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an Academic Fact That Rankers Are Model Students RAW novel - Chapter (124)
제 124화
124화: 전쟁을 미루는 방법(2)
회의실 천장 위엔 룩셈의 제압부대가 대기하고 있다.
만약 자신이 손가락을 튕기면 당장 내려와서 경준을 제압하라고, 피르마는 그들에게 미리 일러 두었다.
하지만.
피르마의 손가락은 딱! 소리도 내지 못한 채 허공에 무력하게 떠 있을 뿐이었다.
그의 손가락이 바들바들 떨린다.
딱! 딱! 딱!
반면 경준은 이상한 듯 계속 손가락을 튕기고 있다.
“이상하네. 왜 안 내려오지? 설마 제가 내는 소리하고 피르마 님이 내는 소리하고 구분하는 거예요? 저 천장 쪽 사람들이?”
경준의 그 질문은 피르마에게 향하지 않았다.
경준은 고개를 팍 든 채 천장을 올려다보면서 묻고 있었다.
천장 위에서 내려올지 말지 고민하고 있는 바로 그 제압부대들에게!
‘대체 어떻게 저 신호를 알고 있는 거지……?!’
이건 경준과의 식사 전 피르마와 제압부대 간의 대화를 엿듣지 않는 이상 절대로 알 수 없을 신호다.
대화를 나누기 전에 경준이 현재 어디에 있는지도 미리 보고받았다.
그는 외교대신의 저택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고로 경준이 엿듣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생각을 읽지 않는 이상, 결코.
‘생각을 읽는 마법이나 아이템은 거의 국보급이다…… 설마 그런 걸 단순한 이세계인이 가지고 있을 리는 없어…… 그것보단 제압부대 쪽에 배신자가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 더…….’
피르마가 머리를 무진장 굴리고 있었을 때.
갑자기 경준이 가로로 고개를 저었다.
마치 피르마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안심해요. 그쪽 제압부대와 딱히 연이 있는 건 아니니까.”
경준은 피르마에게 배신자는 없으니까 안심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
하지만 오히려 그 말이 피르마의 공포심을 더욱 부추겼다.
지금, 피르마는 그 어느 것도 안심할 수 없게 됐다.
위의 제압부대들도.
눈앞의 경준도.
그리고 자신의 생각마저.
모든 게, 눈앞 사내의 손아귀 안에 쥐여 있는 느낌이었다.
발가벗겨진 채 서 있는 느낌이었다.
당연.
경준에게 남의 생각을 읽는 능력 같은 건 없다.
‘뭐, 그냥 티모로 엿들은 거지만.’
티모는 경준에게만 보였다.
고로 티모를 이용하면 그 어떤 비밀스러운 이야기라도 몰래 엿들을 수 있었다.
물론 티모를 감지할 수 있는 마법사가 있다면 큰 문제로 불거졌을 테지만 말이다.
『하이드 캐스팅』을 익힌 경준의 마법을 감지해 내려면 적어도 똑같은 마법을 익힌 자여야만 한다.
예컨대 페어리-엘븐 동맹의 게이트 키퍼인 티키티키라든가.
그 정도쯤 되지 않으면 경준의 마법을 깨닫는 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다행히 룩셈의 제압부대나 피르마는 그 정도 수준은 안 되었나 보다.
경준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맡기며 경직된 분위기를 풀고자 했다.
“시험장에서 감히 한 번 올려다봤을 때도 느꼈지만, 역시 룩셈의 군주님은 명군이십니다. 안력(眼力)이 있어요.”
“……그건 무슨 의도에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겁니까.”
피르마는 적대감이 담긴 눈빛으로 경준을 노려봤다.
경준은 그걸 어깨를 으쓱이는 걸로 아무렇지 않게 받아넘겼다.
“의도는요. 그냥 진짜 그렇게 느껴서 그래요. 군주님께서 저를 아군으로 끌어들이라고, 분명 응할 거라고 하셨다면서요? 사실이에요. 제가 저녁 초대에 응한 것도 다 그거 때문이었거든요.”
“……예?”
피르마는 순간 당황했다.
지금까지 자신을 옥죄여 오지 못해 안달인 것처럼 마구 압박하더니, 갑자기 아군이 되겠다고 한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비로소 주도권은 전부 저 경준이라는 이세계인에게 넘어가 버렸다.
‘이렇게까지 휘둘리다니…… 군주님을 볼 면목이 없다. 그래도 계속 이대로 있을 수는 없지.’
피르마가 풀어진 표정을 다시 바로잡으며 본래 외교대신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외교의 재개였다.
피르마가 경준에게 다시금 확인차 물었다.
“그 말인즉슨, 에너지 타워의 공급은 못해 주셔도 아군이 될 의향은 있으시다는 겁니까?”
“정확해요.”
꿀꺽꿀꺽.
경준이 남은 와인을 마저 마셨다.
술의 기운이 순간 확 펴졌지만 곧바로 해독되어 배 속에 닿았을 땐 이미 포도 주스였다.
경준이 말했다.
“자잘한 건 말고, 이번처럼 대형으로 변종 몬스터가 몰려올 때 저한테 개인적으로 부탁하세요. 그럼 그때 제가 제 사람 이끌고 방어전을 도와드리러 오겠습니다.”
요번처럼 플레이어를 몇 천 명씩 대거 모아 방어전을 펼치는 게 아니라.
경준에게만 단독으로 의뢰를 해서 방어하도록 한다.
“물론 합당한 대가는 받겠지만요.”
룩셈이 지불할 합당한 대가라는 건 가치만 있으면 솔직히 뭐가 되든 상관없었다.
사실 여기서 경준이 노리던 건 단순히 돈과 아이템만이 아니었다.
룩셈의 마음을 살 수 있다.
이게 첫 번째였고.
그리고 두 번째 이득은 바로 ‘경험치 독식’이었다.
룩셈 방어전에 참가하기 전에는 레벨 150이었던 경준.
원래는 166이었지만 마신 영접으로 16이 감소해 150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 경준의 레벨은 175였다.
‘이번 룩셈 방어전만으로 레벨이 자그마치 25나 올랐어.’
경험치 수치로만 따지자면 수억의 경험치에 해당됐다.
그런데 다음 방어전 때 이보다 훨씬 더 많은 경험치를 독차지하게 된다면?
그러면 레벨은 더욱 빠르게 오를 테고, 차원 공부방의 효과로 인해 공부할 시간도 더욱 늘어나게 될 거다.
굳이 사냥하러 이곳저곳 갈 필요 없이 몇 달에 한 번씩 룩셈에 와서 진창 사냥하고 가면 되는 것이다.
경준은 피르마와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이번에 제가 선보였던 에너지 타워하고 스크롤 있잖아요? 말했듯이 에너지 타워는 제작에 좀 시간이 걸리니 룩셈 전체를 방어할 정도로 많은 공급은 힘들지만…… 그래도 스크롤은 가능할 거예요.”
“스크롤이라면 설마 그 종이비행기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건 당신의 독자 마법인 게…….”
“제 마법이 맞는데, 제가 좀만 손보면 다른 사람도 쓸 수 있게 할 수 있어요. 페어리-엘븐 동맹에서 배워 온 기술을 제가 좀 변형시킨 거거든요.”
“헉! 페, 페어리-엘븐 동맹……!”
피르마의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인간의 몸으로 페어리-엘븐 동맹의 기술을 배워 오다니……!’
게다가 그걸 자기 입맛에 맞게 변형까지 했다!
정말 재능 있는 마법사가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일이었다.
‘잠깐…… 그렇다면 저 사람의 그 종이비행기 마법을 우리도 쓸 수 있게 된다는 건가?’
시상식 때 이운영GM이 틀어 준 영상 마법으로 그 위력은 톡톡히 보았다.
반경 50m가량은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남김없이 전부 쓸어버리는 강력한 폭격 마법.
물론 룩셈의 마법사 중에서도 그 정도 위력을 낼 수 있는 마법사는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만약 그 종이비행기를 마법사가 아니라 마법을 쓸 수 없는 기사들에게 쥐여 준다면……?’
마법을 쓸 수 없는 기사가 마법을 쓸 수 있게 된다는 것.
그것도 따로 마법 훈련 없이 종이 단 한 장만으로!
그건 엄청난 변화였다.
전투…… 아니, 전쟁의 방식 자체를 뒤바꿔 놓을 엄청난 무기였다.
“어때요? 괜찮지 않아요? 제 말대로 하는 게 오늘처럼 이벤트 열고 막 그러는 것보단 훨씬 싸게 먹힐 거 같은데. 그리고 나라의 운명이 걸린 일이잖아요? 그러니 저도 이걸로 딱히 가격 장난할 생각은 없어요. 믿을 만한 가격에 공급해 드릴 겁니다.”
“아아…….”
피르마가 경준의 말에 급히 화색이 되었다.
하나 이내 표정을 죽이며 다시 근심 어린 말을 꺼내기를.
“그건…… 그건 정말 좋은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결국 이번 일의 원흉은 저희를 탐탁지 않게 본 프랑소아 왕국과 도이치 왕국입니다. 변종 몬스터는 덤일 뿐이죠. 이번처럼 계속 좋게 넘긴다고 해도 언젠가는 그들이 또 다른 트집을 잡아올 테고, 심하면 전쟁까지 불사할지도 모릅니다.”
두 왕국은 룩셈이 군사적으로 위협이 되지 않을 때까지 계속 온갖 행패를 부려 올 것이다.
“저희 주군께서는 이를 별로 머지않은 시기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그렇게 되기 전에 오히려 역공을 칠 생각이었습니다. 당신의 에너지 타워는 그 작전에 힘을 붙여 줄 최고의 아이템이라 봤습니다.”
경준에게 돈을 주고 에너지 타워를 사고, 이후에는 룩셈에서 알아서 한다.
그게 가장 낫다고 피르마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방금 말씀하신 그 종이비행기도 얻을 수만 있다면…… 전쟁은 분명 성공할 겁니다.”
완벽한 방어의 에너지 타워.
강력한 폭격의 종이비행기.
그리고 룩셈의 숙련된 군사력.
이 세 개만 갖춰다면 수백 년간 지속되어 온 프랑소아와 도이치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5 대 5의 도박이었던 게, 오늘 이야기를 기점으로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가 되었다.
물론 이 모든 건 경준이 룩셈의 편에 서서 전쟁을 지원해 준다는 게 전제.
“아뇨, 아뇨. 전쟁은 안 돼요. 너무 일러요. 적어도 지금 당장은 절대 안 됩니다.”
그리고 경준은 그 전제를 단칼에 거절했다.
“윽…….”
경준의 거절에 피르마가 뼈아픈 표정을 짓는다.
경준이 그런 피르마를 짜게 식은 눈으로 보며 덧붙였다.
“아직 전 전쟁에 휘말릴 순 없어요. 만약 제 지원을 바탕으로 전쟁을 벌인다면 전 오히려 편을 바꿔 룩셈의 적으로도 설 수 있어요.”
“그, 그건……!”
“그러니까 전쟁은 아직 시기상조란 거예요.”
적어도 경준의 입시가 끝나기 전까지는 그런 귀찮은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됐다.
하지만 이후 영지의 미래를 위해서는 룩셈을 꼭 아군으로 끌어들어야만 했다.
공부 영지에서 흑비촌 다음으로 가장 가까운 두 왕국이 바로 프랑소아와 도이치다.
그리고 그들의 뒤통수에 룩셈이 끼어 있다.
지정학적으로 룩셈을 아군으로 끌어들여야 나중에 공부 별장이 세간에 알려졌을 때 순조롭게 두 왕국을 견제할 수 있다.
룩셈과 함께, 두 왕국을 앞뒤로 압박하는 모양새를 경준은 원하고 있었다.
물론 그 시기는 입시도 수능도 모두 끝난 후여야만 한다.
그 전까진 평화롭게 공부하는 것이, 경준의 목표다.
“전쟁을 할 거면 적어도 1년 반 뒤에 하세요.”
“1년 반…… 그건 너무 깁니다.”
피르마는 고개를 저으며 계속 말을 이었다.
“비록 전쟁이 아니더라도 당신이 우리 룩셈을 지원하는 순간 바로 프랑소아와 도이치는 그걸 트집을 잡아 막 이것저것 간섭해 올 겁니다. 그러다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먼저 전쟁을 걸겠지요. 솔직히 당신의 능력이 너무 뛰어나기에 이건 1년 반도 채 걸리지 않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과연 프랑소아와 도이치가 경준의 기술을 보고도 1년 반 동안이나 손가락이나 빨고 있을까?
결코 아니었다.
획기적인 수로 시간을 늦추지 않는 이상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나.
“걱정 마요.”
경준은 그 획기적인 수를 알고 있었다.
“시간 늘리는 건 걱정 마세요. 제 말만 잘 들으면 1년 반 정도는 충분히 뻐길 수 있을 테니까.”
“……뾰족한 수가 있으십니까?”
피르마에겐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오히려 시간을 늦추려고 발악하는 게 보이는 순간 프랑소아와 도이치는 더욱 강하게 옥죄여 올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이죠.”
하지만 경준은 다른 듯했다.
“그 뭐냐, 단순한 이야기 하나를 만들어 보는 거예요.”
“이야기……?”
“예, 이야기. 제가 아는 선생님한테 살짝 배웠거든요.”
입시든 입사든 경영이든, 그 무엇이 됐든.
결국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 나가느냐, 라고.
“그러니까 이런 거예요. 잘 들어 봐요?”
경준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앞으로 월드의 판도를 완전 뒤바꿔 버릴, 아주 소름 끼치는 이야기를.
…….
미리 살짝 일러 주자면.
경준의 이야기를 다 들은 피르마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는 분명, 악마다.
그리고.
룩셈은 그 악마가 내려 준 동아줄을 잡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