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143)
제143화
143화. 비기는 일류지만 검술은 삼류예요오옷!(4)
그때의 기억이 스멀스멀 떠올랐다.
일명 ‘오므라이스 초토화’ 사건.
카론과 접촉하고 싶다는 암구호를 시궁쥐에게 보내던 중, 루나의 분노를 사게 됐고.
머리끝까지 분노한 루나는 나에게 레스토랑을 예약해 놓으라고 선언.
눈물을 흘리면서 레스토랑을 알아보던 때의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그때 이후로 3주는 넘게 지났는데…… 그걸 기억해 내다니.’
똑똑한 나조차도 잊어 먹고 있던 기억이다.
4계위 악마 비네스의 습격이 너무 강렬했던 탓에 흐지부지됐고,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약속.
루나는 지금 그 약속을 지키라고 말하고 있었다.
‘다 지난 일을 지금 꺼내 들 줄이야.’
루나의 기억력은 절대 좋은 편에 속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떠올린 걸까?
‘친구인 레제를 위해서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린 거겠지.’
우정…… 아니, 집착의 힘.
역시 우리 루나는 무시무시했다. 집착광묘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속으로 혀를 찰 때였다.
집착광묘의 눈매가 살짝 치켜 올라갔다.
“너 설마…… 준비하지 않은 건 아니겠지? 그때 이후로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데.”
“후후, 그럴 리가요. 당연히 준비해 뒀습니다.”
아공간에서 레스토랑 티켓을 꺼내 들었다.
그렇다. 레스토랑 티켓이 있긴 했다. 그것도 무려 네 장이나.
문제라면 내가 예약한 게 아니라는 것, 그리고 원래 가려던 곳이 아니라는 것 정도?
‘카론에게 받은 거니까.’
레스토랑을 예약하기 위해 노력해 봤지만, 광장에 하나뿐인 레스토랑을 며칠 만에 예약하는 건 불가능한 일.
카론에게 부탁해 겨우 레스토랑 티켓을 구할 수 있었다.
‘첫째 잔은 수면제, 둘째 잔은 황천길’이라는 수상쩍은 이름을 한 레스토랑의 티켓을.
손님이 있는 게 신기할 정도의 네이밍 센스다.
레스토랑보다는 술집에 더 어울리는 이름이랄까.
‘그냥 이걸 들고 가면 된다고 했으니 문제는 없겠지만…….’
루나를 만족시킬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뭐, 이번에는 레제에게 휴식을 주려는 의도가 더 크니 별로 상관은 없을 거다.
“그럼 가면 되겠네. 마침 내일이 주말 시작이잖아? 내일 하루만 딱 쉬자.”
자신이 이겼다는 듯한 의기양양한 루나의 미소.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미소다.
“잘 다녀오십시오.”
“응?”
“레제 양과 단둘이 가라는 말입니다. 친구끼리 오붓한 시간을 보내라는 말이죠.”
“그, 그게 뭐야! 당연히 너도 같이 가야지!”
루나가 눈에 띄게 당황했다.
치솟은 루나의 콧대를 꺾기 위해 꺼낸 말이지만, 가고 싶지 않다는 말은 진심이다.
일치율이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스탯이 오르기는 하는 상태.
휴식은 일치율이 바닥을 치고 나서 해도 늦지 않다. 게다가.
“루시아 님에게 배울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습니다. 직접 지도해 주시기까지 하는데, 하루를 날릴 수는 없죠.”
“그, 그렇긴 하지만…… 친구는 한 몸인 거 몰라? 죽어도 같이 죽고, 레스토랑도 같이 가야지!”
친구가 한 몸인 게 아니라 부부가 한 몸인 거겠지!
그리고 친구가 죽는 데 따라간다니. 처음 듣는 말이거든!?
“후후, 루나 양. 이 세상에 그런 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만.”
“아니야! 이걸 봐! 여기 레스토랑 이름에도 그렇게 적혀 있잖아!”
루나가 레스토랑 티켓을 내 얼굴에 들이밀었다.
첫째 잔은 수면제, 둘째 잔은 황천길.
응, 전혀 그렇게 적혀 있지 않았다.
“친구의 치읓 자도 없습니다만.”
“‘천’자에 있잖아! 낱말 하나하나 뜯어보면 충분히 ‘친구는 한 몸이다’를 완성할 수 있기도 하고!”
이게 무슨 애너그램인 줄 아니?
그리고 이 짧은 사이에 그걸 분석했단 말이야?
이 정도면 광기다, 광기.
“……억지입니다.”
“아, 몰라! 같이 가! 같이 가! 같이 가!”
땅에 드러누운 루나가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어찌나 발버둥을 크게 치는지 빙글빙글 돌기까지 한다.
그렇게 루나가 세 바퀴쯤 땅을 돌았을 때.
“뭐야, 왜 이렇게 시끄러워?”
훈련용 매트리스에서 자고 있던 루시아가 깨어났다. 배를 벅벅 긁으면서 말이다.
최근 성실하게 우리를 지도한다고는 하지만, 이전에 비해서 성실해졌을 뿐이다.
훈련 시간 중 절반 정도는 지금처럼 매트리스 위에서 취침을 취하곤 했다.
“루시아 님! 제 말 좀 들어 보세요!”
루나에게 자초지종을 들은 루시아.
그녀가 입이 찢어지라 하품을 한 뒤 말했다.
“갔다 와.”
“하지만…….”
“너 요즘 엉망인 건 아니? 처음에도 그랬지만, 지금은 더 엉망이라고.”
틀린 말은 아니다.
근육 트레이닝, 루시아와의 지옥의 대련, 스탯을 올리기 위한 개인 수련까지.
멀쩡한 게 더 이상한 일이다.
“루나, 넌 훈련하러 가렴. 내일이 쉬는 날이니, 열심히 해야지?”
“넵! 이놈 좀 잘 설득해 주세요. 요새 제 말을 통 들어 먹질 않는다니까요?”
“그래, 그래. 내가 잘 말해 볼게.”
루나가 투덜거리면서 자리를 떴다.
루시아가 머리를 벅벅 긁으며 그 자리를 대신 차지했다.
“대체 왜 그러는 거야? 뭔가에 쫓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쫓긴다라. 정확한 표현이다.
‘퀘스트 제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어느덧 D-11로 바뀐 제한 시간.
루시아가 아카데미를 떠나기까지 고작 11일밖에 안 남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기간 안에 승부를 봐야 하니, 시간에 쫓길 수밖에 없다.
무려 50pt를 주는 퀘스트를 포기하라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고 보니 열받네. 남의 속도 모르고.’
내가 훈련을 열심히 하는 건 스탯을 올리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당신에게 인정받기 위해서이기도 하단 말이다.
그냥 인정 좀 해 주면 어디 덧나나?
짓씹듯 입을 열었다.
“……루시아 님 때문 아닙니까.”
“응? 나? 내가 거기서 왜 나와?”
“곧 떠나시니까요. 그때까지 보여드리고 싶을 뿐입니다.”
내 진심이 전해진 걸까.
루시아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흠흠, 뭘 보여 주고 싶은 건데?”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다만?”
“인정받고 싶을 뿐입니다. 루시아 님의…….”
“……나의?”
꿀꺽-.
왜일까. 루시아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내 귀에까지 들리는 것 같다.
조심스레 입을 열려고 할 때였다.
“서방님으로 인정받고 싶다. 맞죠?”
“으억!”
“꺄, 꺄아악!”
우리는 자지러질 수밖에 없었다.
유모가 우리 사이에 얼굴을 불쑥 들이민 거다.
대체 어디서 나타난 걸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없었는데!
“아가씨께서 고백을 받다니. 이 유모는 정말 감동했습니다.”
“고백은 무슨! 그리고 얘가 아니라 유모가 고백한 거잖아!”
“호호호, 제로 군도 그렇게 말하려던 게 분명합니다. 제가 대신 전했을 뿐.”
루시아와 유모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뭔가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인 것 같은 건 내 착각일까?
“……아닙니다만.”
“저리로 갓!”
루시아가 유모의 허리춤을 잡더니, 그대로 집어 던졌다.
턱-!
유모는 아무렇지도 않게 착지한 후, 갓 태어난 토끼처럼 바들거리는 레제를 보살피기 시작했다.
물론, 이쪽으로는 은근히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파이팅!
……내게 힘내라는 무언의 제스처와 함께.
“흠흠, 그래. 나한테 뭘 인정받고 싶다는 건데?”
그야 당연히 서방님으로…… 아, 아니. 이게 아니지.
“루시아 님의 제자로 인정받고 싶다는 뜻입니다.”
“제자~ 아?”
루시아의 눈썹이 기묘하게 꺾였다.
당연한 일이다. 지금까지 루시아의 공식 제자는 0명.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너 소문 못 들었니? 난 그런 귀찮은 거 안 기른다고.”
“후후, 제가 그 귀찮은 첫 번째가 되면 되지 않습니까.”
“사제관계는 그렇게 쉽게 성립하는 게 아니거든? 네가 뭘 원하는지는 대충 알겠는데…… 아서라, 욕심이 많으면 다쳐요.”
제국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영웅이자, 제국 십검 중 하나인 루시아.
그런 그녀의 제자, 그것도 첫 번째 제자가 된다면?
여기저기서 관심을 가질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그중에는 당연히 귀족들도 있을 것이고.
“그 무리들과 엮이며 정보를 얻겠다는 거겠지. 레스터 가문을 그렇게 만든 놈들에 대한 정보를.”
“후후, 날카로우시군요.”
“음~ 나쁘진 않지만, 너무 위험한 발상이야. 그러니 기각. 애초에 내 제자가 되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하기도 하고.”
루시아가 손사래를 쳤다.
루시아의 생각이 딱히 틀린 건 아니다.
하지만 내 노림수는 전혀 다른 쪽이었다.
‘루시아의 인정을 받으라는 퀘스트. 너무 추상적인 조건이란 말이지.’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도 모르겠다. 놀라게 하라는 조건은 선녀로 보일 정도.
‘하지만 만약, 내가 루시아의 제자가 된다면?’
퀘스트 조건이 충족될 확률이 높았다.
지금까지 한 번도 제자를 받은 적이 없는 루시아니까.
게다가.
‘운이 좋다면 칭호까지 얻을 수 있을지도.’
이 게임에서는 사제관계를 맺을 경우, 칭호가 주어지는데.
칭호에 달린 능력치는 상대의 경지에 따라 달라진다.
내 눈앞에 있는 루시아는 허당이지만, 명색이 제국 십검 중 하나.
그런 루시아의 첫 번째 제자.
엄청난 능력치의 칭호를 줄 가능성이 농후했다.
“후후, 그럼 어쩔 수 없군요. 계속해서 노력하는 수밖에. 당연히 내일도 훈련을 하겠죠?”
“난 안 나올 건데?”
“계약 위반입니다.”
“치사하긴! 하루쯤은 쉬어도 되잖아! 그리고 내가 쉬려고 이러는 줄 아니? 너 지금 엄청 지쳤다니깐? 그런 몸 상태와 집중력으론 아무것도 안 된다고!”
루시아가 왈칵 짜증을 냈다.
노린 대로다.
“후후, 그럼…… 저와 내기 하나 하시겠습니까?”
“내기?”
“예, 제가 한 번 더 루시아 님을 놀라게 하면 제자로 받아 주시는 겁니다. 절 제자로 ‘인정’하시는 거죠.”
‘인정’이라는 단어에 일부러 힘을 가득 주어 말했다.
“끄응…….”
루시아가 고뇌에 빠졌다.
내일 쉬고는 싶고, 하지만 나를 제자로 받아 주기는 싫고.
고인물의 계산에 의하면 확률은 50%.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
하지만 괜찮다. 이럴 때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만드는.
마법의 단어가 있으니까.
“후후, 설마 쫄으신 겁니까? 제국 십검 루시아 님이?”
일명 쫄? 작전.
효과는 확실했다.
빠직-.
“그래, 하자. 내기라고 했지? 네가 졌을 때는 어떻게 할 건데?”
내가 졌을 때라. 그런 건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루시아는 꽤 큰 걸 내어놓은 상태. 나도 그에 걸맞은 걸 내놓아야 한다.
“딱 한 번. 루시아 님이 원하는 건 뭐든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뭐든지? 그럼 우리 가문의 비밀을 어떻게 알았는지도 말해 줄 수 있다는 거네?”
“후후, 그걸 원하신다면요.”
소원권이자, 일명 제로 자유이용권.
조금 전 말한 루시아의 질문은 대답하기 곤란하지만, 뭐…… 어떻게든 될 거다.
루시아가 흡족하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D-11. 이걸로 퀘스트를 깰 수 있는 교두보를 만들었다.
내일 하루를 희생하게 됐지만, 이 정도면 나쁜 거래는 아니다.
“참, 레스토랑 티켓이 한 장 남았습니다만. 같이 가시겠습니까?”
“아니. 보나 마나 저가 레스토랑일 텐데 뭐. 난 잠이나 잘래. 너희도 내일 잘 쉬도록 해.”
루시아의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내기도 내기지만, 내일 쉴 수 있게 됐다는 게 기쁜 모양이다.
그런 루시아의 곁으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유모였다.
“아가씨는 다 계획이 있으셨군요.”
“응?”
“소원권으로 제로 군에게 결혼을 제시하려는 계획인 거지요. 놀랍습니다! 아가씨가 이렇게 똑똑하셨다니!”
“무, 무무무 무슨 소리야! 내가 그런 걸 제안할 리가 없잖아!”
“이 유모는 감격했습니다! 당장 식장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아, 유모! 다 들린다고!”
투닥투닥.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나 스스로 판 함정에 빠진 걸지도 모르겠다고.
* * *
“흐음…….”
루나와 레제를 기숙사로 보내고, 남자 기숙사로 향하던 중.
나는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었다.
‘한 장이 남는데…… 누구를 데려간다?’
네 장의 레스토랑 티켓.
나, 루나, 레제. 세 명은 확정인 상태.
남은 한 장의 자리에 누구를 초대해야 좋을지. 고민에 빠져 있었다.
‘굳이 남은 한 자리를 채울 필요는 없지만, 호감도 시스템이 존재하는 게임이니까.’
낭비하긴 싫었다. 문득, 머리에 한 사람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 늦은 시간에 만날 수 있을까?’
워낙 바쁜 사람이니까 말이다.
그런 내 시야에 쓰레기통이 하나 들어왔다. 공원에 있는 평범한 쓰레기통.
그러고 보니, 히든 피스가 있었다.
‘그 사람’을 나오게 할 수 있는 히든 피스가.
다리를 몇 번 턴 후, 힘차게 뻗었다.
쓰레기통을 걷어찬 거다.
뻐엉-!
와르르-!
안에 있던 쓰레기가 튀어나온 건 당연한 일.
그 모습을 바라보던 때였다.
삐비빅-!
“쓰레기 무단 투기는 벌점 행위다!”
앤우드 아카데미의 부학생회장이자, 벌점 폭격기.
로델린이 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