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131)
제131화
131화. 훈련의 시작(9)
사각사각-.
드웨너의 손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끼니를 거르고, 휴식은커녕 잠도 자지 않았다.
아윈과 로델린을 비롯한 학생회 아이들은 잠시 고민했으나, 그런 그를 가만히 내버려 두기로 했다.
그가 당장 처리해 줘야 하는 일은 없었으니까 말이다.
드웨너를 걱정한 로델린이 간단한 식사 거리를 문고리에 걸어 둔 채 퇴근한 늦은 저녁.
그때까지도 드웨너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미친 것처럼 몰두했다. 기획서에 미친 놈처럼 말이다.
그랬던 드웨너의 손이 멈춘 건 다음 날 아침.
기획서 작성을 시작한 지, 32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짹짹-.
“음? 뭐야. 벌써 아침인가.”
드웨너가 팔을 위로 뻗으며 스트레칭을 했다.
‘후후, 겨우 8시간 만에 기획서 두 장을 작성해 내다니. 역시 나는 대단하단 말이지.’
……현실은 8시간이 아니라 32시간이었지만, 그렇다 해도 대단한 거였다.
32시간 동안 집중한 것도, 논문에 가까운 기획서 두 장을 작성한 것도.
평소 드웨너의 행실을 생각한다면 이건 대단한 일이었다.
물론, 내용이 충실하다는 가정하에 말이다.
“오늘 처리해야 할 안건은…….”
“그건 시설팀과 협의해서…….”
웅성웅성-.
아침 8시. 학생회 아이들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오는가.”
드웨너가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바람 소리와 스산한 아이들의 목소리가 총장실 문밖을 때린다.
폭풍전야.
학생회가 허접한지, 기획서가 허접한지는 결과가 말해 줄 것이다.
‘너무 긴장했나? 몸이 이상한데.’
고작 8시간 일했을 뿐인데 이상하게 몸이 찌뿌둥하다.
하지만 이런 일로 물러설 수는 없다.
양 팔꿈치를 책상에 올리며 손은 자연스럽게 깍지를 꼈다. 그 위로 자리 잡은 눈에는 힘을 가득 줬다.
‘총장의 위엄을 제대로 보여 줄 수 있는 자세지.’
자신의 엄청난 위엄에 놀란 것일까.
문을 열고 들어온 학생회 아이들이 흠칫 몸을 떨었다.
‘뭐야? 내가 지금 귀신을 보나? 우리보다 일찍 출근했다고?’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겠군.’
‘저 이상한 눈빛은 또 뭐람? 어제부터 이상하시네. 우리가 뭘 잘못했나?’
아이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였다.
“다들 안 들어가고 뭐 하나?”
“학생들을 위한 봉사를 하기 싫어진 건가? 직무유기는 벌점 사유다.”
“아…… 그, 그게…….”
학생회 아이들의 틈바구니를 뚫고 안으로 들어온 아윈과 로델린.
하지만 그들도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드웨너의 눈빛도 눈빛이지만, 몰골이 워낙 초라했기 때문이다.
괴상한 포즈, 바들거리는 몸, 푹 꺼진 눈두덩이, 초점을 잃은 눈동자.
반쯤 벗겨진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땀까지.
아이들이 당황할 수밖에 없는 몰골이었다.
“……다들 업무를 시작하게. 총장님은 우리가 맡도록 하지.”
아윈의 말에 학생회 아이들이 각자의 자리로 향했다.
“……밖으로 나오시질 않은 것 같습니다. 어제부터요.”
어제저녁 퇴근하기 전, 문고리에 간단한 요깃거리를 걸어 두고 퇴근한 로델린이다.
그게 여전히 문고리에 걸려 있었다.
“가지. 총장님이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모양이야.”
학생회와 총장실을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유리문.
아윈과 로델린이 그 문을 열고 안으로 향했다.
드웨너는 여전히 정체불명의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총장님, 계속 이곳에 계셨던 겁니까?”
“잠시 일이 생겨서 말이야.”
“……일이요?”
아윈과 로델린은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걸 직감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급한 일이 생긴 게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 드웨너가 일을 할 리가 없지.’
무능한 능력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게으른 드웨너다.
그런 그가 밤새워 일을 했다? 그것도 30시간 넘게?
‘4계위 악마가 습격해 왔을 때도 워라밸을 지키셨던 분이야. 그렇다면……!’
최소 3계위 악마가 습격했거나, 그에 준하는 대사건이 벌어진 게 틀림없었다.
아윈과 로델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을 때. 그들 앞에 두툼한 종이 뭉치가 놓였다.
“흠흠…….”
헛기침을 한 드웨너가 의자를 빙글 돌리며 시선을 피했다.
아윈과 로델린의 시야에는 의자의 등받이만이 보일 뿐이었다.
면목이 없다는 듯한 태도다.
제국 측에서 협조를 구하는 1급 기밀문서인 걸까?
그렇다면 큰일이다. 제국 측에서 아카데미의 손을 빌려야 할 정도의 일이라면.
‘전쟁밖에 없다……!’
그것도 학도병의 힘을 빌려야 할 정도로 최악의 사태라는 것.
천하의 아윈과 로델린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이게 뭡니까?”
“보면 모르나? 기획서라네.”
“……기획서요?”
“흠흠, 내가 개인적으로 작성한 기획서지. 한번 보고 평가를 내려 주게. 뭐…… 자세히 볼 필요는 없을 게야. 장난식으로 쓴 거거든.”
약 5초간 짧은 정적이 흐른 후.
사태를 파악한 아윈과 로델린이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운용 자금을 받기 위한 기획서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힘들게 작성한 기획서가 거절당할까 봐, 쪽팔려서 그랬던 거로군.’
‘전쟁이 아니어서 다행이긴 한데…….’
‘갑자기 웬 기획서지? 작년에는 제발 기획서를 작성해 달라고 읍소를 해도 우리한테 떠넘기고 도망가더니. 어디서 뒷돈이라도 받았나?’
‘아니면 지인 앞에서 허세를 부리다 부탁을 받은 걸지도?’
기획서를 보기도 전이지만 일단 의심부터 시작하는 아윈과 로델린이었다.
“타자기도 쓰지 않으신 겁니까? 어휴…….”
“표와 그림, 그래프까지 일일이 다 그리셨네요. 그런데도 자간이 이렇게 일정하다니. 놀랍군요…….”
의자 뒤로 몸을 숨긴 드웨너가 움찔 몸을 떨었다.
이십여 년 전 개발된 타자기.
행정 관료들에겐 신의 발명품이라고 불릴 정도로 빠른 작업 속도를 자랑하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드웨너는 타자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내가 한창 일할 때는 그런 게 없었단 말이다!’
수기(手記)는 수기(修己)와도 같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갈고 닦는 과정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저런 기계 따위에 의지하다니!’
나 때는 말이야~ 라고 한소리를 해 주고 싶었지만, 꾹 억눌렀다.
괜한 일로 견제를 받고 싶진 않았으니까 말이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기획서의 통과 유무였다.
팔랑팔랑-.
부정적인 시선과 생각으로 점철된 채 시작된 평가.
어느 순간, 총장실이 조용해졌다. 들리는 거라곤 아윈과 로델린이 종이를 넘기는 소리뿐이었다.
그럴수록 등을 돌린 채 앉아 있는 드웨너는 바싹바싹 말라갈 뿐이었다.
-지금 제정신이십니까?
-이딴 곳에 돈을 쓸 생각을 하시다니!
혼날 게 분명했으니까.
어쩌면 종이를 낭비한 죗값을 치르라며 온종일 총장실에 갇힌 채 서명만 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투자는 퇴짜를 맞더라도, 마도 총 수업은 반드시 신설해야 한다.’
드웨너가 만든 기획서는 두 가지다.
, 그리고 .
기획서에는 ‘마도 총 반의 신설’이라고 써 놨지만, 사실 마도 공학과 관련된 수업을 진행할 생각이었다.
‘제로 군이 마도 공학에 관심을 가지니…… 이렇게라도 도움을 주어야지.’
사실상 마도 공학반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솔직히 자신이 기획서를 만들기는 했지만, 투자는 선 넘었다고 생각하는 드웨너였다.
‘그러니 저건 퇴짜를 맞더라도, 마도 공학반은 반드시 신설한다.’
드웨너가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릴 때였다.
파라락- 파라락-.
종이를 여러 번 쓸어넘기는 소리가 들리더니, 아윈이 입을 열었다.
“……좋군요.”
“그, 그래. 역시 투자는 무리…… 응? 지금 뭐라고 했나?”
“좋다고 했습니다.”
아윈의 솔직한 심경이었다.
좋다. 그것도 생각보다 훨씬.
그리고 이건 로델린도 같은 의견이었다.
“마도 총반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는 있었습니다. 평민과 천민 출신의 아이들은 마나를 자각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리니 말이죠.”
“마도 공학 협회에 대한 투자는 신중해야 할 필요는 있지만…… 미리 관계를 맺어 줘도 나쁠 건 없습니다. 뭐, 그동안 받은 것도 많고요.”
그간 무료로 제공받은 마도 공학의 샘플들.
홍보 목적이긴 했지만, 여기저기서 쓸모가 있었던 건 사실이다.
‘물론, 터무니없을 정도로 쓸모없는 물건들도 많았지만.’
자동 이 닦기 기계, 자동 운동 기계, 자장가를 불러 주는 기계 등.
그런 샘플을 보고 있자면, 공학자들이 대체 뭔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가끔 머리를 열어 보고 싶을 때가 있었다.
그 똑똑한 머리로 왜…… 그딴 것을 만든단 말인가?
‘하지만, 최근 마도 공학 기술이 대두되기 시작한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해.’
아윈과 로델린의 시선이 첫 번째 기획서로 향했다.
.
마나만 있다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마도 총’.
본인의 실력이 아니다. 효율이 쓰레기다.
왈가왈부. 최근 이런저런 말이 많은 물건이었다.
하지만.
‘부정적인 말이 많다는 건, 바꿔 말하면…….’
‘그만큼 위협적인 기술이라는 뜻이기도 하니까.’
특히 궁술협회와 궁술 명가 측에서 반발이 심했다.
본인의 실력을 기를 수 없으며, 아티팩트의 힘에 의존하는 건 제국의 힘을 깎아내릴 것이라며.
아윈과 로델린도 어느 정도 동의하는 바이긴 했다.
기술력에만 의존한다면 언젠가 큰 화를 면치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 두 가지 기획서에서는 그걸 당당히 거론하고 있어.’
본인의 능력을 키우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본인의 능력을 기르지 않는 것과, 본인의 능력을 기르며 기술력이 보조하는 건 다르다.
본인의 실력을 키움과 동시에 기술력의 도움을 받는 것.
그게 바로 마도 총반 신설의 의의라고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었다.
‘조금 더 살펴봐야겠지만…… 투자도 문제 될 건 없어.’
앞서 말했듯, 마도 공학이 대두하고 있는 상황.
많은 금액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애초에 운영비라는 건 이런 데 쓰라고 있는 것이니까.
학기 중에 새로운 수업을 개설하는 것도 신기한 일은 아니다.
학생들에게 필요한 수업이 있다면 즉각 개설한다.
그게 바로 제국 최고의 아카데미, 앤우드 아카데미의 이념 중 하나였다.
“검토를 거친 후 이번 주 안건으로 회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으, 으음! 장난으로 만든 기획서가 회부되다니. 흠흠! 이거 큰일이구먼.”
드웨너가 곤란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아윈과 로델린은 그의 말을 가볍게 무시했다.
기뻐하고 있다는 게 의자 뒤에서도 느껴졌으니까.
다시 한번 기획서를 살피던 아윈이 생각에 잠겼다.
‘그런데 이걸…… 고작 32시간 만에 작성했다고?’
심지어 글은 물론 표, 그림, 그래프까지 일일이 손으로 만든 기획서다.
적어도 그곳에 반절의 시간은 썼을 터.
‘그렇다면 기획서의 구성과 작성에만 16시간을 썼다는 건데…….’
타자기로 작업을 하고, 보조 인원 몇 명을 붙여 줬다면 그보다 훨씬 빨리 끝났을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생각이 닿자, 한 가지 의문이 피어올랐다.
‘설마…… 드웨너가 유능한 인물이었던 건가? 지금까지는 우릴 속였던 거고?’
무능한 인간이 작성한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기획서다.
실력을 숨겼다고밖에는 볼 수 없었다.
‘아카데미 총장이 힘을 숨김!?’ 같은 상황이랄까.
아윈과 같은 결론을 내린 것일까. 그의 옆에 있던 로델린이 버럭 소리쳤다.
“왜 그동안 일하지 않으셨던 겁니까! 이렇게 일을 잘하실 수 있었으면서!”
덜컹-!
의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동안 무능한 척했다는 걸 들켜서 그런 건지, 로델린의 목소리에 놀라서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후후, 아직도 모르겠는가? 자네들의 성장을 위해서지. 내가 나서면 성장하지 못할 것 아닌가.”
뒤돌아 있던 의자가 빙글 돌더니, 아윈과 로델린에게로 향했다.
드웨너의 입가에는 승자의 미소가 서려 있었다. 하지만.
“……서명을 일주일이나 늦게 하는 것도 저희들을 위한 일이란 말이십니까?”
“아니, 그건 귀찮아서…….”
“…….”
하아.
아윈과 로델린이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뭐, 일단 드웨너가 무능한 인간이 아니라는 것에서 만족하긴 했지만.
“참, 그렇지. 마침 마도 공학 협회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도난 사건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도난?”
“예, 마도 협회에서 받은 3분기 출시 예정인 마도 총이 사라졌더군요. 수사를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만.”
“수, 수사!?”
드웨너가 이상할 정도로 크게 놀랐다.
그 모습을 본 아윈과 로델린이 눈매를 좁혔다.
“뭐, 뭐 그런 일로 수사를 한단 말인가. 애, 애들이 갖고 놀다 마, 망가졌나 보지.”
“…….”
“뭐, 뭘 멀뚱멀뚱 서 있어! 퍼뜩 가서 일이나 하지 않고!”
쾅!
그렇게 쫓겨난 둘은 총장실에서 내쫓기고 말았다.
“회장님, 어떻게 하죠? 수사를 의뢰할까요?”
“총장님이 관련된 것 같으니…… 조용히 넘어가는 게 좋겠군.”
“하지만…….”
“융통성을 가지자고. 개인적으로 연구하다 망가뜨렸을 가능성이 크니까.”
로델린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마도 총이 고급품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일반인의 입장에서일 뿐이다.
총장이 횡령할 정도의 물건은 아니라는 뜻이다.
“유능한 건지 무능한 건지…… 알 수가 없군요.”
“크게 신경 쓰지 마. 운 좋게 얻어걸린 걸 거다. 운이란 그런 거니까.”
드웨너가 총장으로 부임한 지 2년째인 지금.
처음으로 일다운 일을 했다.
‘아니지, 저번 루터스 사건까지 하면…… 두 번으로 쳐 줘야 하나?’
그럼 1년에 한 번으로 치면 될 듯하다.
‘완전 무능한 인간’에서 ‘1년에 한 번쯤 유능한 인간’으로 평가를 바꾸는 아윈과 로델린이었다.
* * *
“하아…… 지치네.”
고된 훈련이 끝나고 돌아온 기숙사.
당장이라도 침대에 드러눕고 싶었지만, 참아야 한다.
‘오늘 꼭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으니까.’
재빨리 작업에 들어갔다. 빨리 끝내야 잠자리에 들 수 있을 테니까.
창문에 미리 준비해 뒀던 종이들을 덕지덕지 붙였다.
문틈도 꼼꼼히 막았다.
이걸로 모든 준비가 끝났다.
품속에 손을 넣으며 [아공간]에서 두 가지 아이템을 꺼냈다.
친구의 깃털, 그리고 부서진 검 자루.
그러자.
[성검 아르테나가 친구의 부름에 응답합니다.]화륵-!
성검 아르테나가 내 손에서 불을 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