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134)
제134화
134화. 훈련의 시작(12)
한적한 공원.
매점에서 음료수를 구매한 루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제로의 마수(?)에서 빠져나온 것까지는 좋다. 문제는 뒷감당.
그 변태스러운 놈이 어떤 대가를 요구할지.
전혀 감이 안 잡히는 루나였다.
“에이,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제로의 화가 끝까지 안 풀린다?
필살 섹시 포즈라도 취해 주면 예쁘다며 사르륵 녹아내릴 것이리라.
‘흠흠, 그 자식에게 보여 주기에는 아까운 자세지만…… 어쩔 수 없지.’
사실 루나의 최대 무기는 귀여움.
섹시 포즈는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뿐이지만, 그걸 전혀 모르는 그녀였다.
그런 루나의 시야에 벤치에 앉아 있는 레제가 들어왔다.
상자 안에 숨어 있지 않아서일까.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주변을 쉴 새 없이 경계하고 있었다.
이윽고 자신을 발견한 레제가 환하게 웃으며 손을 들어 올렸다.
휙-.
그런 레제를 향해 음료수가 든 캔을 던졌다. 그러자…….
깡!
루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음료수가 레제의 이마를 정확히 가격했기 때문이다.
‘뭐, 뭐야!? 저걸 못 잡는다고?’
지나가던 새가 공중제비를 5번은 돈 후에 다시 날아가도 비슷할 정도로 천천히 날아간 음료수 캔이다.
심지어 양손을 위로 올리며 잡으려는 노력까지 했었다. 그런데 그걸 놓치다니.
절망적인 반응속도다.
“레제! 괜찮아?”
옆으로 풀썩 쓰러진 레제를 향해 루나가 번개처럼 달려갔다.
“괘, 괜찮아요.”
“미안. 던지면 안 됐는데.”
“아, 아니에요. 제, 제가 못나서 그런걸요.”
“아니야. 하나도 안 못났거든? 넌 생각보다 대단한 애라고.”
“루, 루나 양…….”
레제가 울먹거렸다.
자신이 대단한 아이라고 말해 주다니.
생전 처음 듣는 말에 레제는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훈련이 많이 힘들지?”
레제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빈말로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사격 훈련에 체력 훈련, 여기에 어제부터는 근력 훈련까지 시작했다.
[과충전]의 반발력을 견딜 수 있는 어깨를 만들어야 한다면서 제로가 추가시킨 훈련이었다.“훈련이 처음인 애한테는 너무 무리한 스케줄이라는 걸 왜 모르나 몰라.”
끄덕끄덕!
“사람을 보고 훈련 스케줄을 짜야지. 너처럼 연약한 애한테 너무 과한 훈련이라고.”
끄덕끄덕!
“훈련량도 조금씩 늘려 가면 될 텐데 뭐에 쫓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무식하게 훈련량만 늘리기나 하고.”
끄덕끄덕!
“저 정도 훈련량은 다음 주부터 시작했어야지. 하여튼 아직 한참 멀었다니깐?”
“……?”
그럼 다음 주부터는 저 정도 스케줄 정도는 당연히 소화해야 한다는 건가?
‘그, 그럴 리가 없어요.’
그런 건 괴물들이나 소화할 수 있는 거니까.
자신 같은 초식 인간은 무리였다.
레제는 굳게 믿기로 했다. 그런 날이 오더라도 루나가 보호해 줄 것이라고.
“아무튼, 너무 두려워하지 마. 훈련량은 내가 조절해 줄 테니까.”
두렵다는 감정. 확실히, 최근 레제가 항상 느끼는 감정이긴 했다.
하지만 단순히 훈련 때문에 느낀 감정은 아니다.
“그, 그렇기도 하지만…… 제, 제로 군이 무섭기도 하고. 또…….”
“또?”
레제가 흠칫 몸을 떨었다.
제로를 두려워하는 진짜 이유를 말한다면, 루나가 자신과 거리를 둘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다른 이유를 떠올렸다.
“제, 제가 연인 사이에 너무…… 오, 오래 끼어 있는 건 아닌가 싶어서요.”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연인이라니? 누가 연인 관계인데?”
누구끼리냐고? 그야. 당연히…….
레제가 루나를 빤히 바라봤다.
이쯤 되니 눈치가 없는 루나라도 눈치챌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의 그룹은 애초에 세 명뿐이었으니까 말이다.
“에이, 그런 거 아니야. 제로랑은 절친한 친구 사이일 뿐이라고.”
진짜 아니라는 듯 손사래를 치는 루나.
레제는 머리가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거리, 행위, 대화, 스킨십 등.
누가 봐도 연인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사이 아닌가.
최근 제로가 짜증을 내는 것도 둘만의 시간을 자신이 방해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 레제다.
“그, 그런 것치고는 너무 가까우신 거 아, 아닌가요?”
“응? 친구끼리는 원래 이러지 않나? 같이 먹고, 놀고, 쉬고, 또…… 잠도 자고?”
루나가 손가락을 하나씩 꼽으며 그렇게 말했다.
레제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친구인데 잠을 같이 잔다고?
“루, 루나 양은 보기와는 달리 굉장히 개방적(?)이시군요.”
“그런가? 보통 이 정도는 기본이잖아?”
머, 멋진 신여성!
루나의 뒤에서 후광이 뿜어져 나왔다.
자신과는 다른 루나의 당당한 모습. 레제는 눈을 가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뚫고 들어오는 후광에 레제가 혼비백산할 때였다.
“뭐 한 가지만 물어봐도 돼?”
“예, 예. 뭐, 뭐든지 대답해 드릴게요.”
갑자기 들어온 물음이지만, 레제는 당황하지 않았다.
친구인 루나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었으니까.
당근을 잘 키우는 법 같은 은밀한(?) 비밀도 대답해 줄 의향이 있었다.
하지만 레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사이가 연인일지도 모른다는 건 제로를 두려워할 이유가 안 되지 않나? 진짜 이유를 말해 줬으면 좋겠는데. 그래야 내가 도와줄 수 있잖아?”
루나가 핵심을 훅 파고들어 왔기 때문이다.
거짓말을 들킨 레제가 당황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치, 친구에게 거짓말을 한 것도 모자라 들키다니. 분명 저한테 실망했겠죠…….’
하지만 그럼에도.
진짜 이유를 말할 수는 없는 레제였다.
그때는 진짜로 루나라는 친구를 잃게 될 테니까 말이다.
“예? 그, 그야…… 아, 악마의 저주를 받기도 했고…….”
악마의 저주.
제국 측에서 법령을 만들어 엄히 다스릴 정도로 중대한 사안이다.
‘아, 악마의 저주라 불리긴 하지만, 사실상 거래나 마찬가지니까요.’
한쪽이나 양쪽이 이득을 취하는 계약이 아닌, 서로 지키거나 행해야 하는 ‘약속’을 만들어 쌍방을 구속하는 것.
그게 바로 ‘악마의 저주’라 불리는 것의 정체였다.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저주의 내용을 확인한 후 구속하거나 죽이는 게 일반적이다.
쌍방을 구속하는 계약이니, 내용에 따라 악마 측의 힘을 약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최소한 ‘구속’이라는 것.
‘대, 대다수의 경우는 처형시키죠.’
악마의 힘을 약화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악마의 저주는 최우선 신고 사항이다.
레제가 조금만 능동적인 성격이었어도 이미 신고를 했을 거다.
물론, 보고가 들어가더라도 제로는 뻔뻔히 넘겼겠지만 말이다.
「아카데미의 영웅」은 총 8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으며, 제로가 처치해야 하는 히든 보스도 8명이다.
1년에 2~3번꼴.
제로가 악마의 저주를 받았다는 걸 증명하려면 히든 포탈이 열리는 순간을 노려야 하는데, 날짜를 모르는 조사관의 입장에서는 곤란하기 짝이 없다.
악마의 저주가 중대한 일이긴 하지만, 항상 감시자를 붙여 놓을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신고한 사람도 학생, 악마의 저주를 받았다는 용의자도 학생이다?
단순한 장난, 잘난 아이에 대한 시기와 질투로 치부할 가능성이 높았다.
물론, 레제는 신고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랬다간 제로의 옆에 있던 루나도 피해를 보게 될 테니까 말이다.
‘애, 애초에 제가 제로 군을 두려워하는 진짜 이유는 악마의 저주 때문이 아니니까요.’
레제가 조심스레 루나의 눈치를 살폈다.
친구인 제로를 모욕했다며 자신과 절교하겠다고 선언하지는 않을까.
레제가 오들오들 떨고 있을 때였다.
“뭐야. 그런 거였어? 뭐, 크게 신경 쓰지 마. 악마의 저주 따위 별거 아니니까.”
루나가 화를 내지 않은 건 기쁘지만, 그렇다고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여, 역시…… 루나 양은 전혀 모르고 있어요.’
제로에게는 악마의 저주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레제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말해야 할까? 하지만 루나에게 미움받기는 싫었다.
그래, 말하지 말자. 루나도 머지않아 깨닫게 될 테니까.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기다리는 거다. 그때까지만 버티면 된다.
“그렇다고 너무 멀리하진 마. 저래 봬도 나름 속이 따뜻한 놈이거든.”
“루, 루나 양은…… 제, 제로 군과 언제까지 하, 함께 하실 건가요?”
1학년을 마칠 때까지만? 아카데미를 졸업할 때까지만?
그도 아니면 직업을 구할 때까지만이라면 좋다.
조금 길긴 하지만, 자신이 옆에서 보조한다면 어떻게든 될 것이다.
“응? 그야 당연히 평생이지. 친구란 그런 거잖아?”
평생이라니. ‘저런 것’과 평생을 함께할 생각이라고?
결국 레제가 방아쇠를 당겼다.
마음속에 감추고 있던 총알을. 레제가 제로를 두려워하는 진짜 이유를 꺼낸 거다.
“저, 저 사람이랑 있으면 안 돼요!”
“응? 왜?”
“저, 저는 알 수 있어요. 저 사람은 사고를 칠 거라고요! 그, 그것도 어마어마한 사고를!”
레제의 가문인 레리아 가문.
척박한 남부 땅에 있는 평범한 가문이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이라면.
‘다가오는 위험을 감각적으로 알아차린다는 것.’
레리아 가문 사람들은 생존에 특출난 감각을 갖고 있었다.
그 감 하나만으로 지금까지 살아남아 왔다.
물론 너무 안전을 우선하다 보니 작위가 낮긴 했지만, 수백 년 동안 가문이 유지되고 있다는 건 그 감각이 진짜라는 방증이기도 했다.
제로를 처음 본 날부터 그 특유의 감각이 위험을 경고했다.
‘저것’과 엮이는 바로 그 순간부터.
생(生)보다는 사(死)가 더 가까운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다 끝났어.’
레제가 두 눈을 꼭 감았다.
루나가 소중하게 여기는 친구를 비난하다니. 미움받을 게 분명했다.
어쩌면 이대로 루나가 떠나 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용기를 냈다.
자신이 미움받는다 하더라도.
‘루나 양을 살리고 싶으니까.’
레제가 두 눈을 감은 채 처분을 기다릴 때였다.
“아아, 역시 그런 거였나. 뭐, 그렇긴 하지.”
“……예?”
“나도 알고 있어. 제로가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 언젠가 큰일에 휘말릴 거라는 것…….”
그리고.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것도. 아주 잘 알고 있어.”
“그, 그럼 어째서……!”
“친구니까.”
루나는 기억한다.
4계위 악마 비네스와의 싸움 때, 사실상 자신은 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 자신을 살리기 위한 제로의 희생.
악마의 펜을 든 채 자신을 바라보며 희미하게 웃던 그 모습을 아직도 똑똑히 기억한다.
그때 루나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비명을 내지르는 것뿐이었다.
창자가 뜯기는 것만 같은 고통. 두 번 다시 그런 일을 겪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훈련을 하는 거야.”
강해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악마의 편린 때도, 다이크와 결투를 할 때도, 그리고 비네스 때도.
자신은 약했다. 항상 제로의 도움만 받았다.
‘앵무를 잃은 지 얼마나 됐다고…….’
하마터면 제로까지 잃어버릴 뻔했다.
두 번 다시.
그런 경험은 하고 싶지 않은 루나였다.
그런 루나를 보며 레제가 생각했다.
‘루, 루나 양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에요.’
다가올 위험을 알면서도, 죽음을 향해 걸어 들어가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친구의 곁에 남는 길을 택하다니.
자신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여, 역시…… 루나 양은 대단하세요. 저, 저는…… 그런 거 못 해요.”
“너무 걱정하지 마. 넌 언제든지 떠나도 되는 계약을 한 상태잖아? 그리고.”
루나가 활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너도 내가 구해 줄 거니까.”
“왜, 왜요? 왜 저 같은 걸…….”
“응? 친구잖아. 이유가 필요한가?”
친구.
고작 그런 단어 하나 때문에 목숨을 걸겠다니.
‘아…….’
레제는 그제야 깨달았다. 지금까지 루나를 친구로 여기고 있지 않았던 건.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루나는 자신에게 모든 것을 내어 줄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자신은 절교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만 급급했다.
진짜 친구라면 그런 것을 고민할 이유가 없는데 말이다.
“그만두고 싶으면 언제든지 그만둬도 괜찮아. 그런다고 해서 우리 사이가 변하는 건 아니니까.”
그렇구나. 여기서 떨어져도 우리는 계속 친구인 거구나.
그제야 레제는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제로는 무섭고, 훈련은 당장이라도 포기하고 싶을 만큼 힘들지만.
‘조, 조금만 더 버텨 보는 거예요.’
그게 자신을 믿어 준 루나에 대한 보답이자, 친구다운 행위니까.
“그럼 생각 정리는 이만하면 된 것 같고…… 돌아가자.”
돌아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는 구태여 물을 필요가 없었다.
“그놈 분명 내가 없어졌다고 질질 짜고 있을걸? 뭐, 이쯤에서 용서해 주자. 착한 우리가 봐줘야지. 안 그래?”
앞에서 기지개를 켜는 루나. 그 모습을 보며 레제가 생각에 잠겼다.
자신도 될 수 있을까?
언젠가 루나가 돌아가야 하는 곳이라고 말하는.
친구이자, 안식처가.
“가자.”
루나가 웃으며 손을 내밀었고, 레제가 조심스레 손을 뻗어 그 손을 맞잡았다.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연인 사이가 아니라니. 차라리 잘됐어.’
맞잡고 있는 손. 그 손에 힘을 가득 주며 레제가 다짐했다.
그 불한당의 손에서.
‘루나 양을 꼭 구해 내겠어요.’
그렇게 오늘도 작은 오해가 쌓여 가고 있었다.
* * *
끽- 끼기긱-.
교차한 검의 뒤쪽으로.
흉흉하게 빛나는 루시아의 두 눈이 보였다.
“갑자기 일섬을 쓰다니. 깜짝 놀랐지 뭐니.”
“후후, 그럼 제가 내기에서 이긴 거로군요?”
루시아를 놀라게 했을 경우, 우리를 지도해 주겠다는 내기.
그제야 기억을 떠올린 것일까. 루시아가 중얼거렸다.
“……아니거든? 말만 그랬을 뿐이거든? 전혀 안 놀랐거든?”
루시아가 뻔뻔하게 말을 바꿨다.
슬쩍 퀘스트 창을 열어 저 말이 사실인지 확인했다.
루시아 드 루시드의 인정(0/1)
루시아 드 루시드 놀라게 하기(0/1)
변화가 없었다. 진짜로 놀라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 정도는 예상했다는 건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4계위 악마 비네스와의 싸움에서 남은 [일섬]의 흔적.
용의선상에 오른 건 나와 루나 둘뿐이었으니, 이 정도는 당연히 예상 범주 안이었으리라.
‘루나가 조금만 더 강했어도 의심의 눈초리는 그쪽으로 향했을 텐데.’
하여튼 우리 루나가 문제다.
“후후, 제국의 영웅이시면서 말을 바꾸다니. 추하시군요.”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닐 텐데? 그 건방이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는지 한 번 볼까?”
끼긱- 끼기긱!
교차하고 있는 검이 비명을 내질렀다.
그래, 나도 알고 있다. 루시아가 지금 많이 봐주고 있다는 걸.
하지만.
‘이쪽도 예상 범주 안인 건 마찬가지야.’
내게는 아직 한 수가 더 남아 있었다.
루시아가 놀랄 수밖에 없는 비장의 한 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