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108)
제108화
108화. 예상치 못한 습격(9)
우리도 정상이 아니지만, 그건 비네스도 마찬가지였다.
오른팔을 힘겹게 휘두르며 우리와 맞서 싸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역오망성의 문양에 더 이상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
[마계술]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인 것 같았다.“죽어라!”
터엉!
“쿨럭!”
알렉스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토해졌다.
정상인 상태가 아니라지만, 상급 악마는 상급 악마.
한쪽 팔만으로도 우리 모두를 상대하는 중이었다. 아니, 오히려 압도하고 있었다.
‘레이몬의 부재가 너무 크다!’
비네스의 공격을 막으며 공격 기회를 만들어 주던 레이몬.
그가 없으니 비네스의 공격을 막아 낼 방법이 없었다.
아니, 딱 하나 있긴 했다. 바로.
‘몸으로 받는 것.’
한 명이 비네스의 공격을 몸으로 받고, 그 틈을 노려 다른 사람들이 비네스를 공격한다.
‘일단 질서의 방벽을 돌려쓴다!’
레이몬은 이미 아웃, 루나는 질서의 방벽을 한 번 사용한 상태.
그러니 제외다.
알렉스, 로델린.
대미지를 80% 감소시켜 주는 질서의 방벽을 한 사람씩 주고받으며 말 그대로 공격을 온몸으로 받아 냈다.
“제로 군!”
이번에는 내 차례였다.
검을 뽑아 들고 자세를 취하자, 비네스가 움찔 몸을 떨었다.
[일섬]과 [하늘 가르기].싸움 초반, 나한테 지독하게 당했던 기술들.
그래서 그런지, 최소한의 방어까지 포기하며 나에게 달려들었다.
콰앙!!
“커헉!”
이를 악물며 충격에 대비했건만.
입에서 절로 비명이 토해졌다.
진짜 아프다. 죽을 것 같다.
‘질서의 방벽이 있었는데도 이 정도라니?’
80%의 대미지를 줄인 상태에서도 이 정도 충격인데, 100%의 충격은 대체 어떤 것일까.
상상하기도 싫었다.
그래도 손해만 본 건 아니다.
“크아아아악!!”
로델린의 하늘 가르기, 루나의 일섬, 알렉스의 아랑까지.
방어를 포기한 비네스였기에, 제법 큰 피해를 입힐 수 있었다.
온몸에서 검은 피를 쏟아 내는 비네스.
놈이 무릎을 구부리며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쿵!
……다시 제대로 섰다.
진짜 희망 고문 하나는 제대로 하는 놈이다.
“이, 이 나쁜 놈아! 이제 좀 그만 죽으라고!”
마나가 없는 유리디아는 돌멩이를 던지며 싸우는 중이었다.
유리디아에게도 질서의 방벽을 쥐여 줄까 생각해 봤지만, 마법사인 그녀는 원체 피통이 작다.
질서의 방벽의 힘을 빌리더라도 버티지 못할 거다.
“크헉…….”
알렉스가 땅에 검을 박아 넣은 채 신음했다.
“꺄악!”
유리디아는 비네스가 던진 돌멩이에 얻어맞고 쓰러졌다.
결국, 싸움의 끝이 도래했다.
한 명, 한 명 쓰러지기 시작한 거다.
알렉스, 유리디아, 루나, 마지막으로 로델린까지.
비네스가 약해진 탓에 죽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졌다는 것.
그건 기정사실이었다.
‘젠장! 아카데미에서 지원은 아직인가? 이 정도로 난리를 피웠으면 알아차릴 때가 됐잖아?’
엘레스터 한 명만 와도 우습게 이길 수 있을 텐데.
진짜 이 히든 피스가 어떻게 끝나려는 건지, 감도 안 잡힌다.
“제, 제로 군…….”
“……예, 선배님.”
“아까 내가 말했던 것 기억하겠지.”
위험해질 경우 자신을 버리고 가라는 말.
물론, 기억한다. 아니.
“후후, 글쎄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군요.”
“제로 군! 지금은 장난칠 때가 아니네. 한 명이라도 더 살아야 해!”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나도 그 정도는 안다.
하지만 로델린을 포기할 수는 없다.
아니, 여기 있는 그 누구도 포기하지 않을 거다.
만약 포기한다면, 버려도 되는 캐릭터가 있다면 그건…….
‘나 하나뿐이야.’
물론, 쉽게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비네스 또한 힘이 빠진 상태. 이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방법이 생길지도 모른다.
로델린, 유리디아, 레이몬, 알렉스, 루나.
쓰러져 있는 아이들 곁을 하나하나 지나치며, 비네스 앞으로 향했다.
“후후, 꼴이 말이 아니시군요.”
“……네놈 덕분이다. 그것도 이제 끝이지만!”
비네스가 마기를 터뜨리며 본인의 건재함을 과시했다.
아직도 힘이 남아 있다니.
내가 [일섬]과 [하늘 가르기]를 사용했더라도, 결과는 똑같았을 거다.
“후후, 거래하시죠.”
“……거래?”
“예. 제 목숨 하나를 받아 가는 대신, 저 아이들은 살려 주는 겁니다.”
“크하하! 내가 왜 그걸 들어줘야 하지? 그냥 다 처죽이면 되는데 말이다!”
그야.
바로 내가 이 세계의 유일한 변수 창출자니까.
비네스를 향해 한 걸음 내디뎠다.
서로의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까운 거리.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최근, 남부 지역에서 열심히 돌아다니시는 것 같던데. 바쁜 와중에 여기까지 오시고, 참 고생이 많으십니다.”
“네, 네놈이 그걸 어떻게……!”
“후후, 제가 여기서 ‘남부’라고 소리치고 죽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비네스는 우리 모두를 죽이겠다 선언했지만, 그의 몸 상태상 그러기는 힘들다.
최소 한 명 이상은 도망칠 수 있을 것이다.
“어머니께서 굉~장히 곤란해지시지 않을까요? 몇 년 동안 공을 들인 일인데 엎어지면 짜증이 엄청날 텐데요.”
“이노옴……!”
비네스가 오른팔을 들어 올렸다. 나를 당장이라도 쳐 죽이겠다는 것처럼.
하지만 내지르지는 못했다.
리즈벨트는 상당히 히스테리적인 여자이기 때문이다.
악마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좋다, 거래하도록 하지. 하지만 조건을 추가하겠다.”
“후후, 무엇인가요?”
비네스가 손을 젓자, 허공에 불타는 종이와 펜이 나타났다.
‘악마의 계약서’다.
“네 목숨을 내놓겠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네 부탁대로 저 아이들은 살려 주지. 대신 네놈의 영혼을 구속하겠다. 딱 100년 정도만 갖고 놀다 소멸시켜 주도록 하마.”
비네스가 킬킬거리며 웃었다.
악마는 인간의 공포심, 욕망, 고통에서 희열을 얻는다.
그리고 그건 마계의 힘이 된다.
‘영혼을 구속하겠다는 건, 악마에게 있어 적금 통장이나 마찬가지지.’
지속적으로 고통을 주며, 인간이 느끼는 고통에서 힘을 얻는다.
영혼을 고문하는 거다. 수십 년 동안 말이다.
그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인간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런 계약을 하는 인간은 없었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난 멍청이가 아니니까.
“왜, 갑자기 하기 싫어졌나? 한 놈 정도 죽여야 사인을 할 마음이 생기려나 보군.”
“……후후, 그럴 리가요.”
불타는 펜을 집어 들었다.
로델린, 루나, 알렉스, 레이몬, 유리디아.
저들이 위험에 빠진 건 모두 나 때문이다.
내가 이 세계를 바꾸려 했기에 죽음을 앞두게 된 거다. 그러니까.
내가 책임지는 게 맞다.
‘변수는 충분해.’
이미 게임과 꽤 달라진 상태다.
루나의 생존, 카론과의 거래, 그리고 내 죽음.
미래를 바꿀 변수로는 충분하다.
힘들겠지만, 로델린 파티는 나 없이도 잘 나아갈 수 있을 거다.
어쩌면 루나도 저 파티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고, 다른 친구도 많이 사귈 수 있겠지.
‘그걸 못 본다는 게 아쉬울 뿐.’
펜을 끄적거리려던 때였다.
“제로! 당장 거기서 손 떼!”
“제로 군! 그만두게! 계약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닐세!”
계약서에 무슨 내용이 적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희생을 하려는 건 깨달았을 거다.
“내 다리잖아! 움직여! 제발!”
주먹으로 다리를 때리던 루나가 안 되겠다 싶었는지, 기어 오기 시작했다.
나밖에 모르는 바보 같은 우리 루나.
건강하기만 하면 좋겠다. 될 수 있으면 친구도 좀 사귀고.
“아, 아아아아아악!!”
목소리에서 알 수 있었다. 루나가 절규하기 시작했다는 걸.
계약서의 내용은 꼼꼼히 확인했다.
상황이 상황이라 그런지 비네스도 장난질을 치지는 않았다.
내가 서명만 한다면, 나를 제외한 모두의 목숨은 보장된다는 뜻이다.
‘제’ 자를 쓰고, ‘로’ 자를 쓰려던 때였다.
“뭐야? 요즘 아카데미에서는 악마랑 대련도 하나? 내가 없는 사이에 참 많이도 변했네.”
푸른빛이 감도는 검은 머릿결.
밤하늘 같은 머리칼을 가진 여성이 내 옆에 서 있었다.
‘뭐야, 언제 왔지?’
전혀 기척을 못 느꼈는데.
그리고 이건 비네스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그도 정체불명의 여성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아가씨, 대련을 하는 게 아니라 진짜 악마입니다. 아카데미에서 기르는 놈은 더더욱 아니고요.”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
메이드복을 입은 중년 여성이 로델린의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
“아, 그런 거였어? 그럼 죽여도 되는 거지?”
“예, 아가씨. 대신 살살 하셔야 합니다. 지반이 불안정하거든요.”
일상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잔잔하고 평화로운 대화가 이어졌다.
악마를 앞에 두고 있는데도 말이다.
“오, 뭐야? 악마의 펜이네? 되게 오랜만에 본다.”
“……예?”
“나한테 잠깐만 빌려주지 않을래?”
“예? 아…… 예. 그런데 누구신지……?”
대답은 뒤쪽에서 들려왔다.
“언니?”
로델린의 목소리였다.
언니라고? 로델린에게 언니는 딱 두 명뿐이다.
첫째 루시아와, 셋째 로웰.
유모의 존재, 그리고 유유자적함이 가득 느껴지는 말투.
그렇다면……!
‘루, 루시아!?’
루시드가의 첫째. 제국의 십검(十劍) 중 하나.
8성 기사, 루시아 드 루시드.
“로델린, 하고 싶은 얘기가 많겠지만 이따가 하자꾸나. 지금은 우선…….”
이놈의 처리가 먼저거든.
루시아의 목소리와 눈빛이 변했다.
“이, 인간……!”
기세가 바뀌었다는 걸 눈치챈 비네스가 주먹을 휘둘렀다.
루시아의 대응은 간단했다.
악마의 펜을 한 손으로 쥔 채 휘두른 것.
그러자.
루시드 가문류 네 번째 비기.
하늘 가르기.
쩌억-.
하늘이 반으로 갈라졌다.
* * *
“자, 다 됐다. 달라붙은 눈만 빼면 멀쩡해. 사제님에게 치료를 부탁드려야 할 것 같구나.”
루시아의 유모가 나를 치료하면서 한 말이다.
마법 때문에 눈이 붙은 게 아니라 실눈이라서 그런 건데.
하지만 조용히 있기로 했다.
루시드가의 유모는 굉장히 강한 사람이니까.
나 같은 건 한 번에 보내 버릴 거다.
“킥킥! 멀쩡한 눈이 이상하대. 키키킥!”
루나가 배를 잡고 자지러질 듯이 웃었다.
하나도 안 웃기는데 말이다.
“루나 양, 사람의 신체적 특징을 갖고 놀리면 안 되는 겁니다. 제가 루나 양의 성격을 가지고 놀리지 않는 것처럼요.”
“……그게 무슨 뜻일까? 내 성격에 문제가 있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오, 우리 루나가 내 말뜻을 해석하는 데 성공하다니.
정말 훌륭하게 성장했구나.
이제 이 아빠는 죽어도 여한이…… 많을 것 같네.
그러니까 그만 깨물어, 루나야.
“어휴, 살살 좀 하시라니까. 숲이 사라졌잖아요!”
“유모, 악마 좀 잡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니야?”
“뭐, 됐습니다. 숲 보상금은 아가씨 용돈에서 깔 테니까요.”
“히잉! 너무해! 요즘 과잣값 엄청나게 올랐단 말이야!”
루시아가 유모의 다리를 붙잡은 채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저게 서른 중반이라고?
믿을 수가 없다. 얼굴도 동안이지만, 하는 짓거리가 우리 루나와 다를 바가 없었다.
“아, 몰라! 나 여기서 누워 있을 테니까 밥이나 갖다 줘.”
루시아가 맨땅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게임을 했기 때문에 루시아가 자유분방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저 정도일 줄이야.
‘침대의 여왕, 루시아.’
루시아의 수많은 이명 중 하나였다.
침대에서 엄청나다기보다는(?), 침대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해서 생긴 별명.
침대의 지박령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정보에 따르면 깨어 있는 시간의 95%는 드러누워 있는 것 같다고 한다.
말도 안 되는 정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모습을 보니 거짓 정보는 아닌 것 같다.
“이게 무슨 추태입니까! 당장 일어나세요!”
8성 기사 루시아에게 당당히 소리치는 사람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로델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