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136)
제136화
136화. 루시아와의 거래(2)
“우리 가문이 악마의 저주에 걸렸다고? 진짜 가지가지 한다.”
루시아가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볐다. 더 이상 들을 가치도 없다는 것처럼.
가문을 몰락시킬 수도 있는 비밀을, 그것도 가문이 꽁꽁 감추고 있는 비밀을 알고 있다고 말했음에도 개소리로 치부하며 웃어넘기다니.
‘그래도 루시드 가의 첫째라는 건가.’
아주 여유롭기 짝이 없다.
역시 연륜은 무시 못 한다는 걸까? 이게 바로 연상의 매력?
그렇다면…… 좀 좋을지도.
‘뭐, 지금 중요한 건 이런 게 아니지만.’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루시아.
하지만 속으로는 바짝 긴장하고 있을 거다.
루시드 가문이 악마의 저주에 걸려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게다가 악마의 저주는…….
‘사실상 거래와 다를 바가 없거든.’
악마가 인간과 마주했을 경우, 제안하는 건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악마와의 계약’, 그리고 ‘악마의 저주’가 바로 그것인데, 전자의 것은 사사로이 이득을 취하는 방식의 거래.
즉결 처형해도 괜찮을 정도의 중죄(重罪)다.
반면, 후자인 악마의 저주는 한쪽이나 양쪽이 이득을 취하는 계약이 아닌, 서로 지키거나 행해야 하는 ‘약속’을 만들어 쌍방을 구속하는 계약.
상황에 따라 악마의 힘을 약화할 수도 있는 계약이니 중죄로 취급하지는 않는다.
단.
‘먼저 보고했을 경우에 한해서만이라는 조항이 달려 있지.’
루시드 가문은 당연히 이 사실을 알리지 않은 상태. 명문가일지라도 처형에 준하는 처벌을 받을 확률이 높다.
아니, 오히려 명문가이므로 더한 처벌을 받을 거다.
그러니 속이 바짝바짝 탈 수밖에.
내가 입을 다물고 있자 그걸 증명하듯, 루시아가 말을 걸어왔다.
“아무리 내게 가르침을 받고 싶어도 그렇지…… 농담이 너무 심했어.”
“후후, 사실을 농담으로 치부하시다니. 너무한 건 루시아 님 쪽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겠네. 자신만만한 모습, 아주 보기 좋아. 뭐, 그래. 그럼 어디 한번 들어볼까? 왜 우리 가문이 악마의 저주에 걸렸다고 생각하는 건지.”
그렇게 말한 루시아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판매량이 저조하다 못해 폐간하기 직전인 주간지에서나 나올 법한 기사. 그런 걸로 치부한다는 태도다.
하지만 그 속내는 전혀 다르다는 걸 나는 알 수 있었다.
‘내가 진짜로 알고 있는 건지, 아닌지 판단함과 동시에 어디서 나온 정보인지 알아내겠다는 건가.’
진위를 가림과 동시에 소문의 출처를 확인, 더 이상의 소문이 퍼지려는 걸 막으려는 것.
나쁘지 않은 판단이다.
상대가 나라는 것만 뺀다면 말이다.
“후후, 루시드 가의 사람들은 모두 유모나 그에 준하는 존재를 데리고 다닌다죠?”
움찔-.
루시아가 흠칫 몸을 떨었다.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걸까. 그녀가 황급히 입을 열었다.
“그게 뭐가 이상한데? 유모는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쭉 함께해왔다고.”
“바로 그게 이상하다는 겁니다. 다른 명문가의 자제들은 성인이 되기 전에도 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말이죠. 참 이상한 일이지 않습니까?”
“친하니까 그런 거지. 그리고 우리 가문은 함부로 사람을 버리지 않거든. 돌봐준 것에 대한 보답을 하는 거랄까.”
“후후…… 뭐,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군요.”
루시아가 머리를 쓸어 넘기더니 말을 이었다.
“하아…… 지금 네 논리가 허점투성이라는 건 아니?”
“어느 부분이 그렇죠?”
“당연히 처음부터 끝까지지. 일단, 유모가 같이 다니는 게 뭐 어때서? 악마의 저주랑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잖아?”
아니, 아주 밀접한 상관이 있다. 그래서 루시아가 저토록 열변을 토하는 것이고.
“지금 네가 하는 주장은, ‘루시드 가의 일원은 유모와 함께 다녀야만 한다’라는 악마의 저주에 걸렸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악마가 뭐 하러 그런 제한을 거는데?”
“후후, 놈들의 생각을 이해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변태인가 보죠.”
“하, 그래! 네 말이 맞는다 치자. 하지만 주변을 한번 봐봐.”
주변을 쓱 훑었다. 우리가 자주 이용하는 훈련장.
평소와 다른 점이 없었다. 굳이 꼽자면 아까 내가 흘린 피가 땅에 조금 묻어 있다는 것 정도?
“네게도 눈이 있다면 보이겠지. 지금 내 곁에는 유모가 없잖아. 네 주장대로라면 유모가 내 곁에 붙어있었어야지. 이건 어떻게 설명할 건데?”
루시아의 말대로, 현재 이곳에 있는 건 루시아와 나. 단 둘뿐이었다.
참고로 요새 유모는 나를 점찍어둔 뒤, 다른 신랑 후보를 찾아 탐색 중이었다.
오늘도 식당에서 일하는 걸 봤다. 뭐라더라. 그곳이 가장 관찰하기 좋은 곳이라던가?
그래도 아직 나만 한 아이가 없다며, 식당에 갈 때마다 이것저것 챙겨주곤 했다.
어쨌든, 지금 이곳에 유모가 없다는 건 분명한 사실.
그러니 ‘유모는 악마의 저주와 관련이 없다’라는 루시아의 주장은 지극히 타당하다.
하지만.
“전 유모가 꼭 붙어있어야 한다고 말한 적은 없습니다만.”
“……뭐?”
“전 루시드 가의 사람들이 유모나 그에 준하는 존재를 데리고 다닌다, 그렇게 말했을 뿐입니다. 반드시 붙어서 다녀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았죠.”
“그게 그거잖아!”
루시아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어떤 상황에서도 여유로웠던 루시아가 씩씩거리기 바빴다.
좋은 반응이다. 연상 특유의, 루시아 특유의 매력을 뽐낼 여유도 없어졌다는 뜻이니까.
“내가 어린애랑 뭐 하는 거람…… 나 간다. 두 번 다시 그런 농담하지 마. 다음에는 절대 안 봐줄 거니까.”
루시아가 훈련장 문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하지만 그녀는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보호의 목적이겠죠.”
우뚝.
루시아가 딱딱하게 굳었다. 뒷모습에서도 그걸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하지만 아직 놀라기엔 이르다.
“유모를 보호해야 한다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죠, 유모가…….”
루시드 가의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붙어 다니는 거지.
콰앙!!
“컥!”
내 입에서 자연스레 비명이 터져 나왔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나는 벽에 처박힌 상태였다.
그 앞에는 눈에서 불을 뿜어내는 루시아가 서 있었고.
A급의 [일섬]도 버티는 훈련장 벽이 부서지고, 그 속에 처박히다니.
몸으로 직접 체험하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봤지? 난 강해. 그것도 유모보다 훨씬 강하지. 그런데 유모가 우릴 보호한다? 그게 말이 되니?”
“쿨럭! 그, 그게 바로 악마의 저주니까요.”
“뭐?”
“‘그놈들’과 마주했을 경우. 루시드 가의 사람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건 ‘그놈들’ 역시 마찬가지지만, 그렇게 단순하게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루시드 가의 일원들은 지켜야 할 사람들이 많으니까.
근처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지켜야 하는 대상.
더욱이, 루시드 가의 사람들이 악마를 보고도 자리를 뜬다면 큰 의심을 살 거다.
즉, 유모는 그 상황이 발생했을 시, 대응하기 위한 대비책. 다른 말로는…….
“도망치는 동안 시간을 끌어줄 희생양, 맞죠?”
“……!!”
챙!
내 목에 다시 검이 겨눠졌다.
다른 점이라면 검 끝이 목 앞이 아닌, 옆에 닿아있다는 것 정도?
진짜로 목을 베일 위기에 처했다는 뜻이다.
“감히…… 내 앞에서 가문과 가문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을 모욕하다니. 목이 떨어져도 할 말은 없겠지.”
“후후, 제국의 영웅이 아카데미의 학생을 죽이겠다니. 크게 비난받으실 겁니다.”
“상관없어. 너 같은 정체불명의 아이 하나 죽이는 것 따위, 내 명예에 흠집도 내지 못하니까. 오히려 흑막을 죽였다며 명예가 더 드높아질걸?”
루시아가 지금까지 쌓아 올린 명예는 죄 없는 사람 수십 명 정도는 죽여도 괜찮을 정도로 드높은 상태.
그러니 지금 루시아가 한 말에 거짓은 없다. 내가 흑막이라는 것만 뺀다면.
“후후, 저를 죽이시면 후회하실 텐데요?”
“……안전장치를 해놨다는 건가.”
“당연한 거 아닙니까? 믿음직한 동료에게 말해뒀죠. 아, 물론 아직은 모릅니다. 제가 연락하지 않을 경우, 비밀 장소에 가서 서신을 열어보라고 했을 뿐이라서요.”
“…….”
루시드 가에 내린 악마의 저주.
이걸 증명하는 방법도 아주 간단하다.
황제가 확인을 위해 명령을 내린다면, 절대 피해 갈 수 없을 거다.
“……어떻게 알게 된 정보인지는 모르지만 안타깝게 됐네. 우리는 피해 갈 방법이 있거든.”
그래, 나도 잘 안다. 너희들의 더러운 모습을.
가문을 지키기 위해서 절대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지른 너희들의 모습을.
그 고결함 뒤에 숨어 있는 역겨운 모습을.
게임에서 수십 번, 수백 번, 수천 번.
똑똑히 목도(目睹)했으니까.
“로델린 양을 통해 증명하려는 거겠죠. 그녀는 악마의 저주에서 벗어난…….”
유일한 존재이자, 루시드 가문의 모든 죄를 끌어안을 운명을 가진.
불쌍한 아이니까.
루시아의 눈이 눈에 띌 정도로 커졌다.
검을 내린 그녀가 몸을 비틀거리며 조금씩 뒷걸음질 쳤다.
“너, 너…… 대체 그걸 어떻게!”
어떻게 알았냐고? 그야 당연히.
“비밀입니다.”
손가락으로 입술을 가리며 그렇게 말하자, 루시아가 허망하게 나를 바라봤다.
왜 저런담. 나름 신경 쓴 시그니처 포즈인데.
“……큭.”
훈련장 벽에서 몸을 빼냈다.
돌조각에 이곳저곳 베이긴 했지만, 몸을 못 움직일 정도는 아니다.
“너…… 대체 정체가 뭐야?”
“후후, 글쎄요. 일단은 루시아 님…… 당신과 같은 편이라고 해두죠. 참고로 루시드 가문의 일은 비밀로 할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내가 그걸 어떻게 믿지?”
안 믿으면 어떻게 할 건데?
어깨를 으쓱하자, 루시아가 고개를 살짝 떨궜다. 루시아도 깨달은 거다.
나에게 그 어떤 위협도 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저울의 축은 내 쪽으로 완전히 기운 상태.
이제, 본격적인 협상을 시작할 때다.
“그러니, 거래를 하죠.”
“거래?”
“예, 저는 처음부터 거래를 원했습니다. 상황을 이렇게 만든 건 루시아 님이죠. 그렇지 않습니까?”
레스터 가문의 생존자를 알려줄 테니, 검술을 가르쳐 달라는 거래.
거부한 건 루시아 쪽이다. 그 사실을 깨달은 걸까.
루시아가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아시다시피, 고작 한 달간 가르침 받는 것으로 입을 다물기에는 불공평한 거래죠. 그러니 두 가지를 더 부탁드리겠습니다.”
손가락을 하나씩 꼽으며 말했다.
앞서 말했듯 우리를 한 달간 성실히 지도해 주는 게 첫 번째.
“제게 도움이 요청했을 때 도움을 줄 것. 단, 세 번으로 제한을 걸겠습니다.”
“……그럼 총 다섯 개가 되는 거잖아.”
“후후, 그래도 루시아 님 쪽에 유리한 거래인데요. 싫으십니까?”
루시아가 입을 다물었다.
세 개든, 다섯 개든.
루시드 가문의 비밀을 지키는 것에 비하면 싼 대가다.
루시아가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두 가지 추가 저울에 올라갔다.
이제 마지막으로.
“레스터 가문을 저렇게 만든 놈들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저와 동맹을 맺을 것을 요구하는 바입니다.”
“……동맹?”
“예, 루시드 가문과 저. 동맹 관계를 구축하는 거죠.”
루시아가 인상을 팍 찡그렸다. 가문 전체와 한 개인의 동맹이라니.
레스터 가문에 한해서인 동맹이라지만, 나는 일개 아카데미 학생.
자존심이 상해도 너무 상할 거다.
“미안하지만 그건 곤란해. 나 혼자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후작님께 말씀드려도 상관없습니다.”
“……뭐?”
“루크 후작님께 제 존재를 알려도 상관없다는 뜻입니다.”
“미안한데 아버지는 나랑 로델린이랑 달라. 우리처럼 유하지 않다고! 널 가만두지 않을걸?”
미안한데, 그건 이쪽도 마찬가지거든.
난.
‘그 역겨운 새끼의 얼굴을 보고 한 대 때려줄 거거든.’
가문을 지키기 위해, 가문의 일원과 가신들, 그 외의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로델린에게 희생을 강요한 그 역겨운 놈을.
내가 꼭 혼내줄 거다.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야. 아버지를 뵙겠다니. 절대 안 돼. 너에게 그만한 자격이 있다면 모를까…….”
자격이라. 확실히 어느 정도 자격은 있어야 할 거다.
루크 후작이 관심을 가지려면 어느 정도 실력이 있어야 할 터.
최소한 6성 기사쯤은 되어야 눈의 끝자락에 걸릴 거다.
하지만 내게는 그가 관심을 보일 수밖에 없는 ‘한 가지’가 있었다.
“증명해드리죠. 조심하십시오.”
“뭐?”
지금이야말로 비장의 한 수를 선보일 때다.
아공간에서 검과 회중시계를 꺼내 들었다.
회중시계와 함께 단단히 쥔 검.
왼발과 오른발은 보폭을 조절하며 앞뒤로.
양손으로 쥔 검을 하늘로 들어 올렸다.
촤르륵-.
손의 뒷부분을 살짝 펼치자, 회중시계가 낙하하기 시작했다.
루시아의 시선이 하늘로 치켜올린 검과 떨어지는 회중시계로 향한다.
[눈 뜨기] 스킬을 사용하자, 그녀의 시선이 나와 마주했다.딸깍!
땅에 부딪히며 뚜껑이 열린 회중시계를 밟았다.
순간적으로 루시아의 몸이 굳었다. 그와 동시에.
루시드 가문류 네 번째 비기.
하늘 가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