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137)
제137화
137화. 루시아와의 거래(3)
수직으로 내리긋는 검격.
내가 봐도 아름다울 정도로 완벽한 수직 베기다.
루시아가 황급히 검을 눕히며 방어 자세를 취했다.
쩡!
검끼리 마주한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괴상한 울림이 훈련장에 울려 퍼졌고.
우리 사이에서 시작된 폭풍과도 같은 바람이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갔다.
덜컹덜컹-!
창문이 거칠게 흔들렸지만 깨지지는 않았다.
내가 펼친 [하늘 가르기]가 약해서 그런 것인지, 루시아가 잘 막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멈추지 않을 것 같은 폭풍이 잠잠해졌을 때였다.
[루시아 드 루시드 놀라게 하기(1/1)]눈앞에 퀘스트 알람이 떠올랐다. 퀘스트 조건을 충족시켰다는 알람이다.
은빛 섬광과 하늘 가르기의 콤보.
제국 십검(十劍) 중 하나인 루시아지만, 놀랄 수밖에 없었으리라.
물론, 놀란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반응할 줄은 알았지만…… 완벽하게 막아 낼 줄이야.’
A등급 판정을 받는 [하늘 가르기]도 그렇지만, 일시적으로 움직임을 멎게 하는 은빛 섬광까지 사용한 나다.
그런데도 완벽하게 막아 내다니. 진짜 괴물이다.
물론, 반응한 건 신체뿐이다.
현재 상황을 인식하고, 생각이 정리된 건 아니라는 뜻이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부릅뜬 루시아의 두 눈이 그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다. 이건 루시드가의 비기. 그것도 네 번째 비기니까.
다섯 개의 비기 중 네 번째 비기, 하늘 가르기.
로델린도 그렇지만, 루시드가의 셋째도 아직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기술이다.
그런 기술을 내가 구사했으니, 루시아가 놀라는 건 당연한 일이다.
‘계획대로야.’
루시아에게 가르침을 받을 기회를 얻음과 동시에 퀘스트를 수행한다.
모든 건 내 계획대로였다.
아쉬운 게 하나 있다면…….
[루시아 드 루시드의 인정(0/1)] [루시아 드 루시드 놀라게 하기(1/1)] [퀘스트 조건을 충족시킬 경우, 추가 보상인 50pt가 주어집니다.]‘쯧, 인정은 받지 못했다는 건가.’
두 가지 조건 중 하나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심지어 루시아의 인정을 받아야 50pt를 준단다.
이대로 인정을 받지 못한 채 한 달이 지날 경우, 놀라게 한 노력도 물거품이 된다는 뜻이다.
참 빡빡한 퀘스트 조건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아직 3주 정도의 시간이 남았다는 거?
뭐, 지금은 퀘스트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지만 말이다.
“너, 너너너……!”
천하의 루시아가 말을 더듬거렸다.
그렇다. 지금 상황에 대한 변명을 하고 잘 넘어가는 것.
이게 현재 내가 직면한 문제였다.
“후후, 어떻습니까? 이 정도면 후작님을 뵙기 위한 자격은 충분하지요?”
“지, 지금 그딴 게 중요해?”
“그럼 뭐가 중요하죠?”
“네가 우리 가문의 비전 기술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지! 너 바보니?”
바보라니. 상처다.
그래도 괜찮다. 난 바보가 아니니까.
내가 생각해 낸 완벽한 변명을 보면 그 점을 알 수 있을 거다.
“후후, 사실 루시드 가의 시궁쥐가 되는 것도 제 꿈이었거든요.”
“…….”
루시아의 눈이 짜게 식었다.
뭐지. 완벽한 변명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걸까?
“너 같으면 믿겠니? 그리고 시궁쥐가 되고 싶다고 해서 비전 기술을 쓸 수 있다는 건 말이 안 되거든? 똑바로 설명해!”
루시아의 눈이 번뜩였다. 제대로 된 설명을 하지 않으면 진짜로 죽일 기세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사실대로 말하는 수밖에.
뭐, 약간(?)의 거짓말을 섞긴 하겠지만.
목을 가다듬은 후,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보고 배웠습니다.”
“……보고 배웠다고?”
끄덕-.
그게 바로 [신의 모방]이란 스킬이니까.
허술하기 짝이 없는 변명. 하지만 루시아의 입장에서도 어쩔 수 없을 거다.
‘내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걸 알아차렸을 테니까.’
맥박이나 호흡을 통한 거짓말 판별은 루시아 정도면 당연히 할 수 있을 거고, 실제로 [하늘 가르기]를 사용한 나다.
사생아 같은 것도 없는 루시드 가문이니, 남은 건 ‘보고 배웠다’라는 선택지 하나뿐.
“천재…… 라는 건가.”
루시아의 생각은 자연히 그쪽으로 향하게 됐다.
비전 기술을, 그것도 상위의 비전 기술을 보고 배운다는 건 상식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니까.
‘천재’란 존재는 그런 상식에서 벗어난 존재.
내가 사용한 [일섬]과 [하늘 가르기]가 저 주장에 신빙성을 더해 줬다.
결국, 루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일섬을 쓸 때도 뭔가 이상하다 싶었는데…… 보고 훔쳤다는 건가. 겉보기와 달리 눈이 좋은가 보네.”
“후후, 훔친 게 아니라 보고 배운 겁니다만?”
“보통은 그걸 훔쳤다고 표현한단다. 그 작은 눈으로 잘도 보고 훔쳤네.”
실눈이라고 무시하냐!? 이래 봬도 똑똑히 잘 보인다고!
예쁜 네 얼굴하고 여기저기 훌륭하고 잘 단련된 몸, 그리고 또…… 새하얀 살결도!
‘음? 새하얀 살결?’
그제야 나는 루시아의 옷이, 가슴 부분이 살짝 찢어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내 공격을 완벽하게 막아 내지 못한 모양이다.
뭐, 생채기 하나 보이지 않으니 완벽하게 막아 냈다고 봐도 무방하지만 아무튼!
‘……아슬아슬하네.’
척 보기에도 옷이 힘겹게 버티고 있었다.
루시아는 이 사실을 모르는 듯했다.
‘말해 줘야 하나?’
하지만 그랬다간 루시아의 자존심에 큰 상처가 날지도 모른다.
루시아는 내가 제안한 거래를 아직 받아들이지 않은 상태.
어쩔 수 없다. 옷에 별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수밖에.
“어쨌든, 이 정도면 자격은 충분하겠죠. 거래를 받아들이시겠습니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놓고서 물어보다니. 고약하네.”
“후후, 제가 그랬나요?”
“그 전에 한 가지만 묻자. 우리 가문에 걸린 악마의 저주는 어떻게 알아낸 거야? 너도 알겠지만…… 논리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잖아?”
루시아의 말대로다.
현재 루시드 가문이 걸린 악마의 저주는 루시드 일가와 악마. 양쪽을 구속하는 계약.
그것도 어느 한쪽이 발설 시, 그 즉시 파기된다는 특별 조항이 걸린 계약이다.
루시드 가의 일원과 악마. 어느 쪽인지는 모르지만, 정보를 발설했다면 현재 루시드 가에 내린 악마의 저주는 없어져야 이치에 맞다.
하지만 악마의 저주는 여전한 상태. 루시아로서는 당연히 품을 수밖에 없는 의문이었다.
‘나는 이 게임을 수만 번 플레이한 사람이니, 아는 게 당연하지만.’
그 사실을 말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이런 곤란한 상황일 때는 역시.
“후후, 비밀입니다.”
얼렁뚱땅 넘어가는 게 최고다.
물론, 루시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지만.
“……그 자세, 사람 진짜 열받게 한다는 거 알고 있니? 진짜 죽어 볼래?”
“후후, 남자의 비밀은 무죄입니다만?”
“여자의 비밀은 무죄겠지.”
세상에 그런 성차별적인 발언을! 남자의 비밀도 지켜 줘야 하는 시대란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걸까.
루시아가 눈을 빛내며 날 압박해 왔다.
“결국 힘을 쓰게 만드는구나?”
“음, 곤란한데요. 더 이상 다가오시면…….”
“내가 곤란한 건 아니잖니?”
“하지만 제 신변에 문제가 생기면 밖에 있는 동료가 루시드 가의 비밀을…….”
“연락이 안 가면 문제가 생기는 거라며? 그럼 그전까지는 무슨 일이 생겨도 괜찮은 거라는 뜻이잖아? 일단 좀 맞자. 그러면 말하고 싶어질지도 모르니까.”
루시아가 생긋 웃으며 나를 향해 다가왔다.
아니, 나도 곤란하긴 하지만 지금 가장 곤란한 건 당신 쪽이라고!
왜냐하면.
찌직-.
아슬아슬하게 버티던 루시아의 옷이 비명을 내질렀다.
그로 인해 새하얀 살결이 더욱 드러났다.
“자, 잠시만! 이러시면 안 됩니다!”
“안 되긴 뭘 안 돼! 당장 이리 와!”
루시아가 내 양팔을 단단히 부여잡았다.
그러더니 양쪽으로 크게 벌렸다.
……동시에 루시아의 양팔이 벌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찌지직!!
무언가 커다란 게 출렁거리는 소리와 함께 튀어나왔다.
그것도 내 얼굴 정면으로.
“…….”
“…….”
짧은 정적이 흐른 후,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건.
“꺄아아아악!!”
루시아의 비명과 내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주먹의 모습이었다.
* * *
……낯선 천장이다.
‘아니, 훈련장 천장이군.’
머리를 흔들며 정신을 차렸다. 훈련을 하다 지쳐 잠들었던 모양이다.
‘다행이야. 꿈이었던 모양이군.’
루시아가 아무리 허당이라지만, 옷이 찢어지는 것도 모를 정도로 허당은 아니다.
그럼 대체 어디서부터 꿈이었던 걸까.
루나를 찾아 시선을 이리저리 옮기던 때였다.
“훌쩍.”
훈련장 구석에서 울고 있는 루시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구나. 꿈이 아니었구나.
루시아의 허당력은 내 상상 이상이었던 거구나?
‘그리고 왜 울기는 왜 울어?’
서른 중반이라는 나이도 그렇지만, 제국의 십검 중 하나인 루시아다.
못 볼 꼴, 더러운 꼴, 지저분한 꼴. 인간의 추악한 모든 면을 봤을 터.
고작 이런 일로 울 사람은 아니란 뜻이다.
‘가문의 저주가 남에게 알려져서겠지. 가문이 몰락할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우는 거일 거야.’
루시아를 안심시켜 주고 거래를 끝내자.
그렇게 생각하고 다가갔을 때였다.
“외간 남자한테 몸을 보이다니…… 더러워졌어. 난 이제 시집을 못 가는 몸이 되어 버린 거라고.”
훌쩍훌쩍.
……그렇구나. 루시아한테는 고작 이런 일이 아니었구나?
꼰대인 건 알고 있었지만 그런 쪽으로도 꼰대일 줄은 몰랐다.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후후, 루시아 님? 괜찮으십니까?”
“…….”
“루시아 님?”
“으아아아앙! 괜찮을 리가 없잖아! 더럽혀졌어! 순결을 잃었다고!”
등을 돌린 채 앉아 있던 루시아가 내 쪽으로 몸을 홱 돌리더니 달려들었다.
진짜 눈 뜨고는 못 봐 줄 몰골이다.
퉁퉁 부은 눈도 그렇지만, 아직 옷매무시를 가다듬지 않았다.
아까 그 상태 그대로라는 뜻이다.
그만큼 루시아에게는 큰일이라는 뜻이리라. 옷에도 신경 쓰지 못할 만큼.
“진정하십시오.”
교복의 외투를 벗은 뒤 루시아에게 입혔다.
그리고 앞을 꽁꽁 싸맸다.
항상 유모의 보살핌을 받아서일까. 루시아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눈을 감은 채 단추를 채우려니 힘들었지만, 어떻게든 해냈다.
뭐…… 앞을 완전히 가릴 수는 없었지만 중요한 곳은 다 가렸으니 괜찮을 듯했다.
“훌쩍.”
“후후, 좀 괜찮아지셨습니까?”
“그럴 리가 없잖아! 이제 시집을 못 가게 됐다고!”
“아무것도 못 봤습니다. 애초에 눈이 작아서 잘 보이지도 않거든요.”
“……정말?”
루시아가 반색했다. 워낙 작은 내 실눈 때문에 가능했던 변명.
역시 나는 천재가 분명하다니깐?
“후후, 그렇습니다. 그러니 루시아 님의 순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죠.”
“다행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시집을 갈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위기는 넘겼지만, 아직 이전의 루시아가 보인 모습과는 차이가 있었다.
기운을 북돋아 줄 필요가 있었다. 거래를 성공적으로 끝내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여자는 예쁘다는 말을 좋아하지.’
여심 공략에도 천재적인 재능이 있는 나다.
허당인 루시아를 요리하는 것 정도야 일도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루시아 님처럼 예쁜 분이 아직 결혼을 못하시다니.”
“흐, 흐음……. 정말 그렇게 생각해? 내가 예쁘다고?”
“그야 당연하지요.”
“하지만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피부가 축축 늘어지는걸. 싸움으로는 어린 것들을 이길 수 있지만…… 피부로는 불가능하더라고.”
다시 의기소침해지려는 루시아.
나는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루시아의 생각일 뿐이었으니까.
“아니던데요.”
“응?”
“아주 예뻤습니다. 제가 똑똑히 봤으니 확실합니다.”
“…….”
루시아의 분위기가 변했다.
의기소침을 넘어서 어딘가 무시무시해졌달까.
나는 머지않아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구나. 똑똑히 봤구나?”
“자, 자세히 생각해 보니 어렴풋이 봤던 것 같습니다!”
“……죽어.”
날아오는 루시아의 주먹을 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진짜 허당은 나일지도 모르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