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102)
제102화
102화. 예상치 못한 습격(3)
내가 4계위 악마와 싸우기를 선택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로델린 파티가 죽으면 안 되는 탓도 있지만.
‘턴 버티기야.’
일명 버티기 퀘스트.
일정 턴을 버틸 경우, 누군가가 등장해 구해 주거나 상대방에게 특별한 이유가 생겨 전장을 떠나는.
흔하고 진부한 클리셰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엄청 훌륭한 클리셰였다.
[히든 퀘스트]-4계위 악마, ‘폭염의 비네스’를 처치하세요.
보상 : [마족의 피], 300exp, 30골드
페널티 : 사망
예상대로 히든 퀘스트창이 떠올랐다.
어디 보자. 보상 좋고, 페널티 무난(?)하고, 그리고…….
“…….”
눈을 비볐다. 내 눈이 잘못된 게 틀림없었으니까.
하여튼 실눈이라 그런지, 문제가 많다니까. 하하하!
그런데.
-응~ 버티기 아니야~ 죽여야 해~.
그렇게 쓰여 있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쓰여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몸이 덜덜 떨렸다. 압박감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4계위 악마와 한판 뜨겠다고 선언한 상남자에서, 갑자기 왜 하남자가 된 거냐고?
그야…….
‘버티는 종류의 퀘스트가 아니었어!?’
진짜 상상도 하지 못한 퀘스트다.
분명 ‘몇 턴을 버텨라’라는 식의 히든 퀘스트가 뜰 거라고 예상했는데.
그게 아니라니?
‘이건 너무하잖아! 아무리 독특한 게 어그로를 더 끈다지만, 이건 너무하잖아!’
그냥 다 죽고 끝나는 엔딩이잖아!
내 흔하고 진부한 퀘스트 돌려 달라고!!
‘……이거 취소 안 되려나?’
생긴 것과 달리 사려가 깊은 비네스이니, 내 사과를 받아 줄지도 모른다.
“후후, 비네스 님. 뭔가 오해하신 것 같군요. 제 말은 그게 아니라…….”
“……닥쳐라. 지금 당장 널 찢어발기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억누르고 있으니.”
응, 그렇구나. 취소가 안 되는구나?
이미 내 죽음은 확정인 모양이다.
‘저 괴물을 죽이라니. 이건 너무하잖아!’
현재 내 레벨은 27이다. 그리고 비네스의 레벨은…….
[Lv. 73]단순 계산만으로도 무려 46레벨 차이가 난다.
레벨이 오를수록 더 올리기 힘들다는 걸 감안한다면, 그 차이는 그보다 훨씬 클 거다.
계산 실패다.
내가 바보짓을 한 게 아니다.
이따위 히든 피스를 넣고, 퀘스트도 이상하게 만든 제작진이 미친놈들이지.
“……이해할 수가 없구나. 나에게 싸움을 걸다니.”
예, 저도 이해할 수가 없네요.
“2군단이 뭐라고 목숨을 건단 말이냐. 건방 떠는 놈들이 많아졌다고 듣긴 했지만…… 이건 심하군.”
나한테 잘못을 돌려?
어? 화나네?
애초에 네가 오지 않았다면 이런 일도 안 생기지 않았을까?
“후후, 부탁이 있다면 말하라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한 것뿐입니다.”
“부탁에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언제는 인간의 부탁은 소박하기 짝이 없다더니…… 악마의 위상을 혼자서 다 떨어뜨리시는군요.”
부들부들.
팩트 폭행은 악마도 참을 수 없었던 걸까.
“2군단과는 엮이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겠군.”
펄럭-.
웅크리고 있던 비네스가 날개를 펼쳤다.
두 발로 서 있는 악어, 그리고 한 쌍의 거대한 박쥐 날개.
온몸에 번들거리는 정체불명의 마법 문양.
저게 바로 비네스의 본모습이었다.
펄럭-.
비네스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나를 죽이겠다는 마음이 여기까지 전해져 왔다.
‘쯧, 싸울 수밖에 없겠네.’
힘든 상황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생각은 없다.
애초에 내가 비네스와 싸우기를 결정한 건, 턴 버티기를 성공시킬 전략이 있었다는 얘기.
‘일단 버텨 보자. 이후의 일은 그때 생각하고.’
내 예상대로라면, 곧 비네스의 뒤에 있는 역오망성에서 커다란 불길이 하나 일어날 거다.
화륵-.
예상대로다. 역오망성의 오른쪽 위. 그곳에 녹색 불꽃이 피어올랐다.
‘4계위 악마, 폭염의 비네스.’
그렇다. 나는 저 악마의 공략법을 알고 있다.
3장에서 갈톤 지방에 방문할 시, 마주하는 악마이기 때문이다.
그럼 비네스가 리즈벨트의 사역마라는 정보는 왜 몰랐냐고?
‘안 알려 주는데 그걸 내가 어떻게 앎?’
비네스는 갈톤 지방으로 들어오는 인간을 이유 없이 습격하고 죽인다.
갈톤 지방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비네스를 죽여야 했기에 싸울 때가 간간이 있었는데, 그 어느 경우에도 ‘리즈벨트’라는 이름을 거론하지 않았다.
그러니 모르는 게 당연했다.
방금 비네스와 대화를 나누며 알게 되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정보다.
“제로! 나를 갖고 놀다니! 불태워 버리겠다!”
화륵-.
이번에는 역오망성의 오른쪽 아래. 그곳에서 녹색 불꽃이 피어올랐다.
오른쪽 위와 오른쪽 아래. 총 2개의 불꽃이 피어오른 거다.
‘저게 바로 비네스의 마계술이야.’
[마계술]은 악마마다 다르며, 각자의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비네스의 경우 등 뒤에 있는 역오망성에서 불꽃이 하나씩 피어오르는데, 총 5개의 불꽃이 피어오를 경우.
‘궁극 마법, 미티어 샤워가 발동하지.’
활활 불타는 유성들이 하늘을 수놓으며 떨어진다. 범위는…….
‘맵 전체.’
피할 수 없는 광역기이자, 비네스가 자랑하는 최고의 마법.
대미지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 현재 내 레벨은 27, 체력 스탯은 61.
유성에 맞기는커녕, 스치기만 해도 죽을 체력이다.
미티어 샤워가 발동되면 그냥 죽었다고 보면 된다.
듣는 것만으로도 사기적인 비네스의 [마계술].
하지만 무적은 아니다.
애초에 3장에서 공략이 가능한 악마니까.
공략법만 안다면 충분히 해 볼 만한 놈이라는 거다.
‘비네스 공략에서 중요한 건 세 가지.’
첫째, 지속적으로 방해해야 한다.
비네스의 [마계술]은 1턴이 지날 때마다 녹색 불꽃이 하나씩 피어오르며, 5턴이 지나면 발동되는 방식.
하지만 중간에 피해를 입힐 경우, 불꽃이 초기화된다.
다시 첫 번째 불꽃부터 시작한다는 거다.
둘째, 5턴을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
공격, 방어나 회피, 그리고 회복.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면 4턴째, 4개의 불꽃이 쌓였을 때 공격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다.
비네스가 애써 쌓은 4개의 불꽃이 한 번에 초기화되는 것이니 턴을 효율적으로 사용한다는 이점도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
세 번째.
‘추가 대미지.’
누적된 불꽃 하나마다 25%의 추가 대미지가 들어간다.
불꽃이 하나일 때 공격을 성공시키면 25%의 추가 대미지, 2개일 때 피해를 입히면 50%의 추가 대미지, 3개일 때는 75% 추가 대미지, 그리고 불꽃이 4개일 경우.
‘100%의 추가 대미지.’
즉, 2배의 대미지를 넣을 수 있게 된다. 물론, 디메리트도 존재했다.
까딱 실수하기라도 하면, 바로 비네스의 [마계술]이 발동한다는 거다.
‘미티어 샤워’라는 필드 전체 마법이.
지금 내 체력으로는 스치기만 해도 즉사.
반드시 저지해야 한다.
때문에, 원래라면 불꽃이 3개일 때 공격을 하며 75%의 추가 대미지를 입히는 전략을 썼겠지만…….
‘나한테는 비장의 무기가 하나 있거든.’
조금 위험하긴 하지만, 내 생각대로라면 100% 통한다.
애초에 27레벨일 때 4계위와 싸우는 거다.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서 이기는 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내 힘을 보여 주마! 파이어 볼!”
화염계의 기초 마법. 하지만 위력은 그렇지 않았다.
지름이 2m 정도는 되는 듯한 불타는 바윗덩어리가 나를 향해 날아왔다.
곧장 검에 손을 올렸다.
레스터 가문류 첫 번째 비기.
일섬(一閃).
콰앙! 콰콰콰쾅!!
[일섬]에 맞은 바위가 말 그대로 터졌다.동시에 돌 조각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아쉽게도 비네스에게 타격을 주지는 못했다.
‘상쇄까지가 한계네. A등급 판정을 받는 일섬이라면 타격도 가능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플뢰르 가문의 후계자’의 칭호 효과로 20% 공격력 상승효과까지 받는 나다.
그런데 상쇄하는 게 고작이라니.
‘이거…… 쉽지 않겠는데?’
생각하는 와중에도 몸은 움직이고 있었다.
쏟아져 내리는 돌 조각을 온몸으로 맞으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후후, 제 차례군요.”
검을 똑바로 세우며 자세를 취했다.
검도의 기본, 중단자세.
루시드 가문류 네 번째 비기.
하늘 가르기.
검을 내리긋자, 잠잠하던 하늘에 폭풍이 휘몰아쳤다.
[신의 모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스킬 중, 가장 강력한 기술.현재 내가 가진 최고의 공격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스팟-!
이미 비네스는 그곳에 없었다.
피한 거다.
종이 한 장 차이도 아니다. 한 5천 장 차이는 되는 것 같다.
‘스탯의 차이 때문이겠지.’
본래, A등급 스킬이 보여야 할 위용은 엄청나다.
하늘과 산, 땅을 가르는 게 기본 중의 기본.
하지만 내가 [신의 모방]으로 사용한 기술들은 그런 위용을 보이지 않는다.
스탯이 절망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잠재력 도박의 단점이지.’
그래도 A등급 스킬은 A등급. 웬만한 적들은 이걸로도 끝장낼 수 있다.
문제는.
‘저건 예상 범주 외잖아, 빌어먹을 개발진 자식들아.’
비네스가 등장할 걸 미리 알았다면, 그에 맞게 스탯을 올려놨을 것이다.
하지만 알지 못했다. 그럼 어쩌겠는가?
처맞아야지.
‘문제는 그게 나라는 거지만.’
아무튼, 이러한 이유로 비네스가 내 공격을 피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파괴력도 파괴력이지만, 속도가 너무 느리다.
비네스의 입장에서 내 기술은 거북이 수준일 것이다.
준비 동작, 시전 동작, 발동하는 순간의 동작까지.
하나하나 다 보이는데 못 피할 리가 없다.
특히, 각도가 자유롭고 범위가 넓은 [일섬]과 달리 [하늘 가르기]는 오직 수직으로만 사용 가능한 기술.
이 정도면 못 피하는 게 더 이상했다.
“쯧!”
실험을 위해 한 행동이긴 하지만,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아무리 모방해 봤자 진짜는 될 수 없는 거다.
조금 전 얻은 [플뢰르 가문류]로 진짜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지만.
플뢰르 가문의 검술은 사용하지 않을 거다.
C등급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직 어떤 효과를 보이는 검술인지, 어떻게 공격이 전개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게임에서 봤던 스킬도 아닐뿐더러, 르앵과의 싸움으로 3형과 5형이 어떤 것인지만 대충 아는 상태.
어떤 기술이 나갈지도 모르는데 함부로 사용할 수는 없는 일이다.
화륵-.
역오망성의 아래쪽 중앙. 세 번째 녹색불이 타올랐다.
원래라면 여기서 끊어야 한다.
네 번째 불꽃이 피어올랐을 때 공격이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하지만 참아야 한다.
레스터 가문류 첫 번째 비기.
일섬(一閃).
후웅-.
이번에도 비네스는 손쉽게 피했다.
각도가 자유롭고, 범위가 제법 넓은 [일섬]인데도 말이다.
이걸로 확실히 알게 됐다.
내 공격은 비네스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걸.
“크큭! 네놈의 목숨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
“후후, 그런가요? 조금 더 즐기시는 게 어떻습니까.”
“그건 네놈이 죽은 후에 해도 늦지 않다.”
시체를 갖고 놀겠다는 건가. 악취미다.
비네스도, 나도, 특별한 행동을 하지 않으며 탐색전에 들어갔다.
그러자.
화륵-!
역오망성의 왼쪽 아래. 네 번째 녹색 불꽃이 피어올랐다.
“크하하! 제로! 날 모욕한 대가를 치러라!”
절망적인 상황이다.
비네스의 계획대로 흘러갔고, 곧 맵 전체에 유성이 떨어지는 ‘미티어 샤워’가 펼쳐질 거다.
하지만 계획대로 된 건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누가.
“마계술을 쓰는 걸 허락해 준다고 했습니까?”
촤륵-.
[눈 뜨기]를 사용함과 동시에 회중시계를 꺼내 들었다.정확히는, 회중시계 모양을 한 ‘은빛 섬광’을.
비네스를 향해 조준한 후 버튼을 누르자, 한 줄기 마나가 그를 향해 쏘아졌다.
피슉!
“큭!?”
비네스가 몸을 움찔 떨었다.
동시에, 역오망성에 있던 4개의 녹색 불꽃이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이, 이게 무슨……!”
미안한 말이지만, 아직 이쪽 턴이 끝나지 않았다.
은빛 섬광은 캐스팅 시간이 필요 없는 물건이니까.
검을 치켜올리며 자세를 취한 후, [신의 모방]을 사용했다.
루시드 가문류 네 번째 비기.
하늘 가르기.
하늘에 떠 있던 구름이 갈라짐과 함께.
쩌억!
비네스의 왼쪽 날개가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