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140)
제140화
140화. 비기는 일류지만 검술은 삼류예요오옷!(1)
다음 날 오후.
“하암~ 졸려라.”
루시아는 약속을 지켰다. 우리가 막 몸을 풀기 시작했을 무렵. 무거운 몸을 이끌고 친히 훈련장에 행차한 거다.
“설마 이 나이에 애들을 가르치게 될 줄이야……. 하여튼 요즘 것들은 노인 공경이 없다니깐?”
뭐, 꼰대 같은 태도는 여전했지만 말이다.
“후후, 오셨습니까.”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오…….”
“오냐. 그래도 예의는 바르네. 딱 한 놈 빼고.”
설마 나를 보고 하는 말은 아니겠지?
아닐 거다. 인사에 차이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내 똑똑한 머리로 추리해 본 결과, 루시아의 기분을 상하게 한 범인은.
“후후, 레제 양. 인사는 똑바로 해야지요. 루시아 님께서 실망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예……?”
따악!
“쟤가 아니라 너거든!”
루시아가 내 머리를 한 대 쥐어박으며 그렇게 말했다.
놀라웠다. 저 멀리 있던 루시아가 순식간에 내 앞에 당도한 것도 놀랍지만.
‘범인이 나였다고?’
그렇다면 내 인사가 잘못됐다는 건데…… 대체 어디가 잘못됐단 말인가?
“그렇군요! ‘오셨습니까’가 아니라 ‘왔니?’가 맞았던 거로군요?”
“그거겠니?”
“후후, 그럼 뭐죠?”
“어휴…… 이런 놈을 3주나 가르쳐야 한다니……. 말을 말자.”
루시아가 반쯤 죽은 눈으로 우리를 쓱 훑었다.
“근데 저건 왜 저러고 있니?”
참고로 루시아가 지적한 ‘저건’ 레제를 일컫는 것이었으며, ‘왜 저러고 있냐’는 말은…….
“레제! 이쪽 봐야지! 벽은 왜 보고 서 있는 거야?”
그렇다. 루나의 말처럼 레제는 벽에 머리를 대고 있는…… 아니, 들어가다시피 박고 있는 상태였다.
내 생각과 달리, ‘내일의 레제’는 오늘의 일을 해결할 수 없는 존재였던 모양이다.
“후후, 실은 말입니다…….”
레제가 왜 벽과 한 몸이 되려 하는지에 대해 간단히 설명했다.
그러자.
“강한 사람과 시선을 마주하면 죽는다고? 아아, 그런 놈들 있지.”
“……레제 양의 말이 진실이라는 뜻입니까?”
“아니, 뭐…… 죽는 놈은 없어도 기절하는 놈들은 종종 있었거든.”
루시아의 반응을 보아하니 거짓말은 아니다. 애초에 그런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었고.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생겼네.’
게임에서도 이런 걸 경험한 적은 없었으니까 말이다.
레벨 차이가 크게 날수록 쉽게 상태 이상에 걸리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곧바로 기절이나 죽음에 이르지는 않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제 막 2장 초반부에 들어선 시점.
루시아 같은 고레벨 캐릭터와 마주하는 일은 굉장히 희귀한 경우니까.
‘아무튼, 예상보다 더 빠르게 레제를 버리게 될지도 모르겠네.’
싸울 수 없는 동료는 이쪽에서 사절이다.
우선 급한 대로 레제의 눈을 붕대로 감으려던 때였다.
“뭐, 치료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치료법이 존재하는 겁니까?”
“간단해. 강해지는 거야.”
“예?”
“저 아이가 강해질수록 그만큼 상대와의 격차가 좁혀지잖아? 성장하면 성장할수록 시선을 마주할 수 있는 존재가 늘어나게 될 테고…… 나중에는 모두와 시선을 마주할 수 있게 될 거야.”
어쩌면 레벨과 관련된 게임 설정이자 히든 피스일지도 모른다.
어차피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경험자의 말을 믿고 따르는 수밖에.
“잠시만…….”
그 말과 동시에 루시아의 눈이 빛났다.
그러자 등을 돌린 채 서 있던 레제가 계속해서 몸을 움찔움찔 떨었다.
나와 루나는 그런 레제를 이상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오, 기감이 엄청 좋은데?”
“기감이요?”
“응, 그것도 1단계의 마나까지 감지했어. 굉장한걸?”
우리의 고개가 동시에 왼쪽으로 꺾였다. 뭔 말인지 모르겠다는 뜻을 표출한 거다.
뒤돈 채 고개를 꺾은 레제 때문에 루나와 레제가 머리를 부딪치는 작은 사고가 있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루시아의 설명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총 5단계로 강약을 조절해서 마나를 쏘아 보내 봤어. 그리고 너희 셋 중 뒤돌아 있는 저 아이만 유일하게 반응했지.”
“마나를 감지했다는 건가요?”
“조금 다르긴 하지만…… 뭐, 그렇게 봐도 상관없긴 해.”
어쩌면 레제가 보유하고 있는 [집중S]과 [위기 감지A] 스킬의 힘인지도 모른다.
“참고로 저건 타고난 재능이야. 물론 노력으로도 가능하긴 하지만…… 쟤는 노력을 안 하고도 저 정도이니 재능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지. 이 정도의 기감은…… 마스터들 이후로 처음 보네.”
루시아의 극찬이 이어졌다. 그녀가 이토록 극찬하는 걸 보니 상당히 쓸모 있는 재능일 터.
그리고 보통 이런 대화가 나올 경우, 이어지는 건…….
“저런 애가 쓰기 딱 좋은 기술이 하나 있지. 마도 총은 내 전공이 아니라 뭘 가르쳐야 할지 고민 중이었는데…… 마침 잘됐네.”
그렇다. ‘스킬 전수’ 이벤트다.
게임을 하다 보면 때때로 기연(奇緣)을 만날 때가 있는데, 보유 스킬이나 특성, 스토리에 따라 얻을 수 있는 보상이 달라진다.
그리고 얻을 수 있는 보상 중 가장 대표적인 게 바로 ‘스킬’.
루시아가 어떤 스킬을 전수하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생각지도 못한 수확이다.
“후후, 겸사겸사 마나량을 늘리는 훈련도 부탁드립니다.”
“요 뻔뻔한 놈 좀 보게? 나한테 뭐 맡겨 놨니?”
쭈욱-.
어느새 접근한 루시아가 내 양쪽 볼을 잡고 양쪽으로 쭉 늘렸다.
음, 루시드 가의 은밀한 비밀을 당장 불어 버리고 싶어지는 기분이다.
‘후우…… 착한 내가 참자.’
힘들게 얻은 기회다. 괜한 변수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후후, 레제 양에게 재능이 있고, 강해지면 괜찮아질 거라는 걸 알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게 하죠? 저 상태로는 제대로 배우지도 못할 텐데요.”
“다 방법이 있지.”
루시아가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냈다.
빨간 모자와 선글라스였다.
“기백은 최대한 억누르고, 눈은 내가 가리면 되지. 어때, 이제 괜찮지?”
“아, 아…… 네! 가, 감사합니다!”
내 앞에 있던 루시아는 어느새 레제의 눈앞에 도달해 있었다.
레제가 그런 그녀를 향해 허리를 꾸벅 숙였다.
‘미리 준비해 온 건가? 은근히 상냥하단 말이지.’
어쩌면 저런 모습 때문에 루시아의 명예가 떨어지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허당스러운 면모 속에 숨겨진 매력이랄까?
“이만하면 정리는 된 것 같고…… 이제 훈련을 시작해 볼까?”
가만, 그런데 저거…… 어디선가 많이 본 모습이다?
어디서 봤더라?
“본 조교의 눈을 마주치지 않습니다.”
잔뜩 목소리를 내리깐 채 내뱉은 루시아의 말. 나는 이윽고 어떤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크윽!”
“뭐, 뭐야! 너 갑자기 왜 그래?”
“……남자라면 누구나 있는 PTSD랄까요.”
“……뭔 개소리야? 지금 혼자 남자라고 시위하니?”
루나의 말에 대답할 여유도 없었다.
대뇌 전두엽에서 엄청난 통증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거기, 잡담하지 않습니다.”
“후후, 대뇌 전두엽에서 시작된 통증이 온몸을 잠식하고 있습니다만…… 조금 쉬어도 되겠습니까?”
진심이 가득 담긴, 사람이라면 들어줄 수밖에 없는 부탁.
그에 루시아가 생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되겠니?”
* * *
“좋아, 10분간 휴식.”
“흐아아…….”
“흐, 흐에엥…….”
레제가 괴상한 소리와 함께 철퍼덕 엎어졌다.
하지만 이건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온몸이 땀범벅이다.
‘훈련도 꼰대식일 거라 예상은 했지만…….’
이건 생각 이상이다.
무려 2시간 동안 쉬지 않고 진행된 기본 트레이닝.
참고로 레제는 20분이 넘어갈 무렵부터 땅을 기다시피 했다.
“겨우 이 정도로 지친 거야? 하여튼 요즘 것들은…….”
“후후, 예전 것들도 저희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그래? 그럼 비교해 보면 되겠다. 마침 내가 그 예전 것들이잖니?”
“크윽! 대뇌 전두엽에서 시작된 통증이 시상하부의 뇌하수체까지 침범하여…….”
“……진짜로 그렇게 만들어 주기 전에 닥쳐.”
곧장 입을 다물었다. 루시아라면 그러고도 남는 인물이니까.
그렇게 10분이라는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본격적인 훈련에 앞서 한 가지 확인하겠는데, 내가 가르쳐야 할 사람은 너희 셋뿐인 거지?”
“후후, 그렇습니다.”
“소수라 좋네. 시간도 널널하니…… 한 명씩 개인적으로 봐 줄게.”
“예?”
“왜? 싫어? 싫음 말고.”
“아뇨, 좋습니다. 탁월하신 선택이십니다.”
내가 놀란 이유. 루시아가 이렇게까지 해 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끽해야 자세를 봐 주고 지적하는 선에서 끝날 줄 알았는데, 3주간 세 명을 개인적으로 지도해 주겠다니.
귀차니즘의 대명사로 불리는 루시아가 할 만한 짓이 아니었다.
‘소원권 한 개를 쓸 각오까지 하고 있었는데…… 일이 잘 풀렸네. 뭐, 그만큼 가문을 지키고 싶다는 거겠지.’
내 입에서 악마의 저주와 관련된 내용이 흘러나가지 않게끔.
고작해야 3주이니, ‘그 정도는 고생할 수밖에 없겠네’라고 생각했을 거다.
물론.
‘이쪽에서는 3주로 끝낼 생각이 없지만 말이야.’
순수하고 순박한 나지만 굴러 들어온 호구를 놓아줄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다.
아, 그렇다고 막 부려 먹는다는 건 또 아니다.
루시아는 대륙의 영웅이자, 중후반부에 큰 활약을 해야 하는 인물.
주인공 일행에게도 도움을 줘야 하는 존재이니 적당히 쓰다 놓아줄 생각이었다.
어디 보자…… 한…… 총장 드웨너 정도? 그 정도로 사용하면 적당할 거다.
응? 그건 뼛속까지 빨아 먹겠다는 뜻 아니냐고?
후후. 다 착각이다, 착각.
“레제라고 했던가? 우선, 넌 저기 가서 총부터 쏴. 마나를 한 톨도 남기지 말고.”
“네…… 넵.”
레제가 사격 모형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엉금엉금 기면서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레제를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당장 우리가 죽기 직전이니까 말이다.
“너희 둘은 나랑 대련을 할 거야. 누구부터 할래?”
“저요! 저부터 할래요!”
“패기는 좋네. 시간 끌지 말고 바로 시작해.”
루시아와 루나의 대련이 시작되었다.
루시아가 방어에만 신경 쓴 탓에 대련이라고 보기에는 뭐 했지만.
“여기까지.”
“헉…… 헉. 가, 감사합니다.”
“센스가 좋네. 싸움 경험이 많은가 봐?”
“예…… 조, 조금.”
“다만, 너무 길거리 싸움이야. 어느 정도 수준이 되는 애들하고 싸울 때는 엄청 답답할걸?”
“화, 확실히…… 아카데미에 온 뒤로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벽과 싸우는 것 같달까?”
루시아는 단 한 번의 대련으로 루나의 현 상태를 정확히 진단해 냈다.
그 뒤로도 몇 가지를 더 지적한 후, 루시아가 내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네 차례네. 어디 실력 한번 볼까?”
“후후, 기대하지 마십시오.”
비기를 사용하지 못하는 나는 엄청나게 약하니까.
특히, 검술의 ㄱ자도 모르는 나에게 대련은 절망적.
검을 든 레제와 동급이라고 봐도 무방할 거다. 아니, 어쩌면 더 약하지 않을까?
“흐응~ 기대하라는 말이구나? 하긴, 건방 떨 만하긴 해. 이거 오랜만에 재밌겠는걸?”
눈을 빛낸 루시아가 입술을 핥았다.
루나의 공격을 받아 내기만 한 조금 전 대련과는 다르게, 내게는 공격까지 가하겠다는 의도가 명백히 보였다.
아니, 진짜로 기대하지 말라는 뜻이었는데요!?
“간다! 방심하지 말라고!”
“자, 자자자자잠깐……!”
그로부터 1초 후.
내 몸은 하늘을 날고 있었다.
물론, 타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