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117)
제117화
117화. 새로운 동료(4)
중천을 넘은 해가 슬슬 옆으로 넘어가고 있을 무렵.
여자 기숙사에서는 작은 소란이 인 상태였다.
쿨쿨-.
누군가 코를 고는 소리가 방문을 뚫고, 복도까지 울려 퍼진 것이다.
가끔 있는 일이었기에 그게 무슨 소란이 이는 일일 수 있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저 방…… 맞지?”
“응……. 부학생회장님 방이야.”
“마, 많이 피곤하셨나 보다. 하긴, 최근에는 상급 악마랑도 싸우셨다니까…….”
“그, 그래. 무시하고 가자고.”
“편히 쉬시도록 두자. 이런 날도 있으셔야지.”
모든 면에서 완벽한 모습을 보여 주는 로델린.
코를 고는 것도 모자라 그 소리가 방문을 뚫고 들린다는 건, 좀처럼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당황하긴 했지만, 아이들은 빠르게 수긍했다.
로델린도 결국 사람이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일 거다’라고 생각하며 아이들이 하나둘 자리를 떠날 때였다.
처억-.
몽둥이를 쥔 누군가가 복도 끝에 모습을 드러내더니, 이쪽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오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몽둥이를 든 침입자 때문에?
아니다. 몽둥이를 쥐고 있는 사람의 정체 때문이었다.
“로, 로델린 양? 그럼 저 안에는 누가…….”
로델린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다들 자리를 비켜 주지 않겠나? 잠시 시끄러워질 것 같아서 말이야.”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다.
저런 로델린의 모습은 처음 보는 아이들이었다.
뭔가…… 뭔가가 일어나려 하고 있었다.
“네, 네! 수, 수고하세요!”
아이들이 후다닥 자리를 떴다.
항상 자신들을 존중하고 배려해 주는 로델린의 부탁 때문이기도 했지만.
지금의 로델린은 어딘가 나사가 빠진 상태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
순식간에 홀로 남겨진 로델린.
끼익-.
자신의 방문을 열자마자 볼 수 있었다.
큰언니, 루시아의 추태를.
방이 떠나갈 정도로 우렁찬 코고는 소리, 입가에 하얗게 뜬 침 자국.
배를 홀라당 깐 채 드러누워 있을 뿐만 아니라.
칼 같은 각도로 개어 놓았던 침구류가 형체를 잃고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기까지.
무엇보다, 가장 참을 수 없는 건…….
지금 시간이 오후 3시라는 거다.
“군인이 이 시간까지 처자다니! 지금 제정신입니까!”
로델린의 일갈.
루시아가 팔다리를 허둥거리더니, 침대에서 굴러떨어졌다.
쿵!
“으, 으아악! 뭐야? 전쟁…… 전쟁이라도 났어?”
“예, 났지요. 제 마음에요!”
불청객인 루시아.
그렇다. 현재 루시아는 로델린의 방에 서식(?)하는 중이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루시아는 이내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뭐야, 델린이잖아? 난 또 뭐라고.”
루시아가 다시 침대에 올라가더니, 배를 긁으며 말했다.
“아~ 배고프다. 나도 학생 식당 이용할 수 있니? 대체 얼마 만에 먹는 거람? 좀 아쉽긴 하지만, 이런 게 또 별미지.”
루시아의 말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밥 줘.
벅벅-.
“…….”
로델린이 속으로 참을 인(忍) 자를 새겼다.
그래도 가문의 큰언니 아닌가.
똑똑한 분이시니, 말로 이해시킬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복장부터 제대로 갖추세요. 대륙의 십검 중 하나가 그런 꼴로 돌아다닌다면, 뒷말이 따를 겁니다.”
“에에? 델린아, 우리도 사람이라고. 휴식할 때는 편하게 있어야지. 최근에 나 너무 힘들었단 말이야.”
“……최근 반년간 임무를 나가신 적이 없으신 걸로 아는데요.”
“후후, 며칠 전에 악마를 처치했잖니? 잘됐지 뭐니. 이걸로 반년 정도는 더 놀 수 있겠어.”
“4계위 악마잖아요! 큰언니의 실력이면 2계위 악마를 처치하셔야죠!”
그에 루시아가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말했다.
“델린아, 한 가지 알려 줄까? 계위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 처치했는지가 중요한 거야.”
“……그게 무슨 말이죠?”
“아카데미는 귀족 자제들은 물론, 평민과 천민도 많은 곳이지. 그런 곳에 등장한 악마를 처치했다? 이건 2계위 악마를 세 마리 처치한 것보다 더한 성과야. 제국민들의 환호는 물론이고, 아마 상도 받을걸?”
찡긋.
루시아가 윙크를 날렸다.
마치 어른이 아이에게 좋은 팁을 줬다는 듯한 태도.
그런 루시아의 태도는 로델린의 화를 돋우기 충분했고.
뚜둑-.
결국, 로델린을 악마로 만들고 말았다.
“당장 기상하세요!”
“으, 응?”
“군인이 추태를 보이는 걸로도 모자라, 의무를 외면하다니! 용서할 수 없습니다!”
“아, 아니…… 일은 충분히 많이 했다니까? 애초에 나를 부르는 곳도 없는걸.”
“그럼 훈련이라도 하셔야죠!”
“에? 그 귀찮은 걸 왜 해?”
빠직-.
로델린이 루시아에게 달려들더니, 허벅지를 꼬집었다.
어찌나 살이 잘 올랐는지, 꼬집은 손가락이 압력을 못 이겨 튕겨 나오려 할 정도였다.
“그러니까 이렇게 살만 뒤룩뒤룩 쪘죠! 제대로 움직이실 수는 있나요?”
“데, 델린아! 아파앙…….”
아프다고? 자신은 지금 마음이 아파서 미칠 것만 같은데?
교태를 부리며 몸을 움직이던 루시아.
그 과정에서 로델린은 보게 되었다. 허벅지보다 심각한 수준의 거대한 엉덩이를.
짝!!
“아얏!”
로델린이 곧바로 엉덩이를 내리쳤다.
폭력을 안 쓰는 그녀지만, 정말 참을 수가 없었다.
이런 몸으로 악마와 싸울 수나 있단 말인가?
“훈련하겠다고 약속하세요! 약속할 때까지 때릴 거예요!”
“델린아!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데!”
“그, 그렇게 부르지 마세요! 사랑한다는 말도 하지 마시고요!”
“하지만 우리 귀여운 델린이는 누구나 사랑할 수밖에 없는걸?”
“그, 그게 무슨……! 저 같은 건 하나도 귀엽지 않아요!”
당황한 로델린을 루시아가 곧장 몸으로 밀어붙였다.
‘무, 무슨 힘이……!’
로델린이 즉각 마나를 끌어올리며 저항했다.
하지만 루시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로델린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현재 루시아는 마나를 사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큰언니와 이렇게나 차이가 난단 말이야?’
로델린이 잠잠해지자, 루시아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날 이기려 들다니. 아직 백 년은 멀었거든?”
“……백 년이면 둘 다 죽고 없을 텐데요.”
루시아가 키득키득 웃음을 흘리더니, 로델린을 꽉 끌어안았다.
“알지? 이 언니가 많이 사랑하고 아낀다는 거.”
으, 으아아…….
부드러운 살결과 사랑한다는 속삭임에 정신을 못 차리던 로델린.
그런 그녀의 귓가로 루시아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우리 델린이는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고 잘 크기만 해. 가문이 짊어진 과오는…… 우리가 해결할 테니까.”
루시아의 말에서 슬픔이 느껴지는 것은 어째서일까.
루시드가의 과오(過誤).
자신이 어릴 때의 이야기라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머리가 굵어지면서 조금씩 알게 됐다.
루시드 가문 사람들이, 사랑하는 가족들이.
악마의 저주에 걸려 있다는 걸.
저주에 걸리지 않은 사람은 로델린 자신, 혼자뿐이었다.
“저도…….”
“응?”
“저도…… 사랑하고 아낍니다. 우리 가족들을요.”
그제야 루시아가 활짝 웃었다.
로델린이 루시아의 품을 빠져나온 건 그로부터 10분이 지났을 때였다.
사랑한다는 말을 대체 몇 번이나 주고받은 건지.
얼굴이 다 후끈거렸다.
“으음~ 좋네. 오랜만에 좋은 시간이었다.”
루시아가 기지개를 쭉 폈다.
어느새 옷매무새 정돈을 마친 로델린.
그녀의 머리에 문득, 아까 유모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해결해야 할 일’이 있어서 돌아가지 못했다는 이야기.
“그러고 보니, 여기서 해결해야 할 일이 있다고 하던데요.”
“응? 아아…… 유모한테 들었구나? 별거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 총장만 만나면 금방 해결될 문제거든.”
“그렇군요.”
“문제는…… 총장이 날짜를 안 잡아 준다는 거?”
“예?”
“악마를 잡자마자 요청했는데, 바빠서 만날 시간이 없다고 하더라고.”
“…….”
“이상한 일이란 말이지. 나 정도면 맨발로 마중을 나와야 하는 거 아닌가? 내가 쉬는 동안 명성이 떨어졌나…….”
루시아가 배를 벅벅 긁을 때였다.
로델린의 목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뚜둑- 뚜두둑-.
“……델린아? 괜찮니?”
“예, 아주 괜찮습니다.”
하지만 말과 달리, 아주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로델린이 아까 가져왔던 몽둥이를 어깨에 올렸다.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생각나서 먼저 가 보겠습니다.”
“으, 응? 그, 그래. 조심하고.”
타다다닥-!
로델린이 방문을 나서자마자 달리기 시작했다.
뭐? 바빠서 만날 시간이 없어?
‘하루에 1시간도 일을 안 하는 작자가……!’
오늘은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리는 한이 있더라도 일을 시키리라.
루시아와의 담화 날짜도 잡을 것이고.
그렇게 로델린이 총장실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에고, 우리 델린이는 열정이 넘쳐서 문제란 말이지.”
방에 홀로 남겨진 루시아가 중얼거렸다.
“조금만 힘을 빼고 산다면 좋을 텐데.”
무슨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로델린이라면 꼼꼼하게 잘 처리할 거다.
지금은 침대를 다시 차지했다는 것. 그게 중요했다.
그럼 이 승부는…….
“침대를 차지한 나의 승리네?”
침대에 드러누웠을 때였다. 창문과 침대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
그곳에서 얼굴이 하나 튀어나왔다.
“꺄아악! 귀신…… 아니, 귀신보다 더 무서운 유모다!”
놀란 루시아가 소리를 질렀지만, 유모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뭐, 뭐야. 유모가 왜 거기서 나와?”
“두 분의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제가 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시다니. 편하게 지내시다 보니 감이 많이 떨어지셨나 봅니다.”
유모의 조용한 타박.
루시아가 손을 휘저으며 대답했다.
“상급 악마가 코빼기도 안 보이는 걸 어떡해? 사람도 마찬가지고.”
각 지역마다 강자들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루시아가 나설 기회가 없는 상태.
도전자도 마찬가지였다.
루시아에게 도전하는 멍청이는 없었다. 싸움이 시작되면, 다른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강자라고 해서 무조건 좋은 건 아니었다.
상대할 사람이 없다는 것.
이건 더 이상 강해지기 힘들다는 뜻과도 같았다.
‘그러니 이렇게 살이 찔 수밖에 없지. 에휴, 내 팔자야.’
물론, 루시아가 살이 찐 이유는 운동 부족과 과자 때문이지만.
애써 현실을 외면하는 루시아였다.
“제가 조금 조사해 봤는데, 라이벌이 있더군요.”
“라이벌?”
제국의 십검 중 하나인 이 몸, 루시아에게?
오랜만에 도전자가 나타났나 보다. 벌써부터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할짝-.
상대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실력자였으면 좋겠다.
다이어트 대용으로라도 사용할 수 있을 테니까.
그렇다. 루시아의 사전에 ‘패배’라는 단어는 없었다.
이긴 건 이미 기정사실이고, 어떤 과정을 거치느냐가 문제였다.
“누구인데?”
“‘루나’라고 하더군요.”
루시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처음 듣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아는 강자 중에 저런 이름을 가진 자는 없었다.
‘신예인가?’
이제 막 이름을 알린 존재가 자신과 라이벌 취급을 받는다면, 이유는 한 가지뿐이다.
‘그 정도로 압도적인 실력자라는 뜻.’
오랜만에 입맛이 돌았다. 오늘은 과자를 하나만 먹어도 될 듯했다.
“유모, 훈련장 하나만 잡아 줘. 오랜만에 몸 좀 풀어야겠네.”
“의욕 만만이시군요. 이 유모도 최선을 다해 보좌하겠습니다.”
“날짜는 잡았고? 언젠데?”
“그야 당연히 지금부터죠.”
“……?”
그제야 루시아는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단어 선택도 이상했다. ‘지금’도 아니고 ‘지금부터’?
결투가 하루 이상 갈 것으로 예상한단 말인가?
“유모, 라이벌의 이름이 뭐라고 했지?”
“루나입니다. 아주 귀여운 아이죠.”
“루나? 그러고 보니 어딘가 익숙한 이름인데…….”
“아가씨께서 악마를 베던 날, 그 근처에 있던 아이들 중 하나입니다. 동시에…….”
동시에?
“제로 군의 여자 친구이기도 하죠.”
그제야 루시아는 깨달았다.
유모가 말한 라이벌은 강자들 간의 라이벌이 아닌.
‘사랑의 라이벌’을 뜻한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