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12)
제12화
12화. 입학시험(9)
카론이 멈춘 건 인적이 아주 드문.
나무가 어두울 정도로 빽빽이 들어선 곳에 들어섰을 때였다.
“……둘이 무슨 사이냐.”
카론이 몸도 돌리지 않은 채 중얼거렸다.
이런 말을 한다고?
남녀 사이는커녕 동물의 암수에도 관심이 없는 캐릭터였는데.
얼굴이 시뻘게진 루나가 필사적으로 양손을 휘저었다.
“아,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 절대로 사귄다거나 그런……!”
“난 그런 거에는 관심 없다. 내가 관심 있는 건…….”
카론이 빙글 몸을 돌리더니, 눈을 빛냈다.
“루나 드 레스터, 네 비밀을 공유할 정도로 긴밀한 관계냐는 거지.”
단 두 문장.
하지만 루나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기에는 충분한 대화였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스킬의 힘으로 티는 안 났겠지만 말이다.
“반응을 보아 하니 알고 있던 것 같군.”
좋지 않다. 일단 루나는 반역자 가문의 유일한 생존자.
이 세계에서는 죽기 충분한 이유였다.
‘설마 여기서 배드 앤딩이라고? 이렇게 갑자기?’
스탯창을 켰다. 스탯 포인트를 아낄 때가 아니다.
힘에 모든 것을 투자하려던 때였다.
“아주 형편없더구나. 과거에 레스터 가문의 검을 직접 맛본 경험이 없었다면 나도 몰랐을 거다.”
“……예?”
“실력을 쌓았어야지. 먹는 시간, 잠자는 시간도 아껴가며 검을 휘둘렀어야지. 기대했는데…… 정말 실망했다.”
스탯을 올리려던 생각을 멈췄다.
협박이나 억압이 아닌, 책망에 가까운 어투.
왜 이렇게 약하냐는 뉘앙스가 그걸 증명해 주고 있었다.
루나도 그걸 느낀 모양이었다.
“자, 잠깐만요! 그게 무슨 소리죠? 혹시 뭔가를 알고 계신 건……!”
“실력을 키워라. 그 전에 말해 주는 건 오히려 네 명줄을 줄일 테니.”
“그게 무슨……! 뭐야! 그냥 말해 달라고요!”
“잊고 살라고 말하는 건…… 너에게는 너무 잔인하겠지. 하지만 잊고 사는 걸 추천하마. 그게 좋을 거다.”
“잠깐만……!”
루나가 온몸으로 그를 붙잡으려 애썼지만 소용없었다.
유령과도 같은 움직임으로 루나를 피했다.
루나가 철퍼덕 엎어졌지만, 눈길 하나 보내지 않았다.
“너, 이름이 뭐지?”
“……후후, 제로라고 합니다.”
“어디까지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만둬라. 둘 다 탈락 처리할 테니 집으로 돌아가고.”
탈락이라고?
카론이 또다시 유령과도 같은 움직임으로 나를 지나쳤다.
하지만 나는 그를 놓아줄 수 없었다.
입학시험을 통과하라는 퀘스트를 진행 중이었으니까.
‘카론의 특징이 뭐였지?’
위압적. 고압적. 소통이 불가능한 성격.
하지만 이런 자신 앞에서 당당하고 주눅 들지 않는 아이는.
‘싫어하면서도 좋아하는 변태 같은 취향.’
그래, 소위 말하는 강단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걸 공략하는 거다.
“후후, 탈락이라니. 웃기는군요.”
“……?”
“우는 아이에게 손길 하나, 위로의 말 하나 내주지 못하는 게 선생이라니. 인정할 수 없습니다. 이딴 학교…….”
[눈 뜨기] 스킬을 사용하며 그를 노려봤다.“내 발로 나갈 겁니다. 당신이 탈락시킨 게 아니라는 뜻이죠.”
내 눈을 바라보던 카론이 눈길을 돌렸다.
착각일까. 그가 살짝 웃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가. 네깟 놈들이 아카데미를 모욕하게 둘 수는 없지. 둘 다 합격으로 처리해 두겠다. 아카데미에서는 보는 눈이 많으니 더욱 조심하도록. 뭐, 기술의 차이가 너무 커서 들킬 일은 없을 것 같지만 말이다.”
그 말을 끝으로 카론이 자취를 감췄다.
여기 남은 건 나와 바닥에 얼굴을 박은 채 엉엉 울고 있는 루나뿐이었다.
“왜 알고 있으면서도 가만히 있는 건데…….”
“…….”
“말해 달라고…… 제발…… 누군가 좀…… 우리 가족의 억울함을 좀…….”
루나가 몸을 부르르 떨며 울부짖었다.
나도 그녀와 비슷할 정도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루나가 불쌍해서? 아니!
‘카론이 이렇게 말이 많은 캐릭터였다니!’
너무 신선해! 짜릿해! 즐거워!
내가 앞으로 나선 건 루나를 위해서도 있지만, 그건 아주 조금뿐이다.
카론의 숨겨진 대화를 알아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으허엉…….”
하지만 슬슬 루나를 위로해 줘야 할 때다.
난 사이코패스가 아니니까.
방금 내 생각은 루나의 성장과 미래를 위한 행동이었을 뿐이다. 진짜로.
‘카론의 말처럼 아직은 진실을 알 때가 아니니까.’
루나의 나이 고작 열다섯. 진실을 감당할 수 없을 거다.
이 세계에서는 열다섯이 성인의 기준이지만, 나에게는 어린아이다.
그게 게임 속 캐릭터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후후, 루나 양. 기운을 차리십시오. 다 제 계획대로이지 않습니까.”
“으, 으흑…… 계획?”
“제가 괜히 비전 검술을 쓰게 한 게 아니란 뜻입니다.”
“……!”
루나가 아카데미에 입학하려고 하는 이유.
귀족가의 자제들에게 정보를 얻기 위함이다.
누군가 죄를 뒤집어씌운다면, 범인은 그로 인해 이득을 버는 쪽일 확률이 높다.
‘레스터 가문이 멸문하면서 부흥한 신흥 귀족 세력이 있지.’
그들의 뒤를 캐내려면 자제들에게 접근하는 게 최고다.
입도 싸고, 생각도 짧으며, 협박하기도 쉬우니까.
그래서 루나가 아카데미 입학에 집착하는 거였다.
“카론이 당신을 살려 둔 이유. 아시겠습니까?”
“……우리 가문에는 죄가 없다는 걸 알고 있다는 거겠지.”
정확하다.
“아카데미에 입학도 하기 전입니다. 그런데 벌써 이런 정보를 얻다니. 후후, 앞으로는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겠죠.”
“……!”
“그러니 힘내십시오. 고작 이런 걸로 무너질 만큼 루나 양의 원한이 작은 건 아니지 않습니까.”
루나의 눈동자에 활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알고 있는 정보도 조금씩 풀도록 하죠. 그러니…… 같이 힘내자고요, 루나 양.”
힘내서 일어난 너를 아주 잘 키워 줄게.
쑥쑥 커서 최종 보스를 위한 공략 말이 되어 줘야지?
‘역시 난 대단하다니까?’
엑스트라 캐릭터를 이용할 뿐만 아니라, 입학시험에 존재하는 히든 피스를 계속해서 발견해 나가다니.
너무 대단해서 자화자찬을 할 수밖에 없다.
“……마워.”
“예?”
“……고맙다고.”
루나가 살짝 붉어진 얼굴을 숨기려 애썼다.
드세고, 험하고, 남자아이(?)의 대명사인 루나가 이런 모습을 보여 주다니.
“후후, 다시 한번 말해 주지 않겠습니까? 잘 안 들리는군요.”
“고, 고, 고고고…….”
고?
“전혀 고맙지 않거든!!”
루나의 고함이 숲속을 가득 메웠다.
* * *
3차 시험장으로 돌아가는 길.
카론은 조금 전 있던 만남을 떠올렸다.
‘……설마 여기서 저 아이를 만나게 될 줄이야.’
루나.
레스터 가문의 자손 중 한 명이자, 유일한 생존자.
그녀의 부친과 모친이 귀엽다며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던 아이다.
-어때, 카론? 내 딸 엄청 귀엽지?
-아, 안녕하세요. 루, 루나예요.
그들의 망토 자락 뒤에 숨은 채 빼꼼 얼굴만 내밀며 인사하던 어린 루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를 기억하지는 못하는 것 같군.’
워낙 어릴 때이기도 했지만, 자신이 변장을 한 상태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뭐, 그 뒤로도 몇 번 보긴 했지만 그때마다 다른 얼굴이었으니까.
몇 번의 만남을 떠올리며 레스터 가문을 떠올렸다.
레스터 가문.
제국의 기둥 중 하나였던 곳.
협박과 정치질에 절대 굴복하지 않는 긍지 높은 가문.
맞는 부분이 있었기에 가끔 교류를 나눴지만, 자신의 성격 탓에 친밀한 관계가 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마음에 들었던 사람들인 건 분명하다.
그들이야말로 제국을 지키는 진짜 기둥이라 생각했었으니까.
‘아니, 어쩌면…….’
그들과 친밀한 관계가 되고 싶었던 건 자신 쪽이었을지도 모른다.
레스터 가문은 긍지만큼이나 단단한 가족애로 유명한 가문.
평생을 홀로 살아온 카론에게 그들의 단란함은 큰 충격이자, 눈부신 선망으로 다가왔었다.
하지만 부외자인 자신이, 그것도 일평생을 첩자로 살아온 자신이 그들의 일원이 되는 건 허락될 수 없는 일.
멀리서 지켜보며 그들의 행복을 기원했다.
그런데 그걸 그놈들이…….
“……후.”
살짝 숨을 고르며 호흡을 조절했다.
흥분했다. 지금은 몸을 숙인 채 기회를 노릴 때.
복수는 그때 해도 충분했다.
‘아니, 애초에 복수라는 것도 이상하지.’
자신과 그들은 아무 관계도 아닌 사이니까.
선망했던 이들이라고 해도 함부로 ‘복수’를 입에 담을 수는 없다.
애초에 제국의 뒷일을 처리하는 ‘제국의 시궁쥐’인 자신에게 복수라는 단어는 허락되지 않는 일이기도 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제국의 적이 ‘그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뿐.
그것밖에는 없었다.
‘그러니 기대는 마라, 루나.’
복수도, 그리고 아카데미에서도 루나를 돕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선망했던 레스터 가문의 아이라 할지라도, 봐주는 건 없다.
공과 사는 구분한다.
제국을 위한 일 외에 자신에게 허락된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러니 루나에게 손은 내밀지 않을 거다. 절대로.
3차 시험 합격? 그건…….
‘뭐 하나라도 배워 가면 밖에서 잘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합격시켜 준 것뿐.’
시합장에서 필사적으로 싸우던 루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레스터 가문 사람들이 사용하던 일섬과 비교하면 서툴기 짝이 없는 일섬.
하지만.
“아주 훌륭한 일섬이었다, 루나.”
카론은 모를 거다.
지금 자신의 입가에 미미한 미소가 서려 있다는 걸.
카론은 머지않아 3차 시험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셨습니까!”
“3차 시험 종료했습니다! 생존 인원 239명입니다!”
교관들의 깍듯한 인사와 반짝거리는 눈.
그들이 희열이라는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한테 인정받았다고 생각하는 건가?’
3차 시험에 관한 권한 위임.
어쩔 수 없이 권한을 위임한 것인데, 자신들을 믿고 있어서 맡긴 것이라고 오해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속도는 뭐 이리 빨라. 13조 때 갔는데 벌써 끝났다고?’
적어도 800명 이상은 남아 있었다.
그럼 80조가 넘는다는 건데 벌써 다 끝났다고?
자신이 일 처리를 빨리하는 편이긴 해도 이 정도는 아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으으, 힘들어.”
“이게 바로 앤우드 아카데미…… 과연, 명성대로야.”
“시험도 번개처럼 끝나네. 이 속도에 적응해야 한다는 거겠지?”
“흥, 이 정도는 돼 줘야지.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니까 어디 한번 해 보자고!”
생도들의 열의.
꿈보다 해몽이라더니. 딱 그 꼴이다.
‘뭐, 상관없겠지. 다른 조가 시합을 하는 시간이 전부 대기 시간이니까.’
합격자들에 대한 수준도 걱정 없을 거다.
이들도 엄연히 앤우드 아카데미의 교관들이다.
다른 곳에서도 충분히 대우받을 정도의 실력자들.
그런 이들의 눈이 옹이구멍일 리 없었다.
“바로 다음 시험장으로 보낼까요?”
교관과 아이들이 눈을 빛냈다.
사기가 고무되다 못해 하늘을 뚫을 기세다.
하지만.
‘아직 루나가 오지 않았는걸.’
바닥에 엎드린 채 펑펑 눈물을 쏟던 루나.
어쩌면 아직도 울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곳까지 거리가 제법 되는 편이기도 했고 말이다.
“카론 님?”
교관이 또다시 눈을 빛냈다.
하지만 괜찮다. 합당한 이유가 있으니까.
“잠시 대기한다. 부상자들이 회복할 시간도 필요하고…… ‘그것’도 치러야 하니까.”
“아……!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교관이 재빨리 물러났다.
‘그것’.
비밀 시험을 뜻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