늦추었다.
나는 공손히 답했다.
“네로 님, 뵙게 되어 반가워요.”
“그래, 키티. 잘 자랐구나. 여전히 분홍 손바닥은 말랑말랑하겠지?”
“……!”
네로는 마치 나를 예전에 본 적이 있는 것처럼 말했다.
순간 엄마가 내게 밤고양이의 거처를 알려 준 일이 생각나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네로 님, 저를 아시나요?”
“글쎄……”
글쎄, 라니.
방금 내 손바닥에 대한 이야기를 했으면서 이렇게 애매한 답을 내놓은 이유라면.
‘내게 알고 계신 걸 알려 주실 생각이 없으신가 봐.’
네로는 여전히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딘가 애틋한 그 시선은 그녀가 알고 있던 내 모습과 지금의 내 모습을 천천히 비교해 보는 것처럼 보였다.
나도 운 좋게 고양이 친구들과 재회하게 된다면 분명 네로처럼 행동하겠지.
이런 반응을 보니 그녀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더욱 궁금해졌다.
“키티아에 대해 알고 있는 걸 말해.”
……옆에 서 있던 늑대가 결국 성질머리를 이기지 못하고 위협적으로 물었다.
이든이 목소리를 깔자 뒤에 있던 늑대들이 자동으로 각 잡힌 자세를 했다.
참으로 강한 동물의 가주다운 협상법이었다.
하지만 네로는 느긋하게 꼬리를 살랑이며 겁먹지 않았다는 것을 드러냈다.
“대신 협박해 주는 걸 보니 그쪽이 말랑손의 연인인가?”
오히려 대담하게도 이든을 상대로 비아냥거렸다.
“…….”
그런데 이든은 왜인지 그 비아냥거림에 반박하지 않았다.
대신 말을 받은 건 클리드였다.
“아니, 잘못 봤다.”
“…….”
“그리고, 얼른 대답하지 않으면 나도 아가씨 대신 널 협박할까 해.”
특유의 능글맞은 말투에 분위기가 풀어졌다. 굳는 얼굴을 하는 건 이든과 그를 따라온 검은 털 늑대들뿐이었다.
그런데 네로는 여전히 태연자약했다.
“오래 살아 겁이 없어진 건가?”
이든이 또 한 번 으르렁거렸다.
“이쯤 살았으면 목숨을 빼앗겠다는 협박도 반가울 뿐이지.”
네로도 만만찮았다.
클리드가 그에 맞춰 입을 떼려 했기에 나는 두 남자의 등에 동시에 손을 얹었다.
말랑―
“제가 얘기할 테니까 물러나 계세요.”
둘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네로를 즐겁게 해줄 뿐, 별다른 소득이 없는 것 같으니까.
“네로 님, 알고 계신 것을 듣기 위해서 제가 뭘 하면 좋을까요?”
“글쎄다…….”
네로는 나른하게 하품했다. 고양이치고 상당히 날카로운 송곳니가 잠시 모습을 드러냈다.
“뭐, 어린 너는 무척 귀여웠으니 자격이 있다는 걸 보여 주면 말해 주마.”
한마디로 나를 시험해 보겠다는 소리였다.
제리안의 눈을 피해 수십 년 명맥을 이어 온 집단의 수장이니 호락호락하지 않을 거라곤 예상했다.
나는 시험 난이도를 조금 낮춰 보려 뻔뻔하게 딸랑거렸다.
“저는 많이 귀여웠으니까 쉬운 걸로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네로와 몇몇 밤고양이들이 아주 잠깐 흐뭇한 얼굴을 했다가, 빠르게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네로뿐만 아니라 밤고양이 몇몇 또한 내 어린 시절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흠, 흠. 늑대 사이에서 자라더니 아주 능글맞아졌구나.”
“칭찬으로 들을게요.”
내가 빙긋 웃자 우리 쪽 기사들도 흐뭇한 웃음을 머금었다. 어렸을 때부터 나와 쭉 함께 자란 클리드는 네로를 향해 어깨를 으쓱하기까지 했다.
“귀여운 걸로 시험 난이도를 깎아 주는 거면 아가씨한테는 시험이 필요 없는 거 아닌가?”
그의 능청스러운 말에 또 한 번 분위기가 풀어졌다. 네로는 인정한다는 듯 픽 웃고 답했다.
“이곳으로부터 동남쪽으로 두어 시간 달리면 야옹산의 동굴 지대가 나온단다.”
나뭇가지에 걸터앉은 고양이들이 꼬리로 일제히 한 방향을 가리켰다.
“최근 제리안이 그곳에 무언가를 감춰 두었지.”
“뭘 감춰 둔 건가요?”
“붙잡아 둔 여우 수인들을 동원해 보안 마법을 여러 겹 걸어 둬 우린 들어갈 수 없었단다.”
클리드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하지만 마침 네가 폭스타인가의 가주를 데려왔으니, 그와 함께 동굴로 가 제리안이 뭘 감춰 뒀는지 알아 오렴. 할 수 있다면 제리안이 그곳에 감춰 둔 것을 이리로 가져오고.”
네로와 밤고양이들조차 제리안이 무엇을 감춰 두었는지 정말로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조금 무서웠지만, 제리안을 고립시키기 위해서라면 이들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할게요.”
“오늘 달이 뜰 때까지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온다면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들을 말해 주마.”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네로는 생각났다는 듯 덧붙였다.
“다 같이 몰려가면 제리안도 눈치챌 테고, 네 능력을 볼 수 없으니 클리드를 포함해 딱 둘만 데려가렴.”
어쩐지 그녀는 장난을 치는 고양이 특유의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활은 가져가도 괜찮은가요?”
“그러렴.”
제법 인자한 할머니 같은 미소였다.
하지만 엘리엇 경은 난제를 맞닥뜨린 사람처럼 곤란해했다.
“아가씨와 두 남자……? 절대로 안 됩니다.”
순간이지만 엘리엇 경의 몸에 자칼 님의 영혼이 들어간 것 같았다.
네로는 엘리엇 경의 반응이 우습다는 듯 콧방귀를 끼었다.
“이봐, 혼혈 기사단장. 내 조건을 수락하지 않는다면 이쪽 정보도 없어.”
“그렇다고 아가씨를 경호도 없이 보낼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확인한 바로는 마법 장치는 모두 폭스타인이 풀 수 있을 수준이니 안심해도 좋아.”
네로는 뜻을 꺾지 않을 모양이다.
그럼 아쉬운 우리 쪽에서 조건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엘리엇 경, 부탁드려요. 엄마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아가씨…….”
나는 끈질기게 엘리엇 경을 설득했다. 결국 사부님은 언제나처럼 내게 져 주었다.
“그럼 엘리엇 경이 같이 가 주시는 건가요?”
내가 묻자 클리드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엇 경, 어릴 적부터 엘리엇 경의 무예 실력을 존경해 왔습니다. 함께 가게 되어 영광입니다.”
“…….”
엘리엇 경은 클리드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는 대신 심각한 얼굴을 했다.
“제가 경호한다면 제리안의 위협으로부터 목숨 바쳐 아가씨를 지킬 수 있겠지만 위험 요소 2가…….”
엘리엇 경은 클리드를 곁눈질하다 이든 쪽으로 힐끗 시선을 옮겼다.
둘을 저울질하듯 같은 행동을 한참이나 반복하고 나서야 겨우 입을 떼셨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제 월급이 위태로워진다면 아가씨가 더욱 안전한 편이 좋겠죠.”
의도를 알 수 없는 독백이었다.
“옳은 선택입니다, 엘리엇 경.”
이든은 그 대답에 무척 만족스러워하며 내게 바짝 붙어 섰다. 클리드도 슬쩍 거리를 좁혔다.
“두 분 너무 붙지 마시고, 모쪼록 서로 경쟁하며 아가씨를 안전히 지켜 주시길 바랍니다.”
나는 조금 뾰로통해져서 끼어들었다.
“사부님, 잊으신 건 아니죠? 제리안에게 당하지 않도록 그동안 열심히 수련했어요.”
“제가 훈련시켰으니 그 점은 잘 알고 있답니다.”
네로가 시간제한을 두었으니 꾸물거릴 수는 없었다. 나는 그녀를 힐끗 돌아본 다음 곧장 동남쪽으로 몸을 틀었다.
엘리엇 경은 여전히 불안함이 가득 담긴 눈으로 내게 은밀히 속삭였다.
“아가씨, 늑대나 여우나 다리 사이를 걷어 차이면 잠시 동안 움직이지 못한다는 걸 제가 가르쳐 드렸던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