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112)
제112화
112화. 후일담(2)
‘허억!’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던 아지스 후작이 정신을 차렸다.
너무 끔찍한 경험을 한 탓일까.
드웨너라는 이름마저 뇌리에서 지워 버린 상태였다.
그래서 떠올리지 못했던 것이다.
“자네 괜찮은가? 식은땀이 흐르는데…….”
“예, 예! 괜찮습니다, 폐하. 요즘 공사다망해, 통 잠을 못 자는지라…….”
“쯧쯧. 아무리 그래도 잠은 잘 자야지. 내약방에 들러 약이라도 한 포 받아 가게.”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아무튼, 생각보다 훨씬 유능한 인물이더군.”
어쩌다 드웨너가 유능한 인물로 인식하게 된 걸까.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었다.
첫째, 악마의 습격을 알아차리고 학생들을 대피시킨 것.
-로델린이 르앵과 싸우러 가기 전, 학생회에 지시한 사항이다. 때마침 자리에 아무도 없었던지라, 드웨너가 직접 대피령을 내리게 됐다.
둘째, 재빨리 연통을 넣어 주변 영지의 기사들을 소집한 것. 마침 아카데미로 오고 있던 루시아가 소식을 전달받았고,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자신이 살고 싶어서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였을 뿐이다. 날파리 특유의 생존본능이 발동했달까.
그리고 셋째. 드웨너가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게 된 가장 큰 이유.
“어디 그뿐인가. 하마터면 잊힐 뻔했던 영웅의 희생을 기리기까지 했더군.”
루터스와 앵무새의 희생을 기리고, 석상을 세운 일.
“총장의 자리에서 내쫓길 수도 있는데, 학생의 죽음을 당당히 밝히고 책임을 지려 하다니…… 아무나 못 하는 일이지. 그렇지 않은가?”
제로가 해 준 조언대로 따랐을 뿐이다.
이렇듯 사소한(?) 오해가 있지만, 드웨너가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게 됐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이쯤 되니 아시즈 후작도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치하하기 위해서 부른 거였군.’
루크 후작은 루시아와 로델린의 활약 때문에, 그리고 자신은 드웨너를 천거했기 때문에.
그래서 이곳에 와있는 거였다.
‘뭐, 저 이유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말이야.’
너구리 같은 황제다. 숨겨진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황제의 말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덧붙인 말은 더욱 대단했지. 불명예를 무릅쓰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명예라니. 현대 최고의 명문이야. 그렇지 않은가?”
……이 또한 제로의 말을 그대로 따라 했을 뿐이지만, 진실을 모르는 이들 입장에서는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었다.
아시즈 후작의 머리가 맹렬히 회전했다.
악마의 편린 사건. 그때 있었던 일에 대해 보고는 받았었다.
악마 처치, 시체 발견, 루시드가의 막내가 첫째를 고발하는 대사건.
아카데미에 영웅을 기리는 석상을 건설하게 된 전개 과정과 그 결과까지.
그때는 낙하산 주제에 함부로 판단했다면 짜증을 냈었지만…….
“그렇습니다, 폐하! 드웨너는 글을 벗 삼으며 풍류를 즐기는 사람.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저도 미처 몰랐나이다.”
“역시 그랬군. 이런 명문을 쓰는 건 글을 좋아하지 않으면 쉽지 않은 일이지.”
“어디 폐하만 하겠습니까. 드웨너도 폐하의 글 솜씨를 보게 된다면 혀를 내두를 것입니다.”
“허허, 이 사람. 그렇게 말하면 드웨너 총장이 뭐가 되는가.”
황제의 치하와 그에 이어지는 아시즈 후작의 아부.
이번에는 루크 후작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떠올랐다.
불명예를 무릅쓰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명예라고?
‘저거…… 로델린이 했던 말 아닌가? 왜 드웨너 총장이 한 말로 알려진 거지?’
로델린이 총장에게 들었던 말을 자신에게 하며 설득한 걸까?
하지만 그런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들었다면 그 드웨너라는 작자가 로델린에게 들었을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루크 후작은 입을 꾹 다물기로 했다.
확신할 수 없는 탓도 있지만, 로델린이 루시아를 고발하며 루시드 가문이 개입해 루터스의 명예를 지켜 준 사건이다.
괜히 따지다가 말실수라도 했다간 로델린의 계략이었다는 게 모두 드러날 터.
아 다르고 어 다른 것뿐이지만, 고의로 그런 것이라는 말을 해서 좋을 건 없다.
‘이대로 넘어가는 게 좋다.’
무엇보다 로델린이라는 이름을 황제의 머릿속에 각인시키고 싶지 않았다.
어느 때에도 황제에게 충성하는 루크 후작이지만, 아직 아카데미를 다니는 아이까지 복속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때문에 루크 후작은 입을 다물기로 했다.
“그래서 말인데…… 다음 귀족 회의부터는 신예들도 참석하지 않나. 그들도 그렇지만, 고위 귀족들이 꼭 새겨들어야 할 문구야. 당분간 국정 운영의 기조로 삼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불명예를 무릅쓰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명예’라는 문구를 말하는 거였다.
아시즈 후작이 즉각 고개를 숙였다.
“그런 영광을 주신다니! 바다와도 같은 폐하의 아량에 드웨너 총장도 감복할 것입니다!”
“허허, 그럼 그런 걸로 알겠네. 당연히 상도 뒤따라야겠지. 어디 보자…… 루시아 경에게는 6등품 상을, 그리고 드웨너 총장에게는 7등품 상을 내리면 되겠군.”
1~9단계로 나뉘어져 있는 등품 상.
숫자가 높을수록 좋은 상이었고, 7등품 상부터는 뒤따르는 부상(副賞)도 많았다.
그 때문에 귀족 회의에서 거친 반대에 부딪혀야 정상이지만.
‘황제의 의지가 이리 확고해서야…….’
귀족 회의에 안건이 올라왔을 시, 둘이 함께 협조하라는 말이다.
제국의 기둥인 루크와 아시즈 후작이다.
그들을 뒤따르는 세력도 있으니, 협력한다면 어렵지 않게 통과하리라.
학생들을 구했다는 좋은 명분도 있고 말이다.
그렇게 명문(名文)의 원조는 드웨너가 가져가게 되었다.
“자네의 막내 딸아이에게도 상을 내리며 치하하고 싶지만…… 이번은 넘어가도록 하세. 질투에 눈이 먼 자들이 많으니까 말이야.”
“하늘과도 같은 배려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악마의 편린 처치, 악마와 계약한 선생 처치, 4계위 악마 비네스와 싸우기까지.
상을 서너 개는 줘도 모자랄 지경이었지만, 이미 루시아가 상을 받기로 한 데다 로델린의 나이가 너무 어리다.
지나친 관심은 잘 성장하는 나무를 병들게 하는 법.
마침 루크 후작은 로델린을 복속시키고 싶지 않았던바.
딱히 불만은 없었다.
“아시즈 후작, 그러고 보니 자네의 아들놈도 곧 졸업이지? 총학생회장의 자리에서 아카데미를 잘 이끌고 있다고 들었네만.”
“과찬이십니다, 폐하. 아직 부족한 몸입니다.”
“아비의 시선에서는 다 그런 법이지. 곧장 정계로 진출하길 희망한다지? 곧 귀족 회의에서 얼굴을 볼 수도 있겠구먼.”
“워낙 부족한 점이 많은 놈이기에 시험을 통과할 리 없습니다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따끔하게 가르치도록 하겠습니다.”
아시즈 후작의 말과 달리, 아윈의 정계 데뷔는 기정사실이나 마찬가지였다.
총학생회장이라는 직함이 정계로 진출하는 가장 빠른 길이기도 하지만, 그가 지금까지 보여 준 능력이 워낙 출중해서다.
아카데미에서 생활하며 7등품 상을 받은 건 제국 역사상 그가 유일.
귀족 회의에 참여하는 이들 중 5등품 상도 받지 못한 이들이 수두룩하다는 걸 고려한다면, 이는 엄청난 스펙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럼 이제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 봐야겠군.”
루크 후작과 아시즈 후작이 자세를 고쳐 잡았다.
‘역시 단순한 치하를 위한 자리가 아니었군.’
게다가 치하를 먼저 했다는 건, 따로 부탁할 일이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틀 후에 열릴 귀족 회의에 앞서, 미리 얘기하고 입을 맞춰 놓자는 것이었으니까.
“성국의 사제들이 아카데미로 파견을 오기로 했다네.”
“파견이요?”
“그렇다네. 학기 초에 무려 악마가 두 번, 여기에 악마와 계약한 선생까지 나타났어. 조금 미뤄 보려고 했지만…… 힘들 것 같군.”
성국에서 사제들을 파견하고 싶다는 제의.
예전부터 종종 나오던 말이었으며, 제국 측에서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던 것이기도 했다.
‘침식’의 진행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지금까지 신성력이 유일한 상황.
아카데미의 교육 과정 때 미리 익숙해진다면, 학생들에게 큰 도움이 될 거다.
“하지만 타이밍이 공교롭군요.”
“실상은 그게 아니라는 뜻이겠지요.”
루크 후작과 아시즈 후작 모두 동일한 의견을 표했다.
정치적 관점에서 작게 본다면 교류를 위한 것, 크게 본다면…….
“나날이 커져만 가는 제국을 견제하기 위함. 그리고…….”
“제국이 악마와 손을 잡은 건 아닌지, 의심하는 것이겠지요.”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짐의 생각도 같다네. 문제될 건 없어. 악마와 교류하는 자가 있다면 잡아낼 수 있으니, 오히려 좋은 일이지. 다만…….”
아카데미는 제국의 최심부에 있을 뿐만 아니라, 미래를 이끌 인재들이 있는 곳.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편협된 시각이나 그릇된 교리를 심어 줄 수도 있었다.
게다가 일이 잘못될 경우, 학생들이 인질로 잡힐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너무 급하군요. 다른 이들의 생각도 들어 봐야 하니, 시간을 조금 더 구하고 싶습니다만.”
“안타깝지만 그건 불가능할 것 같네.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성국이 많이 바빠질 것 같다는 뜻을 내비쳤거든.”
많이 바빠진다는 것. 앞으로 지원을 받을 생각은 하지도 말라는 뜻이었다.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앞으로 발생할 침식은 알아서 해결해라, 그 말이군요.”
“그렇지.”
“……건방진 놈들.”
루크 후작의 몸에서 은은한 노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이건 황제와 아시즈 후작도 다르지 않았다.
‘침식만 아니었어도 대륙을 통일할 수 있었을 텐데.’
수백 년 동안 머리를 조아리던 놈들이 침식이 등장하자마자 위세를 뽐내며 고개를 빳빳이 치켜드는 꼴이라니.
두 눈 뜨고 보기 역겨웠다. 하지만.
“아쉬운 건 우리 쪽이니 어쩔 수 없는 상황입니다.”
“학자들이 최선을 다해 침식의 제거 방법을 연구 중이니, 조금만 참도록 하시지요.”
침식은 무시무시한 질병이다.
멀쩡했던 땅을 풀 한 포기조차도 살아갈 수 없는 땅으로 뒤바꾸는 끔찍한 질병.
당장이라도 성국을 부숴 버리고 싶지만, 지금은 참아야 할 때다.
단순한 분노에 집어삼켜져 일을 그르칠 만큼, 제국은 멍청하지 않으니까.
“그래야겠지. 이제 짐이 그대들을 부른 이유를 이해했을 거라 믿겠네.”
이틀 후 있을 귀족 회의에서 다른 귀족들을 설득하는 것.
그게 자신들의 역할이었다.
“아카데미는 안전하다는 인식을 심어 주는 게 중요하겠군요.”
“만약의 상황이 발생해도 아이들이 인질로 잡힐 리는 없다. 그걸 위한 보조 장치를 강구해 둬야겠습니다.”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밑 준비는 짐이 끝내 놓도록 하지. 그 뒤는 알아서 잘해 줄 것이라 믿겠네. 그럼 다들 이틀 후에 보도록 하지.”
호위 기사의 딱딱한 배웅과 함께 문을 나섰다.
또다시 마주한 기나긴 복도.
두 사람의 발걸음 소리만이 조용히 울려 퍼졌다.
‘어휴, 저 바위 같은 놈. 대화라도 하면 좀 좋아?’
아시즈 후작이 속으로 투덜거렸다.
이럴 때가 종종 있었기에 먼저 말을 붙인 적도 많았지만, 그럴 때마다 루크 후작이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기 때문이다.
그가 계속해서 속으로 투덜거릴 때였다.
“자네는 운이 참 좋군.”
아시즈 후작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바위가 말을…… 아니, 루크 후작이 입을 연 것이다.
“예?”
“운이 참 좋단 말이야. 예전이나 지금이나……. 참 이상한 일이지. 그렇지 않나?”
명백한 비꼼이다.
명예를 중시하는 루크 후작이 사람을 비꼬다니.
보통 사람이었다면 패드립을 한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허허, 루크 후작님.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레스터 가문을 보낼 때도 그러지 않았나. 그 누구도 찾지 못한 반역의 증거를 손쉽게 찾아냈으니 말이야.”
“…….”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도 못 찾았던 걸 찾아내다니…… 정말 이상할 정도로 운이 좋단 말이야. 그렇지 않나?”
루크 후작의 섬뜩한 눈빛.
아시즈 후작이 살짝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이내 어깨를 꼿꼿이 폈다.
자신도 엄연히 후작의 반열에 오른 몸.
루시드 가문이 대단하다지만, 자신을 무시할 정도는 아니다.
‘예전의 내가 아니다. 따끔하게 한마디 해 줘야겠군!’
자세를 고쳐 잡은 아시즈 후작.
순간, 그의 허리가 반으로 접혔다.
“아이고, 후작님! 맞습니다. 운이 좋았지요. 그런 천운이 제게 오다니, 하늘이 보살폈지 뭡니까.”
“…….”
“제국의 기둥 자리도 차지하고, 지금 생각해도 믿기지 않는 일입니다. 그래도 든든한 후작님이 있어 다행입니다. 항상 믿고, 따르고, 의지하고 있답니다. 그리고 또…….”
물론, 아시즈 후작의 입에서 튀어나온 건 극한의 아부였다.
루크 후작은.
정말 무서운 남자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