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122)
제122화
122화. 새로운 동료(9)
루나와 레제의 대치가 시작된 지 어느덧 5분째.
‘끝났네.’
처음에는 루나가 마음을 돌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레제에게서 등을 돌린 루나가 양팔을 단단히 교차시켰다.
그러더니 입도 굳게 다물었다.
레제가 아무리 울어도, 절대 뒤돌아보지 않겠다는 의지가 내가 있는 곳까지 전해져 왔다.
‘곧 레제가 도망치겠지.’
워낙 소심한 아이니까. 이런 상황을 버티지 못할 거다.
내 입장에서는 잘된 일이었다.
루나가 스스로 골칫덩이를 정리했으니까 말이다.
‘정신적으로 조금은 성장한 걸까?’
오늘 하루는 루나를 위로해 주는 데 시간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반짝-.
커튼처럼 쳐진 앞머리. 그 뒤에 숨겨진 레제의 눈이 살짝 빛났다.
동시에 분위기가 변했다.
‘……스킬이 발동했어?’
[정보창]을 열어 레제의 스킬 목록을 훑었다.상자 제작, 집중, 은신, 백발백중, 위기 감지, 수동적 인생, 소심한 분투, 마지막으로 레리아 가문류까지.
‘이 중에서 지금 발동한 것으로 추정되는 스킬은…….’
[소심한 분투]라는 정체불명의 B등급 스킬뿐이다.갑자기 상자를 박차고 나온 레제. 그녀가 보여 준 행동은 놀라웠다.
덥석-.
루나의 팔뚝을 문 거다.
농담이나 비유적 표현이 아니다.
작은 입을 최대한 크게 벌린 레제가 루나의 팔뚝을 물었다.
“뭐, 뭐야!”
“치, 친구…….”
“응?”
“친구가 되고 싶은 사람을 발견하면…… 이, 이렇게 하라고 알려 줬잖아요.”
로델린의 부탁으로 루나와 레제가 만났을 때.
친구를 사귀는 꿀팁을 알려 주겠다며 루나가 한 조언.
-그, 그래!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꿀팁을 하나 알려 줄게. 친구가 되고 싶은 사람을 발견하면…….
-바, 발견하면요?
-일단 물어.
지금 레제는 그 지시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었다. 뚝뚝 눈물을 흘리면서 말이다.
그날의 기억을 떠올린 것일까. 루나의 눈이 조금 촉촉해졌다.
“너 바보야? 이런다고 친구가 되어 줄 리 없잖아. 그런 사람은 저기 있는 변태뿐이라고!”
루나야, 갑자기 왜 나를 공격하고 난리니?
아무튼, 루나가 크게 소리쳤지만 레제는 입을 떼지 않았다.
오히려 양팔로 루나의 팔을 단단히 잡으며 더욱 밀착했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그야, 그야…….”
레제가 필사적으로 목소리를 쥐어짰다.
“치, 친구가 되고 싶으니까요.”
부들부들 떨면서 루나의 팔을 애처롭게 붙잡고 있는 레제.
루나가 그런 그녀를 향해 중얼거렸다.
“……정말 나로 괜찮은 거야? 난 성격도 더럽고, 폭력적이고, 친구한테 잘해 주는 방법도 모르는 사람인데.”
“괘, 괜찮아요. 저도…….”
마찬가지니까.
레제가 서글픈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를 본 루나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아까는 미안. 진심이 아니었어. 나도…… 너랑 친구가 되고 싶었어.”
“저, 정말요?”
“당연하지. 우린 오늘부터 친구야. 뭐, 이미 많은 친구가 있지만, 친구는 많을수록 좋으니까.”
눈물을 감추기 위한 걸까. 루나가 레제를 꼭 끌어안았다.
이야~ 청춘 드라마네, 청춘 드라마야.
당장 망가뜨리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빌어먹을 청춘 드라마가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짝짝-!
박수를 치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후후, 루나 양. 두 번째 친구가 생긴 것을 축하드립니다.”
“다, 닥쳐! 나 진짜 친구 많거든!?”
예~ 예, 그러시겠죠~.
좀 더 놀려 주고 싶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후후, 잠시 저 좀 보실까요?”
“……금방 갈게.”
레제를 진정시킨 루나가 순순히 내 뒤를 따라왔다.
한 가지, 우리 사이에 정리할 게 있다는 걸 알고 있을 테니까.
“화났어?”
“후후, 제가요?”
“……화났구나.”
루나의 말대로다. 화가 많이 난 상태다.
눈치 없는 루나가 눈치챌 정도로.
레제를 향한 루나의 눈빛.
그 눈빛에서 한 가지를 알아차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루나는.
‘레제를 동료로 받아들일 생각이야.’
그러니 내가 화가 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동료로 맞이하지 말라고 말했는데, 기어이 그쪽으로 마음을 먹다니.
“친구로 지내는 건 괜찮습니다. 하지만 같이 다니는 건 안 됩니다.”
“어째서?”
“오히려 저 아이를 위험에 빠뜨릴 테니까요.”
반역자 가문의 자식인 루나.
표면상, 제국을 집어삼킬 수도 있는 재능을 가진 나.
우리를 이렇게 만든 흑막에 복수를 해야 하며.
“심지어 저는 악마의 저주에 걸려 있기까지 하죠. 그런 우리와 함께한다면 저 아이가 과연, 생존할 수 있을까요?”
히든 보스를 잡아야 하는 퀘스트를 ‘악마의 저주’로 위장한 상태.
우리가 주기적으로 악마와 싸워야 한다는 걸 레제가 알게 된다면, 지금 당장 기절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잠시 고민하던 루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난 친구를 버리지 않아.”
그럴 거다. 루나는 그런 아이니까.
그래서 둘의 사이가 더 가까워지기 전에 내가 내보내려는 거고.
“버리라는 게 아니라 멀어지라는 겁니다.”
“난 친구랑 멀어지지도 않아.”
이거 생각보다 루나가 완강하다.
어쩔 수 없다. 이쪽도 강하게 나가는 수밖에.
[눈 뜨기] 스킬을 사용하며 입을 열었다.“그럼 어쩔 수 없군요. 제가 나가는 수밖에.”
“……!”
루나의 눈이 커졌다.
충격일 거다. 눈까지 떴으니, 진심이라는 게 잘 전해졌을 터.
이에 대한 루나의 대답은…….
“너도 내 친구잖아. 난 친구 안 버린다니깐?”
“후후, 억지입니다. 자, 한쪽을 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저와 레제 양, 둘 중 하나를 선택하시죠.”
“……둘 다 안 버려.”
고집이 아주 쇠고집이다.
안 되겠다. 파티를 떠나겠다는 시늉이라도 해야…….
“내가 강해지면 돼.”
“……예?”
“내가 강해지면 되잖아. 모두를 지킬 수 있을 정도로.”
진짜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사천왕은커녕 다이크도 못 이기는 주제에.
“나 진지해, 제로.”
루나의 눈이 빛났다.
알 수 있다. 여기서 내가 실제로 떠난다 해도, 계속해서 달라붙으며 귀찮게 할 거라는 걸.
저번에 루나를 살짝 밀어냈을 때, 우리 사이(?)를 응원하는 아카데미 아이들의 눈은 온종일 나를 좇았다.
이번에도 그와 같은 일이 벌어질 거고, 앞으로의 활동에 제약이 생길 확률이 높다.
‘……조금 귀찮게 됐네.’
고작 레제 때문에 잘 성장한 루나를 포기할 수는 없는 일.
무엇보다 충성도 높은 루나를 버린다는 건 나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앞으로 어떤 상황이 오든 나를 지지해 줄 루나니까.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레제 양을 받아들이도록 하죠.”
“정말?”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
“훈련을 시작할 겁니다. 그것도 아주 빡세게요.”
“좋아. 단, 레제의 체력이 닿는 한해서야. 무리는 못 시켜.”
고개를 끄덕여 준 후 말을 이었다.
“레제가 루나 양의 비밀을 알게 된 이후에 떠난다고 해도 이해하십시오. 상처받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거야 뭐…… 당연하지.”
루나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누명이라고는 하나, 현재 반역자 가문 취급을 받는 건 사실.
레제가 심장마비로 죽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레제 양이 파티를 떠나려면 제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무슨 뜻이야?”
“레제 양이 우리 파티에서 떠나려면 제 허락을 받은 뒤에야 나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내 허락을 받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함께 다녀야 한다는 거다.
즉, 내가 허락해 주지 않는다면 레제는 계속 우리 파티에 남아 있어야 한다는 것.
“그건 너무…… 독소 조항 아니야?”
“저번에 보셨겠죠.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포탈을.”
히든 보스 르앵이 있는 곳으로 향하는 포탈.
루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다시피 전 저주에 걸려 있는 몸입니다. 악마와 싸워야 하는 상황인데 그 직전에 내뺀다면 제가 구상했던 전략에 큰 차질이 생길 겁니다. 그런 위험은 감수할 수 없어요.”
레제를 포함해서 전략을 짰는데 공략 직전에 도망친다?
칼침 맞기 딱 좋았다. 물론, 그때 우리가 살아 있다면 말이지만. 아무튼.
“레제 양이 파티를 떠날 수 있는 건 그 후입니다. 그때는 떠난다고 해도 절대 붙잡지 않을 생각이고요.”
“…….”
“동의하지 못하겠다면, 레제 양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이건 내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야. 본인의 의견을 들어 봐야 할 것 같은데?”
고개를 끄덕이자, 루나가 레제를 데려왔다.
현재 상황을 간단히 설명했다.
르앵 공략 당시 레제도 포탈을 봤으니, 설명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저, 저는…… 괘, 괜찮아요.”
“정말?”
“무, 무섭지만…… 버, 버텨 볼게요.”
오호, 꽤 의지가 단단하다.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해 주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뭐, 단단한 의지와 달리 공격 대상이 되자마자 도망치겠지만.
“너무 큰 걱정은 하지 마. 제로가 널 붙잡고 안 놓아준다면 내가 해결해 줄 테니까.”
“후후, 친구한테 폭력을 쓰시려는 건 아니시겠죠?”
“너한텐 써도 돼. 아무튼, 이제 된 거지? 앞으로 우린 친구다?”
참 급하기도 하지.
짝짝. 박수를 두어 번 치며 말했다.
“예, 두 번째 친구가 생긴 걸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두, 두 번째 아니라니깐!?”
루나가 팔까지 내저으며 아니라는 의사를 표했다.
그 모습을 본 레제가 작게 웃음을 흘렸다.
그렇게 난 두 번째 파티원으로 레제를 맞이하게 되었다.
‘레제라…….’
내가 강하게 나갔다면, 루나도 결국 레제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애초에 친구 사이를 허락한 나니까. 루나도 그 정도로 만족했을 거다.
그랬던 내가 레제를 받아들인 이유.
둘의 청춘 드라마에 감동해서? 그럴 리가.
여기에는 무려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전에 말했듯 위기 상황에서 방패로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전보다 더 쓸모 있는 방패가 되었다.
루나는 레제를 친구로 인식한 상태.
‘그런데 만약, 레제가 죽는다면?’
그 이후 루나는 내 말에 고분고분 따르게 될 것이다.
강한 파티원이 아니면 안 된다는 걸, 자신의 선택이 레제를 죽게 했다는 걸 깨닫게 될 테니까.
‘루나를 정신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장기 말. 그 정도로 써먹기에는 나쁘지 않을지도.’
레제가 도망의 달인이라지만, 죽음을 피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둘째, 당분간 써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2장이 막 시작된 상태.
레제를 위협할 수 있는 존재가 없다.
레제가 전장을 떠나는 조건은 ‘공격 타깃’이 되었을 때인데, [은신] 스킬이 무려 S급인 레제다.
저레벨 구간의 적들이 레제를 찾을 수 있을 리가 없다.
‘광역기나 전체 공격기, 이런 게 있다면 얘기가 달라지지만…….’
2장에서 광역기를 사용하는 놈들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전체 공격기는 굳이 말할 것도 없고.
‘즉, 저런 레제라도 당분간은 원거리 딜러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뜻이지.’
경험치를 레제가 빼앗아 간다는 단점이 있긴 했지만, 그 정도는 내줄 만하다.
그리고 마지막 셋째.
‘왜 도망가지 않았지?’
비네스가 습격했을 당시, 기절 이후 도망가지 않고 화살을 쏜 레제다.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소심한 분투]라는 B등급 스킬.‘저 스킬이 겁쟁이 특성의 발동을 막은 거야.’
만약, 저 스킬이 A급이나 S급이 된다면?
레제가 전장을 이탈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럼 써먹을 수 있는 곳이 많아진다.
적중률 100%의 버그 캐릭터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거다.
상자 안에서 웃고 있는 레제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적중률 100%, 그리고 활이라…….’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후후후…….”
“뭐야, 그 불길한 웃음은. 또 뭘 꾸미는 건데?”
“무슨 일을 꾸미다니. 그런 섭섭한 말씀을.”
“수상한데…….”
루나가 레제를 끌어안은 채 경계 태세를 취했다.
“오늘은 둘이서 시간을 보내는 게 어떻겠습니까? 내일부터 바로 훈련에 들어갈 테니, 충분히 휴식을 취해 두시죠.”
“응? 상관은 없는데…… 넌 어디 가게?”
후후, 그건.
“비밀입니다.”
검지를 입술 앞에 갖다 댄 후, 길을 나섰다.
목적지는.
드웨너의 힐링 연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