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119)
제119화
119화. 새로운 동료(6)
레제가 상자 안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후후, 레제 양. 여기서 뭐 하십니까?”
“그, 그게…… 드, 들어가려고 했는데 고, 공격 자세를 취하시길래…….”
음, 그렇구나. 나 때문이구나?
하지만 보통 이럴 때는 피하거나 도망치거나, 목소리로 자신을 알리거나.
저 셋 중 하나를 하지 않니?
주저앉은 채 공포에 떠는 걸 선택하다니.
소심해도 너무 소심했다.
“들어오십시오. 다음부터는 당당하게 들어오시고요.”
“네, 네…… 죄, 죄송합니다아…….”
잔뜩 쭈그러든 레제가 훈련장 안으로 향했다.
음, 진짜로 조금 꾸깃꾸깃해진 것 같기도 하다.
나와 기 싸움(?)을 하면서 상당한 체력이 소모된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흘 동안 못 봤었네.’
그동안 혼자서 뭘 하고 지냈을까?
“오, 뭐야. 그동안 어디 있었어? 아무리 찾아도 코빼기도 안 보이더니.”
“죄, 죄송해요. 감시가 워낙 심해서…… 주, 주변을 돌아다닐 수밖에 없었어요.”
레제야, 그게 무슨 소리니. 주변을 돌아다녔다니?
“어, 어제는 이상한 분도 계시고 해서…… 말을 걸 타이밍을 놓쳤달까요.”
응, 그렇구나. 나흘간 우리를 계속 따라다니고 있었구나? 그런데 우리는 한 번도 보지 못한 거고?
진짜 스토커가 여기 있었네?
“두, 두 분 다 괘, 괜찮으신가요?”
“뭐, 상급 악마를 상대로 멀쩡히 살아남았으니, 괜찮다고 말해도 되겠지?”
“다, 다행이에요! 정말 다행이에요!”
레제가 울먹거리기 시작하더니, 소매로 눈을 닦아 냈다.
그 과정에서 커튼 같은 앞머리가 젖혀졌고, 잠깐이지만 눈을 볼 수 있게 됐다.
티 하나 없이 순수하고 맑은 눈동자였다.
나처럼.
“이, 이거 받으세요……. 병문안 선물이에요. 가, 가지는 못했지만…….”
“뭐야. 이런 거 필요 없거든?”
하지만 말과 달리 루나의 손은 정직했다.
레제가 건넨 종이봉투를 거칠게 헤집었다.
그렇게 루나의 손에 쥐어진 물건은…….
“……당근이네?”
당근이네, 당근이야.
내 종이봉투에 든 것도 똑같았다.
땅딸막한 당근 3개가 들어 있었다.
“아, 아침에 막 뽑은 싱싱한 당근이에요! 제, 제가 직접 심은 거고…….”
레제의 목소리가 점차 기어들어 갔다.
보통 병문안 선물로 당근을 주던가?
판타지 세계의 상식은 다를 수도 있으니 잠시 생각했지만.
루나의 표정을 보니 상식적인 행동은 아닌 듯했다.
뭐, 그래도 어쩌겠는가. 선물, 그것도 병문안 선물인데.
당근을 한 입 베어 물었다.
아삭-.
“후후, 보기와 달리 맛있군요.”
“그, 그렇죠? 키산 지방의 당근이에요. 작지만 당도가 높고, 한 달이면 먹을 수 있는 만큼 자라기 때문에 생산력이 뛰어나죠. 그만큼 가격도 싸고요. 그리고 또…….”
음, 그렇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말을 안 더듬는구나?
웩-.
뒤에서 당근을 먹던 루나가 헛구역질을 하더니, 나에게 구조 신호를 보냈다.
가볍게 무시했다. 평소에도 당근을 먹지 않는 루나니까.
‘골고루 먹어야 키가 크는 법이지.’
당근의 위대함을 설파하던 레제.
별안간 그녀가 몸을 움츠리더니, 쭈그려 앉았다.
그러자 상자 안에 아예 파묻혀 버렸다.
“뭐야. 갑자기 왜 그래? 어디 아파?”
“죄, 죄송해서요.”
“응? 뭐가?”
“저, 저 혼자 도망쳐 버려서…… 죄송해요오…….”
훌쩍훌쩍.
레제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자기 혼자 도망쳤으니까, 죄책감이 남아 있겠지.’
아무 일도 없던 척, 자연스럽게 다시 함께할 수도 있다.
뻔뻔함이라는 가면을 쓰면 되니까.
하지만 그러기에는 레제가 너무 여렸다.
“죄, 죄송해요. 저, 저 그냥 갈게요. 여, 염치도 없이 다시 함께 다니려 하다니…….”
“…….”
“여, 역시 저는 혼자가 편해요. 그, 그동안 고마웠어요.”
“거짓말.”
돌연, 루나가 레제의 말을 끊었다.
“외로웠잖아. 외롭잖아. 앞으로도 외로울 거라 생각하고…….”
그걸 두려워하고 있잖아.
나는 알 수 있었다. 저건.
루나의 ‘경험담’이라는 걸.
“그러니까 어디 갈 생각 하지 마. 새로운 친구를 사귈 때까지 얼마든지 있어도 괜찮으니까.”
“하, 하지만…… 저는 여러분을 버리고 도, 도망쳤었는걸요.”
“신경 쓰지 마. 상급 악마였잖아. 그 자리에 누가 있든 마찬가지였을걸?”
“루, 루나 양과 다른 아이들은 안 그러셨는데…….”
그렇긴 했다.
로델린, 알렉스, 레이몬, 유리디아까지.
그 누구도 악마와 싸우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기꺼이 참전했다.
그들은 ‘영웅’이니까.
머리를 긁적거리던 루나가 말을 이었다.
“뭐, 그건 우리가 이상한 거야. 그러니까 하나도 신경 쓸 필요 없어. 진짜로.”
훌쩍.
“그리고 덕분에 이길 수 있었는걸? 눈을 한 번에 꿰뚫다니…… 활 솜씨 좋더라.”
“헤헤…….”
그제야 레제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떠올랐다.
뭐, 여전히 코를 훌쩍거리고 있긴 하지만.
‘활 솜씨가 좋다라…….’
루나의 말대로다.
머릿속으로 비네스와 싸우던 때를 떠올렸다.
‘화살 한 발로 비네스의 눈을 꿰뚫었지.’
덕분에 [데몬 슬레이브]의 캐스팅을 끝낼 수 있었다.
100%의 적중률이라는 사기적인 스펙을 눈앞에서 목도하니, 조금 욕심이 났다.
탱커는 아니지만, 원거리 딜러도 나중에는 구해야 한다.
그런데 그 원거리 딜러의 적중률이 100%라면?
잘 키우기만 한다면 사기적인 힘을 발휘할 거다.
하지만.
‘도주 특성이 문제야. 그것만 아니었어도 동료로 받아들이는 건데.’
표적이 됐을 때 도망가는 아이를 동료로 맞이할 수는 없는 법.
아쉬움에 입맛을 다실 때였다.
‘응? 잠시만…….’
그날의 전투를 복기하던 중,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왜 도망가지 않았지?’
비네스가 하늘에서 떨어졌을 때 정신을 잃은 레제다.
우리가 한창 전투를 치르고 있을 때 정신을 차렸을 거고, 전투가 길었으니 도망갈 시간도 충분했을 터.
그런데 레제는 숲속에 몸을 숨긴 채 전투를 지켜봤을 뿐만 아니라, 활까지 쐈다.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쭈글쭈글해지는 아이가, 상급 악마에게 공격을 가했다?
‘……뭔가 있다.’
직감이 왔다. 레제에게 숨겨진 무언가가 있다는 직감이.
레제라는 캐릭터에 대한 퍼즐 조각을 한쪽으로 몰았다.
음, 텅텅 비었다. 정보가 너무 부족하다.
‘당분간 같이 다니면서 알아봐야겠군.’
캐릭터에 대한 연구. 다행히 내 전문 분야 중 하나다.
레제, 기대해라.
발부터 머리끝까지 구석구석, 정신까지 완벽하게 파헤쳐 줄 테니까.
“히, 히익?”
무언가를 느낀 것일까. 레제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응? 왜 그래?”
“뭐, 뭔가…… 불길한 기운이…….”
레제가 상자 속으로 쏙 들어갔다.
루나가 나를 바라보더니, 시선이 짜게 식었다.
“너 또 뭐 했지? 이 변태 자식.”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변태가 되는 세상이라니.
억울한 나였다.
* * *
늦은 저녁.
우리는 현재 식당 구석에서 밥을 먹는 중이었다.
처음으로 레제와 함께 밥을 먹는 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식탁 어디에도 레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아무리 돌려 봐도, 내 옆에 앉아 있는 루나를 제외하면 사람이 없었다.
레제는 어디 있느냐고?
저쪽 구석, 상자 안에서 밥을 먹는 중이었다.
‘식당용 상자’라는 것에 들어가서 말이다.
‘음, 뭐…… 은신이 완벽하니까 외관상으로 봤을 때 이상할 건 없긴 해.’
하지만 상식적으로, 심리적으로 이상하지 않은가.
뭐가 이상하냐고?
지금 레제가 하고 있는 행위를 말로 서술해 보자.
식당 의자에 앉아서 먹으면 사람들과 시선을 마주쳐야 해 불편하기 때문에, 식당 구석으로 가 식당용 상자에 들어가 밥을 먹는다.
……이해가 가는가? 그냥 식당 의자에 앉아서 먹으면.
식당에서 먹었다.
깔끔하고 얼마나 좋아! 대체 왜 식당까지 와서 상자에 기어들어 가는 건데!?
뭐, 화장실에서 먹는 것보다는 낫긴 하다만…….
탁탁!
루나가 포크로 내 식판을 두들겼다.
“야, 그만 쳐다봐. 부담 갖겠다.”
“후후, 저런 행위를 이해해 주시는 겁니까?”
“사람마다 다른 거니까. 아까 말했지? 레제 입장에서는 우리가 비정상일 수도 있다고.”
“너무 배려가 과하시군요. 레제 양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도 있습니다. 계속 보듬어 주기만 한다면, 친구를 못 사귈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뭐, 조금씩 나아지겠지. 우리가 도와주면 되고. 안 그래?”
웬일로 어른스러운 대답이 나왔다. 루나의 입에서 나왔다고는 믿기 힘들 만큼.
‘당근만 골라내지 않았어도 참 멋진 아이였을 텐데.’
오늘의 저녁 메뉴는 고기가 가득 든 카레.
하지만 내 카레는 당근으로 가득했다.
루나가 자신의 카레에 있는 당근을 하나씩 찍어 나에게 던졌기 때문이다.
덕분에 내 앞에 있는 건 카레가 아니라 카레향이 첨가된 당근밥 수준.
씁쓸한 당근밥을 먹던 중이었다.
“응? 뭐야. 당근밥? 저런 것도 있던가? 맛있어 보이긴 하는데…….”
한 남자아이가 우리의 곁을 스쳐 지나가며 내뱉은 말.
곧장 [정보창] 스킬을 사용했다.
요 며칠간 새로운 동료를 찾아 헤매다 보니, 이젠 몸이 자동으로 반응할 정도였다.
음, 나름 준수한 스펙을 보유한 아이다.
모르는 이름인 걸로 봐서, 비중이 적은 엑스트라 같고.
이 늦은 밤, 혼자서 돌아다니는 것도 좋다.
내 포섭 범위에 해당하는 아이였다.
“후후, 이런 메뉴는 없지만, 만들어 드릴 수는 있을 것 같군요. 마침 선물받은 맛있는 당근이 있거든요.”
“오, 그래요? 그렇다면 금방 카레를 가져오겠…… 으아악! 변태다!”
내 얼굴을 본 남자아이가 기겁하더니, 식당 밖으로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얼굴을 보고 변태라 하다니. 굉장히 예의가 없는 아이다.
“왜 저런 소리를 하는 걸까요?”
“몰라서 물어? 네 얼굴에 변태라고 쓰여 있잖아.”
그랬단 말인가? 그렇다면 진작 좀 지워 주지.
하지만 아무리 거울을 봐도 그런 글씨는 적혀 있지 않았다.
잘생긴 내 얼굴만이 있을 뿐.
“큭큭, 바보. 그걸 믿냐?”
“바보라고 하는 사람이 바보인 겁니다.”
“뭐래. 근데 너 요즘 꽤 적극적이다? 무슨 바람이 불어서 그렇게 말을 걸고 다녀? 너도 새 친구 만들고 싶어졌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 친구보다는 동료가 필요한 거지만.
‘탱커…… 구하기 진짜 힘드네.’
내 이미지가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예전에 비해 좋아진 것뿐.
여전히 나를 피하는 사람이 많았다.
친구가 되기는커녕 말도 섞기 힘든데, 동료를 구하라니.
진짜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뭐, 됐어. 곧 쓸 만한 탱커들이 대거 몰려올 테니까.’
곧 성국에서 앤우드 아카데미로 사람들을 파견할 거다.
마검과 계약한 르앵.
이 소식은 성국에도 전해졌고, 제국에 영향력을 끼치고 싶었던 성국은 사제를 파견하겠다는 뜻을 내비친다.
‘명분은 학생들의 보호, 그리고 교류.’
제국의 시선을 의식한 것일까.
앤우드 아카데미로 파견 오는 아이들은 전부 우리 또래다.
15~17세라는 뜻이다.
‘악마의 편린과 4계위 악마의 습격. 게임과는 많이 달라졌긴 하지만…….’
파견을 온다는 것에 변화가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탱커는 그때 구하면 될 거다.
동료가 되어 줄 법한 조연들도 미리 정리해 둔 상태.
그중에서 한 명을 낚으면, 어떻게든 될 거다.
“후후후.”
“왜, 왜 저러는 걸까요?”
“내버려 둬. 변태의 생각을 이해하려는 건, 그다지 좋은 생각이 아니거든.”
“그렇군요. 하나 배웠어요!”
루나야, 레제야.
그냥 둘 다 꺼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