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135)
제135화
135화. 루시아와의 거래(1)
“반역자 가문의 사람이 살아 있었다니. 놀랍네.”
“후후, 저도 많이 놀랐습니다. 루시아 님의 일격을 버텨 내다니. 어쩌면 저, 생각보다 강했던 걸지도 모르겠군요.”
“과연…… 욕심을 부리다 멸망한 가문의 후손다워. 시건방 떠는 꼬라지가 완전 판박이잖아?”
“후후, 보통은 이런 걸 실력이라고 말한다죠?”
선을 넘는 도발에도 아무렇지 않게 대응한 탓일까. 루시아의 미간이 살짝 꿈틀거렸다.
내가 그녀의 도발에 반응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 루시아가 하고 있는 건.
‘내 반응을 끌어내려는 싸구려 도발에 불과하니까.’
레스터 가문을 나쁘게 말한다면 내가 무언가 반응을 보일 것이고.
그 반응을 이용해 내가 누구인지 유추하려 했을 거다.
하지만 반응을 보이기는커녕 구렁이 담 넘어가듯 스르륵 넘어간다?
루시아의 머릿속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레스터 가문의 후손으로 추측하는 게 한계겠지.’
카론과 별 다를 바 없는 예측이다.
그도 처음에는 ‘레스터 가문의 사생아’ 쪽으로 추리의 가닥을 잡았으니까.
‘그만큼 레스터 가문이 폐쇄적이었다는 뜻이야.’
일섬을 배울 수 있는 건 레스터 가문의 사람밖에 없다.
카론과 루시아의 반응이 그걸 방증하고 있었다.
레스터 가문이 폐쇄적이었다는 건 나에게 큰 이점을 선사한다.
정보가 없다는 건.
‘손쉽게 사기를 칠 수 있다는 뜻이니까.’
쨍!
루시아의 검 끝이 내 목을 겨눴다.
반응을 채 하지도 못했다. 루시아의 동작이 워낙 민첩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뭐야. 여기에도 반응 못 한단 말이야?”
“후후, 제가 봐준 거라는 생각은 안 하십니까?”
“목이 달아나기 직전인데도 여유롭네. 목이 잘린 후에도 여유롭나 한번 봐 볼까?”
꾸욱-.
목이 살짝 따끔하더니 뜨거운 무언가가 흘러내리는 게 느껴졌다.
내 피다.
“후후, 그건 좀 곤란한데요. 해야 할 일이 많은 몸이라서요.”
“…….”
목이 당장 달아날 수도 있는 상황.
하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정신 방어] 스킬의 힘도 있지만.
‘내 목에 검을 겨누는 놈들이 좀 적었어야지.’
루나부터 시작해서 로델린, 카론, 여기에 루시아까지.
내 목을 가지고 아주 염X이 났다.
내가 대체 뭘 잘못했다고 이런 극악무도한 짓을 저지른단 말인가!
꾸욱-.
하지만 그렇게 외칠 수는 없었다.
지금 루시아는 내 목숨줄을 쥐고 있으니까 말이다.
“……죽이기 전에 한 가지만 물어보자.”
그렇구나. 내가 죽는 건 이미 확정이라는 거구나?
이젠 놀랍지도 않다.
“갑자기 왜 일섬을 사용한 거야? 꼭꼭 숨겼다면 그 날파리 같은 목숨을 조금이나마 더 연명할 수 있었을 텐데. 아, 나를 제거하려고 했던 건가? 그렇다면 자신감만은 칭찬해 주고 싶네.”
루시아의 말대로다.
반역 가문인 레스터 가문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도 모자라 일섬까지 사용한다?
당장 목이 달아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내가 과감하게 [일섬]을 사용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처음부터 이상했었어.’
아이들을 가르치겠다는 핑계로 한 달간 아카데미에 남을 뿐만 아니라, 일섬을 사용한 사람을 찾아 헤맨다?
이상한 건 그뿐만이 아니다.
‘카론에게서 일섬의 흔적을 봤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어.’
조사단의 일원 중 하나였던 카론.
그에게서 일섬의 흔적을 봤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즉.
‘조사단이 도착하기 전에 누군가가 일섬의 흔적을 지웠다는 거야.’
그리고 그 ‘누군가’는.
루시아와 유모. 저 둘 중 한 명일 확률이 높았다.
‘루시드 가문은 레스터 가문의 명예를 회복하려 하고 있어. 그렇다면 루시아일 확률이 90% 이상.’
물론, 루시아와 유모. 둘 모두일 가능성도 있긴 했다.
하지만 루시아일 확률이 높다는 걸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일섬을 사용한 거야.’
루시드 가문은 레스터 가문에 호의적이었다는 정보를 여기저기서 얻은 상태.
충분히 걸어 볼 만한 도박이었다.
문제라면 루시아가 일섬을 사용한 아이를 왜 찾는지, 그 이유를 모른다는 것 정도?
‘어찌 됐든 도박은 성공했어. 그게 중요하다.’
지금 루시아가 나와 대화를 나누는 게 바로 그 증거다.
레스터 가문에 나쁜 감정을 품고 있었다면 단번에 나를 때려눕히고 황제에게 진상했을 테니까.
즉, 루시아는 ‘어떠한 이유’로 레스터 가문의 사람을 찾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 어떠한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우선.
크르르르르-!
화가 잔뜩 난 사자를 진정시키는 게 시급해 보이긴 했지만.
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고 저렇게 날을 세우는지.
정말 억울한 나였다.
“후후, 제가 루시아 님을 죽일 수 있을 리 없지 않습니까. 저를 애타게 찾으시는 것 같아서 정체를 드러냈을 뿐입니다.”
“내가 널 찾았다고?”
“일섬을 사용한 사람을 찾고 있지 않으셨습니까.”
“흐응~ 이제 숨기지 않기로 한 거야? 뭐, 내 앞에서 일섬을 쓴 순간부터 끝난 거긴 하지만.”
대답에 만족한 것일까. 루시아가 검날을 살짝 뒤로 뺐다.
“후후, 인사드리겠습니다. 레스터 가문의 시궁쥐, 제로라고 합니다.”
허리를 살짝 숙이고, 오른팔을 가슴 쪽에 붙이며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레스터 가문의 시궁쥐라고?”
“예, 그렇습니다.”
큰 미소를 지으며 화답했다.
오히려 의심의 눈초리가 심해진 것 같은 건 내 기분 탓일까?
뭐, 레스터 가문의 시궁쥐라 말해서 그런 걸 거다.
내 미소에 무슨 불길함이 감도는 것도 아니고.
“또다시 거짓말 시작이니? 레스터 가문에 그런 존재가 있을 리 없잖아.”
“후후, 언제나 예외란 있는 법이죠. 제가 바로 그 증거고요.”
그렇지 않고서야 일섬을 사용할 수 있을 리 없으니까.
그 뒤로도 이런저런 질문이 오갔지만, 손쉽게 넘길 수 있었다.
개미굴에서 카론에게 했던 것과 비슷한 이야기.
루시아는 내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 카론조차도 속여 넘긴 거짓말이니까.
“……레스터 가문의 시궁쥐를 꿈꿨지만 되지 못한 자라. 그럼 네 목적은 레스터 가문을 그렇게 만든 놈들에 대한 복수겠네?”
“뭐, 원래는 그랬습니다만…… 하나가 더 추가됐지 뭡니까.”
“그게 뭔데?”
뭐냐고? 그야 당연히.
“후후, 비밀입니다.”
검지를 입술 위에 올리며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딱콩!
“까분다. 내가 네 친구니?”
루시아가 내 머리를 쥐어박았다.
나를 향해 겨누고 있던 검은 어느새 검집에 들어가 있는 상태였다.
‘내가 적이 아니라는 걸 깨달아서 무장을 해제한 건가.’
그렇다고 머리를 때릴 건 뭐람.
이러다 잘생긴 얼굴이 푹 파일지도 모른다.
이미 푹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얻어맞은 부위가 그렇게 주장하고 있었다.
지금 얼굴이 찌그러졌다고.
“뭐, 됐어. 별로 알고 싶지도 않으니까.”
진심으로 궁금하지 않다는 태도다.
곤란하다. 이쪽은 궁금한 게 남아 있는 상태니까.
“이제 루시아 님 차례군요. 그동안 저를 애타게 찾으신 이유는 뭐죠?”
“명예 회복.”
“예?”
“레스터 가문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싶었어. 그게 다야.”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고결한 루시드 가문.
죄 없는 사람도 가만두고 보지 못하는데 자신과 수백 년 동안 제국을 지켜 온 레스터 가문이 죄를 뒤집어썼다?
어떻게든 명예를 회복시키고 싶었을 것이다.
“쯧, 그럼 후손은 아니었다는 거네.”
“후손이요?”
“그래, 명예를 회복시키면 뭐 해. 대가 끊겼는데. 그 대쪽 같은 가문이 이렇게 없어지다니. 제국에 큰 손해라고.”
루시아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진심으로 아쉽다는 듯한 태도다.
‘이거 어쩌면…….’
이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치고 지나갔다.
“살아 있다면요?”
“뭐?”
“레스터 가문의 후손이 살아 있고, 그 존재를 제가 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떻게 하긴. 보호해 줘야지. 레스터 가문의 명예가 회복될 때까지만.”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걸까.
루시아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그보다 너, 진짜인 것처럼 말한다?”
“후후, 예. 제가 알고 있습니다. 거래하시죠.”
“……거래?”
“예. 남은 기간, 3주 동안 저희를 지도해 주신다면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레스터 가문의 유일한 생존자를요.”
루나의 존재를 알려 주는 것으로 가르침을 받는다.
루시아의 인정을 받는 것과 놀라게 하라는 퀘스트?
그것도 운이 좋다면 깰 수 있을 거다. 뭐, 반쯤 포기 상태지만.
1분쯤 지났을까. 루시아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그녀는 역시 내 거래를…….
“싫은데?”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건 조금 예상외인데.
“후후, 어째서죠?”
“애초에 나한테 얘기한 게 모두 진실이라는 보장도 없지만…….”
루시아의 눈이 서늘하게 빛났다.
“숨기는 것투성이인 수상쩍은 놈과 거래라니. 싫어. 너 같은 놈과 엮이면 좋은 꼴을 보지 못한다는 거.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거든.”
하여튼 이놈의 실눈이 문제다.
루나를 제물로 가르침을 받으려는 순수한 내 의도를 더럽게 만들다니.
“일단 살아 있다는 걸 알았으니 됐어. 내가 찾지 뭐.”
루시아가 훈련장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목적을 달성했으니 떠나겠다는 뜻이다.
곤란한 상황이다. 훈련장을 떠나는 게 곤란하다는 게 아니라.
‘아카데미를 떠날 수도 있어.’
루시아가 아카데미에 한 달이나 머무르기로 한 건 어디까지나 일섬을 사용한 자를 찾기 위해서다.
이제 그 목적을 달성했으니, 당장 내일 떠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어떻게 해서든 붙잡아야 했다.
“그럼 곤란한데요.”
“응~ 그러시겠지. 하지만 내 알 바는 아니지?”
“후후, 그게 아닙니다. 그대로 떠나시면 곤란한 건 제가 아니라, 루시아 님…….”
슬쩍 [눈 뜨기] 스킬을 사용하며 말을 이었다. 이런 건 분위기가 중요하니까.
“당신 쪽이 될 거라는 뜻입니다.”
우뚝-.
문 앞에서 한번, 그리고 나를 바라보며 한번.
루시아에게서 반응이 있었다.
“……그게 무슨 말이니?”
평소와 분위기가 다르다는 걸 감지한 걸까. 루시아의 몸에서 기백이 뿜어져 나왔다.
사자와도 같은 위상.
‘당신’이라는 지칭과 협박에 가까운 어투.
화가 났다는 걸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루시아를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아주 느긋한 발걸음.
그럼에도 루시아는 묵묵히 나를 기다렸다.
“아주 간단한 얘기입니다. 거래를 하자는 거죠.”
“하, 내가 아까 말했을 텐데? 내 쪽에서는 거래를 할 이유가 없다고. 네깟 놈이 찾은 아이를 우리 가문이 못 찾을 리가 없잖니?”
맞는 말이다. 루시드 가문은 명문 귀족가, 제국의 여덟 기둥 중 하나.
힌트를 얻었으니 어떻게든 루나를 찾아낼 거다.
루시아 입장에서는 나와 거래를 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뜻이다.
거래라는 이름을 한 저울.
루시아 쪽에는 ‘가르침’이라는 이름을 한 추가, 그리고 내 쪽에는 ‘레스터 가문의 후손’이라는 이름을 한 추가 올려져 있지만.
루시아 쪽으로 치우쳐진 상태.
최소한 평행, 아니면 내 쪽의 저울이 더 무거워지도록 추를 더 얹어야지만 이 거래가 성립할 수 있다.
즉, 지금 내가 해야 할 행동은.
‘저울에 추를 더 올려놓는 거다.’
루시아가 받을 수밖에 없는, 루시아 쪽으로 기울어진 저울이 내 쪽으로 완벽하게 기우는 무거운 추를 올리는 거다.
“후후, 현재 루시드 가문은 악마의 저주에 걸려 있다죠?”
악마의 저주라는 이름을 한 추.
저울이 내 쪽으로 기울다 못해 완전히 무너져 내릴 정도로.
아주 무거운 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