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a Cat, Adopted by a Wolf Family? RAW novel - Chapter (97)
고양이인데, 늑대 가문에 입양당했다? 고양이인데, 늑대 가문에 입양당했다-97화(97/153)
<97화>
제리안은 몰라보게 자란 눈앞의 소녀를 빠르게 훑어보았다.
말랑손 키티아 그리드울프.
깡마르고 볼품없던 어린 시절과 달리 살이 붙고 건강해진 모습이었다.
여전히 순진하게 반짝거리는 에메랄드빛 눈동자와 말랑말랑해 보이는 손바닥이 아니었다면 몰라볼 뻔했다.
물론 제리안은 그녀가 조금도 반갑지 않았다.
‘말랑손이 여기에 있다는 건…….’
그의 머리가 빠르게 굴러갔다.
방금까지만 해도 식량 창고에 있던 그는 자칼의 위협이 거세지자 미리 준비해 둔 방법으로 탈출을 감행했다.
지금쯤 늑대들은 블루문에 당한 고양이들을 상대하고 있을 것이다.
‘화난 늑대들에게 고양이는 한 입 거리겠지만, 내가 도망칠 시간은 벌어 줬으니 고맙네.’
그 틈을 타 여우 수인들의 마법진 좌표가 남은 이곳으로 순간 이동한 것인데, 의외의 인물이 있어 일이 꼬였다.
“제리안.”
키티는 활을 꽉 쥐었다.
살의를 느끼고 튀어나온 뾰족한 손톱들이 손바닥에 박혀 피가 났다.
엄마와 꼬물이들을 영영 잃어야 했던 그 순간부터 단 한 번도 잊은 적 없는 얼굴이 눈앞에 있었다.
상상 속에서 수천 번도 넘게 죽인 그 제리안이.
순수한 분노가 되살아나 심장이 쿵쾅거렸다.
“늑대 저택에 입양 당했다더니 때깔이 고와졌네?”
“…….”
“다 널 고양이 영토 바깥으로 추방해 준 내 덕이지.”
도발을 듣는 순간 당장 튀어 나가 활로 그를 후려치고 싶었지만, 키티는 남은 이성을 짜내 주변을 살폈다.
블루문을 챙겨 온 것인지 그에게서는 강렬한 아지랑이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무언가를 두둑하게 챙겨 나온 꼴을 보니 식량 창고를 버리고 미리 준비해 둔 도피처로 향하는 것 같았다.
‘나는 블루문에 면역이 있어 괜찮지만…….’
키티의 품에 안겨 있던 고양이들은 이미 그 기운에 서서히 눈동자가 흐려졌다.
마력에 예민한 클리드 또한 정신력으로 키티의 곁을 지키고 있었으나 종족의 특성상 언제 광기에 지배당할지 몰랐다.
게다가.
“얼마나 늑대다워졌는지 볼까?”
제리안은 커다란 입으로 웃으며 입고 있던 코트를 열어젖혔다.
“끼잉…….”
그 안에는 아기 여우 세 마리가 열쇠고리처럼 벨트에 매여 있었다. 분명 불편할 텐데 겁에 질려 크게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창백하던 클리드의 낯빛이 더욱 어두워졌다.
“……제리안, 너는 죽어도 싸.”
키티가 무거운 목소리를 짜냈다.
제리안은 이죽거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작은 동물들의 번영을 위해 애쓰는 내가?”
“닥쳐!”
“이것 봐, 넌 마음이 여려서 가족의 원수를 코앞에 두고도 복수하지 못하잖아.”
제리안이 키티에게 바짝 다가가려는 순간, 클리드가 마력을 일으켜 그의 앞에 불꽃을 일으켰다.
“아가씨께 더 다가가지 마라.”
“여우 가주께서 아직 저항할 힘이 남아 있나 보네.”
지이잉―
제리안이 품에 손을 대자 강한 마력이 사위를 채웠다. 총명하던 클리드의 눈동자가 단번에 흐려졌다.
키티는 클리드가 광기에 당하지 않도록 마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제리안은 그 모습을 보고 킥킥 웃었다.
“대업을 이루기 위해서는 약간의 희생이 필요한 법이야, 말랑손. 이카루스 가문의 후손이면서 아직도 그걸 몰라?”
“설령 그렇다고 해도 그 대상을 정할 권한이 네게 있는 건 아냐, 제리안.”
“그래? 몰랐네.”
“넌…… 같잖은 명분을 내세워 편의를 즐기고 있을 뿐이야.”
“그리고 넌 그런 나를 죽이지 못하지.”
제리안은 벨트에 매인 아기 여우 한 마리를 툭 건드렸다.
“끼익!”
자극에 놀란 여우가 가냘픈 몸을 펄떡였다.
“그렇게 내가 나쁘면 이 자리에서 죽여 봐. 이 어린 것들과 함께 말이야.”
“…….”
“못 하겠으면 나는 이만 가고.”
키티는 떨리는 눈으로 원수를 응시했다.
제리안은 지금 미리 준비해 둔 피난처로 향하려 한다. 지금 그를 놓친다면 언제 다시 복수할 수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그를 공격할 기회가 영영 다시 오지 않을지도.
‘하지만…….’
키티는 축 늘어진 아기 여우 셋을 바라보았다. 어린 시절의 자신을 연상시켜 도무지 그 애들을 공격할 수 없었다.
제리안의 말이 옳았다.
여린 마음이 복수를 가로막았다.
“기다려 줘도 공격을 안 하니, 이것 참.”
키티는 그렁그렁 눈물을 매단 채 서서히 멀어지는 제리안을 응시했다.
‘엄마, 아빠, 오빠, 꼬물이들…….’
사랑하는 사람들의 복수를 할 기회를 날려 버렸다는 생각에 구역질이 났다.
조금 더 모진 마음을 가졌더라면 그를 공격할 수 있었을까.
자책감에 고개를 떨구니 숨을 몰아쉬고 있는 고양이 친구들과 클리드의 모습이 보였다.
약간 놀랐을 뿐, 모두가 조금도 다치지 않았다.
“아가씨.”
클리드는 심한 두통을 느끼며 그녀를 불렀다.
솔직히, 그녀가 여우들을 무시하고 제리안을 후려칠 줄 알았다.
그간 연무장에서 봐 온 키티는 충분히 민첩하고 강했다. 제리안을 향한 분노야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어린 여우 수인 몇 마리 때문에 코앞에 있던 적을 공격하지 않다니.
“왜 그랬어?”
키티는 클리드의 물음을 가만히 곱씹었다. 여우 수인들을 인질로 잡은 제리안을 공격하지 않은 건 그저…….
“그게 옳은 일이니까.”
“…….”
“제리안에게 복수하겠답시고 그와 똑같은 선택을 할 수는 없어.”
나는 옳은 선택을 한 거야.
키티는 눈짓으로 클리드에게 말했다.
그를 죽이고 복수를 완료하는 것에만 눈이 멀어 있던 어린 시절에서 한 걸음 더 앞으로 걸어 나온 기분이었다.
“그 아기 여우들은 아무 죄도 없었으니까.”
“…….”
“그리고, 클리드는 내 소중한 친구잖아? 친구의 동족을 해칠 수는 없어.”
키티가 배시시 웃으며 클리드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그녀의 마력이 블루문의 광기를 서서히 몰아내 두통이 점차 흐릿해졌다.
클리드는 여우 수인들을 구해 내지 못했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키티의 복수에 짐이 된 것만 같아 죄책감이 온몸을 짓눌렀다.
그런데도 가슴은 왜 이렇게 두근거리는지.
“어지러울 텐데 조금 쉬어, 클리드.”
키티는 다정한 손길로 클리드의 이마를 쓸어 주었다. 그녀의 곁에 있던 고양이들도 따스한 마력에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 갔다.
클리드가 그녀에게 무언가를 고백하려 입술을 달싹이던 그때였다.
쾅―!
커다란 소리가 들려왔다. 동굴 바깥쪽에서였다. 키티는 정신을 집중해 공기의 흐름을 읽어 냈다.
‘선생님?!’
이건 분명 성질 더러운 늑대의 마력이었다. 키티는 활을 챙겨 벌떡 일어났다.
“클리드, 내 친구들을 부탁해!”
이든은 블루문에 마력이 없었다. 위비스의 가주이기도 하고 지닌 힘이 상당하니 광기에 쉬이 당하진 않겠지만, 제리안이 가지고 있는 건 진짜 블루문이었다.
마나 코어가 어느 정도 형성된 클리드조차 진품 블루문 앞에서는 두통을 느끼며 신음했다.
‘게다가 이든은 여우를 싫어하는 것 같던데.’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키티는 창백해져 소리나 난 곳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 * *
“윽……!”
동굴의 초입, 제리안은 전신을 떨었다. 손에 붙어 있어야 할 손가락 두어 개가 저 멀리 나뒹굴고 있었다.
이든은 먼지 한 톨 묻지 않은 검은 군화로 그 손가락을 짓이겼다.
“제리안. 여우 새끼 몇 마리 품고 있다고 해서 결과가 달라질 것 같았나?”
얼굴에 검은 그림자를 드리운 채 말하는 그의 모습은 죽음의 신을 연상시켰다. 제리안은 압도적인 힘의 차이에 본능적으로 위축되었다.
서걱―
이든이 두 자루의 검을 휘둘렀다. 공기와 함께 제리안의 머리카락과 피부가 베였다.
터져 나온 핏방울이 그가 휘두른 검에 부딪혀 더 작게 쪼개지고, 붉게 물든 칼날이 다시금 바짝 가까워진다.
‘뭐 이딴 새끼가……!’
제리안은 품에 손을 넣어 블루문을 꺼내려 했지만, 이미 앞선 시도로 손가락 두 개를 잃은 후라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이든 위비스가 뿜어내는 살기는 고양이 수인에게 너무도 치명적이었다.
“대체 위비스의 가주인 네가 왜 날!”
이든은 칼날의 피를 털어 내며 무감한 목소리로 말했다.
“늑대는 반려의 원수를 살려 보내지 않아.”
당연한 사실을 말하듯 그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이성적이었다.
그를 이기려면 역시 블루문을 사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제리안은 위험을 감수하고 뒤로 엎어졌다. 머리를 세게 부딪쳐 얼얼하긴 했지만 빈틈을 타 품 안에 손을 넣을 수 있었다.
파앗―
블루문에 그의 손이 닿자 푸른 빛을 띤 마력이 퍼져 나왔다.
벨트에 매여 있던 아기 여우들은 그 힘을 견디지 못하고 기절해 축 늘어졌다.
이든 또한 치미는 두통에 미간을 찌푸렸다. 제리안을 마주한 이후 처음 드러내는 표정 변화였다.
“어지러울 텐데 본능대로 사냥이나 하며 쉬는 게…… 큿!”
제리안은 깊게 찔러 들어오는 검을 양팔로 겨우 막아 냈다. 베인 팔뚝에서 피가 울컥 흘러나왔다.
블루문에 면역도 가지고 있지 않은 젊은 놈이 이렇게 길게 버틸 수 있다니.
‘젠장, 이놈은 괴물이야?’
제리안은 이든과 대적하길 포기하고 황급히 물러났다.
어차피 늑대의 본능은 물어뜯고 사냥하는 것. 운이 좋다면 이든 위비스가 송곳니를 세우고 동굴 안쪽으로 쳐들어갈지도 몰랐다.
‘좋은 구경일 텐데 아쉽군.’
이든이 한쪽 다리의 힘줄을 끊어 버렸지만 여우 수인들이 만든 이동 마도구를 챙겨 왔기에 자취를 감출 수 있었다.
이든은 일순간 사라져 버린 제리안의 냄새를 깊이 들이쉬었다.
어디서든 놈을 만나면 곧바로 알아챌 수 있도록.
“…….”
그러나 밀려드는 두통 때문에 시야가 핑그르르 돌았다. 이든은 벽에 등을 기대고 잠시 앉아 쉬었다.
그 비대한 고양이를 죽였더라면 키티가 기뻐했을 텐데.
동굴 안에서 나오는 걸 보니 키티는 이미 원수와 재회한 것 같았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이든은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지금쯤 상심해 울먹일 키티를 혼자 둘 수 없었다.
그러나 심장이 위태롭게 뛰었다. 시야가 점멸하고 독한 감기에 걸린 것처럼 온몸에 열이 올랐다.
이성적인 사고가 불가능한 수준까지 내몰렸다.
“윽…….”
그가 비틀거리며 다시 벽에 등을 기댄 그때, 어디선가 달콤한 향기가 풍겨 왔다.
“이든 님!”
키티는 놀라 쪼르르 달려왔다. 사위에 흥건한 피가 이든의 것이 아니라는 확신은 있었지만, 그의 상태도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제리안이 이든에게 블루문을 사용했구나.’
고양이의 본능이 이든에게 가까워지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광기 때문에 이성을 잃은 그가 고양이 수인인 자신에게 어떻게 나올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블루문에 당한다는 건 그런 뜻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든을 저렇게 내버려 둘 수는 없어.’
키티는 활을 길게 쥐고 그에게 조심스레 다가갔다. 마력만 불어 넣어 준 다음 그가 정신을 차릴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힉!”
이든이 살금살금 다가오는 키티를 그대로 덮쳐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