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113)
제113화
113화. 후일담(3)
기나긴 복도의 끝에 다다를 때까지.
아시즈 후작의 아부가 한시도 쉬지 않고 이어졌다.
루크 후작이 중간중간 넌지시 핀잔을 줬지만, 그런 것에 굴할 아시즈 후작이 아니었다.
애초에 점잖은 루크 후작의 성격상, 모욕을 주려고 해도 좀처럼 줄 수가 없었지만 말이다.
결국, 아부받는 것에 익숙지 않았던 루크 후작이 먼저 물러서게 되었다.
“……배알도 없는가. 뭐, 힘내게. 그게 자네가 살아남는 방식이라면 존중해야겠지. 다만.”
루크 후작이 아시즈 후작의 어깨를 강하게 말아 쥐며 말했다.
“항상 지켜보는 눈이 있다는 걸 명심하게, 아시즈 후작.”
말을 마친 루크 후작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복도의 끝에서 홀로 남겨진 아시즈 후작.
“쯧.”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루크 후작의 말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레스터 가문을 몰아내고 새로운 기둥의 자리를 차지한 이후, 다른 귀족들의 견제도 견제지만 자신 쪽에 심어 두는 눈이 너무 많아졌다.
그 탓에 거동이 쉽지 않은 상태다.
‘뭐, 됐어. 기둥의 자리에 올랐다는 게 중요하니까.’
작고 큰 소란이 여럿 있었지만, 일단 기둥의 자리를 차지했다는 게 중요했다.
황제의 자리에 오르려는 계획이 50년은 빨라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루시드 가문…… 대단한 가문이지. 하지만 그것도 지금뿐이다.’
아시즈 후작은 루시드 가문을 무너뜨릴 생각이 없었다.
자신의 가문이 황제의 자리에 올랐을 때, 누구보다 충성을 다할 가문이 저 루시드 가문일 테니까.
저 고결한 가문이 그럴 리가 없다고?
아니, 어쩔 수 없이 자신을 따라야 할 거다.
‘루크 후작, 당신이 악마와 거래를 했다는 걸 알고 있거든.’
비싼 대가를 치르고 얻은 정보이니 확실했다.
문제는 그 거래가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
게다가 악마와 거래했다면 겉으로나 속으로나 티가 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런 흔적이 전혀 보이질 않았다.
‘루크 후작이 악마와 거래한 내용이 무엇인지 알아낼 수만 있다면…….’
감히 자신에게 덤빌 수 없게 될 거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충성을 맹세하는 것일 뿐.
꽈악-.
아시즈 후작이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친하게 지내고 싶지만, 권력의 구도 탓에 멀리할 수밖에 없는.
그야말로 애증스러운 루시드 일가.
‘당신과 당신 가문의 후손들은 우리 가문의 발밑에 조아리게 될 것입니다.’
황제의 자리에 올랐을 때 느끼는 기분도 좋겠지만, 고결한 루시드 가문을 굴복시키는 기분도 그에 못지않을 거다.
애초에 2~3세대 뒤에나 황위에 도전할 것이니, 자신이 즐길 수 있는 건 루시드 가문을 무릎 꿇리는 일 뿐이기도 했고.
자신의 앞에 일렬로 꿇린 그들의 모습을 본다면 얼마나 큰 쾌감을, 정복감을 느끼게 될까.
‘……너무 흥분했군.’
옷매무새를 다듬은 후, 침착하게 조금 전 있었던 일을 복기했다.
악마 습격, 상, 사제 파견, 귀족 회의, 그리고…….
‘드웨너.’
그 무능한 작자가 상을, 그것도 7등품 상을 받게 될 줄이야.
이게 꿈인가 싶었다.
‘설마 나를 속인 건가?’
작년까지만 해도 왕성하게 활동하며 손대는 것마다 박살을 내 놨던 드웨너다.
그로 인해 엘레스터가 휴식기를 빌미로 파견되었고.
빈틈이 생긴 마법부 쪽에 조금씩 자신 쪽 사람을 심는 중이었다.
그런데 희대의 명문(名文)을 남기는 걸로도 모자라, 희생한 아이를 영웅으로 만들고.
악마의 습격으로 위험해진 학생들을 위기에서 구해 내기까지?
나열한 것만으로 따져 본다면 엄청나게 유능한 인재 아닌가.
‘1년 동안 웅크리고 있다가 본색을 드러낸 건가?’
잠시 생각하던 아시즈 후작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럴 리 없다.
그자가 무능하다는 건 처음 봤을 때 충분히 알아본 상태다.
대화, 지식, 언행 등.
무능한 자의 표본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그런 그가 저런 활약을 펼치다니.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좀처럼 파악이 되지 않았다.
‘마음에 들지 않는군.’
앞서 말했듯, 기둥의 자리에 오른 뒤로 자신을 주시하는 눈이 많아진 상태.
드웨너에게 접근할 수는 없었다.
‘컨트롤되지 않는 말은 필요 없는데…….’
마음속으로 해임이라는 카드를 만지작거리던 아시즈 후작.
그가 이내 그 생각을 떨쳐 버렸다.
‘뭐, 소가 뒷걸음질 치다 쥐를 잡은 격이겠지.’
무능한 날파리의 행운. 딱 그 정도로 생각하기로 했다.
‘딱히 손해 본 것도 없으니까 말이야. 원대한 계획은 잘 진행되고 있으니…… 지금 당장 해임할 필요는 없겠지.’
하지만 아시즈 후작은 나중에서야 깨닫게 된다.
드웨너라는 이름을 머리에 담았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발생했다는, 자신의 계획이 틀어지기 시작했다는.
그 ‘시작점’이었다는 걸.
* * *
“헉!”
주변이 온통 어둠으로 가득하다. 허둥거리면서도 주변을 살폈다.
도망가야 하니까. 악마로부터 도망쳐야 하니까.
“후욱…… 후욱…….”
하지만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악마는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비네스의 녹색 안광.
그게 분명 내 눈앞에 있었는데.
“…….”
차분히 주변을 살핀 결과, 어떻게 된 일인지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지금은 새벽이고, 이곳은 의무실이다.
악몽을 꿨고, 잠에서 깨어났다.
그게 끝이다.
온몸이 땀으로 젖어 축축하다는 것만 뺀다면, 특이하다고 말할 것도 없었다.
“후후, 곤란하군요.”
순식간에 감정을 추슬렀다.
[정신방어] 스킬이 힘을 발휘했기 때문이다.여기서 놀라운 한 가지 사실!
[정신방어] 스킬은 환상을 막아 주고, 정신을 보호해 주지만.꿈에서는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와, 놀라워라. 공포의 감정을 느끼게 해 주시다니. 정말 감사해요.
‘이왕 할 거면 꿈에서도 적용되게 해 달라고! 빌어먹을 시스템아!’
찬찬히 주변을 살폈다.
로델린, 알렉스, 레이몬, 유리디아, 마지막으로 배를 긁으며 자고 있는 루나까지.
비네스의 습격 사건 이후로 사흘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우리는 의무실에서 생활하는 중이었다.
‘악마, 그것도 4계위 악마와 접촉했으니까.’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한 조사도 조사지만, 악마에게 넘어간 자가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목숨이 걸린 상황에서 악마와 계약을 하며 목숨을 부지하는 인간들은 생각보다 많은 편이다.
악마가 주도하는 불공정 계약이다 보니 그 끝이 좋지 않은 건 당연한 일.
그 때문에 우리는 의무실에 머물러야만 했다.
수업 시간과 운동 시간은 제외이긴 했으나, 그때도 교관들이 따라붙으며 우리를 감시했다.
‘뭐, 그것도 오늘로 마지막이지만,’
신관, 선생님, 주변 영지에서 파견한 행정관들까지.
장시간 걸친 확인 결과, 우리 모두 악마의 꼬임에 넘어가지 않았다는 게 확인되었다.
날이 밝음과 동시에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거다.
그래도 주연 멤버들과 사흘 동안 함께 지내며 행복하지 않았냐고?
뭐, 얼굴을 많이 봐서 좋긴 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없었지.’
루나가 가끔 내 침상으로 넘어와 끌어안은 채 잠들었고.
그 모습을 본 유리디아파 아이들 때문에 우리에 대한 소문이 한층 더 불타오르고 있다는 것 정도?
그런 것을 제외한다면, 이렇다 할 일도 없었다.
‘감시자들이 붙어 있었으니까.’
로델린을 비롯한 1파티 멤버들.
나한테 하고 싶은 말도 많겠지만, 물어보고 싶은 것도 많을 것이다.
변명은 충분히 준비해 둔 상태이니 걱정할 건 없지만.
그보다는 다른 쪽이 문제다.
달빛이 내리쬐는 창문. 그곳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생각에 잠겼다.
‘몰살 엔딩이었어.’
그것도 플레이어를 제외한 나머지가 몰살당하는 배드 엔딩.
이게 게임이었다면, 그런 엔딩을 맞이했을 거다.
‘비네스의 습격. 트리거는 아마도…… 1장에서 악마의 편린을 공략했을 경우.’
사천왕 리즈벨트가 아카데미에 비네스를 보내고, 플레이어가 지금까지 축적한 자원을 파괴한다.
‘파티원’이라는 귀중한 자원을 말이다.
밸런스 조절을 위한 대책 중 하나일 것이다.
[신의 모방]은 너무나도 사기적인 스킬이니까.‘3장에서 얻어도 사기적인 힘을 발휘하며 최종장까지 나아갈 수 있으니…… 1장에서는 그보다 더할 거라는 걸 예상하고 있었던 거겠지.’
제작진들이 파 놓은 함정. 그걸 피해 살아남은 거다.
이 루트는 처음인데도 우리가 살아남은 이유가 뭐냐고?
내가 고인물이라서?
아니다.
‘운이 좋았어.’
양손을 얼굴 앞에 모으며 낮게 한탄했다.
사흘 동안 계속해서 생각해 봤지만, 이게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순전히 운이 좋아서 살아남은 거다.
카론에게 받은 아티팩트.
다이크에게 빼앗은 아티팩트.
위기의 순간 각성한 9대 성검.
레제의 화살 공격.
[데몬 슬레이브]를 사용하겠다는 내 판단.아티팩트 돌려쓰기.
악마의 편린 사건 당시, 루터스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로델린의 가문을 이용한 것.
그로 인해 이곳까지 먼 발걸음을 하게 된 루시아.
만약, 이 중 단 하나라도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나 빼고 다 죽었어…….’
아이들이 끔찍한 죽음을 맞는 모습이 계속해서 떠오르며 나를 괴롭혔다.
[정신방어]가 아니었다면 토악질을 했을지도 모른다.새벽 감성에 젖어 이런저런 생각을 해 봤지만, 역시 결론은 하나뿐이다.
‘강해지는 것.’
무조건 강해져야 한다.
리즈벨트의 악마를 한 마리 더 죽인 상황.
아카데미의 경계가 강해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또 습격이 없을 거라고는 확신할 수 없다.
그러니까 강해져야 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정보창.’
스크롤을 천천히 내리던 중, 원하던 것을 찾을 수 있었다.
[마족의 피 : A]마기를 느낄 수 있다.
상대의 마기로 인해 받는 페널티 –50%.
마기 계열 스킬 효과 +25%.
신성 계열 스킬 효과 –25%.
스킬을 쳐다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마족의 피 스킬에 스킬 등급 업 포인트를 사용하겠어.’
개미굴에서 마수 백 마리를 처치하는 퀘스트를 클리어한 이후 얻은 보상.
스킬 등급 업 포인트.
사용할 것을 선언하자, 정보창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눈을 감으며 빛을 차단했다.
뭐, 실눈이라 다른 사람이 봤을 때는 그게 그거겠지만.
잠시 후, 정보창이 눈앞에 떠올랐다.
[‘마족의 피’ 스킬이 S등급으로 승격했습니다.] [마족의 피 : S]마기를 느낄 수 있다.
상대의 마기로 인해 받는 페널티 –100%.
마기 계열 스킬 효과 +50%.
신성 계열 스킬 효과 –25%.
새벽 감성에 젖어 저지른 충동적인 행동이 아니다.
사흘 동안 생각한 끝에 내린 결론이지.
‘앞으로 악마와 조우할 일이 많아질 거야.’
하급 악마도 문제지만, 상급 악마를 마주했을 시 받는 페널티는 상상을 초월한다.
스탯의 감소부터 스킬의 등급 하락, 상태 이상, 심지어 레벨이 감소할 때도 있었다.
‘비네스의 경우 대미지 감소 페널티가 있었지.’
비네스가 우리의 공격을 온몸으로 받으면서도 버텨 낸 이유 중 하나다.
레벨이 낮을 때 비네스를 마주한 탓도 있지만, 마기로 인한 페널티가 상당했기 때문에.
비네스에게 타격이 덜 들어간 거다.
‘그런데 그 페널티를 100% 감소시켜 준다는 건…….’
악마가 가하는 페널티에 대한 ‘완전 면역’을 의미했다.
포션의 효과와 사제들에게 받는 버프의 효과가 반으로 줄어들겠지만, 이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만하다.
다음으로 내가 할 일은…….
‘계획을 조금 손봐야겠군.’
우선순위를 변경해야 할 듯싶었다.
미래의 전력도 중요하지만, 당장 눈앞의 전력을 강화해야 했다.
그리고 조금 전, 그 방법을 떠올릴 수 있었다.
내 파티를 손쉽게 강화할 수 있으며, 동시에 후반도 도모할 수 있는 방법.
바로.
새로운 동료의 영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