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120)
제120화
120화. 새로운 동료(7)
“저…… 친구가 되고 싶은 사람이 생겼어요.”
기숙사로 가던 중 터진 레제의 폭탄 발언.
우리가 당황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 좋은 일이네. 누군데?”
“그, 그건…….”
레제가 루나를 빤히 바라봤다.
무언가를 말하고 싶다는 듯 입을 쉴 새 없이 달싹거리며, 손은 좀처럼 가만두질 못하기까지.
‘얘 좀 봐라?’
나는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레제가 루나와 친구가 되고 싶어 한다는 걸.
“응? 누군데? 누군데?”
“비, 비밀…… 비밀이에요오…….”
“흐응~ 그래, 뭐. 부끄러울 수도 있지.”
물론, 우리 루나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눈치란 게 존재하지 않는 아이였으니까.
“무슨 일이든 말만 해. 우리가 전력으로 서포트할 테니까!”
“후후, 저는 그다지 도와주고 싶지 않습니다만?”
“봐 봐. 제로도 도와준다잖아.”
“……?”
내가 말을 잘못한 걸까, 아니면 루나가 들으려 하질 않는 걸까.
어느 쪽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곤란하게 됐네.’
아직 레제의 비밀을 풀지 못한 상태다.
사천왕과 악마, 군단장과 싸워야 하는 내 입장에서 전투 능력이 떨어지는 동료는 최대한 피해야 하는데.
레제는 전투 능력 이전에 도망을 쳐 버리니 동료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
비네스와의 전투에서 살짝 희망을 엿보긴 했지만, 그것도 결국 도망으로 마무리.
‘무엇보다 내가 비밀을 밝혀낸다는 보장이 없다.’
레제의 활용법을 수많은 고인물들이 연구했으나, 결국 ‘겁쟁이’라는 특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버려졌다.
친구가 없는 건 안타깝지만, 역시 동료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잘못하다간 짐 덩이로 전락할 것이다.
이 와중에도 루나는 레제의 상담을 진행 중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루나 상담소다. 나도 한 번 이용했었지.
“어, 어떻게 하면 친해질 수 있을까요?”
“팍팍! 힘 있게 팍팍 나가야지. 일단 너의 존재를 알리는 게 중요한데…… 상대는 너를 알고 있니?”
“으, 으음…… 그, 그런 것 같아요.”
레제야, 그런 것 같다니. 그게 무슨 소리니.
지금 같이 다닌 지가 며칠째인데……. 우리 루나가 멍청하긴 해도 너처럼 특이한 애를 기억 못 할 정도는 아니거든?
“남자니?”
“여, 여자예요. 저와는 달리…… 아주 귀엽고, 예쁘고, 강한.”
레제가 단어 하나마다 힘을 주며 말했다. 루나를 힐끔거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으음…… 완벽한 여자애인가. 이거 조금 힘들겠는데? 맞춰 줘야 할 부분이 많을 것 같아.”
“그,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그쪽에서 절 맞춰 주거든요.”
“쯧쯧, 그런 사람일수록 조심해야 한다고. 이거 완전히 홀렸네, 홀렸어.”
“호, 홀려요?”
“그래! 상대는 조금 잘해 줬을 뿐인데 네가 푹 빠져 버린 거지. 이거, 이거…… 중증이야, 중증. 우선 객관화가 필요하겠어.”
루나가 테이블을 탁! 치더니, 레제의 정신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걔 분명 성깔이 엄청 더러울걸?”
잘 아네.
“겉은 귀여움으로 무장했지만, 속에는 괴물이 살고 있을 거야. 사람 하나는 우습게 물어뜯겠지.”
정확하다.
“보나 마나 뻔해. 밑에 사람을 끼고 다니지? 괴롭히기도 많이 괴롭힐 거고.”
와, 우리 루나가 자기 객관화를 이렇게 잘할 줄은 정말 몰랐는걸?
뒤에서 박수를 치며 호응할 때였다.
꾸욱-.
레제가 작은 주먹을 말아 쥐었다.
“……아니에요.”
“응?”
“그, 그런 사람 아니에요. 저는 알 수 있어요. 겉으로는 사나워 보이지만, 속은 그 누구보다 착하고 여린 사람이라는 걸요.”
레제가 루나의 의견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토끼가 살인 전차에게 대들다니.
대단한 용기다.
“설령 그 사람이 저를 이용하려 한다고 해도…… 그렇다고 해도…… 친구가 되고 싶다면요?”
“……너 진지하구나?”
레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루나의 장난을 멈추기에 충분한 끄덕임이었다.
“뭐, 그럼 나도 제대로 알려 줘야겠네. 일단 선물부터 줘.”
“서, 선물이요?”
“응. 선물 싫어하는 사람은 없거든. 일단 네 존재를 확실히 각인시키고, 그 후는 반응에 따라 어떻게 할지 정하자. 어때?”
“조, 좋아요.”
그렇게 첫 번째 상담이 마무리되었다.
* * *
다음 날 아침.
학생들이 하나둘 교실로 들어설 무렵.
총장실에는 무거운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루시아와 유모, 총장 드웨너가 한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차일피일 만남을 뒤로 미루기 바빴던 드웨너.
로델린의 힘으로 바로 다음 날 아침 약속을 잡을 수 있었고, 그게 바로 지금이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로델린이 진짜 힘(?)을 사용하는 불상사가 일어났으나.
그런 건 어디까지나 사소한 문제에 불과했다.
‘루, 루루루, 루시아라니!’
드웨너는 당장이라도 기절할 것만 같았다.
제국의 영웅 중 하나인 루시아 드 루시드.
그녀가 눈앞에 앉아 있다니. 정신이 혼미했다.
‘이래서 피하고 있던 건데……!’
로델린이 힘으로 협박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다.
드웨너가 필사적으로 정신을 붙잡았다.
“후, 후후…… 루시아 님께서 여기까진 무슨 일이십니까?”
“아, 그냥요.”
그냥이라고? 그렇구나…….
드웨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차를 들이켰다.
긴장을 풀기 위한 행위라기보다는,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드웨너를 보며 루시아가 생각했다.
‘이거 보게? 대접도 안 해 주는 걸로도 모자라, 대화도 내가 이끌어야 해? 아주 건방진 사람이네.’
이럴 경우 셋 중 하나다.
머리가 텅텅 빈 순진한 놈이거나, 제 주제를 모르는 놈이거나, 아니면.
‘머리 좀 굴릴 줄 아는 놈이거나.’
짜증 나는 건, 후자일 확률이 가장 높다는 거다.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계산을 하던 루시아.
계산을 마친 그녀가 싱긋 웃으며 물었다.
“악마를 처치한 숲속, 그곳에 일섬의 흔적이 있더군요. 이에 대해 뭔가 아시는 것이 있으신가요?”
바로 본론을 꺼내 적을 당황하게 한다.
이게 바로 루시아의 작전이었다.
하지만.
“일섬이요? 그게 무엇인지요?”
루시아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드웨너가 순진무구한 눈망울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진짜로 모르는 듯한 반응이다. 아니, 애초에 ‘일섬’이란 게 뭔지도 모르는 반응이었다.
‘아니, 그럴 리가 없지.’
레스터 가문의 일섬을 모르는 귀족이 있을 리가 없다.
드웨너의 연기 솜씨가 그만큼 훌륭하다는 뜻이었다.
자신조차 착각할 만큼.
‘이거…… 어벙한 얼굴과 달리 상당한 실력자잖아? 총장의 자리는 꽁으로 먹은 게 아니라는 거군. 정보를 빼내는 게 쉽지 않겠어.’
톡톡-.
루시아의 손톱이 책상을 두들겼다.
드웨너에게서 정보를 빼내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듯했다.
‘아카데미에서 당분간 머물러야 할지도 모르겠네. 괜찮으려나? 아버님께 피해가 가진 않겠지?’
루시아가 차분히 계산을 하고 있을 때였다.
똑똑-.
“총장님, 편지 왔습니다.”
“거, 거기 두고 가거라.”
“……폐하의 직인이 찍혀 있습니다만.”
드웨너가 곧장 달려 나가 편지를 받았다.
그의 말대로였다. 앤스우드 제국의 황제만이 사용할 수 있는 독수리 문양의 인장.
황제가 보낸 칙서가 확실했다.
“…….”
편지를 받고 자리로 돌아와 앉은 드웨너.
한 3초쯤 의식이 끊겼던 것 같다.
이 칙서를 읽어야 한다는 현실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해임 통보장…… 올 것이 왔군.’
자, 이번 학기가 시작된 지 한 달하고 2주 째.
그동안 아카데미에서 벌어진 사건을 한번 늘어놔 보자.
악마의 편린, 마검과 계약한 선생, 여기에 4계위 악마의 습격까지.
잘려도 할 말이 없었다. 오히려 목이 잘리지 않으면 다행일 정도였다.
“후, 후후후……. 폐, 폐하께서 또 편지를 보내셨군요.”
“……폐하와 연락을 자주 나누시나 봐요?”
“그, 그렇습니다. 아카데미의 총장인 몸이니까요.”
“흐음…….”
사실 이번이 두 번째 편지다.
첫 번째는 임명 당시, 파발이 임명장과 함께 편지를 가져왔었다.
상투적인 말들로 가득한 편지를 말이다.
‘영웅의 앞이다. 못난 모습을 보이면 안 돼!’
이게 바로 드웨너가 허세를 부린 이유였다.
영웅의 앞에서 못난 모습을 보여 주기 싫었던 거다.
‘100% 해임장이겠지. 그게 아니라면…….’
서, 설마 사형 집행장은 아니겠지!?
무섭다. 아무리 생각해도 열기가 너무 무서웠다.
한 일주일쯤 뒤에 열어야겠다. 그때면 마음을 추슬렀을 테니까.
하지만.
“열어 보세요. 긴급을 요하는 일일 수도 있잖아요?”
루시아의 배려…… 아니, 명령.
드웨너는 결국 편지를 열 수밖에 없었다.
“그, 그럼……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페이퍼 나이프로 인장을 가르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내용물을 꺼냈다.
동시에 드웨너의 두 눈이 커졌다.
“뭐라고 하시나요? 악마라도 나타났대요?”
“……7등품 상을 수여하신다고 하시는군요.”
드웨너가 편지를 책상에 툭 떨어뜨렸다.
너무 놀란 나머지 힘이 빠져 벌어진 일이지만, 루시아의 입장에서는…….
‘뭐야, 저 반응은? 기뻐하지도 않네. 이 정도는 당연하다는 건가?’
7등품이라는 상도 그렇다.
7등품부터는 그 의미가 달라진다. 상위에 속하는 상이니까.
그래서 절차가 굉장히 까다롭다.
8등품보다 7등품 상을 더 받기 힘들다는 말이 존재할 정도.
‘폐하의 신임을 받고 있다는 건가…… 귀찮게 됐네. 협박도 하면 안 된다는 거잖아?’
아까부터 계획이 계속 틀어진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가만, 편지를 들이는 순간까지도 드웨너가 계산한 거라면?’
루시아의 몸에 살짝 소름이 돋았다.
이게 대체 몇 년 만에 돋는 소름인지.
결국, 루시아는 인정하기로 했다.
드웨너는 손쉽게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정보를 얻고, 주변을 장악하며 약점을 찾는다.
시간을 들인 뒤에야 대등한 싸움이 가능해지리라.
“총장님, 잠시 아카데미에 머물고 싶습니다만…… 가능할까요?”
“흠…… 대신 애들을 지도해 주셔야 합니다만. 괜찮겠습니까?”
루시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감히 제국 십검(十劍)에게, 그것도 루시드가의 장녀에게 거래를 제의하다니.
물론, 드웨너는 아무런 생각 없이 말한 거였다.
영웅이 지도해 주면 아이들이 참 좋아할 거라 생각하면서.
하지만 루시아의 시선에서는.
‘흐응~ 이 기회에 뽕을 뽑겠다, 이건가.’
역시 만만치 않은 상대다.
“수업은 하지 않겠습니다. 대신 신경 쓰는 아이들은 가르치도록 노력하죠. 어때요, 이 정도면 거래가 될까요?”
“충분합니다.”
“제가 머무는 동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총장님.”
루시아가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총장실을 나섰다.
드웨너는 생각했다.
7등품 상을 받는 것만 해도 놀라운데, 루시아가 아이들을 가르치게까지 하다니!
역시.
“후후, 나는 너무 유능하단 말이지.”
총장실에 드웨너의 웃음이 울려 퍼졌다.
* * *
아침 수업이 시작되기 직전.
교실에 도착한 우리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루나의 책상 위에 선물이 산처럼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꽃, 당근, 당근 맛 과자, 당근 모양 펜, 당근 나무상자(?) 등등.
당근 맛 과자를 바라보던 루나가 중얼거렸다.
“선물이 너무 과하네. 그리고 나한테 왜 주는 거야? 친구가 되고 싶은 아이한테 주라니깐…….”
루나가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 친구가 지신이라고는 상상도 못 하는 것 같았다.
“뭐, 내 상담 실력이 좋긴 했지. 어때, 제로? 이 누님의 실력이.”
에휴, 누님은 무슨. 진짜 눈 뜨고는 못 봐 줄 코미디다.
‘좀 도와줘야겠네.’
파티원의 문제 이전에, 레제가 너무 불쌍하기 때문이다.
마음을 안 주는 나쁜 남자한테 끌려 다니는 불쌍한 여자아이 같달까.
“레제 양이 왜 저러는 건지 진짜 모르시겠습니까?”
“응? 고마워서 그런 거 아니야?”
“아닙니다.”
“그럼 뭔데?”
“친구가 되고 싶다는 겁니다.”
잠시 흠칫한 루나. 표정이 참 가관이다.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더 가관이었다.
“너랑? 하지만 레제는 여자애라고 했는데…… 너 여자였니?”
내가 여자겠니?
뭐, 내가 여자였다면 도내 최고 미소녀이긴 했겠지만.
지금 중요한 건 이런 게 아니니 넘어가도록 하자.
“아뇨, 레제 양이 친구가 되고 싶어 하는 건 제가 아닌…….”
루나 양입니다.
그로부터 약 3초 후.
루나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