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123)
제123화
123화. 훈련의 시작(1)
다음 날. 엘레스터의 수업 시간.
시작부터 불청객이 찾아왔다.
“그런 이유로…… 오늘부터 함께하게 됐습니다. 소개는 직접 하는 게 좋겠죠?”
한 여자가 살짝 비틀거리면서 단상에 올랐다.
대륙 십검(十劍) 중 하나이자, 루시드 가문의 첫째.
루시아 드 루시드였다.
“하아암…… 이 나이 먹고 아침 수업이라니. 끔찍하기도 하지.”
울부짖는 사자 문양이 수놓인 외투가 팔에 절반쯤 걸쳐져 있었다.
옆으로 흘러내린 거다.
다소 허당스러운 루시아의 성격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다들 안녕. 내가 누군지는 입 아프게 설명하지 않아도 알 테고…… 어쩌다 보니 특별 지도 교수를 맡게 됐네?”
다소 불성실한 자기소개.
하지만 아이들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도 반짝거리고 있었다.
루시아는 제국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영웅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업적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반나절은 족히 걸릴 것이다.
심지어 루시아의 연대기가 시중에 팔리고 있을 정도.
그녀의 명성이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한 달 정도겠지만, 그동안 많은 걸 배울 수 있길 기원할게. 물론, 내 지도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을 거야. 마음에 드는 애들만 가르칠 거거든.”
아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영웅의 지도를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자신이 마음에 드는 아이들만 가르치겠다니?
혼란에 빠지는 게 당연했다.
물론, 나도 혼란에 빠진 상태였다.
‘이런 전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그렇다면.
‘히든 피스다!’
애초에 게임과 많이 달라지긴 했다.
악마의 편린, 비네스의 습격, 루시아의 등장까지.
거기에서 이어지는 연계 스토리가 분명했다.
그리고 한 달이라는 비교적 짧은 기간이 존재한다는 건, 향후 스토리 라인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설계했다는 말임과 동시에.
‘한 달 안에 루시아에게서 무언가를 얻어 내라는 말이지.’
무엇을 얻어 낼 수 있을까.
벌써 기대가 됐다.
“그럼 전 이만.”
“허허, 루시아 양. 어딜 가시려는 겁니까?”
“예? 그야 지금은 할아범…… 아니, 엘레스터 님의 수업 시간이니까 쉬러…….”
“허허, 이 노인네의 수업 따위 들어서 뭐 하겠습니까. 젊은이의 수업을 들어야지요.”
“……저도 젊은이에서 벗어난 지는 꽤 됐는걸요?”
“그럴수록 젊은이와 교류를 해야 하는 법이죠. 제가 루시아 양을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습니까?”
스승에게 항명하는 건 힘들었던 것일까.
루시아가 머리를 벅벅 긁더니 말했다. 아니, 툭 던졌다.
“귀찮은데요.”
“허허.”
“아, 아니…… 귀찮다는 게 아니라, 조금 피곤하달까.”
“허허허.”
“다, 다섯 명만 봐 줄게요. 딱 좋다! 수업 시간도 별로 안 빼앗고.”
“허허허허허!”
착각일까. 엘레스터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점차 커지는 것만 같았다.
엘레스터의 털털한 웃음.
루시아가 인상을 한가득 찌푸리더니, 나지막하게 외쳤다.
“다들 밖으로 나가.”
“예?”
“나가라고! 여기서 검을 휘두를 수는 없잖아! 빨리빨리 안 나가?”
우르르-!
아이들이 교실을 박차고 나갔다. 물론, 나와 루나도 포함이었다.
그런 우리의 뒤로 루시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쭈, 발이 보인다? 나 때는 상상도 못 했을 일이야. 하여튼 요즘 것들은!”
……저 나이에 꼰대가 되다니.
여러 의미로 대단한 여자였다.
아이들이 일정 거리를 벌린 채 도열한 운동장.
루시아가 크게 외쳤다.
“내가 지나갈 때 각자 보여 주고 싶은 거 아무거나 보여 줘. 단! 한 동작만이야.”
웅성웅성-.
“딱 한 동작만 봐 준다. 자신 있는 동작을 하거나 자신 없는 동작을 하거나, 그건 너희들 선택이야. 그럼…… 시작!”
혼란이 채 사그라들기도 전. 루시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1열에 있던 아이들이 각자의 무기를 휘둘렀다.
영웅의 지도를 받을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품은 채. 하지만.
“패스, 패스, 패스, 넌 뭐야? 손목에 힘 똑바로 줘. 그러다 손목 나간다.”
저게 조언인가 싶을 정도로 형편없는 조언.
오히려 쓴소리를 듣는 게 더 도움이 될 정도였다.
그렇게 세 번째 열까지 끝났을 때였다.
“오, 요놈 보게?”
다이크였다. 수직으로 내리친 일격.
루시아가 처음으로 관심을 보였다.
“기교에 의지하지 않는 건 좋아. 하지만…….”
챙챙-!
단 두 합 만에 다이크가 검을 빼앗겼다.
“슬슬 그런 능력을 키우는 게 좋을걸? 나중에 몰아서 배우려고 하면 늦거든.”
“……감사드립니다!”
다이크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평소보다 높은 목소리.
무언가 깨달음을 얻은 듯했다.
“다음, 다음, 다음.”
루시아가 아이들을 빠르게 지나치던 와중, 레이몬 앞에서 중얼거렸다.
“으, 내가 제일 싫어하는 스타일.”
“제, 제 쪽이 더 별로거든요?”
“얘 뭐래니? 웃기지도 않네. 넌 공격적인 검술은 절대 배우지 마라. 그 엄청난 재능을 잃게 될 테니까.”
레이몬의 뛰어난 수비력을 말하는 걸까?
만약 그런 거라면, 지금 루시아는 진지하게 지도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레이몬의 재능을 한눈에 꿰뚫어 봤다는 뜻이니까.
다음으로 루시아를 멈춰 세운 건, 알렉스였다.
“흐음…… 이상한 놈이네.”
“예?”
“잘못된 길로만 가지 마라. 그럼 대성하겠다.”
다음은 우리 루나 차례.
루나가 힘 있게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패스.”
루나의 고개가 푹 꺾였다.
다음은 내 차례였다. 루시아가 루나를 지나치자마자 검을 휘둘렀다.
플뢰르 가문류 첫 번째 비기.
강철 폭풍의 춤.
일자로 정직하게 내리그은 검.
이펙트 같은 건 없었다. 아니, 애초에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루시아가 내 앞에 멈춰 섰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나는 입학시험 3위의 실력자니까.
루시아가 그런 내게 한 말은…….
“어휴, 넌 연습 진짜 많이 해야겠다. 검이 내려오는데 한세월이네.”
멸시에 가까운 모욕이었다.
루시아가 다음 학생에게로 향했다. 그와 동시에.
[메인 퀘스트#5]-제국의 십검(十劍) 중 하나, 루시아 드 루시드에게 실력을 인정받아라!
말장난이 아닌, 진심으로 인정받아야 클리어.
루시아를 검술로 놀라게 할 경우, 추가 보상이 주어집니다.
남은 시간 : D-30
루시아 드 루시드의 인정(0/1)
루시아 드 루시드 놀라게 하기(0/1)
보상 : 검술(E) > 검술(D), 200exp, 10골드, 루시아의 호감도 상승.
추가 보상 : 50pt.
페널티 : 모든 스탯 5 감소, 루시아의 호감도 하락.
다섯 번째 퀘스트가 등장했다.
수련 퀘스트의 일종인 ‘인정받기’ 퀘스트다.
‘검술 스킬의 등급 상승이라…….’
참, [검술] 스킬은 르앵의 수업을 듣던 중 얻을 수 있었다.
당시 F등급이었던 검술은 비네스와의 싸움 이후 E등급으로 상승한 상태였다.
‘뭐,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추가 보상인 50pt.
말도 안 되는 수치다. 무려 5레벨을 올려야 얻을 수 있는 스탯 포인트.
‘인정받기라…… 조건이 빡빡하긴 하겠네.’
이런 종류의 퀘스트는 상대의 경지가 중요하다.
상대의 강함 정도에 따라, 퀘스트의 난이도가 다르다는 뜻이다.
루시아는 8성 기사다. 일반적으로는 5장 이후에나 가르침을 청할 수 있게 되는 경지. 그렇다면…….
‘……절대 못 깰 거 같은데?’
눈이 높아도 너무 높다. 웬만한 실력으로는 루시아를 만족시킬 수 없을 거다.
하지만 이런 꿀 퀘스트를 포기하는 미친놈도 없을 거다.
“다 했다! 그럼 가 볼게요. 다들 안녕~.”
루시아가 부리나케 달리더니,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도망친 거다.
하지만 엘레스터는 흐뭇한 미소를 보일 뿐이었다.
“여러분은 잘 모르겠지만, 루시아의 지도는 굉장히 훌륭한 편에 속합니다. 앞으로 한 달 동안, 어떻게든 가르침을 받도록 하세요.”
한 달이라는 시간.
그 안에 어떻게든 승부를 봐야 한다.
* * *
“어휴, 추워라.”
한 남자가 옷깃을 강하게 여몄다. 누더기나 다름없는 외투.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선 더없이 소중한 외투다.
“과거 로한 제국은 따스한 햇볕이 매일같이 이어지는 나라라고 했는데…… 거짓말이었던 건가?”
남자가 투덜거렸다. 거친 바람을 뚫고 앞으로 나아가는 남자.
그의 이름은 다윈이었다.
앤스우드 제국의 땅에서 태어난 평민이자, 앤우드 아카데미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
멧돼지 같은 아내와 토끼 같은 딸을 둔 가장.
그리고…….
“내가 왜 시궁쥐가 되겠다고 했을까…….”
카론의 밑에서 일하는 시궁쥐 중 한 명. 그게 바로 다윈이었다.
그는 현재 카론의 엄명을 받고 칼로스로 향하는 중이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다윈은 그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무슨 일이야? 왜 이렇게 소란스러워?”
“B급 이하의 임무를 수행 중인 시궁쥐는 전부 집합이랍니다.”
“휴가 갔다 오자마자 이게 뭔 난리람…….”
갑작스러운 카론의 소집령에 시궁쥐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잘 훈련된 시궁쥐.
이내 혼란을 수습하고, 오랜만에 만난 시궁쥐들끼리 오물을 파먹으며 카론을 기다렸다.
아, 아니! 실제로 오물을 파먹는 건 아니다.
서로 가진 정보를 공유한다는 뜻을 가진 은어지.
아무튼, 다윈도 맛있게(?) 오물을 파먹던 때였다.
“대장님 오십니다!”
척-.
부복을 하거나 특정한 자세를 취한 건 아니다. 입을 다문 채 각자 편한 자세를 취했을 뿐.
효율을 중시하는 카론이었기에, 시간과 에너지를 잡아먹는 허례허식은 배격한 지 오래였다.
“칼로스로 가야 할 일이 생겼다.”
30초쯤 지났을까.
우르르-.
한 무리의 시궁쥐들이 빠져나갔다.
칼로스는 과거에 존재했던 로한 제국의 수도.
길을 모르거나, 개인 사정이 있거나, 지금 맡고 있는 임무가 끝나기 직전인 시궁쥐들.
그들이 빠져나간 거였다.
어차피 그곳까지 갈 수 없는 이들이니, 곧바로 빠진 거다. 있어 봤자 혼란스럽고, 시간만 빼앗길 뿐이니까.
공유해야 할 중요한 정보가 있었다면 저 말을 꺼내기 이전에 얘기했을 거다.
때문에 해당 사항이 없는 시궁쥐들은 미련 없이 자리를 떴다.
“은밀히 정보를 확인해야 한다.”
변장이나 은신에 능한 자들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우르르-.
또 한 무리의 시궁쥐들이 빠져나갔고.
“발이 빨라야 하며, 입이 무거운 자여야 한다.”
도주에 능하고, 10년 이상 시궁쥐 생활을 한 사람이어야 한다.
그렇게 몇 번의 과정을 거치자, 다윈을 포함해 단 두 명만이 남게 되었다.
“둘이 가면 되겠군.”
카론에게 임무를 받았다. 믿기지 않는 내용이 담긴 임무를.
그렇게 다윈은 휴가에서 돌아오자마자 여행을 떠나게 됐다.
서쪽 대륙 끝으로 말이다.
비룡을 탄 채 대륙을 가로지르고, 말과 함께 산을 오르내렸다.
늪지대를 발로 건너고, 아내를 닮은 멧돼지와 식량 쟁탈전을 펼쳤다.
‘레너…… 너의 희생은 잊지 않겠다.’
함께 임무를 받은 시궁쥐, 레너가 멧돼지에 치여 신전에 신세를 지게 되었다.
다윈은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홀로 떠날 수밖에 없었고, 드디어 칼로스에 근접했다.
그런데 아무리 걷고 또 걸어도.
칼로스에 도달할 수가 없었다.
‘여보, 올 때 고기 좀 사 와요.’
‘아빠, 올 때 곰 인형 사 와! 제일 큰 걸로!’
멧돼지 같은 아내와 토끼 같은 딸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아, 이게 주마등이란 거구나.
난 이렇게 끝나고 마는 걸까…….
쿵!
눈앞을 가릴 정도로 짙은 안개 속에서 비틀거리며 걷던 중, 무언가와 부딪치게 됐다.
다윈은 그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문이다.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은 문.
과거 로한 제국의 자랑이자, 명물이었던 문.
‘영광의 문’이 다윈의 눈앞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